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2 2010 =========================================================================
“오늘 들려드릴 곡은 제 자작곡 중 하나인 보고 싶어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해왔던 일이 노래여서일까. 나는 곡을 써내려 가면 갈수록 갈증을 느꼈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말이다.
나도 모르게 작곡, 작사에 재능이 있었을까. 작곡, 작사 수업에서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전혀 신빙성이 없는 얘기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거의 네 다섯 곡을 써내려갔다.
하아.
각성이라도 한 것일까. 허무맹랑한 얘기에 피식 웃음 짓던 내가 목을 가다듬고 선율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노래가 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갈증이 나를 길거리로 나가게 만들었다.
[보고 싶어]
너 없이 살아보고 잠들어본다.
잊을 수 있다고
지울 수 있다고
다짐해본다
너와 걸었던 거리
너와 함께했던 추억
어딜 가든 떠오르는 너의 모습
이렇게 생생한데 그게 가능할까.
잊을 수 없어
지울 수 없어
보고 싶을 때면 걷는 너와 나의 거리
아직도 여전한데
넌 어디 있는 거니.
......
내가 쓴 곡이 사람들에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내 노래를 듣던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나는 꿈 같은 기쁨을 느꼈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많은 곡을 부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처럼 유행했던 곡을 부르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부르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구석에서 몇 안 되는 이들에게 내 이야기 서너 곡을 들려주는 것뿐이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이야기, 감정을 온전히 실어 담을 수 있는 나만의 음정과 가사. 오늘은 평소와 달리, 두 세곡을 더 불러서일까. 나만의 무대를 떠나는 아쉬움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저, 저기!”
끝인사와 함께 흩어지는 주변 이들을 보며 애써 아쉬움을 외면한 채 자리에서 벗어나려던 찰나, 옆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한, 한곡만 부르시는 건가요?”
“오늘은 네 곡정도...”
“아, 아! 바, 방금 와서...”
다른 버스킹 하는 이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곡을 부르고 떠났기에 노래를 들어주는 이들 또한 채 열 명이 되지 않았다. 하물며 항상 제법 외진 곳에서 공연을 하곤 했으니 오죽할까.
그래서 일까. 이렇게 직접적으로 아쉬움을 표현하며 내게 말을 걸어주는 이의 등장은 꽤나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럼 내일도 오시는 건가요?”
“매주 토요일 저녁 8시쯤에 하고 있어요.”
“아... 매일은 안하시는 구나...”
“다음에도 꼭 와주세요. 그럼 이만.”
그래서인지, 그 감정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었다.
*
자취생활을 청산하고 삼촌의 집으로 들어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부터 자취하기 전까지 으레 지냈던 삼촌 집이지만, 그 일이 있은 뒤 다시금 이곳으로 들어와 사는 것은 꽤나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러한 머뭇거림은 오래갈 수 없었다.
집안을 가득채운 소주병을 본 삼촌은 나를 더 이상 그곳에 두려하지 않았으니까.
그날로 나는 삼촌 집으로 들어왔다. 다행인 것은 그 뒤로 삼촌을 마주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제 그동안 준비했던 새 남자 아이돌 그룹이 데뷔를 앞두고 있었고 나 또한 정신없이 그녀와의 추억이 서린 곳을 찾아다녔으니까.
그렇게 나는 새로운 삶에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집에서 나를 마주하게 된 삼촌 또한 이를 어렵지 않게 눈치 챈 듯하다.
[보고 싶어]
너 없이 살아보고 잠들어본다.
잊을 수 있다고
지울 수 있다고
다짐해본다
너와 걸었던 거리
너와 함께했던 추억
어딜 가든 떠오르는 너의 모습
이렇게 생생한데 그게 가능할까.
잊을 수 없어
지울 수 없어
보고 싶을 때면 걷는 너와 나의 거리
아직도 여전한데
넌 어디 있는 거니.
......
다만 그것이 내가 원하지 않던 방법을 통해 이뤄진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여느 때처럼 삼촌과 나 혼자살기에는 너무나도 넓은 집에서 내가 작곡한 곡들을 하나 둘 부르며 목을 가다듬었다. 넓은 정원에 누운 채로 푸른 하늘을 보며 노래를 부를 때면 가슴이 터질 듯한 설렘에 휩싸이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던 것은.
한쪽 벤치에 앉아 나를 오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낀 순간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시선의 주인공이 삼촌임을 인지했을 때 고개를 숙였다.
회사에서 방출된 후 친형처럼 아빠처럼 나를 곁에서 돌봐주던 삼촌을 예전처럼 대하기에는 너무나도 미안했으니까.
