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외전. 광신도와 귀쟁이 그리고 요리사 >
디아네가 한 일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다섯 번째 종말이 시작되자 주요 교인들을 모두 소집하여 한 곳에 모아두고 지구에 파견되는 용사들에게 슬며시 언급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주신이자 김우진의 최측근이다 보니 백정탈들은 그녀가 언급한 교인들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 목표 중 하나로 두었다.
그리고 그게 절대신교의 명성을 더욱 드높였다.
당연한 일이다. 거의 노골적으로 백정탈들이 절대신교를 감싸고 도는 느낌이었으니.
“저는 절대소장신님을 섬기는, 믿음으로 가득한 절대소장신님의 신도들이 다치질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조용히 하라니까?”
“예!”
의도는 좋았다. 그 결과도 좋았다.
신도들은 대부분 무사했고 교세는 확장되었다. 일반적인 신이라면 무조건 좋아했을 최고의 결과였다.
문제는 김우진이 일반적인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절대신이다. 이미 압도적인 힘과 권능을 가진 존재이기에 굳이 신도와 신앙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김우진은 스스로가 떠받들여지는 것을 그다지 원치 않았다.
“저걸 저대로 두면 이 지구가 절대신교로 뒤덮일 거야.”
“그건 그것대로 괜찮지 않아요?”
“응, 괜찮지 않아.”
“절대소장신님! 그것이야말로 제가 그리는 이상향입니다! 절대소장신님의 고향이 절대소장신님의 권역이 된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닥치라니까!”
“죄송합니다!”
“손 더 높이 들어!”
“네!”
촌극과도 같은 그 모습에 율리아가 픽 웃었다.
“그러면 아예 포교를 막는 건 어떨까요?”
“그러려고.”
“읍읍!”
“한 번은 봐줬는데 이건 정도가 심해. 이대로 가다간 진짜 지구가 이상해진다고.”
광신도는 무섭다. 전염되기에 무섭고 앞뒤가 없기에 더 무섭다.
신과 종교를 앞세워 자유와 대의를 억압하고 법 위에 서려는 자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신앙이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 김우진이 바라는 지구는 절대 그런 게 아니었다.
“읍읍읍!”
“그런데 단순히 포교를 하지 말라고 하면 쟤는 분명히 이상한 꼼수를 쓸 거란 말이지.”
“지구로의 출입을 통제하실 생각이세요?”
“그래.”
“읍읍읍읍!”
“그건 너무하지 않아요?”
“아니, 쟤는 이 정도는 해야 돼.”
“으으으으읍!”
“그래, 말해 봐.”
“그건 저를 두 번, 스무 번, 이백 번, 이천 번 죽이시는 겁니다! 전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소장절대신님을 섬기며 이 지구에 오직 소장절대신님을 믿는 인간만 가득한 낙원을 건설···.”
“금지해야겠네요.”
“그렇지?”
“그렇다고 아예 그러는 건 너무 가혹하니까 기한을 두는 게 어떨까요? 다 소장님을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
“그럼 한 달.”
그렇게 디아네의 지구 출입이 금지되었다.
* * *
“이건 옳지 않습니다.”
디아네는 자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으나 거부할 수도 없었다.
불공평한 벽이 생겼으나 그 벽을 세운 게 그녀가 절대적으로 믿고 섬기는 김우진이었으니.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절대소장신님의 신도로서 너무 충실히 섬긴 것 뿐입니다!”
“그래, 정확히 알고 있네. 거기서 제발 너무 좀 빼. 그 전까지는 지구에 올 생각하지 말고.”
“절대소장신님! 안 됩니다! 절대소장신님! 부디 자비를!”
“그리고 피조물들한테 포교도 좀 그만해. 평생 하지 말라고는 안할 테니까 한 달 동안은.”
주신이다 뭐다 추켜 세워주지만 김우진의 힘은 다른 모든 신들보다 압도적이다. 그의 권능 앞에 디아네는 지구에서 추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울고 있다고? 주신이라는 작자가?”
- 한심해.
- 한심!
“주신도 결국 절대신님의 신도일 뿐입니다.”
차원, 연옥. 자기 집에서 세계수들과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시에나는 갑작스러운 침입자에 한숨을 쉬었다.
“차나 한 잔 하렴.”
“감사합니다.”
따스한 세계수의 잎차가 부드럽게 넘어갔다.
“그래서 이제 뭐하려고?”
“모르겠습니다. 당장은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한 달 동안 뭘 해야할지.”
“굳이 지구에 얽맹리 필요는 없지 않나?”
“물론 다른 곳에서 절대소장신님을 알리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아시다시피 피조물들에 대한 포교 또한 금지된 상태라.”
“거기에는 딱히 강제성이 없잖아?”
“강제성이 없다니요? 절대신님의 명령은 반드시 지켜야하는 절대적인 사명입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할까.”
시에나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손을 휘저었다.
“다 마시고 나가보렴. 나도 가봐야할 곳이 있으니까.”
“어디를 가십니까?”
- 고향!
- 케이룸!
“아.”
