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4 2011 =========================================================================
[오늘 만은]
오늘 만은 안 돼 오늘 만은 안 돼.
오늘만은 내 곁에서 함께해줘.
내게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는 너를 볼 때면
그럴 때면 잊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해
나는 아직도 네 생각이 가득해.
오늘 만은 안 돼 오늘 만은 안 돼.
오늘만 내 곁에 있어주면 나도 잊을 수 있어
네게 아무렇지 않게 인사할 수 있어.
......
“이제 집 갈 사람이 여기서 무슨 청승 떨고 있습니까? 나 참. 추워죽겠는데 밑에 후임 괴롭히지 말고 내려가시지 말입니다.”
부대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고지초소에서 이곳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던 내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석현 형, 말 안 놓을 거야 진짜?”
남들보다 1, 2년은 빠르게 입대한데다가, 맞후임이라고는 하지만 군대를 늦게 온 탓에 나보다 5살이나 많은 형이 처음에는 당황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하물며 실제 입대일은 20일 남짓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 오죽할까.
“걱정하지 마십쇼. 전역하고 술 한 잔 하러 갈 때 2년 동안 못 받은 형 대접 톡톡히 받을 테니 말입니다.”
달로 끊는 군번 탓에 정작 가장 오랫동안 군 생활을 같이하고도 말 한번 편하게 하지 못했는지라 상말이 되어 부대 왕고가 된 순간부터 말을 놓으라 주구장창 말했지만, 석현 형은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뭐, 그게 이 사람이 진국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지만 말이다.
“휴가도 없어서 전역할 때까지 부대에서 나오지도 못 할 텐데 20일을 언제 기다려? 지금 전역신고 대기하는 것도 길어 죽겠고만.”
“그 힘든 것 다 버텨냈으면서 그거 하나 못 기다립니까?”
군 생활을 통틀어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했는지라, 이야기보따리를 풀자면 한 세월일게 분명했다. 그래서일까. 유난히도 심했던 선임들의 갈굼을 함께 버티며 위로가 되었던 지난날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그때 당시에는 너무나도 힘들고 괴로웠지만,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가버린 듯한 지난 2년 동안의 세월이 조금은 허무하고, 조금은, 아주 조금은 그리워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으니 말이다.
“나가면 뭐 할 건데, 형은? 형 아버지가 하신다는 농사 같이 할 거야?”
“뭐,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아버지 연세도 있고 농사도 남의 땅 빌려서 하는 거여서 말입니다. 그러는 강지혁 병장은 뭐할 겁니까?”
함께했던 시간들이 길기에 아쉬웠다.
지금과는 달리 막상 사회에 나가게 되면 각자의 인생에 치여 살 것이고 또한,
“나도 뭐, 아직 모르겠어. 뭘 해야 될지.”
각각 다른 곳에 사는 만큼 편하게 서로를 마주보며 술잔을 기울일 자리를 마련하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을 테니 말이다.
“그 노래실력으로 가수 안하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후임들을 괴롭히던 악질 선임 세대가 전역한 뒤부터 부대는 꽤나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대단하게도, 다음 실세들이 자신들이 당한 훈육을 빙자한, 정도를 넘어선 괴롭힘을 없애고자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권력도 상당 부분 양보한 선임들의 태도는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한 것이었다. 이미 선임들이 존재하지 않은 이상, 그들은 편히 군 생활을 즐길 수 있음에도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냈으니 말이다.
“뭐, 나 정도하는 애들은 넘쳐나니까.”
덕분에 일병이 꺾일 때 쯤 부터 개인정비라는 것을 제대로 누릴 수 있었는지라 나로서는 곡을 만들고 노래도 부르는 호사를 누릴 수가 있었는데 석현 형은 그런 나의 대표적인 관객이자 심사위원이 돼주었다. 뭐, 혹평을 내뱉은 적은 내 기억으로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지만.
“강지혁 병장님! 행보관님이 대대장님 곧 오신다고 지금 전역 신고하러 오시랍니다!”
그렇게 서로 고가초소에 앉아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아쉬움은 커져갔다.
“얼른 가시지 말입니다. 대대장 성격에 또 늦으면 깽판 칠겁니다.”
지난 2년 동안 그렇게도 이 날을 기다려왔으면서 말이다.
“지혁이 형! 나가면 연락할 테니까 술 사줘!”
“지혁아 잘 가라! 고생했다! 나가면 술 한 잔 하자!”
그래도 군 생활을 마냥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나보다. 후임 녀석들이 다 같이 모여 배웅 해주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연락 꼭 해. 서울에서 술 한 잔 하자고. 잠은 재워줄 테니까.”
“걱정마라. 조심히 가고. 2년 동안 고생 많았다. 너 덕에 나도 군 생활 재밌게 한 것 같다.”
그래도 가기 직전이라고 말을 놓는 석현 형과 나머지 후임들 그리고 행보관님에게 손을 흔들며 위병소를 빠져나왔다.