데뷔를 몇 달 안 남겨둔 팀의 메인보컬 방출.
삼촌이 무엇 때문에 몇 달 동안 집에 거의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바빴는지를 모르지 않았기에 삼촌의 눈을 마주대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의 속내를 알아차려서 일까. 삼촌은 말없이 벤치 앞 테이블에 놓여있던 내 악보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삼촌이 이렇게 쨍쨍한 대낮에 집으로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나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말했다시피 나는 작곡, 작사 수업에서 두각을 드러낸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삼촌의 눈에 나의 이야기들이 노출되는 것이 꺼려졌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곡들이지만, 대한민국 최고 전문가인 삼촌의 입장에서 보면 허점투성이일 테니까.
나에게는 의미 있었던 행동들이 삼촌에게는 그러지 않을까봐. 또다시 소주병과 함께 잠에서 깨고 잠이 드는, 너는 아직도 전과 같은 생활을 아직도 하고 있구나 라는, 혹시나 삼촌이 실망 섞인 눈빛을 보내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쉴 새 없이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한없이 복잡해진 마음을 애써 감추며 삼촌이 앉아있는 벤치로 다가가는 그 순간까지도 삼촌은 나의 작곡노트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
“그냥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곡도 쓰고.”
“곡도 어? 어, 곡도 쓰고.”
“작사도 하고?”
“응? 응...”
“노래는?”
“그냥 호, 홍대에서 몇 번...”
“몇 번?”
“그, 그냥 일주일에 토요일 한번만.”
집에 별다른 먹을 것이 없는 까닭에 삼촌과 나는 나란히 짜장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유기농이 아니면 절대 안 먹는 삼촌의 성향 상 이것은 꽤나 의외의 일이었다.) 그리고 막 한 입을 먹으려던 내게 삼촌이 그동안의 행적을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제발 좀 먹고 얘기합시다. 이러다 짜장 떡 되겠네.
“필요한거는?”
“필요한거는 따로 없는데, 그냥 지금이,”
“하...”
짜장이 안 넘어간다는 듯 삼촌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삼촌의 눈치를 보느라 덩달아 젓가락을 내려놨고 말이다.
“필요한거는?”
“진짜 없어. 삼촌. 아직 용돈도 있고,”
“필요한거는?”
“그게... 엠프가 중고로 산거라... 버스킹 할 때...”
하지만, 삼촌의 얼굴은 의외로 밝았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예전처럼 삼촌을 대할 수 있었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삼촌 젓가락을 내려놓은 게 다 먹어서였구나. 그렇게 비어있는 삼촌의 그릇을 보며 나 또한 그닥 식욕이 없었는지라, 다시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그릇들을 대문에 내놓고 삼촌과 정원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면 그렇게? 이 노래는?”
“아! 그건...”
여자치고는 꽤나 큰 키, 예쁜 외모, 털털한 성격을 지녔지만 내게 만큼은 귀엽고 애교도 많은 성격의 그녀를 보며 종종 말하곤 했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키가 크니?
어떻게 하면 그렇게 귀엽니?
어떻게 하면 그렇게 완벽하니?
라고 말이다.
뭐, 지금은 모두 행복했던 과거일 뿐이지만.
“댄스?”
아이돌 데뷔를 눈앞에 두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하기 힘든 말이지만, 왠지 모르게 댄스음악은 끌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 가운데 삼촌이 물어본 노래처럼 흥이 넘치는 곡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그녀에게 장난삼아 하던 얘기들이 절로 떠오르는 그 노래만큼은 댄스음악일지라도 꽤나 정이 갔다. 물론 다른 곡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신이 나서는 그 곡이 어쩌다 만들어지게 됐는지를 읊자, 삼촌이 한숨을 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좋디? 석 달 동안 그 짓거리를 할 정도로?”
“어, 어? 응...”
“멍청한 놈. 개가 독하게 널 끊어냈으면 너도 독하게 이겨낼 생각을 해야지. 어휴.”
못마땅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삼촌의 눈빛에 나는 커피를 티스푼으로 휘저을 뿐이었다.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삼촌이 지금 누구 때문에 개고생을 하고 다니는데 말이다.
“이곡 괜찮네.”
하지만, 다시금 들려오는 삼촌의 말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응?”
“안무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가사가 와 닿는 것도 있고 비트도 괜찮고. 어설픈 데가 있긴 한데, 그건 녹음하기 전에 수정하면 될 테니까. 가사만 조금 더 내 스타일대로 바꾸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나를 감싸 돌기 시작했다. 삼촌의 행동에서 마치 먹이를 눈앞에 둔 이리가 연상되었으니까.