세계수들의 외침에 디아네가 숨을 삼켰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디아네와 시에나는 지독한 악연이었다. 물론 디아네가 직접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고 스스로를 케이룸이라 칭하던 베른의 명령을 받았을 뿐이지만 거기에 조금이라도 관여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차원, 케이룸. 베른의 고향이자, 시에나의 고향, 그리고 디아네의 고향이기도 한 곳.
“괜찮아. 복수도 했고 너한테 더 이상 악감정은 없으니까.”
“···뭐하러 가시는 겁니까?”
“죽은 동족들이 묻힌 곳을 관리하러?”
“···아직 안 잊었잖습니까.”
“동족들을 잊으면 안 되지.”
시에나는 티타임을 끝내고 곧장 연옥을 나섰다. 디아네는 끝끝내 그녀를 따라갔다.
“굳이?”
“저도 사과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베른을 섬기는 집행자에 불과했다한들, 그들을 핍박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준다면야 나야 고맙지.”
케이룸은 본래 베른이 자신의 권역으로 만든 차원이었다. 하지만 베른이 죽어버린 후, 신의 힘이 사라지면서 믿음은 사라졌고 새로운 백신전이 들어서면서 그 자리는 여러 신들이 대체되었다.
“자애의 신, 알티마님께서는 모두와 함께 하십니다!”
“이리드님의 자비가 함께하길.”
“숲의 주신, 시에나님의 은총이 언제나 여러분을 보듬을 것입니다.”
무한 경쟁 신앙. 현재의 케이룸은 수십 개의 종교가 난립하는 대혼돈의 시기였다.
“훨씬 보기 좋네.”
개나 소나 전부 그 빌어먹을 베른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보다 훨씬.
“···언제 여기다가 신앙을 퍼트리셨습니까?”
“틈틈이? 나름 꾸준히 무덤 살피로 오고 갔거든.”
그래도 고향에 내 이름과 신앙이 있는 게 나쁘지는 않네.
“절대소장신님이 시에나님만 같으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소장은 조금 유별나잖아? 근데 네 신앙은 없던데.”
“제 신앙은 퍼트린 적이 없습니다. 항상 절대소장신님의 신앙을 퍼트렸죠.”
“···너 진짜구나.”
하긴, 그때 그 모습을 생각하면···
시에나가 디아네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첫 만남은 아니었다. 첫 만남은 별 일이 없었다. 두 번째는 ‘엘프가 말대꾸?’였고 가장 강렬했던 건 역시 그 다음 만남이었다.
엘프들이 묻힌 그 섬에서 디아네는 패배했다.
그녀가 섬기던 신 또한 패배했다.
그리고 그날, 디아네에게는 새로운 종교가, 새로운 신이 생겼다.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운 신앙을 찾아가던 그 광기어린 모습을, 시에나는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일단 가자.”
“그 섬으로 가십니까?”
“그래.”
베른이 엘프들을 학살하고 방치해두었던 차원 남쪽의 섬. 시에나는 신이 된 이후에 그곳에 결계를 쳐 누구도 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엘프들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시에나가 무덤 앞에 섰다. 수만 개의 무덤. 시에나가 직접 하나하나 매장하고 명복을 빈 것들이었다.
“모두 새로운 곳에서는 행복하길.”
죽은 영혼은 윤회한다. 그들이 새로운 삶에서는 지금과 같은 비극이 없기를 빌어주었다. 괜스레 차오르는 그리움에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여전히 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동족이고, 가족이니까.”
“죄송합니다.”
“말했잖니. 네가 죄송할 필요는 없다고.”
그때는 왜 가짜들에게 미쳐 있어서.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디아네가 고개를 숙이고 입을 오물거렸다.
하지만 무언가를 깨닫고 곧 다시 들었다.
“···생각해보니 절대소장신께서 말씀하시길, 피조물들에게 포교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는 건 피조물이 아니면 괜찮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피조물이 아니면 된다고?”
김우진으로서는 디아네가 워낙 지구인들을 상대로 포교를 하다 보니 별 의미 없이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꽉 막힌 어둠 속을 비추는 한 줄기 서광이었다.
“예. 이 세상에 신을 섬길 만큼 이지를 가진 생명체가 피조물들만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왜 날 보니?”
디아네는 시에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눈을 올곧이 뜨고 한 번의 깜빡임도 없이.
“대화를 할 때, 상대의 눈을 보는 것이 예의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제 슬슬 돌아갈까?”
“동족들을 모두 잃고 많이 슬프신 것 압니다. 이번 사태만 봐도 그렇지요. 프로니우스, 그 불쌍한 차원룡은 모든 동족을 잃고 미쳐버린 겁니다. 복수심을, 마음의 공허함을, 사무치는 그리움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렇지?”
주춤, 시에나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디아네가 그만큼 나아갔다.
“하지만 복수의 덧없음을 깨닫고 마음의 공허함, 사무치는 그리움이 채워진다면 어떻겠습니까?”
“채워진다고?”
왠지 뭔지 알 것 같으면서도 시에나는 본능적으로 물었다.
