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8 2012 =========================================================================
[차가움 속의 사랑 - 오성]
......
시끄러운 이 도시에 혼자
버려졌어, 남겨 졌어.
그 어떤 것들이 날 방해해도
내가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니까.
차갑고 차가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지켜내고 싶은 사람, 꿈, 사랑
그럴 수만 있다면
차갑게 얼어버린 이 세상을
포근히 안아 줄 거야.
[숨은?]
[숨이 차긴 한데, 뭐 화음 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보,]
[박자는?]
[메트로놈 대신 손이랑 발로 한,]
[음은?]
[그거야, 자주 들었,]
[알았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한다. 시간도 다 됐으니까. 이만 해산!]
무슨 말을 끝까지 내뱉질 못하게 하는 아줌마 덕에 열이 뻗쳐도 너무 뻗친다. 안 그래도 부르는 사람 숨 막히게 하는 노래, 혼자 불러서 세상이 노랗게 보일 지경인데 말이다.
“그 정도는 해야, 1등하나 봐요. 형 대박이에요...”
“와, 인정.”
“지렸다. 진짜.”
“형 죽겠으니까, 놀리려면 5분 있다 해라. 하... 이래서 파릇파릇한 민짜들이란.”
그동안 못 먹은 공기를 다 마셔버리겠다는 듯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하, 민짜였을 때는 이정도 쯤은 아무렇지 않게, 아 그때도 힘들었구나.
여튼, 뭔가 그새 친해져버린 듯한 녀석들을 보니 훈련소 때 생각이 났다. 장병 소포를 집으로 보내고 똥 국에 재탕 깍두기를 먹어야만 했을 때 급속도록 친해졌던 훈련소 동기들이 말이다.
뭐, 그만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썩어 빠진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야, 그만 노가리 까고 각자 연습하러 가야지?”
대충 숨을 고른 뒤,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녀석들을 데리고 연습실을 나섰다. 하, 그나저나 이제 어쩐다.
*
“와... 개 뭐에요? 진짜?”
트레이너 대기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는 그 순간까지 감탄을 금치 못하는 나이트의 모습에 다른 트레이너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만큼 그녀의 행동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했으니 말이다.
“뭔데, 뭔데? 무슨 일인데요?”
“아니, 그게 말이야...”
그런 트레이너들의 궁금증을 대신해 이준석이 김시은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사자인 나이트에게 묻기엔, 그녀가 조금 비몽사몽해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김시은의 말에 트레이너 일동이 놀라고 말았다. 나이트의 지금 행동이 한 명의 연습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예전에도 곧 잘 불렀는데, 군대 가서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아주 괴물이 됐어. 괴물이.”
“예전보다 더?”
“그렇다니까. 기술적인 부분은 그때보다 조금 나아진 수준인데,”
“수준인데?”
“감정 싣는 게 장난 아니야. 몰입하는 것도 그렇고.”
그 중에서 김수정 트레이너의 놀람은 특히나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비록 맡은 파트가 댄스일지라도, 과거 녀석의 노래를 들어본 게 한 두 번이 아니니 말이다. 하물며, 그때 당시에도 보컬만큼은 대단하다고 느꼈으니 오죽할까.
“그런데, 전부터 궁금했는데 강지혁 연습생이랑 안면이 깊은가 봐요?”
“그 녀석 JS 연습생이었어. 그것도 만년 데뷔 조 연습생.”
“3번인가 밀려난 걸로 알고 있어. 자체적으로 데뷔 엎어진 것 까지 합치면 열 번도 넘을 걸?”
뭔가, 모집영상을 볼 때부터 강지혁 연습생에게 꽤나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하는 두 트레이너의 모습을 눈치 채지 못한 이는 없었기에 이준석의 질문에 다른 트레이너들 또한 관심을 더했다. 그들로서도 범상치 않은 포스를 뿜어내던 강지혁 연습생의 모집영상을 아직까지 잊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그 녀석 처음 본 게 2번째 밀려났을 때였어. 첫 번째도 나이 때문에 밀려났는데, 두 번째도 나이 때문에 밀려나서 아주 애가 다 죽어가더라고.”
“하긴, 내가 알기로 연습생 10년 넘게 했을 걸? 9살 때부터 연습생 했다고 들었으니까 말이야.”
“9살 때부터요?”
“허...”
그리고 그들이 원하던 답변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애가 나름 그쪽으로는 정신적으로는 단단해. 방출은 왜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말이 10년 넘게 연습생이지. 내가 알기로 개 중학교도 겨우 졸업했을 걸? 고등학교는 안다녔으니까.”
특히나 아이돌 출신 트레이너인 하연과 세아는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평가할 때는 사심 같은 것 절대 안 넣을 테니 걱정 마. 뭐, 사심 넣든 안 넣든 어차피 방출은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지만 말이야.”
