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143화 (143/150)

# < 외전. 지구의 종말(13) >

절대자들의 전쟁이란 어떤 걸까.

단순히 땅을 뒤집고 도시를 파괴하는 수준이 아니다.

차원 그 자체를 붕괴시킬 정도의 장엄함.

“모두 도망쳐요!”

신들은 모두 경험이 있었다.

아카식 레코드의 힘을 일부 얻은 베리안과 김우진의 대결을 통해 절대자들의 전투는 신들인 그들조차도 쉽게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김우진을 따라 돌진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던 군단은 율리아의 지휘아래 일사분란하게 차원을 벗어났다.

달려드는 마물들은 신들이 막으며 집행자들의 탈출이 먼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직후, 격전이 시작되었다.

화염이 폭발한다. 화산 수만 개가 한 번에 터지는 듯한 굉음과 열기가 휘몰아친다.

“진짜 다시 봐도 대단하네요!”

난 저렇게는 못할 것 같은데. 율리아가 신음을 삼키며 바람을 일으킨다. 시원한 광풍이 열기를 밀어내며 아군을 보호한다.

열기에 반쯤 녹아내리면서도 적의를 드러내는 마물들을 마저 썰어버린다.

“절대소장신이시여, 당신의 종들을 보호하소서.”

디아네의 신성한 가호가 한층 더 강화한다.

신들의 후퇴는 빨랐고, 마물들은 후퇴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마물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군단을 향해 진격했고 김우진과 프로니우스의 전투 여파를 직격으로 맞았다. 맞고 있다.

“이러면 굳이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될 지도···? 이거 처음부터 소장님만 오셨어도 되는 것 아니었을까요?”

“물론 절대소장신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지만 그분을 섬기는 자로서 당연히 그분이 가는 길을 함께해야 마땅합니다.”

“···아니, 됐어요. 디아네님한테 말한 제 잘못이죠.”

“김우진만 보냈으면 그건 대놓고 함정이란 느낌이 강했을 거야.”

“어차피 들켰잖아요.”

“더 이상했겠지.”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알베니우스의 말에 율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긴장을 놓지 마세요!”

그녀가 바람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차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마물들을 목숨과 부상을 도외시한 채 그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두 절대자들이 일으키는 충격파에 큰 피해를 입고 있었지만 그 수가 워낙 많아 살아남아 돌격하는 마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진다.

“그런데 저희가 굳이 여기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신이고, 상대는 수가 좀 많을 뿐이지, 멍청하게 스스로를 깎아먹고 있는 마물들 아닌가.

그래서 율리아에게는 대화할 여유가 있었다.

“무슨 뜻이냐.”

“소장님 혼자서 충분히 상대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알베니우스님이 여기 있으니 저희는 그냥 백신전이나 연옥으로 복귀해서 그 마물들을 쓸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소장님한테 정신이 팔려 있는데 이럴 때는 권능을 쓰실 수 있지 않아요?”

“···그건.”

알베니우스가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상대가 프로니우스만 아니라면.

“놈을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면 내가 남을 필요가 있거든.”

프로니우스는 알베니우스의 권능을 틀어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김우진이 없다면 어림도 없겠지만 김우진으로 인해 흔들리는 놈의 권능을 방해하는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의 경우에 절대 도망치지 못하게 해달라고 했거든.”

“그러면 저희만 보내주시면 되겠네요.”

“미쳤어? 나 혼자 여기 있으라고? 저 흉측한 것들이 게걸스럽게 밀려오는데? 날 지켜! 너희들은 아무대도 못가!”

“신까지 되셨으면서 어린 애처럼 왜 그래요?”

“목숨이 걸려 있는데 이게 당연하지!”

“스스로를 지킬 능력은 있으시잖아요.”

“만약이라는 게 있지! 안 돼! 못 돌아가!”

알베니우스의 단호함에 율리아가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에도 대비 해야지. 김우진이 질 수도 있잖아?”

“그럴 리가요.”

김우진이 지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패배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여기 남아 있는 의미가 없다.

“소장님이 졌는데 저희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리가 만무하잖아요.”

“···그것도 그렇네.”

고개를 돌려 전장을 바라보았다.

“잘 타네요.”

“장작이 좋으니까.”