“복수의 덧없음을 알려주고, 공허함을 충만하게 채워주고 세상을 아름답게 해주는 그 이름은 바로 절대소장신님입니다.”
“아니란다.”
시에나가 즉답했다.
“아닙니다. 아직 그 아름다움을 모르셔서 그런 겁니다. 제가 비록 슬퍼하시는 시에나님께 가족과 동족을 돌려드릴 수는 없지만 신앙의 충만함과 아름다움으로 슬픔을 잊게 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필요 없다니까?”
“그러지 마시고···.”
“저리 꺼져!”
“한 번만 믿어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절대소장신님께서는 언제나 저희를 굽어 살피시니···.”
“그거 김우진이잖아! 김우진을 어떻게 믿어!”
“절대소장신께서는 절대신의 위엄을 떨치시니 믿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잊은 것 같은데 나도 신이란다? 그것도 일반 신이 아닌 주신.”
“저도 신입니다. 주신.”
디아네가 아공간을 열고 책을 꺼냈다.
“그건?”
“제가 태초부터 절대소장신께서 탄생하시고 행하신 모든 것을 집필한 경전입니다.”
“···김우진은 태초에 있지도 않았는데?”
“그런 사소한 건 넘어가도 됩니다.”
“완전 사이비잖아!”
“절대소장신께서는 실제로 존재하시니 그것은 불경입니다. 하지만 시에나님이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첫 번째 구절부터 읽어드리겠습니다. 경전을 듣다 보면 경건함이, 그리고 신앙심이 생길 겁니다.”
태초에 빛과 어둠뿐이던 이 세상에 절대신께서 눈을 뜨셨다.
절대신께서는 빛과 어둠, 어둠과 빛 모든 것의 균형을 이루는 존재였으니···
“꺼져!”
시에나가 차원을 탈주했다.
“어디 가십니까!”
“어디로 가던 무슨 상관이야!”
“마저 들으셔야지요. 이제부터 재밌는 구간입니다!”
“지구, 지구로 가야해.”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저 미친년이 따라오지 못할 테니까.
* * *
“그래서 여기로 오셨다는 겁니까?”
“그래.”
창백한 안색의 시에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디아네는 점점 더 미쳐가는군. 김우진이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보네. 그대로 뒀다면 지구의 인간들이 죄다 김우진을 섬기는 신도로 변했을 거네.”
“그게 나쁜 겁니까?”
“정정하지. 김우진을 맹목적으로 섬기는 광신도로 변했을 거네.”
옆에 앉은 데르카인의 말에 베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좀 심각하긴 하군요.”
“자네는 대체 디아네가 뭐가 좋다고 만나는 건가?”
“생각보다 착한 사람입니다. 신앙을 전파하는 걸 제외하면 다 좋은데 신들에게는 신앙을 전파하지 않으니까요.”
“근데 이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런 것 같네요.”
음, 베르너가 포크를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통신구군?”
“예. 스마트폰으로 보이게 해놓은 겁니다. 디아네한테 전화 좀 해봐야겠네요.”
“잘 생각했네. 제발 나한테는 신앙을 전파하지 말라고 전해주게. 김우진과 몇 십 년을 감옥에서 살았는데 이제와서 신으로 섬기라는 게 말이 되나.”
“그것도 그렇죠.”
차원의 방벽마저 통과하는 통신구가 우주 저편의 광신도와 연결되었다.
“디아네? 지금 뭐하고 있어?”
“시에나님 여기 있냐고? 계셔. 응.”
“너무 그러지 마. 믿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와야지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미안해서 그런다고? 본인이 싫다고 하시잖아.”
“그래. 아, 데르카인님이 자기한테는 절대 전파하지 말아 달라는데.”
“응, 나도. 사랑해. 이따 연옥에서 저녁 해줄게.”
“응, 이따 봐.”
탁, 통신이 끊어졌다. 베르너가 일그러진 두 신의 얼굴들과 마주했다.
“왜 그러십니까?”
“토가 나올 것 같아서 그렇네.”
“나도 그렇단다.”
“두 분이서 사귀어 보시는 건?”
“끔찍한 소리 말게! 누가 이런 귀쟁이랑!”
“누가 이런 난쟁이랑!”
씩씩 거리는 두 주신을 보며 베르너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앞으로 안 그러겠답니다. 나름 생각해서 한 건데 안타깝다네요.”
“두 번만 생각했다간 내가 죽고 말 거란다.”
“안 한다고 하면 확실하게 안 하는 사람이니 문제없을 겁니다.”
“고맙구나.”
안도의 한숨을 쉰 시에나가 사라졌다.
“자, 그럼 다음 음식을 먹어 볼까요?”
“시에나 때문에 묻지 못했네만 대체 왜 여기서 먹는 건가? 내가 공부하는 걸 보고자 하는 건 아닐 테고.”
“그야, 여기 학식이 맛집으로 소문이 나 있으니까요?”
“그놈의 맛집 여행, 아직도 안 끝났나?”
“지구에는 다른 차원들보다 훨씬 맛집이 많더라고요.”
베르너가 다시 식권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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