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0 2012 =========================================================================
“혀, 형.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헐, 대박...”
2천명의 평가단 앞에서 무대를 가진다고 말로만 들었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었다. 매스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사 말마따나, 잘 나가는 가수들은 몇 천 명을 앞에 둔 공연은 물론이거니와, 콘서트를 하게 되면 몇 만 명 정도는 우습게 눈앞에 두고 공연을 하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좌석에 꽉 들어선 2천명의 평가단을 보니, 나 또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이 주는 에너지와 위압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런 심정을 겉으로 마냥 드러낼 수는 없었다. 여기서 내가 그런 티를 내면 나머지 녀석들도 덩달아 계속해서 그래버릴 테니까.
“일단, 우리차례가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마지막이니까. 대기실에서 계속 맞춰보자. 알겠지?”
“네...”
“응.”
“얍!”
“알았어, 형.”
관객이 없는 상태에서 했던 리허설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지금과 그때의 무대는 차이가 심했는지라 서둘러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당장, 긴장감을 풀기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으니까.
*
[우와!]
[영진 오빠!]
시간은 어째서 이리도 빨리 흐르는 걸까.
순식간에 18개 팀의 공연이 끝나고 우리들의 차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2조의 인기가 대단한가보다. 방송이 되기도 전에 저렇게 환호하는 관객들이 있는 걸 보니 말이다.
듣기로는 모델 활동도 하고 뮤직비디오 촬영도 몇 번 했다고 하던데, 전체적으로 꽃미남 일색인 저쪽 팀 구성원 상 아무래도 전체 관중석의 과반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여자 방청객들에게 큰 어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 2조의 공연부터 만나보시죠!]
우리 팀 구성원들 또한 전체적으로 외모 면에서 출중했지만, 나란 존재가 있으니 뭐.
하, 서럽다.
그렇게, 가장 마지막 순서이기에 무대 바로 뒤편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2조의 무대를 먼저 지켜보게 되었다.
[차가움 속의 사랑 - 오성]
......
차갑고 차가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지켜내고 싶은 사람, 꿈, 사랑
그럴 수만 있다면
차갑게 얼어버린 이 세상을
포근히 안아 줄 거야.
그런데, 생각보다 녀석들의 무대가 별로였다. 요 며칠 연습실에서 별로 마주치지 않아서일까. 나름 긴장하고 2조의 무대를 지켜봤는데, 기대 이하의 공연이라는 느낌부터 들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느낌이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녀석들의 무대는 거의 완벽했다. 다만, 엉망이었던 처음 우리 관점에서 지켜봤을 때의 그들 무대와 달리, 지금 우리들 관점에서 지켜본 그들의 무대가 조금 다르게 다가왔을 뿐.
뭔가, 감정보다는 기계적인 느낌이 묘하게 나는 무대를 보고나자 자신감이 조금씩 내 안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런 내 느낌과는 다르게 엄청난 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1조이지만 말이다.
“잘해보자. 후회 없이. 형만 믿고. 하던 대로. 오케이?”
“오케이!”
“얍!”
[차가움 속의 사랑 - 오성]
차가움만 느끼고 살았을 너.
그 누구도 너를 녹이질 못해
홀로 그 외로움을 차갑게 얼려 버렸을 너
모두가 외면했던 네게 다가가려 해.
그런데 그런 느낌은 나만 받은 것이 아니었나보다. 도입부 파트를 맡은 주혁, 도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깨달았다. 녀석들이 음에 자신감이 스며들어있다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나와 화음을 주고 있는 나머지 녀석들의 눈빛에서도 이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라, 뭔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다가왔다
......
차갑고 차가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지켜내고 싶은 사람, 꿈, 사랑
그럴 수만 있다면
차갑게 얼어버린 이 세상을
포근히 안아 줄 거야.
안정감 있게 중반부로 들어서는 수현과 시혁의 모습에 나의 신경은 오롯이 주혁과 도현에게로 향했지만, 이는 기우였다. 마치 그동안의 노력을 보여주겠다는 듯,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화음이 내 목소리에 어울렸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나뿐이다. 1명의 보컬과 4명의 화음이 어우러져 노래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메인 파트만이 남았으니까.
시끄러운 이 도시에 혼자
버려졌어, 남겨 졌어.
그 어떤 것들이 날 방해해도
내가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니까.
차갑고 차가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지켜내고 싶은 사람, 꿈, 사랑
그럴 수만 있다면
차갑게 얼어버린 이 세상을
포근히 안아 줄 거야.
생각보다 너무나도 훌륭히 자신들의 파트와 화음을 소화해내고 있는 녀석들 탓인지, 나 또한 그동안 엄두를 못 냈던 부분에서 과감히 능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껏 해왔던 연습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혀왔지만, 해내고 싶었다.
