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7 2012 =========================================================================
[악! 왜 때려요!]
[나도 이제 애 아니라고요! 군대도 다녀왔구만!]
그동안 연락한번 안했다고 하이힐로 정강이를 걷어차는 아줌마들의 성화에 맞서봤지만, 결과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아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면서 힘은 갈수록 세지니 원, 언제는 연락했나? 그리고 번호 바뀐 지가 언젠데 지금 와서 연락타령이야?
뭐, 그래도 아줌마들에게 시달리고 돌아와서 얘기를 나눠본 조 애들이 다들 괜찮은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그 누나 예쁘냐? 몇 살인데?”
“21살이요. 얼굴은 잘 모르겠고 어쨌든 노래 엄청 잘해요. 인기도 많고요.”
“난 인기 많은 여자는 별로,”
“와, 쓰레기...”
“내 마음의 별로?”
“원래 군대갔다오면 다 그래? 아, 못 봐주겠네.”
뭔가 단 몇 십분 만에 심하게 친해진 듯, 하지만 말이다.
“누나 없는 애들은 조용해라. 수현이 말하잖니?”
“나는 친 누나있음!”
“나도 친 누나 있거든요?”
“헐, 나도 있는데!”
뭐지, 이 축복받은 팀 구성은?
“각자 프로필 읊어주시지요. 형님들.”
장난삼아 친해지기 위해 노가리나 까고 있었는데, 뭔가 갈수록 진심이 되는 듯한 내 모습을 보니 아직 짬밥이 다 소화가 안 됐나보다. 하, 그래도 이십일이면 물 좀 빠질 줄 알았는데 말이다.
“뭐래, 여튼 우리 누나 진짜 예쁨. 보면 깜짝 놀랄 걸?”
“장난? 우리 누나가 제일 예쁘다.”
“야, 사진 까봐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지들끼리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주며 티격태격 거리는 녀석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지금 자기 누나 외모가지고 싸울 때가 아닌데 말이다. 뭐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긴 했지만.
어쨌든 당장 내일부터 트레이닝과 평가 준비가 시작되는 가운데, 상대팀이 배알 꼴리게 만드는 구성인지라 아무래도 무의식적으로 그쪽 얘기를 꺼내지 않는 듯하다.
그나저나, 생각 좀 하게 녀석들 좀 조용히 만들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운전해주고 있는 회사 직원 형도 조금 신경 쓰이는 것 같으니 말이다.
“얼굴은 예쁘다 치고 그럼 성격은?”
갑자기 조용해진 차안에서 나도 그렇고 녀석들도 그렇고 먼 산을 쳐다보았다.
멘트 성공.
“하...”
“하...”
“하...”
그나저나, 저 카메라 아저씨는 왜 같이 탔는지 모르겠다. 별 촬영도 안한다고 했으면서 말이다.
*
“형 그런데 이번 선택은 조금 너무한 거 아닐까?”
“맞아, 영진 형. 우리들 전부가 한 조에 하는 건 쫌...”
회사에서 제공한 차를 통해 숙소로 돌아온 연습생들의 얼굴에 찝찝함이 서려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방금 전 있었던 일이 한명을 제외한 연습생들의 마음을 걸리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걱정 마. 조금 비난은 받겠지만, 우리가 완벽히만 해내면 확실히 인지도를 얻을 수 있어. 게다가 우린 SD소속이니까, 소속사 선배들 무대를 완벽히 하고 싶었다는 명분도 있어서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차에 같이 탄 카메라맨이 다시금 택시를 타고 떠난 것을 확인한 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입을 열기 시작한 SD연습생들의 얼굴이 그나마 밝아졌다. 암묵적으로 데뷔 조 연습생들 사이에서 리더 역할을 하던 영진의 말은 유달리 믿음이 갔으니 말이다.
“너희들도 물론 마찬가지겠지만, 나나 원근이는 이번에 데뷔 엎어지면 무조건 끝이야. 그러니까, 잘해보자. 다들. 데뷔도 하기 전에 이런 기회가 오는 건 흔치 않으니까 말이야.”
“뭐, 형이 그렇다면야 우리는 하는 거지 뭘.”
“오케이.”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김영진이 모든 것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 녀석.’
S등급을 부여받고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입장한 그가 자신이 1등이 아니라는 사실에 느꼈던 감정들은 생각 외로 대단했다. 그의 견고한 자존심에 금이 가버렸으니까.
그렇게 동생들을 다독인 뒤, 홀로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운 김영진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를 생각하면 할수록 왠지 모를 기분 나쁨이 그 자신을 덮쳐왔으니까.