그 후로도 트레이너들의 대화는 계속됐다. 그들에게는 강지혁 뿐만 아니라 100여 명에 달하는 연습생들의 트레이닝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었으니까.
*
[강지혁 팔굽혀 펴기 86개!]
[강지혁 윗몸일으키기 91개!]
[강지혁 3KM 달리기 12분 17초!]
[오늘 체력검정에서 하나라도 3급 이하 받은 사람은 개선 될 때까지 따로 마련된 식단만 드셔야 됩니다!]
하, 삭신이 쑤신다. 삭신이 쑤셔.
“와, 형 대단해요.”
“진짜, 대박!”
옆에서 같은 조 녀석들이 쫑알쫑알거렸지만 지금 당장 나는 죽게 생겼다. 전역한지 한 달도 안 돼서 다시 입대한 것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무슨 6시 기상이야? 하, 미치겠네. 그리고 이건 또 뭔데?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펴기, 3KM 달리기?”
말이 씨가 된 탓일까. 훈련소 생각한번 했다가 된통 당하게 생겼다.
체격 교정이랑 다이어트라나 뭐라나. 웬 우락부락한 트레이너 한 명이 오더니, 합숙 생활이 익숙한 현장이 돼버렸다. 이거, 제식만 가르치면 완전 훈련소 1주차잖아?
“형, 대단해요. 형이 전부 1등 아니었어요? 하긴, 형 어제 샤워할 때부터 알아봤어...”
“하긴,”
“크면 장 땡이지. 더럽다 세상 하... 난 앞으로 일주일동안 식단관리... 하...”
“사스가 클라스 지리구연...”
뭔가, 이상한 쪽으로 얘기가 새가는 것 같아 녀석들의 대가리를 기분 좋게 후렸다.
[탁!] [탁!] [탁!] [탁!]
“아!”
“악!”
“임마! 부럽냐? 걱정마라, 대한민국 남자라면 그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으니까. 이 자식들이 비 오는 날 배수로 삽질 좀 해봐야, 정신 차리지. 어휴. 미필들이란. 쯧쯧.”
“왜 때려요! 와, 이젠 폭력까지...”
“거기만 크면 다냐! 치사하다!”
“지리네...”
그런데, 주혁이 저 녀석은 뭘 자꾸 지린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벌써부터 지리고 다니면 나중가면 어쩌겠다는 건지. 그러고 보니, 녀석 체력도 완전 꽝인 것 같은데 걱정이다. 형 된 입장에서 말이다.
“야, 이제 장난 그만치고 따라와. 빨리 씻고 나서 밥 먹고 연습해야지.”
그런 내 눈빛에서 뭔가를 느껴서일까. ‘뭐야,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나 그런 거 아니야! 나 팔팔하다고!’ 라며 억울하다는 듯 내게 대드는 녀석을 가뿐히 무시한 채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 그나저나 아침도 소야면 진심 때려 친다. 이게 안 그래도 재 입대 꿈 꿀까봐 미치겠는데 아침까지 소시지 야채볶음이면 날 완전 골로 보내겠다는 것일 테니까.
그나저나, 전부터 궁금했는데 저 카메라 아저씨는 왜 자꾸 우리 주위에서 알짱거리는지 모르겠다.
“이런 씨...”
하, 이런 씨 분명 이거는 누군가의 마수가 나를 공격하는 것이다. 아, 아침이 소야에 흰 우유라니. 흰 우유에 소야라니! 여기서 도수체조까지 하면, 하...
“형, 아직도 씩씩거려요? 와, 속 좁아.”
“맞아, 난 소시지 야채볶음 맛만 좋 더만 괜히 유난이야.”
더군다나, 이런 미필들 옆에서 있자니 더 미칠 것만 같다. 그런데 너희 그거 아냐? 지금 너희들 60만 국군장병을 우롱하고 있다는 거?
“이런 미필들과 얘기를 해야 하는 내가 불쌍하다. 너네 선임이 소야에 흰 우유를 좋아하는 너희들을 아주 잘 대해 줄 거야. 아주 잘!”
그런데 진짜 슬프다. 저 녀석들뿐만 아니라, 100여명에 달하는 연습생들 가운데 군필이 나 혼자라는 사실이 말이다. 뭔가, 공감대 형성이 안 된다. 안 돼. 어?
“저기, 스태프님. 지금 웃으신 거죠?”
평소 주변에 자주 보였던 카메라맨이 연습실로 이동하는 우리를 아주 대놓고 찍고 있었는데, 마침 그 분이 미소 짓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이도 아직 20대인 것 같으니까?