[너 앨범 내기 전에 한번 해보라는 거야. 넌 너무 자신감이 없어.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 데뷔하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기회니까, 최선을 다해봐.]
[강지혁, 할 수 있겠어?]
[전체 화음에다가 메인파트 그리고 저 두 명 파트 부분까지. 혼자 무대에서 할 수 있겠느냔 말이야. 솔직히, 지금도 간당간당한 것 아니었어?]
내 능력의 한계가 뭔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들을 둘러싼 2천명에 가까운 관중들의 시선이 어느 순간부터 부담감이 아닌 희열로, 벅차오르는 숨결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굳은 의지와 자신감으로 다가왔을 뿐.
*
무대가 끝난 뒤 울려 퍼지는 관객들의 박수소리와 환호성에 우리들은 서로의 어깨를 붙잡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사회를 맡은 이준석씨의 진행으로 인해 곧이어 대기실로 내려가야 했지만, 그 짧은 순간 우리는 무대로부터 얻은 희열과 감동, 성취감과 같은 복잡한 감정의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나는 못 마신 공기를 모조리 들이마셔 버리겠다는 듯한 폐의 움직임에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게 세상일인가 보다.
[차가움 속의 사랑 득표 결과]
[(2)김영진S] 452
[(1)강지혁S] 202
[(1)성수현S] 174
[(1)유시혁B] 164
[(1)기주혁D] 158
[(1)김도현D] 149
[(2)이원근A] 148
[(2)백하얀A] 143
[(2)최정우A] 133
[(2)이현A] 123
[1조] 847
[2조] 999
[기권] 154
스크린에 일순간 보여 지는 결과표에 두 팀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152표. 152표 차이로 승리를 거머쥔 2조 팀원들은 환호성을 지른 반면에 1조 팀원들의 분위기는 마치 초상집을 치루는 듯 조용하기만 했다.
뒤늦게 그런 1조의 분위기를 눈치 챈 듯 환호를 그친 2조 팀원들이었지만, 이미 1조에게 있어 그들의 그러한 태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수고했다. 자식들. 다들 이리 모여 봐!”
리더인 지혁의 외침에 1조 팀원들은 그에게로 안겨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들이 가진 역량을 넘어선 무대를 통해 2등부터 6등 전부를 차지했지만 끝내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 오는 감정과 함께, 그동안의 마음 고생했던 것들이 물밀듯이 몰려왔을 테니 말이다.
“임마,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한거야. 열심히 했으니까, 됐다. 내가 보증하는데, 너희들 열심히 했어.”
“형, 흑흑 죄송해요. 저 때문에...”
“죄송해요...”
“자식들이 건방지게! 형이 못해서 진거라 조용히 넘어 갈랬는데, 너네들이 그러면 내가 묻힐 수가 없잖아! 크으...”
그런 1조 팀원들의 울음 섞인 사과에 지혁은 그저 녀석들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를 할 뿐이었다.
“그치만...”
“너네들 다 잘했으니까 걱정 말고. 다음 경연 걱정이나 해라. 알겠냐? 댄스로 들어왔으면 댄스로 뭐 하나 보여줘야지. 안 그래?”
그 말마따나, 애초에 댄스를 주 분야로 하여 서바이벌에 참가한 만큼 보컬 곡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각자 상대팀 4명을 앞질렀다는 것은 그만큼 녀석들의 노력이 대단했다는 걸 드러내는 증거이기에 지혁은 그저 그들의 어깨를 감싸며 위로를 할 뿐이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조금은 벅차다고 생각했던 그로서는 지금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예상해왔으니까.
*
[조]
- 차가움 속의 사랑 1조
[리더]
- 강지혁
[탈락자 선택]
- 강지혁
[선택 사유]
-강지혁은 주 분야가 보컬인데다가 이번 평가에서 리더와 센터, 메인보컬로서 가장 많은 파트를 보장 받았음. 따라서 같은 포지션을 맡은 상대팀 김영진 연습생의 절반도 못 돼는 득표수에 대한 책임이 큼.
-성수현, 유시혁은 보컬 라인으로서 같은 포지션을 맡은 상대팀 팀원보다 월등한 득표수를 얻었기에 패배의 책임이 없음.
-기주혁, 김도현은 댄스 라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평가에서 엄청난 선전을 보여주었음. 또한 앞서 말했다시피 주 분야가 댄스 인만큼, 차후 제대로 된 댄스곡으로 대중들에게 평가를 받는 게 옳다고 생각함.