*
#3
삼촌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예전처럼 밝아진 내 모습을 확인 한 탓일까.
여튼 삼촌은 짜장 하나를 먹더니 이내 회사로 돌아갔다. 필히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서 찾아와 본 것 일거다. 내가 예전처럼 술판이나 벌이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렇게 내 방 침대에 누운 내 얼굴 또한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후우.
그동안 나를 알게 모르게 짓누르던 삼촌에 대한 죄송함이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간 듯해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동안 언제 걱정을 했냐는 듯 마음과 몸이 한층 개운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걱정꺼리가 해결 된 만큼 최대한 후회 없이 움직이고 싶었으니까.
[보고 싶어]
너 없이 살아보고 잠들어본다.
잊을 수 있다고
지울 수 있다고
다짐해본다
너와 걸었던 거리
너와 함께했던 추억
어딜 가든 떠오르는 너의 모습
이렇게 생생한데 그게 가능할까.
잊을 수 없어
지울 수 없어
보고 싶을 때면 걷는 너와 나의 거리
아직도 여전한데
넌 어디 있는 거니.
......
[짝짝짝]
한곡을 부르고 마른목을 생수로 대충 적신 내게 들려오는 박수소리가 전과 달리 꽤나 크게 들려왔다.
평소 내 노래를 들어주는 구경꾼들은 보통 많아야 열 명 정도가 전부인 데 반해 오늘은 그 배에 가까운 수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방금 전 곡은 제 자작곡인 보고 싶어 라는 곡이었어요. 좋아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노래 너무 좋아요!”
“앵콜! 앵콜!”
그렇게 잠시 주변 관객들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평소보다 적극적인 관객들의 반응이 내게 활력을 선사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평소라면 이쯤에서 마무리 지었을 버스킹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 정도로 지금 내가 나를 보며 환호해주는 이들에게 느끼고 있는 민재는 대단했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와중에 한 쪽 구석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이번 주에도 와줬네요? 정말 고마워요.
얼추 봐도 여자치고는 꽤나 커 보이는 키였는지라, 낯이 익었을 수도 있다. 물론 그녀의 키가 내가 익숙한 이와 비슷해서 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아, 아니에요! 노래가 너, 너무 좋아서요.”
갑작스럽게 말을 거는 내게 당황해서일까.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치는 그녀를 보자,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얼굴에 아직 젖살이 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아직 학생인가보다. 교복을 입고 왔으니 말이다.
아무튼, 동그랗게 뜬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기대하지 않고 꼭 와달라고 부탁했던 것을 마치 약속을 한 것처럼 다시 와줬으니 말이다.
부끄럼이 많은 편 인걸까. 주변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꽤나 붉어진 그녀의 얼굴에 고민에 대한 결정을 보다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여러분! 사실 제가 자작곡만 부르다보니 이렇게 많은 분들이 호응해 주실 거라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며칠 전에 새롭게 쓴 곡 드릴게요.”
얼핏 봐도 스무 명은 넘어 보이는 주변 인파에 나 또한 흥이 났나보다. 홍대가 버스킹 천국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외진 곳에서 이 정도의 청중을 끌어 모으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번쯤은 너를]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일을 하든
눈물이 흘러.
네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니까.
알아 나도
다 끝난 일이라는 걸.
한번쯤은 너와 마주치고 싶어
어느 공간이든 어떤 때이든
마주치면 네게 말해주고 싶어.
무엇을 하든지
누구의 곁에 있든지 간에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
......
자작곡인데다가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 공개되는 만큼 관객들의 반응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눈빛과 행동에서 그것이 부정적인 반응이 아님을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동그란 두 눈을 살며시 감으며 내 노래를 듣는 좀 전 여학생의 입가에는 미소 또한 맺혀있었으니까.
그렇게 그날 버스킹은 마무리되었다. 관객들 사이에서 앵콜 소리가 빈번했지만, 애써 아쉬움을 감춘 채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 주 토요일에도 꼭 와주세요. 기다릴게요!”
“와서 응원해줘서 고마워요. 공부 열심히 해요!”
엠프를 챙기고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까지도 떠나지 않은 여고생의 배웅 아닌 배웅에 나 또한 손을 흔들어주었다.
점점 이 기분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을 것 같다. 내 감정을 오롯이 담아 선율로 풀어내며 느끼는 희열이 너무나도 컸으니 말이다.
하아.
그래서 너무 아쉽다. 이 순간을 당분간 느끼지 못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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