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14화 (14/502)

00014  2012  =========================================================================

[와... 클라스 지리네. 와...]

[하... 고, 공지연...]

[아, 짜증나.]

[더러운 세상, 아주 다 가져가라, 다.]

도대체 5명이서 얼마나 쳐 먹었는지는 몰라도, 계산을 하기 위해 카드를 내미는 손이 너무나도 떨려왔다. 애초에 녀석들에게 얻어먹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기에, 각오를 하긴 했지만 각오와 실천은 다른 얘기니 말이다.

그렇게 믿기지 않는 숫자가 적혀있는 영수증에 말을 잇지 못한 내게 들려온 말은 잘 먹었다거나 고맙다는 말 따위가 아니었다.

이 자식들이. 아직 발매되지도 않은 따끈따끈한 앨범, 기껏 챙겨줬더니 어디서 또 주둥이를 댓 발 내밀어?

[미친, 공지연이랑 포옹을 해? 고, 공지연 옷은 왜 이렇게 야, 얇은데?]

[이, 이거 입술 닿았어? 이런 미친? 입술 닿았어, 안 닿았어! 말해 이런 씨!]

[뭐, 뭔데. 저, 전화번호 알아? 나, 나 저, 전화.]

[앨범이 벌써 나와? 이런 씨, 지리네. 지려. 하...]

그런 녀석들에게 다시 한 번 딱 밤을 날려주고는 쿨 하게 뒤돌아섰다. 급식들뿐인 녀석들과는 술 한 잔 걸칠 수도 없을뿐더러, 내일은 빌어먹을,

“선배님들 서두르셔야 합니다! 2분 뒤면 9시 입니다! 조금이라도 늦으시면 퇴소시간 1시간 늘어나십니다!”

예, 예비군이니까.

[선배님들 총기 챙기셔야 되지 말입니다! 진지 이동하겠습니다!]

[선배님들 서두르셔야 합니다. 지금도 늦으셨습니다.]

[서, 선배님들. 지, 지금 다음 조 맡으신 당직사령님 오신답니다. 어, 어서 다음진지로 가셔야 합니다.]

걸어서 동네 한 바퀴라도 하는 것인지. 우리 동네에 이렇게 진지가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빌어먹을 향방작계.

“뭐야, 군대놀이하냐? 웬 군복?”

힘들다. 고되다. 짜증난다.

그런데, 군대놀이라니!

이 사람이 지금 알면서 놀리나?

전반기 향방작계를 마치고 돌아온 내게 망발을 내뱉는 삼촌을 무시한 채 서둘러 군복을 벗어던졌다. 제기랄. 이제 1년차라니! 동미참도 3일이나 가야 된다니! 후반기 향방작계도 남아있다니!

하, 세상은 썩었다.

*

[신인의 반란! 포이보스 뮤직의 신성! 가요계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다!]

-음반 발매 두 달 만에 각종 기록 갱신! 프로젝트 데뷔에 출연했던 가수 강지혁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 포이보스 뮤직의 새로운 아티스트로서 ...... 현재 25만 장의 판매기록이 집계된 가운데, 첫 데뷔를 정규 앨범으로 시작한 ......

[요즘 핫한 신인여배우 공지연과의 앨범화보집 화제! 앨범에 동봉된, 수록곡에 딱 맞는 화보집 팬들의 극찬 이어져!]

[음원시장으로 전환된 한국 가요계에 기적을! 음반 판매량 역주행의 신화!]

-포이보스 뮤직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신인가수가 한국 가요계를 뒤흔들고 있다. 아이돌 일색인 한국가요계에서 남성 솔로가수가 그것도 정규앨범으로 데뷔를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 ......

[발매하고 한 달 뒤부터 시작된 역주행의 신화! 정말 좋은 음악은 결국 성공한다는 진리!]

[포이보스뮤직 대표 프로듀서 유민재 曰 “타이틀 곡 없는 정규앨범, 아티스트의 의견에 따라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 일체의 방송활동은 없을 것......”]

[포이보스 뮤직 정재영 曰 “두고두고 소장할 만한 음반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수록곡 14곡 모두 본인 작사, 작곡한 만큼 강지혁 본인이 가장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비 아이돌의 반란! 강지혁 정규 1집 “기억하고 싶은 아픔” 다 죽어가던 한국 비아이돌 음반시장 살리나?]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이 현실화되었다.