차원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 * *

기존의 연옥과 기존의 백신전이 합쳐져 탄생한 차원 연옥은 단순하다.

차원 중심부에 두 그루의 세계수와 몇 개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있고 나머지는 그냥 자연이다.

숲이, 계곡이, 절벽이, 바위가, 사막이, 설원이, 호수가, 바다가.

릴리와 나르의 취향이 듬뿍 들어간 그냥 자연.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할지 몰라도 그 속은 아니었다.

여러 자연들이 혼합된 인위적인 환경 밑에는 세계수의 뿌리와 가지들이 뒤엉켜 있다.

차원의 핵은 물론 차원 전역으로 뿌리와 줄기를 뻗고 잎을 피운다. 차원의 마력과 신력들을 순환시켜 더 없이 농후한 차원을 만든다.

그리고 그 힘을 말미암아 선순환을, 차원의 거주민들이 탄생한다.

정령이라는.

본래라면 불가능 하나 신들을 먹고 차원들을 합치며 우주에서 가장 위대하 나무가 된 두 그루의 세계수이기에 일어난 이적.

세계수의 잎사귀 하나하나에, 가지에, 뿌리에, 줄기에 깃들어 탄생한 정령들.

샐 수도 없이 많으며 그 개체 하나하나가 상급 정령에 준한다.

어마어마한 정령들을 탄생시킨 두 세계수들을 보고 김우진은 정령왕이라 칭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령왕이란 정령들의 왕이고, 이런 식으로 정령들이 탄생한 적은 처음이었으나 세계수들은 그들의 왕이었다.

그리고 왕은.

자신의 신하와 영지에서 한 없이 강해진다.

- 여긴!

- 내 영역이야!

10m가 넘어가는 파란 비조가 숨결을 토해낸다.

번쩍-

번개가 뒤섞인 섬광이 일직선으로 마물들을 찢어발긴다. 하지만 물밀 듯이 밀려오는 막대한 물량에 구멍은 순식간에 메워진다.

하지만 물량이라면 이쪽도 지지 않는다.

- 가!

그녀의 날개짓에 수천만 마리의 정령들이 날아오른다.

괴성을 지르며 낙하하는 마물들과 부딪힌다.

콰직!

파지지직-

정령은 왕을 닮는다. 나무이면서도 흡수한 첫 번째 신, 베른의 기운을 가장 먼저 각인한 릴리를 닳은 정령들은 나무의 정령임과 동시에 번개의 정령이었다.

사방에서 튀어오르는 스파크들이 마물들을 팝콘처럼 튀겨버린다.

허나 모든 마물들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다. 철퍽, 땅에 떨어진 마물들이 형태를 갖춰가며 야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자들이 있었다.

크허허허헝!

- 죽여!

차원 연옥에 뿌리 내린 또 다른 세계수와 그 세계수가 탄생시킨 정령들.

거대한 백호와 나르를 닮은 호랑이 정령들이 마물들을 물어 뜯었다.

나르가 가장 먼저 흡수한 신은 얼음의 권능을 가진 신이었다. 백호들이 흩뿌리는 냉기에 마물들이 얼어붙었다. 그 채로 짐승들의 이빨에 산산히 부서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계수의 가지와 줄기들이 사방으로 뻗어 마물들을 꼬치처럼 꿰어버린다. 찢어버린다.

일련의 과정들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차원의 방벽을 넘어 들어오는 마물들이 믹서기에 갈린 것처럼 순차적으로 갈려 나갔다.

“음.”

화살을 쏘아낸 시에나가 뺨을 긁적였다.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세계수를 도와줄 목적으로 함께 하고 있었으나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지구식 표현을 빌리자면 이곳은 공장이었다.

가장 효율적으로 마물들을 갈아버리는 공장.

관건은 마물들이 먼저 전멸하느냐, 두 세계수의 마력이 떨어지고 지치느냐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후자는 가능성이 없었다.

아카식 레코드와 가장 가까운 차원인 연옥으로 스며드는 우주의 힘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우니까.

“하암.”

시에나가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댔다. 왠지 졸음이 쏟아졌다.

* * *

────!

행성 전역에서 뻗어 나온 섬광이 차원을 넘어 우주를 관통한다.

빛줄기에 휘말린 마물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소멸한다.

