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137화 (137/150)

# < 외전. 지구의 종말(7) >

김우진이 쉐이커를 흔들며 티비를 틀었다.

말뚝이탈을 쓰고 미쳐 날뛰는 두리쉬마의 영상이 뉴스를 통해 송출되고 있었다.

망치를 들고 마물의 몸을 으깨버리는데 거의 공성 전차와도 같은 파괴력이었다.

한 방, 한 방에 대지가 흔들리며 수십의 마물들이 쓸려 나간다.

‘나와라.’

게이트를 통해 튀어나온 모든 마물들을 쓸어버리고 게이트 너머, 아직 채 나오지 못한 놈들에게 손가락을 까딱인다.

김우진이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크으, 이거지.”

- 이거야?

- 이거야!

릴리와 나르가 양 옆에서 따라했다.

“역시 두리쉬마님이십니다.”

두리쉬마를 지구에 떨어트리는 것은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과 비슷했다. 아무리 약해졌다고 한들, 본바탕이 사라지는 건 아니고 긴 세월을 살아온 타이탄의 본바탕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기기 때문이다.

“어떠셨습니까?”

“별로였다.”

바깥을 돌아다니기 위해 덩치를 더욱 줄인 두리쉬마가 볼멘소리를 냈다.

“약해 빠졌더군.”

김우진이 잘 섞인 칵테일이 잔에 따랐다.

“초반이니까요. 프로니우스도 간을 보고 있는 거겠죠.”

“그래도 게이트가 종말 차원과 연결된 것은 맞다. 비록 힘을 다 잃었지만 평생을 살아온 세상을 알아보지 못하지는 않는다.”

“그럼 역으로 이쪽에서 밀고 들어갈 수는 있을까요? 이건 준벅이라는 칵테일입니다.”

술을 한 모금 받아든 두리쉬마의 얼굴이 구겨졌다.

“불가능은 아니다만 추천하지는 않는다. ···달기만 하고 술기운이 없다만?”

“있기는 있습니다. 미미해서 그렇지. 그리고 그 달달한 맛에 먹는 겁니다. 고립될 가능성이 있어서요?”

“그래. 취향도 특이하군.”

프로니우스의 권능으로 열린 만큼, 원한다면 언제든지 닫을 수 있다. 무턱대고 들어갔다가는 어중간한 병력으로 고립되는 상황이 나올 것이다.

신들이 나서면 억지로 균열을 벌려놓을 수는 있겠지만 프로니우스는 두리쉬마마저 손도 제대로 못쓰고 당한 강자다.

어둠의 비호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만큼 비호를 받고 있으니 김우진 본인과 비슷한 강자로 여기고 대응하는 게 옳다.

“그럼 놈은 지금 뭘하고 있는 걸까요? 왜 이렇게 지구에서만 깔짝거리는 거죠?”

“지구에 대한 네 애착을 알기 때문이다. 너는 신들의 우두머리고. 이건 맛있군.”

두리쉬마가 크래커에 스모크 치즈와 하몽, 초콜릿을 올린 치즈 플래터를 마음에 들어 했다.

“불안감 조성?”

“아마도. 당시의 나를 대입해보자면 나는 신들을 결코 쉽게 죽일 마음이 없었다. 내가 받은 괴로움과 고통을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돌려주고 싶었으니까.”

“그게 적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까?”

“복수라는 것에 한 번 미치면 이성적인 생각을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프로니우스의 경우, 그렇게 시간을 줘도 이길 자신이 있는 거겠지.”

“저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내 힘을 모두 흡수하기 전에는 네가 필승이었다.”

“지금은 아니라는 겁니까?”

“모른다는 거다. 놈은 과거의 나 이상의 괴물이 되었지만 그 한계가 어딘지 모르니까. 너도 마찬가지고.”

“유의하도록 하죠.”

김우진이 새로운 칵테일을 만들었다.

“아, 제가 붙여 드린 용사들은 어땠습니까?”