[하고 싶은 말]
- 수고하셨습니다. 배틀에서는 졌지만, 많은 관객 분들의 호응 덕에 개인적으로 제 노래에 대해 많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더욱 좋은 음악으로, 더 나은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수현, 유시혁, 기주혁, 김도현 파이팅! 아! 그리고 민재 삼촌 죄송요! 1차에서 떨어졌네요. 쩝...
“후회는 없냐? 현장 투표에서 200표 넘게 받은 것도 쉬운 일 아니라는 거 알지? 게다가 온라인 투표는 아직 시작도 안했다.”
경연이 끝나고 결과를 받은 뒤 펑펑 울어서일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진 녀석들을 뒤로 한 채 나는 얼마 없는 내짐을 대충 싸들고 트레이닝 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녀석들과는 달리, 나는 지금 방안 침대에 눕는 것보다 우선인 할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뭐,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애당초 목표는 이뤘으니까요. 게다가 댄스로 들어왔는데, 댄스 한번 못해보고 방출이면 너무 서글프지 않아요?”
[너 앨범 내기 전에 한번 해보라는 거야. 넌 너무 자신감이 없어.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 데뷔하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기회니까, 최선을 다해봐.]
솔직히 1차 평가는 내게 있어 단순 방출 여부를 가릴 무대 뿐만은 아닌 그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인,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목표와의 연관이 깊었다.
그래서일까.
결과가 아쉽긴 하지만, 미련을 비교적 쉽게 추스릴 수 있었다.
어쨌든,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민재 삼촌이 어째서 내게 이 프로그램의 참가를 권유했는지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으니까.
“그놈들이 살아남을 줄 누가 알고? 이미 배틀에서 져서 우승 혜택도 못 받고 온라인 투표도 남았는데?”
“에이, 그것까지 내가 고려해야 되요? 안 그래도 탈락해서 서러운데?”
“서러우면 지금이라도 고치지?”
“아, 이거 왜 그러실까? 이 아줌마들이 나이 들어서,”
[악!]
“왜 때려요! 진짜 나도 이제 22이라고요!”
뭐, 그렇다고 해서 욕심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잠수타지 말고 연락해라. 알겠냐? 이제는 술 좀 마시지?”
“뭐, 사주면 연락하고요.”
“돈 걱정은 안하고 연락해도 되는데 대신 집에 갈 생각하지 말고 와라.”
“뭐에요. 그게. 연락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애들한테는 말 안하고 가냐?”
“뭐, 어차피 오늘이나 내일 전원 퇴소하고 방송 2회 차 며칠 뒤에 다시 입소하는 거 아니에요? 방출 문자 안 받으면? 뭐, 그때까지 모른 척하고 있으면 되지 무슨. 어쨌든 나 이만 갑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저 멀리서 회사 직원분이 차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에 아줌마들에게 손을 흔들며 등을 돌렸다.
그래도 안면이 있어서인지, 아줌마들이 친히 마중 나온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비록 뭔 말만하면 폭력부터 행사하는 아줌마들이지만, 속내를 생각해보자면 나름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는 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같이 지낸 몇 주 동안 녀석들과 나름 정이 들었나보다. 어느 정도 미련을 추스르자, 녀석들 걱정이 들기 시작하니 말이다.
자식들 뭐, 알아서 잘 할 테지.
이미 내 손을 떠난 사안인지라, 고개를 좌우로 흔든 뒤 대기하던 차에 올라탔다.
하, 고되다. 고되.
*
[뭐냐?]
[네가 여기 왜?]
[지혁아 오랜만이다? 야 근데, 지혁이 지금 무슨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뭔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실루엣의 세 남자를 보게 됐는지라 반가우면서도 어색했다.
오랜만에 본 두 삼촌들 앞에서 탈락했다고 말을 하는 것도 민망했고 양현석 대표님 앞에서 못난 꼴을 보이는 것도 조금 창피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뭐 어떡하리. 술을 드신 것인지 왠지 모르게 기분 좋아 보이는 세 남자가 나를 보는 눈빛이 매우 뜨거웠는지라 대답을 안 하고 들어가기란 절대로 무리였으니 말이다.
“타, 탈락해서...”
“뭐?”
“뭐라고?”
“네가?”
뭔가 더 말하기가 무서워진다.
방금 전까지는 조금 민망하고 창피해서 말하기 조금 그랬는데, 이제는 내 눈앞의 세 사람이 내게 보여주는 반응이 무서웠으니 말이다.
“자세한 건 방송 보시고요. 아참! 그리고 저 탈락인거 다른데다 말하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그럼 저는 피곤해서 이만. 즐거운 시간 되세요!”
잽싸게 짐을 들고 내 방으로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뭐, 뒤편에서 뭐라, 뭐라하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말이다.
하, 그럼 마음 놓고 잠이나 자봐야겠다. 평가니 뭐니 해서 요새 밥 먹듯 밤을 샜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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