‘지금 실컷 여유 부려라.’
녹화 중에 잠을 잔 것도 모자라, 기지개를 펴며 여유를 부리던 녀석이 자신보다 앞선 등수라는 사실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며 김영진은 그렇게 두 눈을 감았다.
*
“형, 저는 이 파트는 아무래도 쫌...”
“저도...”
생각보다 이른 아침에 숙소에서 만난 우리는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평가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각자 맡을 파트나 준비해야 될 방향 같은 것 좀 생각해 와보자. 오케이?]
어제 헤어지면서 당부했던 말에 나름대로 준비를 해 온 것인지, 제법 활발하게 얘기를 나눴지만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일단 주 분야가 보컬인 나와 수현, 시혁과는 달리 나머지는 그렇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댄스가 주 분야일지라도 연습생인 이상, 어느 정도 실력이상의 랩 또는 보컬실력을 지녔을 테지만, 문제는 우리의 선곡이었다.
오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류 아이돌로서, SD의 자랑이었다. 과거에는.
그들이 과거, 대한민국을 넘어서 아시아 전체에서 최정상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멤버들 전체가 다재다능했다는 데에 있다. 일반적인 아이돌 그룹이 보컬 라인, 랩 라인, 댄스 라인으로 나눠져 각자의 파트를 전담하는 형식이라면 오성은 말 그대로 5 보컬, 5 래퍼, 5댄서 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그들의 보컬 곡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다고 알려진 곡이 바로 우리가 부를 ‘차가움 속의 사랑이다’는 것이었다.
노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화음을 넣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각 파트가 맡아야 할 부분마저도 고음과 중음, 저음을 끊임없이 오르내려야 할 정도로 성량, 기술적인 부분의 난이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금까지도 아이돌 남자 가수들 중 최고의 실력이라고 평가받는 오성의 메인보컬답게 차가움 속의 사랑 메인보컬 파트는 지옥의 파트라고 정평이 나있었으니 오죽할까.
“그럼 주혁이랑 도현이는 일단 화음 넣는 건 가능하다, 이거지?”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곡이 나와 수현, 시혁이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89등, 95등 이라는 등수 때문에 원하는 댄스곡을 선택하지 못한 순간부터 이러한 결과는 예상된 결과일 테지만 말이다.
“저 솔직히 화음도 잘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형.”
“저도요...”
“니들 누나 예쁘다했지?”
“예, 예?”
“예?”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생각 외로 음색이나 발성 자체는 괜찮았지만, 음역대 자체가 넓지 않은 두 녀석들을 데리고 이 곡을 부를 수 있을지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녀석들 앞에서 그런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일단 리더가 된 만큼 팀을 꾸려나갈 책임을 떠안게 됐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지금 당장 두 녀석이나 화음이 안 되면 수현이나 시혁이 녀석이 더 잘해줘야 될 텐데...
“하, 죄송하긴 뭘 죄송해. 누구 죽었냐? 아직 이주나 남았는데 뭘 몰라. 기주혁, 김도현 2주 동안 잠 다 잤다고 생각해라.”
“형...”
“개인 평가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팀 미션이기도 하니까 최선을 다해. 하기도 전에 풀 죽어있지 말고.”
[10분 뒤 점심식사가 이루어지겠습니다. 또한 점심식사 후부터는 S등급 보컬&랩 트레이닝, A등급 안무 트레이닝이 시작됩니다. 해당 연습생들은 배부 받은 시간표에 명시된 호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착오 없이 수업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들려오는 안내방송에 기죽어 있는 두 녀석과 덩달아 눈치를 살피고 있는 나머지 녀석들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
“형은 키가 몇이에요?”
“나? 왜?”
“아니요. 엄청 커보여서요.”
“네가 작아서 그렇게 보이는 거지. 나 별로 안 커.”
“저, 저 안 작아요! 저, 어, 어디까지나 평균이에요. 남자 평균 173!”
밥을 먹고 난 뒤 얘기를 나누다 오늘 오후 트레이닝이 없는 세 녀석들에게 간단한 과제를 내 준 뒤 수현 녀석과 트레이닝 실로 이동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지라 연습실 안에는 연습생들뿐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노가리를 깔 수 있는 거지만 말이다.
“형 근데, 183 치고는 더 커 보이는 것 같아요. 뭔가.”
“유전이야. 유전. 키랑 어깨는.”
“헐... 재수 없어.”