“아, 형! 스태프 분한테 그러면 어떡해요? 아 내가 미쳐.”
“죄, 죄송합니다. 저희 형이 아직 어려서요.”
“저희 먼저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하, 분명히 웃었는데.
뭔가 갑자기 연습에 열정을 보이는 녀석들 때문에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분명히 소야에 흰 우유 조합을 알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어. 분명.
*
[차가움만 느끼고 살았을 너.]
“다시, 좀 더 애절하게.”
[차가움만 느끼고 살았을 너. 그 누구도 너를 녹이질 못해 홀로 그 외로움을 차갑게 얼려 버렸을 너]
“잠깐 스톱. 이 노래가 저음 부분도 감정을 실어야 해서, 어려워. 그러니까, 마냥 부르지만 말고 감정을 실어서 불러야 돼. 그래야 화음을 넣는 입장에서도 쉬우니까.”
뭔가 막상 연습을 시작하니, 엎친 데 덮친 격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게 됐다.
이런 말 하긴 조금 그렇지만, 꽤나 많은 수의 모집인원들을 물리치고 올라온 것치고 주혁이와 도현이의 보컬 실력은 객관적으로 평균 이하였다. 차가움 속의 사랑이 고난이도의 노래라는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말이다.
녀석들 댄스 분야라더니, 아주 댄스만 미친 듯이 팠나보다. 이 실력에 100명 안으로 뽑힌 걸 보면 말이다.
게다가 옆에서 한창 연습하고 있는 경쟁 조의 연습을 봐서인지, 자신감마저 결여된 것 같았다. 계속해서 두 녀석을 비롯해 나머지 녀석들 또한 힐끔힐끔 그 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차가움 속의 사랑 - 오성]
차가움만 느끼고 살았을 너.
그 누구도 너를 녹이질 못해
홀로 그 외로움을 차갑게 얼려 버렸을 너
모두가 외면했던 네게 다가가려 해.
......
시끄러운 이 도시에 혼자
버려졌어, 남겨 졌어.
그 어떤 것들이 날 방해해도
내가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니까.
차갑고 차가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지켜내고 싶은 사람, 꿈, 사랑
그럴 수만 있다면
차갑게 얼어버린 이 세상을
포근히 안아 줄 거야.
솔직히 경쟁 팀인 2조의 노래가 지금 현재로서는 완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SD소속인 그들로서는 선배 가수인 오성의 노래쯤이야, 월평에서 질리도록 불러봤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미 회사 내에서 데뷔 조에 속해있는 것인지, 죽도 척척 잘 맞았으니 오죽할까.
“감정적인 부분은 그렇다 쳐도, 박자나 음정 같은 기술적인 부분은 충분히 할 수 있어. 음역 대에 안 맞는 부분이 아니니까. 일단 수현이랑 시혁이는 어느 정도 된 것 같으니까, 화음 부분 좀 생각하고 있을래? 형은 주혁이랑 도현이 좀 봐줘야겠다.”
“네, 형.”
“오케이. 맡겨둬.”
그나마 다행인건 수현이와 시혁이가 진도를 곧잘 따라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안됐으면 진짜 암울했을 테니 말이다.
“다들 수고했다. 목이 생명이니까, 수건 두르고 자고. 따뜻한 물 자주 마셔야 되는 거 알지?”
뭔가, 그날의 연습은 소득 없이 끝나버렸다. 뭘 좀 해보려는 순간 녀석들이 D반 보컬 수업을 받으러 가버렸으니 말이다. 뭐, 수업을 받고 돌아온 녀석들의 멘탈이 이미 나가있었다는 게 더 큰이유긴 하지만. 하, 이 아줌마가 얼마나 굴렸길래 애들이 정신을 못 차려?
“형, 여자 친구 있어?”
“여자 친구는 무슨. 있으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하루를 마무리하며 샤워를 하던 도중 들려오는 주혁의 말에 녀석의 대가리를 가볍게 어루만져 주었다.
[탁!]
“아! 왜 때려! 갈수록 폭력적이야!”
“임마! 안 그래도 외로워 죽겠는데, 디스가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내가 뭐! 참나! 없으면 소개시켜줄려고 했더니.”
순간 들려오는 녀석의 말에 샴푸를 씻어내던 손을 멈추고야 말았다.
“나, 나니?”
“됐네요. 배 떠났습니다. 아저씨.”
“역시, 주혁이 너같이 남자다운 녀석은 뭘 해도 마음이 넓을 거야. 그렇지? 하하! 자식!”
이어지는 내 행동에 주변에서 씻고 있던 녀석들이 왠지 모르게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는 듯 했지만, 상관없었다. 안 그래도 위축돼 있는 녀석들 사이에서 리더인 나까지 기죽어있으면 죽도 밥도 안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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