일순간 정적이 일었다. 파도와도 같은 무리에 공백지가 생겼다.

하지만 그 공백지는 오래 가지 못했다.

“대기.”

전력의 4분의 1이 소멸한 일격이었으나 마물들에게 겁을 먹을 이성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빈 곳을 채우고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아직 대기다.”

데르카인이 신중히 하늘을 살핀다.

파랗던 하늘이 마물들로 인해 새카맣게 물든다. 오래 전, 그의 차원에서 곡식들을 쓸어버렸던 황충들의 재림을 보는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지독하다.

황충보다 강하고 끔찍한 마물들이 수까지 더 많으니.

하지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피조물이 아닌 신과 집행자들.

마물의 무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발포하라!”

데르카인이 소리쳤다.

급속 충전된 마력포들이 불을 뿜은 건 마물의 웨이브가 아슬아슬하게 코앞까지 당도했을 때였다.

딱히 노린 건 아니었다.

모아왔던 마력과 우주의 힘을 일거에 방출하고 방전되었던 마력포들이 딱 그때 충전 완료 되었던 것이니.

─!

──!

─!

하지만 의도치 않았다고 해도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마력포는 이전처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포격을 이어갔으나 그 수가 백 만 개가 되면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포격이었다.

거리가 가까운 만큼 그 효과는 더욱 극대화된다.

코앞까지 다가왔던 마물들이 포격에 맞고 쓸려 나간다.

“더 쏴!”

“와아아아아!”

마력포는 마물들의 수를 착실히 줄여나갔다.

“김우진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구만.”

데르카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좋지 않은 상황임이 분명하지만 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자리의 누구나 그랬다.

하늘을 가득 채우던 저 검은 파도에 구멍이 숭숭 뚤렸다. 금방 금방 채워지던 이전과는 달리 지금은 더 이상 메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구멍은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다.

“거지의 거적때기도 저것보다는 구멍이 적을 겁니다.”

“맞네. 정확히 봤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마물들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는 뜻이며, 마력포들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는 뜻이다.

“김우진이 내게 그랬지. 대체 마력포를 그렇게 많이 만들 필요가 있냐고.”

“그리고 데르카인님은 적들이 쳐들어 왔을 때를 대비해야한다고 하셨죠.”

“맞네. 그리고 김우진은 이 세상에 백신전까지 쳐들어 올 적들이 어디 있냐고 했었지. 그리고 나를 구박했어!”

처음에는 김우진도 데르카인과 드워프들이 무슨 짓을 하던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마력포들이 차원 전체를 뒤덮자 말을 바꿨다.

‘이거 좀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어딜 가도 마력포 밖에 안 보여요! 이 흉물 좀 치워주시면 안되겠습니까? 크기도 적당해야지! 하나 같이 10m가 넘어가니 차지하는 공간도 엄청나고.’

‘흉물이라니! 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다른 건 몰라도 드워프들에게 미적 감각이 전무하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 그런 모욕을!’

‘이게 병기창이지 어딜 봐서 백신전입니까? 아니, 병기창도 이런 식으로 늘어놓지는 않습니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네! 마물들이 이곳까지 진격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마물들이 백신전까지 진격했다는 건 세상이 멸망했다는 겁니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만에 하나라는 게···.’

‘어째 전쟁 나길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

‘됐고, 만드는 건 뭐라고 안할 테니까 이것들 전부 땅속에 짚어 넣으십쇼. 너무 흉하잖아요.’

‘···알겠네.’

결국 데르카인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늘어가던 마력포는 백만 개에서 멈췄고 모조리 땅으로 보금 자리를 옮기는 작업이 개시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프로니우스가 등장했다.

그리고 지금이 되었다.

“결국에는 내가 옳았던 거지! 난 이럴 줄 알고 있었네! 마력포는 항상 옳으니까!”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데르카인이 괴랄한 웃음을 흘리며 배틀엑스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마력포들은 너무 가까워져 더 이상 쏠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다시 자신이 있던 땅속으로 돌아갔다.

“돌격하라!”

마침내 신들이, 집행자들이 나섰다.

절반 이상 줄어버린 마물들을 향해 돌격했다.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 * *

“음.”

두리쉬마가 신음을 삼켰다.

“···카운트가?”

“···배속으로 줄어들어?”

침략은 신들의 세계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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