하, 길었다. 2년.
*
[단결! 신고합니다. 병장 강지혁은 2011년 12월 10일부로 전역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단결!]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삼촌의 격한 포옹에 내 입가에서 미소가 흘러나왔다.
회사의 대표로서 그리고 뮤지션으로서 항상 바쁜 삼촌이기에 이렇게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는지라, 나 또한 너무나도 기뻤다.
주변 사람들의 이목과 바쁜 삼촌의 스케줄로 인해 면회는커녕 휴가 때도 얼굴 보기가 너무 힘들었으니 말이다.
“삼촌 이게 다 뭐야?”
“지혁아 너가 좋아하는 백숙이랑 여기 건강에 좋은 전복죽 그리고 홍삼으로 만든 정과에다가, ......”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들은 오버였다. 아니 무슨,
“이걸 누가 다 먹으라고?”
“전역하면 이 정도는 보통 다 먹는다던데.”
동네잔치를 벌여도 좋을 만큼의 음식들을 한상 가득 차려놓았으니 말이다. 이래서 공익은 안 된다. 뭘 몰라도 너무 몰라.
어처구니가 없어 삼촌에게 한 소리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러기에는 삼촌의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었으니까.
“이거 몸에 좋은 거다, 지혁아.”
“나쁜 놈의 새끼들, 월급 10만원 주고 훈련을 그렇게 시켜? 애 피부 껌 해진 것 봐. 어휴.”
부모님이 돌아간 뒤, 내게 남아있는 친척은 삼촌뿐이었다. 총각인 주제에 망설임 없이 나를 데려다가 키운 삼촌은 내게 부모님과 같은, 아니 부모님이었다.
“알았으니까, 삼촌도 얼른 먹어. 그만 좀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삼촌이 다정하고 살갑다는 말은 아니었다. 삼촌은 엄밀히 말하자면 다정한 엄마보다는 엄격한 아버지와 같은 이미지였으니 말이다.
그런 삼촌이 군대를 기점으로 변했다. 입대한 날에 흘렸던 눈물이 시발점이 되어 전과 달리 삼촌의 다정한 모습을 많이 보게 됐으니까.
물론 완전한 것은 아니다. 과거가 아버지 80%, 어머니 20%였다면 지금은 아버지 50%, 어머니 50% 정도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 모습은 확실히 새롭다. 그리고 나는 그 새로움이 싫지 않았다.
“이거 인삼 세 뿌리나 넣고 끓인 거니까,”
“아! 쫌!”
아닌가?
*
[갈 수 없는 그 거리]
이제는 갈 수 없는 그 거리.
너와의 추억과 사랑이 숨 쉬는 그 거리.
혹시나 네가 떠오를까.
떠오른 네 모습에 가슴이 아파올까
가지 못 하는
갈 수 없는 그 거리.
그럴 줄 알면서도
그 거리를 가는 나를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갈 수 없는 그 거리.
너와의 추억과 사랑이 숨 쉬는 그 거리.
......
[누구를 위한 이별]
우리의 이별이 누구를 위한 걸까요.
우리의 이별로 그대는 행복한가요.
그런데 나는 왜 이러죠.
되돌아갈 순 없나요.
이별이 있기 전으로
지금 느끼는 아픔을 몰랐던 때로
설명해줘요.
누구를 위한 이별인가요.
우리의 이별이 누구를 위한 걸까요.
우리의 이별로 그대는 행복한가요.
그런데 나는 왜 이러죠.
......
[짝짝짝]
노래가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박수소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두 눈가의 촉촉함에 서둘러 두 눈을 감았다. 그러지 않고서는 빨개진 눈동자와 흘러내릴 것만 같은 눈물을 들킬 것만 같았으니까.
“대단해. 정말 작곡수업 때 하위권이었던 것 맞아?”
“그렇다니까.”
“너네 작곡수업이 이상한 거 아냐? 저 정도면 음악성은 그렇다 쳐도 대중성은,”
“야! 무슨!”
“어? 어! 지혁아 잘했다. 이거 말고도 몇 곡 더 있다고?”
간신히 감정을 가라앉힌 뒤 부스를 밖으로 나가자 삼촌과 민재 삼촌이 내게 칭찬을 건넸다. 뭐, 나로서는 쑥스러울 따름이지만.
“네, 확실히 가사까지 쓴 것은 열 네다섯 곡정도 되고요. 가사 없고 멜로디만 있는 거는 그것보다 더 되요.”
전역하고 난 지 일주일.
아직 까까머리 신세를 벗어나기도 전에 나는 녹음실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작곡가 겸 가수들 앞에서 말이다.
“흠...”
계속해서 집에서 빈둥거리며 자유를 느끼는 것도 일주일. 더 이상 늘어지게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지겨워질 때쯤, 나는 자신의 개인 작업실을 사용해도 좋다는 삼촌의 말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안 그래도 슬슬 그동안 군대에서 써왔던 곡들을 정리해보고 싶었으니 말이다.