뭔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내게 너무 편하게 대하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확신이 들었다. 처음 봤을 때의 그 수줍어하던 녀석은 단지 낯가림이 심한 다른 녀석일 거라고 말이다.
어쨌든 키랑 어깨는 유전이 확실했다. 삼촌도 그렇고 돌아가신 아빠도 엄마도 키가 큰 편이었으니 말이다. 뭐, 어깨는 원래부터 좁은 편은 아니었는데, 군대 가서 더 넓어진 거지만.
“군대 가면 키도 크고 어깨도 넓어지니까, 걱정 마라. 어린놈이 벌써부터.”
그렇게 시시껄껄한 얘기를 나누며 파트 분배에 대해 얘기를 나누려고 할 그때였다. 옆에서 멀찍이 떨어져있던 이가 말을 걸어온 것은 말이다.
“군대 다녀오셨나봐요.”
연습실 안 분위기는 우리를 제외하고는 적막 그 자체였다. 애당초 S등급 수가 5명뿐인데, 저기 정중앙에 앉아 홀로 고고한 척 앉아있는 한 명의 연습생과 히터 앞에 틀어박혀 노가리를 까고 있는 우리 둘 그리고 그 두 부류 사이에서 각자 어색함을 감내하고 있는 두 명의 연습생들로 나눠져 있으니 오죽할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 쪽에 말을 거는 연습생의 의도는 뻔했다. 친해지고 싶다는 것.
뭐, 나로서는 그런 연습생의 의도를 거부할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 몇 달 동안 언제 같은 팀이 되어 평가를 받을지 모를 연습생들과 안면을 익히는 건 도움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진 않을 테니까.
“편하게 대해주세요. 저보다 나이도 많으신데요.”
“저도요.”
“현진이는 댄스고 지석이는 랩이라고?”
다만, 막 대화를 나누려던 그때 방해자가 생겨버렸지만 말이다.
“노가리는 그만 까고 이제 수업 시작해야지?”
아니, 누가 누구보고 할 소리인지 모르겠다. 시계를 보니, 오히려 수업시작 시간보다 5분이나 늦은 건 우리가 아니라 저 아줌마일 텐데 말이다.
“강지혁 연습생은 첫 시간부터 나한테 불만이 많나봐?”
“아, 아닙니다! 수업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뭐든 시켜만 주십쇼!”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나는 을이고 저쪽은 갑인데 말이다. 하, 몇 년이 지났는데도 이 관계는 바뀌질 않는다. 젠장, 그새 째려본 건 어떻게 알아채가지고.
“영진이는 발성자체가 완벽하네. 음역대도 3옥 솔? 라? 그 정도까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뽑아내는 것 같은데, 맞지?”
“예, 맞습니다. 선생님.”
“좋았어. 역시 S라서 그런지 좋네. 뭐, 감정 몰입이나 감정 싣는 거는 조금 부족한 것 같아도 이건 어디까지나 경험이니까. 기술적으로는 거의 완벽해.”
“감사합니다.”
곧이어 시작된 트레이닝은 꽤나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저 아줌마가 성격은 드러워도 실력하나 만큼은 독보적이어서인지 2시간동안 얼마 안 되는 연습생들의 장단점을 정확히 찝어 내니 말이다.
그나저나, 방금 전 검사를 받았던 김영진이라는 연습생의 실력이 사뭇 대단해서인지 다음 차례인 나도 조금은 부담이 되었다.
댄스가 주 분야인 현진의 보컬 실력이 꽤나 좋았고 랩이 주 분야인 지석이까지 랩 트레이너의 말마따나 그 실력이 매우 출중해서 나름 긴장을 하긴 했는데 방금 전 김영진의 노래는 내 기대 이상이었으니 말이다.
“자, 다음은 넘버 원!”
저기요, 나이트 씨. 노래 부르기도 전에 디스하기 있습니까? 누가 래퍼 아니랄까봐, 나 참.
“1차 공연 곡 말고 나머지 세 곡 중 하나 불러봐. 자신 있는 걸로.”
안 그래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아줌마들 때문에 미치겠는데 말이다.
“어서. 이러다 시간 다 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서, 선생님.”
“왜?”
자신이고 뭐고,
“저 나머지 세곡 잘 모르는데요.”
뭘 알아야 부를 것 아닌가. 애초에 차가움 속의 사랑 고른 것도 그나마 그게 익숙해서 고른 건데 말이다.
“야이 씨!”
저, 저기요. 손에든 핸드폰 서, 설마 던질려고요?
============================ 작품 후기 ============================
코멘트가 미래다. 창조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