톡 쏘는 탄산에 상큼함, 은은한 알콜이 느껴지는 모히또는 썩 괜찮았다.

“나쁘지 않았다.”

“별 다른 트러블은 없었습니까?”

“있었지만 없게 만들었다.”

“알만하군요. 그래도 두리쉬마님을 믿습니다만, 살살 부탁드립니다.”

“더 문제 날 것도 없다. 다 해결 했으니. 그런데 난 왜 이걸 주고 넌 그걸 먹지?”

“모히또는 저번에 드셨잖습니까. 새로운 거 먹어보라고 만들어 드린 거죠.”

“그게 더 맛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만들어드려요?”

“아니, 그것도 별로긴 하다. 보다 독한 놈으로 줘라.”

“B-52를 만들어드리죠.”

플로팅 기법을 통해 깔루아, 베일리스, 꼬잉트로, 론디아즈 151로 단층을 쌓고 그 위에 불을 붙였다. 독한 것을 찾는 거인을 위해 특별히 론디아즈 151의 비율을 늘렸다.

“여기 있습니다.”

타이탄은 공들여 제조한 폭격기의 아름다운 단층과 그 위의 불꽃을 감상하지도 않고 그대로 원샷을 때렸다.

원래 원샷으로 마시는 게 맞긴 하지만 영 탐탁지 않다.

“···흠, 여전히 약하긴 하지만 저것보다는 낫군. 더 독한 것 없나?”

“···만들어 드리죠. 아주 독한 놈으로.”

입맛을 쩝쩝 다시는 두리쉬마를 위해 열 받은 김우진은 압생트와 스피리타스를 섞었다.

“나쁘지 않군.”

그리고 처음으로 거인에게 합격점을 받았다.

‘그냥 스피리타스를 통으로 줄 걸 그랬나.’

쩝, 김우진이 아쉬움에 입을 다셨다.

‘강민식한테 독을 구해봐?’

애초에 인간의 술 따위로 타이탄을 보내버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 * *

송파구에 열린 세 번의 게이트.

세 번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게이트가 같은 곳에서만 열린다는 것을 파악했고 그에 따른 변화가 일어났다.

송파구 일대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소개 되었고 그 주변의 사람들도 차츰차츰 남쪽으로 내려갔다.

처음에는 송파구, 그 다음은 강남과 강동, 광진. 그 다음은 서울, 그리고 경기도 전역이었다.

아직 경기도권의 이동은 크지 않지만 경기 북부의 인원들은 최대한 남쪽으로 내려갔고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 아예 지방까지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부가 그렇게 바라던 인구 분산을 종말이 해주고 있었다.

깔끔한 방법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거주지나 직장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김해에도 게이트가 있어 충청도와 전라도 쪽으로 몰리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프로니우스가 의도적으로 약한 마물들을 보내며 간을 보기 때문인지, 김우진이 보낸 용사들 덕분인지, 아니면 현대 문명이 쌓아올린 화력 덕분인지 게이트 사태가 세 번째까지 이어지자 인류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본래 인간은 미지에 대한 공포를 가장 크게 느낀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다. 죽음이 무엇인지 산 자는 알 수 없으니까.

게이트도 마물도 지구의 인간들에게 미지였으나 세 번을 겪으면서 더 이상 미지가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살만해지면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린다. 욕심을 부린다.

【“타국의 각성자들은 모두 얼굴을 드러내고 각국의 정부와, 세계와 긴밀히 협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한국의 각성자들만이 탈이라는 익명성에 몸을 기대어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겁니까?”

“시민들은 각성자들이 언제 갑자기 사라질지, 혹여 익명성에 기대어 칼날을 반대로 돌리는 게 아닐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당당히 얼굴을 밝히고 정부에 협조하십시오! 시민들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공화당 김민석 의원은 탈 아래 정체를 숨기고 막무가내로 활동하는 각성자들에 대해···.】

【“각성자들은 인류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정부와, 세계와 협조해야 합니다. 힘을 가졌다면 그만한 책임이 따릅니다. 어찌 얼굴이 알려지는 게 싫다고 자기들 마음대로···.”】

↳ㅂㅅ들 살려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네

↳근데 맞말 아님?