별다른 돈 드는 홍보대신, 포이보스 소속 뮤지션이기에 그저 회사 홈페이지에 정규앨범 발매소식을 개재하고 몇몇 지인들의 SNS에 홍보를 부탁드렸을 뿐인데 말이다.

이래서 인맥이 중요한 건가? 내가 아는 인맥이라고는 재성삼촌, 민재 삼촌, 재영 삼촌과 같은 몇 몇 삼촌들과 포이보스 소속 뮤지션들이 전부일진데 이렇게 효과가 좋은 걸 보니 별 생각이 다들 지경이다.

그래도 양연혁 대표님이 SNS에 홍보해 주신 건 정말 의외였다. 프로젝트 데뷔에서 탈락한 뒤 집에서 뵌 이 후 본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지혁아! 이 복덩이자식!”

앨범 대박 날거라며 격려 아닌 격려를 계속해서 전해주던 민재 삼촌의 말에 나는 어벙벙하니 컴퓨터 화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프고 또 아팠지만, 그보다 더욱 소중한, 추억할 수 있는 기억들을 남겨준 그녀에게.]

앨범 마지막 THANKS TO에 남겼다시피, 오롯이 그녀를 생각하며 만든 음반이 잘됐다는, 아니 대박 났다는 사실이 기쁘기 그지없었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으니까.

다시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로 돌아간다면, 또다시 그녀와 사랑을 하겠냐는 질문에 지금의 나는 똑같이 그녀를 사랑하겠다고 말 할 자신이 있다. 그 결말이 비록 이별일지라도, 그 과정이 날 너무 행복하게 했으니 말이다.

“에이, 삼촌이랑 재영 삼촌이 정말 많이 도와주셔서 겨우 녹음할 수 있었어요.”

이번 앨범을 통해 작사, 작곡을 모두 내가 했다 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전담 식으로 앨범 작업을 도와주신 민재 삼촌 그리고 프랑스에서 서울까지 오셔서 녹음을 도와주신 재영 삼촌이 없었다면 이렇게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 내 앨범은 나올 수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아이돌이 아닌 이상 음반 발매는 자살일 수밖에 없는 한국 시장에서 아무리 음악이 좋다고는 하나, 신인이 그것도 남자 솔로 가수가 정규앨범으로 데뷔를 한다는 것은 꽤나 큰 위험을 동반하는지라 재성 삼촌과 재영 삼촌 또한 걱정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많은 격려를 해주셨고 결과적으로 음반이 대박 났으니 다행일 뿐이다. 나를 위해 애써준 이들의 밝은 표정과 웃음은 언제 봐도 기분 좋은 것이니까.

물론 재성 삼촌은 웃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울기까지 해서 문제지만 말이다.

‘누나! 누나! 지혁이가 크흑... 지혁아 삼촌이 미안하다, 미안해.’

그 후로 회사일 때문에 얼굴 보기 힘들어졌지만, 그날 삼촌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래, 삼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됐으니까.

어쨌든, 요즘 나는 꿈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당초 예상을 벗어나 지금까지도 판매 속도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음반과 주위사람들의 웃음까지. 그리고 이제는 혹시라도 그녀와 마주치게 된다할지라도 웃으면서 지나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너무나도 좋았으니까.

“지혁아! 음악방송 안가도 괜찮냐? 그래도 한 번 쯤은 나가보고 싶은 거 아냐?”

“괜찮아요. 삼촌. 꼭 방송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음악 할 수 있어서 좋아요. 혹시 꼭 나가야 되는 건가요?”

“에이! 그런 게 어딨냐, 지혁아. 삼촌이 말했지? 방송은 하고 싶은 거만 하라고?”

“아 그래요? 그래도 좋은 프로그램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한번 생각해볼게요.”

“그래? 그럼 그냥 뭐, 요즘 도화지라는 프로그램이 좋다고 하더라고.”

“예? 그거 삼촌이 하는....?”

“아참! 지혁아 삼촌 일 있어서 먼저 가본다!”

바쁜 일이 있어서인지, 민재삼촌은 이내 자리를 벗어났다.

굳이 방송을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음반이 잘나가서 이런 선택을 하는데 부담이 없는 것일 수 있다. 방송을 나가지 않아도 내 음악이 널리 들린다는 것에 어느 정도 만족을 한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방송을 아예 나가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어찌됐건 나는 이제 가수이니까.

