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1화 (1/502)

#1

[우리 헤어져.]

[어, 어? 뭐라고?]

[더 이상 설레지가 않아. 보고 싶지도 않고.]

[자, 잠깐만 기다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꿈속의 기억에 손으로 무심코 눈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3개월. 너무도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새삼 느낀다.

[쨍그랑]

안 그래도 작디작은 자취방에 소주병만 수십 병. 그 좁은 틈을 비집고 이동하려니, 입가에 절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어쩌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인지.

그냥 침대에 누워있을까 라는 생각이 다시금 뇌리에 찾아왔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니까.

후우.

무성히 자란 수염과 장발이 되어버린 머리를 보니 지난 3 개월간의 삶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쓰윽 쓰윽]

날이 나가버린 듯한 면도기로 애써 수염을 정리하고 어깨까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굴러다니는 고무줄로 묶은 뒤 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제법 싸늘한 바람이 나를 반겼다. 아, 벌써 겨울이 다가왔구나.

무심코 반팔만 입고 나왔던 나는 재빨리 발걸음을 놀리기 시작했다. 다시 되돌아가면 언제 다시 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나를 감쌌으니까.

“3개월 무단결석. 할 말 더 있니?”

“죄송합니다.”

그 어떤 말로도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기란 부족할 따름이었다. 그만큼 나의 과오가 컸음을 부인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수고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로지 죄송하다는 말뿐. 그리고 이 말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예정된 것이었다.

“실망했다. 너한테.”

“죄송합니다. 삼촌.”

대표실 문을 닫고 나오며 바라본 삼촌의 얼굴은 무척이나 굳어있었다. 사적으로는 엄마의 남동생, 즉 삼촌이지만 지금 상황을 해결하기에 그러한 사실은 어떠한 도움도 되질 못했다. 아니,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조금의 편의라도 내게 베풀었을 때 주변으로부터 받을 눈총과 그동안 삼촌이 지켜왔던 신념이 부서질 것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후...”

그녀처럼 모든 것이 떠났다. 지난 10년간의 연습생 생활 끝에 이제 막 데뷔를 3개월 앞두고 있던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처음엔 쉽게 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커져만 가는 이별의 고통에 나는 망가져버렸다. 술, 섹스, 잠 그 어떤 것으로도 그녀를 떠나보낸 공허함과 아픔을 잠재울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처 없이 걸었나보다. 점심때쯤 회사에서 나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어두워진 홍대거리를 걷고 있으니 말이다.

6시 반.

얼추 다섯 시간 쯤 걸었을까. 무릎이며 허리까지 서서히 몸 곳곳에서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버스킹 하는 이들의 천국이라 할 정도인 홍대 놀이터 부근을 걷자, 그러한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때? 보드 잘 타지? 히히]

[와! 저사람 노래 진짜 잘 부른다! 연습생인걸까? 어디 쪽일까?]

[나 머리 짧게 자를까? 어떻게 생각해?]

고통을 느끼기에는 문득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이 너무나도 달콤하고 또 씁쓸했으니까.

“하하하하.”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가수의 꿈을 키워오며 흘렸던 땀방울이 모두 무산된 상황일진데, 그녀 생각을 할 때면 아무런 걱정과 두려움, 좌절을 느껴지지 못하는 내 자신이 신기하고 우습고 슬펐으니까.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나도 모르게 펜과 종이를 들었다.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들고 다니던 것이 습관이 된 것일까. 가방은 언제 메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가방에 언제 헤드폰과 공책, 필기구를 넣었는지는 상관없었다.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선율을 그려본다. 추억이 가져다주는 현실도피가 오래가기를 바라며.

[보고 싶어]

너 없이 살아보고 잠들어본다.

잊을 수 있다고

지울 수 있다고

다짐해본다

너와 걸었던 거리

너와 함께했던 추억

어딜 가든 떠오르는 너의 모습

이렇게 생생한데 그게 가능할까.

잊을 수 없어

지울 수 없어

보고 싶을 때면 걷는 너와 나의 거리

아직도 여전한데

넌 어디 있는 거니.

......

그날 이후의 생활은 너무나도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흘러갔다.

눈을 뜨면 그녀와 같이 추억을 나눴던 곳을 찾았다.

남산을 간 것도, 한강을 간 것도, 스티커 사진을 찍어본 것도, 홍대 거리를 걸으며 데이트를 한 것도, 모두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기억들은 생생히 내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마치 하루 전일처럼.

하지만,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 의외로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그녀와의 이별이 가져다주는 감정들이 무뎌지기를 바라며 써내려가는 곡들이 많아질수록 도리어 그 감정들은 선명해졌지만 다행인 것은 그 선명해진 감정들이 주는 위안이 고통보다 컸으니 말이다.

이별의 아픔에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나는 점점 그녀를 기억하면서도 잊어갔다. 추억을 아름답게 내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게 그녀를 떠나보냈고 또한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코멘트가 미래다. 창조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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