↳ㄹㅇㅋㅋ언제 수틀린다고 이쪽으로 무기 돌릴지 누가 암? 그러려고 탈 쓴 걸 수도 있는데

↳ㅂㅅ들 많네. 저분들이 안 나섰으면 니들은 그전에 다 뒤졌어

↳하지만 살았쥬. 살아 있으니 뭐라도 해야지.

↳그게 분조장이냐 ㅅㅂㅋㅋㅋ

↳막말로 쟤들이 다 때려죽이면 나라 개판나는 거 아님?

↳그럴 의도가 있으면 진즉에 했겠지

↳사람 마음이란 걸 어떻게 확신함?

↳양반탈, 각시탈, 말뚝이탈 탈 벗기 운동(1/100000)

↳가만히 냅둬라 좀ㅡㅡ가만히 있다가도 좆같아서 한국 뜨겠다

↳ㄹㅇ생각이란 게 없는 놈들인가

이렇게.

공화당이고 민주당이고 당파를 가리지 않고 용사들의 탈을 벗기려고 한다. 신문과 뉴스는 그들의 발언을 연일 옮겨 적으며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다.

당연한 현상이다.

사람들은 미지의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탈 아래 정체를 숨긴 양반탈, 각시탈, 말뚝이탈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그들이 어떤 마음을 풀고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 게 없었다.

그 무지가 언제든 정부를 향해 칼을 돌릴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공포를 낳았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기본적으로 욕심을 가진다.

정부의 높으신 양반들은 세 명의 각성자들을 자신들의 발아래 두고 통제하고자 했다.

그게 현재의 상황을 낳았다.

“···어디 가십니까? 두리쉬마님?”

두리쉬마가 주섬주섬 일어났다. 현관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박상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굴을 보여주러 간다.”

“예?”

“보고 싶다니 보여줘야지. 그리고 감히 날 모욕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아니, 잠깐만요!”

박상준이 두리쉬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안 됩니다, 진짜 안 됩니다! 저 사람들 죽으면 한국이 뒤집어집니다!”

“안 죽인다. 나도 그렇게 경우 없지는 않다.”

“정말입니까?”

“그래. 함부로 나불거리는 혓바닥만 뽑고 올 거다.”

“두리쉬마님!”

박상준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럼에도 질질 끌리자 다급히 킬리언에게 눈짓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킬리언까지 매달렸음에도 두리쉬마의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

두리쉬마가 두 용사를 끌고 현관 앞까지 당도했을 때, 벌컥 문이 열렸다.

“혹시 몰라 와보길 잘했군요. 두리쉬마님,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안 됩니다.”

“···내가 뭘 할 줄 알고?”

“사람들을 죽이는 거 말입니다.”

두리쉬마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너도 그렇고 이것들도 그렇고 나를 무어라 알고 있는 거냐. 안 죽인다!”

“그러면?”

“혀만 뽑을 거란 말이다!”

남자, 김우진이 혀를 찼다.

“털끝하나 건드려선 안 됩니다.”

“대체 왜? 이 세계는 왜 모욕 결투가 없는 거지? 왜 이렇게 관대하냔 말이다!”

“그래야 사회가 돌아가니까요.”

“타이탄의 사회는 그러지 않아도 잘 돌아간다.”

“여긴 지구입니다.”

김우진의 단호함에 두리쉬마가 결국 포기하고 등을 돌렸다.

“시, 신님을 뵙습니다!”

“뵙습니다!”

연옥에서 김우진을 본 전적이 있는 박상준과 킬리언이 다급히 무릎을 꿇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두리쉬마님을 말리도록.”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

그들을 지나친 김우진이 두리쉬마의 앞에 앉았다.

