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3 2010 =========================================================================
[이별하고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 옆 네가 서있어
익숙한 모습이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 속에
전혀 다른 주인공이
되어버렸어.
나를 보러오는 네가 아닌
나를 떠나려는 네 모습에
눈물이 흘러.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기사 아저씨.
이런 손님이 처음인 것만 같아
당황스러우신가요.
이 빗속을 뚫고 지나가면 갈 수 있을까요.
그러면 모르겠죠.
지금 내 얼굴에 흐르는 것이
비인지 눈물인지.
......
하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순간적으로 너무 몰입한 탓일까. 뿌옇게 흐려진 시야에 손으로 애써 두 눈을 훔친다.
세월은 아직 그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나를 막진 못하나보다. 나름 정리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물론 예전처럼 현실을 부정한 채 그녀만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를 생각하며 써내려간 가사와 음정이 그때의 기억을 선명하게 하는 것일 뿐.
읏차!
의미 없는 소리와 함께 내가 이렇게 감성적인 인간이었나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전 삼촌이 자신의 개인 작업실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해준 덕에,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제법 익숙해졌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내 감정을 써내려가는 것이 뭔가 내 감정을 안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 같으니 말이다.
슬슬 점심 먹을 시간이었기에 헤드셋을 벗고 부스 밖으로 나가기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나는 주린 배 상태에도 불구하고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없었다.
*
“진짜 대박이라니까? 천재야, 천재. 중 2인데 그 정도 연주에 노래면 대박인거지.”
방금 전 녹화에서 한명의 참가자로 인해 소름이 돋았던 유민재의 열화와도 같은 감탄에 양연혁과 박재성 또한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유민재의 말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오늘 저스틴의 무대는 꽤나 만족스러웠으니까 말이다.
“재성이 너는 존도 괜찮게 본 것 같은데?”
저스틴 뿐만 아니라, 존에게도 극찬을 했던 박재성으로서는 양연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말마따나 이번 케이 팝 싱어에는 그의 마음에 드는 참가자들이 꽤나 많았으니까.
어쨌든 꽤나 긴 녹화시간을 자랑하는 케이 팝 싱어이기에 촬영이 끝난 뒤 그들 셋은 간단히 식사를 하기로 했다. 서로 친분이 두터운 편이지만, 각자 사업적인 면에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에 이런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짜장이나 시켜먹자. 여기 재성이 너 작업실이랑 가깝지 않나?”
“아 그래? 그럼 나는 볶음밥.”
“그냥 밖에서 먹지? 작업실에 음식 냄새 베는 거 싫은데. 게다가 나 유기농...”
물론 그마저나 여의치 않아, 긴 시간을 나누진 못 할 테지만 말이다.
그렇게 꺼리는 기색이 역력한 박재성의 의견은 간단히 묵살된 채 그들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제 데뷔할 때 되지 않았나? 이달 말쯤?”
정기적으로 연습생 배틀을 실시할 정도로 서로에 대해서 꾀고 있는 박재성과 양연혁이기에, 이제 데뷔할 상대 회사의 신입그룹에 대한 것쯤은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 JS에서 데뷔 준비 중인 그룹조차도 데뷔 조에서 수차례 YH 연습생들과 격돌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양연혁의 말에 박재성의 얼굴은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절친한 사이인 양연혁이지만, 사업적인 면에서는 경쟁 상대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금은 그 그룹의 데뷔에 지장이 생겼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박재성의 수난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진짜? 개 빼고 데뷔시킨다고? 안에서 무슨 말이라도 나왔어?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냥, 실력이 안돼서.”
“뭐? 춤은 그렇다 쳐도 노래는 괜찮던데, 개 땜에 우리 애들 나한테 엄청 쪼인거 아냐?”
“뭔데, 뭔데, 누군데 그래?”
조카 놈의 방출을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어, 대충 데뷔 조에서 탈락했다고 말한 순간, 양연혁이 귀신같이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옆에서 듣고만 있었던 유민재 또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말이다.