*

“학생! 여기 강지혁 언제 오는 지 알아?”

“몰라요.”

“아주머니 여기 건물 지하에 있는,”

“내가 그걸 어케 알것어! 이놈의 사람들이 왜 자꾸 사람을 귀찮게 해?”

앨범이 이슈화되기 시작하면서 조용하기 그지없던 포이보스 뮤직에 기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잠은 자는지, 거의 24시간 내내 회사 앞에서 대기를 하는 통에 주변 상인들의 민원이 꽤나 많아졌다니, 나로서는 죄송할 따름이었다.

그나마 우리 회사가 건물 지하에 위치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다짜고짜 회사 안으로 기자들이 밀고 들어왔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회사 앞에 진을 친 기자들 몰래 겨우 빠져나온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꽤나 오랫동안 가지 못한 익숙한 장소였다.

“엠프를 어디다 뒀더라, 아! 여깄고! 그리고 마이크가...”

간만에 삼촌의 작업실에 들렀다. 내가 삼촌의 작업실에 들린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가 버스킹할 때 사용했던 엠프와 마이크를 가져가기 위해서.

포이보스에 있는 것들을 써도 되지만, 수많은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괜히 주목을 끌고 싶지 않은 나머지 이곳을 다시금 찾았다. 오늘은 몇 년 만에 홍대로 갈 생각이었으니까.

[프로젝트 데뷔에 출연했던 비운의 가수 강지혁! 데뷔앨범 발매 석 달 만에 57만장 돌파!]

[김나박이의 뒤를 잇는 차세대 남자 강지혁! 그의 방송 활동은 도대체 언제?]

[불가능을 현실로! 90년대를 끝으로 전멸하다시피 한 비 아이돌가수의 반란!]

[포이보스뮤직의 저력! 강지혁 효과 톡톡히 누려! 포이보스 뮤직 曰 “우리는 그저 우리의 길을 걸을 뿐, 아티스트가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게 전적으로, ...”]

[강지혁의 데뷔 첫 방송은 어디? 방송 3사 치열한 각축전!]

갑작스레 다시금 버스킹을 위해 홍대를 찾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더 이상 방송출연을 외면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앨범을 발매한지 몇 달이 지났음에도 정규 1집에 대한 관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언제까지 방송을 안 나갈 수는 없었다. 물론 민재 삼촌은 방송에 안 나가도 된다했지만, 나도 눈치는 있는 편이다.

얼굴도 알려지지 않은 나 대신에 방송사들의 집요한 섭외시도가 민재 삼촌을 비롯한 포이보스 소속 아티스트들을 괴롭혔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가 자진해서 방송에 출연하겠다고 했다.

주변사람들이 나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꺼려지기도 했거니와 벌써 음악방송 1위만 한 달 가까이 했는데 마냥 외면하기가 힘들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메이저 방송사 음악방송 1개씩과 민재 삼촌의 도화지에 나가는, 일주일이면 끝날 방송활동이지만 그것을 위해 나는 오늘 홍대로 향했다.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되면 꼭 이곳에서 부를게요! 그동안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비록 예상 밖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으로 지키진 못했지만 그래도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는, 내 노래를 들어주던 이와의 약속을 잊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그렇게 다시 찾은 홍대는 여전히 붐볐다. 곳곳에 버스킹하는 사람들로 거리는 북적였고 여전히 내가 버스킹을 하던 곳은 인적이 드물었다.

그곳에서 내가 엠프와 마이크를 놓자, 몇몇 사람들만이 나를 쳐다볼 뿐.

“후...”

오랜만에 찾은 나만의 무대에 잠시 깊은 숨을 내쉰 내가 다시금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외롭다]

너무 잘 살고 있어.

극장에 가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거리를 떠돌며 홀로 설레기도 해.

너무 잘 살고 있어.

그런데 왜 이렇게 외로운 걸까.

이런 게 진짜 잘 사는 걸까.

행복한 삶이란 이렇게 고독한 걸까.

아니며 사는 것 자체가 이렇게 힘든 걸까.

......

앨범 순서에 따라 첫 곡은 ‘외롭다’였다.

차분히 내 얘기를 풀어 놓기에는 이곡이 제격이었고, 이를 생각해서 앨범의 첫 곡으로 수록한 것이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앨범을 발매하고 갖는 첫무대를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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