“지혁아, 삼촌이 너 군대 갈 때 얼마나 서운했는지 아냐?”
그렇게 몇 곡 가량을 녹음해보며 미진했던 것들을 점검하던 찰나, 뜻밖의 손님들을 맞이하게 됐는데 그들이 바로 2명의 삼촌들이었다. 방금 전에는 그런 삼촌들의 요청 아닌 요청에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고 말이다.
“네, 네? 아... 죄송해요.”
“뭐, 죄송하다 말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니고. 지혁아 삼촌이 하고 싶은 말은.”
재성 삼촌에게조차 가기 일주일 전에 말했던 지라, 그 밖 사람들에게는 미처 알리지 못했다.
뭐, 지금도 그렇고 그때의 내게 남아있는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민재 삼촌의 서운하다는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하다는 말 뿐이었다.
이어진 민재 삼촌의 말은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직 유효하다는 거야. 너 군대 가기 전에 삼촌이 말했던 제안 말이야.”
“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인지라, 민재 삼촌의 말이 바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혁아 삼촌은 네가 맘에 든다. 삼촌 회사가 비록 재성이 회사에 비해서 규모 면에서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모인만큼 네가 걷는 길이 외롭지는 않게 해줄 수 있어.]
이내 2년 전 기억이 떠오르자, 방금 전 삼촌의 말이 온전히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런 내가 처음 든 생각은 바로,
“제가 포이보스에요?”
의아함이었다.
지금껏 10년 넘는 긴 세월동안 연습생 생활을 했다. 그런 생활의 목표는 물론 아이돌 가수였고 말이다.
비록 노래 외적인 면에서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진 못했지만, 한시도 아이돌 가수 외의 길을 생각해 본적은 없다. 그랬기에 2년 전도 그렇고 지금의 제안도 마냥 기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길에 대한 두려움이 갑자기 물밀 듯이 몰려왔으니까.
그렇게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민재 삼촌의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재성 삼촌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보았다. 마치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하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삼촌의 모습을 말이다.
*
[프로젝트 데뷔-그들의 데뷔를 도와주세요!]
[참가자격] : 국내 외 기획사 소속 남자연습생
[모집기간] : 10월 1일부터 12월 20일까지
[선발공지] : 12월 31일
[촬영기간] : 1월 1일부터 4월 3일까지
[방영기간] : 1월 18일부터 4월 3일까지/12부작
[선발인원] : 모집인원 100명/최종선발 5명
[참가방법] : 보컬&랩, 댄스 두 가지의 평가기준에 따라 모집기간 내 4분 내외의 영상제출
[선발혜택] : 총상금 5억
1등 - 3억 원
2등 - 1억 원
3등 - 5천만 원
4등 - 3천만 원
5등 - 2천만 원
[개요] : 참가자들은 본 주최 측이 제공하는 트레이닝을 통해 4차례의 공개공연을 펼칠 것이며 이를 본 국민들의 투표로 방출 여부를 통보받게 된다. 최종 5명은 등수에 따라 다른 선발 혜택을 받게 된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이를 민재 삼촌이 줬다는 게 중요할 뿐.
“저보고 이거 나가라고요?”
결국 나는 포이보스 뮤직과 계약을 했다. 그것도 너무나도 말도 안 되게 좋은 조건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회사 내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마음 편히 음악작업을 하던 내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그것도 엄청 뜬금없이 말이다.
“3일 뒤까지 제출이니까, 이틀 뒤까지는 영상 찍어서 보내줘야 한다. 알겠지?”
“예, 예?”
뭐가 3일이고 뭐가 영상이란 말인가. 나는 지금 영문을 모르겠다. 민재 삼촌이 이런 제안을 내게 건네는 이유를 말이다.
[프로젝트 데뷔-그들의 데뷔를 도와주세요!]
딱 봐도 아이돌 그룹을 뽑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문구만 보아도 지금 내게 이는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그런 나의 속내가 겉으로 드러나서일까. 작업실을 나서려는 민재 삼촌이 다시금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너 앨범 내기 전에 한번 해보라는 거야. 넌 너무 자신감이 없어.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 데뷔하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기회니까, 최선을 다해봐.”
그리고 이어진 삼촌의 말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제 길이 확실히 이게 맞는 건지요. 물론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게 좋긴 하지만,]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 삼촌이 보기엔 너는 타고난 가수야.]
[네? 음... 그게... 잘 모르겠어요.]
[흠... 그럼 시간을 줄 테니까, 충분히 생각해봐. 알겠지?]
삼촌이 며칠 전 일을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 두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럼 삼촌은 일 있어서 가본다? 춤이든 노래든 일단 찍어서 삼촌한테 줘야한다. 꼭? 알겠지?”
정말로 일이 있는 건지, 아니면 자리를 피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삼촌은 서둘러 작업실을 나섰다.
하지만 나는 한동안 작업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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