“일단 들어가, 주문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더 이상 말해주다가는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그들의 관심에 박재성이 애써 작업실로 그들을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태를 더욱 키우는 시발점이 되고야 말았다.
“뭐야? 안에 누가 있나본데?”
“누가?”
‘앗차!’
순간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박재성의 몸이 굳어버렸다. 마침 피하고 싶은 주제의 당사자가 녹음실에 있다는 것을 바로 파악해버렸으니까.
[이별하고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 옆 네가 서있어
익숙한 모습이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 속에
전혀 다른 주인공이
되어버렸어.
나를 보러오는 네가 아닌
나를 떠나려는 네 모습에
눈물이 흘러.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기사 아저씨.
이런 손님이 처음인 것만 같아
당황스러우신가요.
이 빗속을 뚫고 지나가면 갈 수 있을까요.
그러면 모르겠죠.
지금 내 얼굴에 흐르는 것이
비인지 눈물인지.
......
“실력이 안 된다고?”
1절이 끝남과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는 양연혁의 말에 박재성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조카 놈이라서 부끄러워 말은 안했지만, 전에도 기똥차게 노래를 불러대던 놈이 그 일이 있은 직후 괴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그 또한 모르지 않았으니까.
양연혁이 부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가 방금 전 대화의 대상자라는 것을 눈치 채자마자, 옆에 있던 유민재 또한 유심히 부스 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야? 회사 내에서 혈연으로 데뷔시킨다고 얘기 나온 거 맞아? 아니면, 너 설마 솔로 데뷔 시킬라고 그러냐? 보아하니, 곡도 처음 들어보는 노래고.
“뭐? 째가 재성이랑 무슨 사인데?”
오늘 일진이 안 좋은 것인지. 박재성의 한숨이 부스 밖을 메우기 시작했다.
*
[외롭다]
너무 잘 살고 있어.
극장에 가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거리를 떠돌며 홀로 설레기도 해.
너무 잘 살고 있어.
그런데 왜 이렇게 외로운 걸까.
이런 게 진짜 잘 사는 걸까.
행복한 삶이란 이렇게 고독한 걸까.
아니며 사는 것 자체가 이렇게 힘든 걸까.
......
허기진 배를 쓰다듬으며 밥 먹으러 나가려던 내가 마주친 것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모를 리 없는 세 명이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노래 한 곡 더 부르라는 삼촌의 말에 나는 반항할 새도 없이 꼼짝없이 부스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뭐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가장 최근에 만들어본 곡을, 아직 삼촌도 들어보지 못한 곡을 부른 뒤 나는 잠시나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만들 때부터 감은 왔지만, 완성 후 불렀을 때마다 이 곡의 가사에는 내 마음이 너무나도 잘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내 두 눈동자는 어느새 빨개진 채 촉촉해졌기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삼촌 혼자 있었다고 해도 그랬을 진데, 지금 당장 부스 밖에는 YH의 양연혁 대표와 포이보스의 유민재 씨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애써 마음을 추스린 뒤 부스 밖으로 나오자, 세 사람의 눈이 나를 향했다.
아직 두 눈이 빨개진 탓일까, 나를 보는 삼촌이 멈칫 한 듯 했지만 이내 자연스러운 나의 태도에 안심한 듯 했다.
“삼촌, 저 밥 먹으러 가 볼,”
“뭐야, 지금 저스틴이니 뭐니, 눈독 들일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안녕? 나 알지?”
“예...”
조용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깨어지자, 나는 당황했다. 그래서인지 그 틈을 노린 유민재의 말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방금 곡 자작곡인 것 같은데, 맞지?”
“예? 예.”
“혹시 다른 자작곡 있어? 좀 전에 부른 두 곡 말고.”
“열 곡 정도 되는 것 같,”
“자, 잠깐! 민재 너 뭐야? 지혁이 너 배고프다 했지? 밥 먹으러 이만 나가봐, 얼른.”