“뭐냐.”

“제가 좋은 해결책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혀를 뽑아버리는 것보다 좋은 해결책은 죽이는 것뿐인데?”

“지구에서는 그렇게 안 합니다. 자고로 국회의원은 정치적으로 죽여야지요.”

“쉽게 말해라.”

“방금 네 번째 카운트다운이 떴습니다.”

기한은 일주일. 예상대로다.

“곧 네 번째 게이트가 열립니다. 이번만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막기 시작하시면 됩니다.”

“고작 그걸로 해결이 된다고?”

“물론입니다.”

어차피 한국의 화력은 세계에서도 손에 꼽힌다. 게이트의 위치를 알고 군대를 미리 대기시켜 놓는다면 별 다른 피해를 입지 않는다. 굳이 당장 용사들이 필요하지는 않는 거다.

다만, 용사들이 필요 없는 것과 진짜 용사들이 없는 건 다르다.

특히나 그 시점이 여론이 용사들을 압박하기 시작한 상황이라면 더욱 더.

“너희들도 전부.”

“예!”

“하지만 그러면 오히려 여론이 악화될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감히 정부를 상대로 협박하는 것이냐고 오히려 괘씸하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없다. 처음에는 그런다고 해도 결국에 여론을 돌아설 테니.

용사들은 대체가 불가능한 전력이기 때문이다.

이미 새로운 게이트가 생길수록 마물의 수준과 양이 올라간다는 것이 밝혀진 상황이다.

그런데 든든하게 버텨주던 세 명의 각성자들이 정부와 여론 때문에 돌아섰다?

일을 주도한 놈들은 단숨에 매국노가 되어 매장될 거다.

“···음, 완전히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확실히 이해한 두리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네 번째 게이트가 열렸다.

* * *

[실화냐?]

[양반탈 인도에 떴다. 뭐임?]

↳갑분인도?

↳뭐임?

↳ㅅㅂ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나 같아도 다른 곳으로 가겠다 ㅋㅋ

↳매국노새끼네

↳매국노ㅇㅈㄹ 열심히 싸워준 사람들한테 ㅈㄹ할때는 언제고

↳와 이거 ㄹㅇ이냐?

[각시탈도 등장]

[남아공에 떴다 ㅅㅂ 이거 맞냐?]

↳와 설마 다 탈주한 거임? 그거 조금 뭐라고 했다고?

↳그거 조금?

↳아예 묻을 기세로 정부고 언론이고 다 쌍으로 지랄 해놓고 이제와서 그거 조금? 개역겹네

↳국회의원 몇 명이 했지. 그게 어떻게 정부임

↳정부가 허락 안하면 대놓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음? 너튜브고 커뮤고 다 같이 물어뜯더만

↳설마 말뚝이탈까지 간 건 아니겠지?

↳ㄹㅇ제발 하나만이라도 남아주라

↳우리가 미안해

↳ㅅㅂ말뚝이탈 뉴질랜드에 떴다...

↳영상 보고 옴. 여전히 존나 호쾌하네. 근데 왜 한국 아님 ㅅㅂ

↳우리 ㅈ된 거임?

[우리가 미안해]

[우리가 미안해. 우리가 미안해. 우리가 미안해. 우리가 미안해. 우리가 미안해. 우리가 미안해.

양반탈, 각시탈, 말뚝이탈 돌아오기 서명운동(1/50000000)

↳꽃이 지고 나서야 보인 걸 알았습니다...(2/50000000)

↳제발 돌아와. 제발 돌아와. 제발 돌아와. 제발 돌아와. 제발 돌아와(3/50000000)

* * *

“절대소장신님. 큰일 났습니다.”

“응?”

그리고 한국의 여론이 요동치고 있을 때, 김우진은 한 가지 급보를 받았다.

“···가자.”

김우진이 균열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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