뭐가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유민재씨의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하고 있던 나 또한 삼촌의 다급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곳에 더 있다가는 멘탈이 나갈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양연혁씨에 유민재씨까지. 무슨 일이지.
*
“오늘도 와주셔서 감사해요. 음... 그런데, 오늘은 조금 아쉬운 얘기를 하게 될 것 같네요.”
“지난 몇 개월 동안 매주 한 번씩이나마, 이곳에서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어서 그동안 너무 좋았는데요, 당분간 버스킹을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요.”
이미 결심한 바가 있기에 말을 꺼낸 것이지만, 그 행동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버스킹은 내가 힘들 때 나를 지탱해준 거의 유일한 힘이었으니까.
그때였다.
“왜, 왜요!”
꽤나 익숙해 보이는 이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학원을 다녀온 것인지, 교복차림인 그녀는 지금 나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이들 중 가장 오래도록 이곳을 찾아와준 이였으니까.
“어? 이번 주도 왔네요?”
나를 보러 와준 이래, 신기할 정도로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이곳을 찾아준 그녀를 보니 더욱 마음이 울적해졌다.
버스킹이 내게 큰 힘이 될 수 있게 만든 것은 그녀와 같은 이가 있었기 때문이니까.
“개인사정으로 버스킹을 하지 못하게 돼서 너무 아쉬워요. 그런 만큼 마지막 곡은 한 번도 불러드린 적 없는 자작곡을 불러드릴게요! 아! 그리고 여기 지난 몇 달 동안 계속해서 저를 보러 와주신, 앞에 서계신 여자분 잠깐 무대로 나와 주실래요?”
“네, 네?”
“이번 노래는 상대역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아서요. 가만히 서계셔 주시기만 해도 되요!”
그런 그녀에게 내 나름대로의 선물을 주고 싶었다.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까지 고마웠다는 내 나름의 마음을 말이다.
[웃는 네 얼굴]
웃는 네 얼굴
그 얼굴 때문에 얘기하지 못했어.
네가 나를 볼 때면
네가 나를 부를 때면
나는 홀로 상상하곤 해.
내게 속삭이는 너의 귓속말
너만을 사랑한다고.
지금도 웃는 네 얼굴.
그렇지만 오늘만은 말할래.
네가 제일 좋아.
사귀기 전 그녀를 보았을 때를 생각하며 써내려간 곡을 지금은 나를 위해 매번 이곳을 찾아준 이를 위해 부르니 기분이 묘해졌다.
비슷한 키인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닮은 점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내 감정이 가사에 더욱 잘 담기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더욱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곡을 불렀고 말이다.
“제 이름은 최유진이에요! 최유진! 꼭 다시 버스킹 해주세요!”
여느 때처럼 내가 자리에서 벗어날 때까지 나를 지켜보는 그녀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 또한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되면 꼭 이곳에서 부를게요! 그동안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다시 이곳에서 버스킹을 하게 됐을 때 그녀 같은 이가 있어주길 바라며 말이다.
그렇게 일주일 뒤 나는 훈련소에 입소했다. 20살의 나이. 또래들과는 달리, 고등학교를 다니지도 수능 생각을 하며 마음 졸이지도 않은, 평범을 떠난 지금의 나이기에 그다지 두려움은 없었다. 군대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준비라 생각했으니까.
물론 입대를 위해 포기한 것 또한 적지 않았다.
그날 삼촌의 녹음실에서 봤던 이후로, 자신을 삼촌이라 부르라는 민재 삼촌이 꽤나 여러 차례 나를 찾아왔었다. 재성 삼촌 또한 이를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민재 삼촌의 의도는 점점 노골적이었고 나 또한 그의 제안에 끌렸음은 인정한다.
포이보스 소속 뮤지션으로서 같이 음악을 해보자는 민재 삼촌의 제안은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과도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떠났다.
평생 본 적 없는 눈물을 보이는 삼촌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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