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136화 (136/150)

# < 외전. 지구의 종말(6) >

“여기가 지구인가.”

번쩍, 작은 빛줄기와 함께 지구에 떨어진 두리쉬마가 눈을 떴다.

높은 산이었다.

“탁하군.”

산임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썩 좋지 않았다. 도시라는 곳은 더 심하겠지. 종말이 일어난 것만 아니라면 힘을 되찾기에 결코 좋은 차원이 아니다.

“희박하고.”

마나 또한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마법이란 학문이 아예 존재하지 않고 과학이라는 이상한 게 발전했다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혹시 두리쉬마님이십니까?”

두리쉬마가 고개를 돌렸다. 두 명의 용사가 있었다.

박상준과 킬리언 패럴. 이종격투기 대회에서 대놓고 힘을 쓰려다가 연옥으로 끌려갔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어제 집행자의 방문을 받았다.

‘새로운 용사가 내려온다. 지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니 너희들이 잘 알려주도록.’

다른 차원의 용사라. 박상준은 기대감을 가졌다.

살면서 봐온 용사라고는 킬리언 패럴과 카일리 로퍼가 전부였기에 다른 차원의 용사가 어떨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다섯으로도 모자라서 다른 차원의 용사를 보낼 정도라면 지구의 종말이 과연 어느 수준까지 올라갈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맞다. 너희가 박상준과 킬리언이군.”

“예, 그렇습니다. 덩치가 상당하시네요.”

두리쉬마의 첫 인상은 엄청난 위압감이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은 마치 어둠을 보는 것처럼 햇빛마저 빨아들일 정도로 시커멓다. 2m가 넘어가는 큰 키와 거의 예술에 가까운 근육들은 그가 육체 무투파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가 박상준과 킬리언을 훑었다.

“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얼간이 수준까지는 아니군.”

“예?”

“···지금 우리를 품평하는 건가?”

“그렇다. 짐덩어리 같은 아군은 적보다 더 짜증나는 법이니까.”

“우리가 짐이 될 거라고?”

“방금 한 이야기 못 들었나? 적어도 얼간이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킬리언의 얼굴이 굳었다.

“똑같은 처지에 같잖군.”

“똑같은 처지?”

“너 또한 계약을 어기고 죄수가 되었다가 다시 끌려온 것 아닌가?”

“흐음, 네놈들은 그렇게 돌아온건가? 김우진놈이 용케 이놈들을 살려뒀군.”

“뭐라고?”

“그럼 굳이 적당한 예의를 차려줄 필요도 없겠군. 계약을 어긴 버러지들이니.”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참지 않는다면?”

프흐흐흐, 두리쉬마가 웃었다.

“무서워서 오줌을 지리겠군. 어디 한 번 해봐라. 네가 만약 날 이긴다면 네 말대로 해주지. 이럴 때 뭐라고 하더라.”

김우진이 뭐라고 했더라.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의 말은 듣지 않는다.”

“이 개새끼가···! 좋다, 후회하게 해주마!”

킬리언이 뿌득, 이를 갈았다.

주먹을 쥐고 거칠게 숨을 뱉어낸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거리가 좁혀진다. 마수를 두부처럼 으깨는 주먹 위로 단단한 오러가 맺힌다.

그 목적은 두리쉬마의 머리다. 머리였으나 두터운 손이 마중 나온다.

─!

충격파가 퍼졌다. 부서진 오러가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검은, 그리고 푸른 오러의 파편들이 뒤엉킨다. 근처의 나무들이 일제히 쓰러진다.

“이것도 막아봐라!”

킬리언은 당황하지 않고 곧장 후속타를 날린다.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게 맺혀 팽창한 오러는 흡사 거인의 주먹과 같다.

─!

허나, 그것마저 가로 막힌다.

“뭣···?!”

그 어떤 적이라도 단숨에 으깨버리는 거인의 주먹이 자그마한 손에 붙잡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다.

“그래. 공격은 이 정도군. 썩 나쁘지 않다. 어지간한 마물들은 한 대도 견디지 못하겠군.”

그럼 이제.

“맷집을 확인해볼까.”

콰드득, 악력에 오러의 주먹이 부서졌다.

“···어?”

“···세상에.”

킬리언과 박상준의 얼굴이 동시에 멍해졌다.

그 사이로.

“이빨 꽉 깨물어라.”

두리쉬마가 일권을 날렸다.

──────!

세상이 붕괴한다.

박상준은 그런 착각이 들었다.

단 일권에 일대가 진공이 되고 킬리언의 육신이 대지 깊숙이 처박혔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산 전체가 흔들렸다.

“아직 싸울 수 있으면 일어나라.”

거의 100m가까이 파여진 구덩이에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크으으으···.”

고통 어린 신음만 대답을 대신할 뿐.

“기절하지 않았나. 맷집도 꽤나 쓸만하군.”

구덩이 속으로 뛰어내린 두리쉬마가 피떡이 된 킬리언의 멱살을 잡고 다시 올라왔다.

“어떻게 너도 해볼테냐?”

“···헤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랑 두리쉬마님이랑 통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통하는 부분?”

“저도 저보다 약한 자의 말은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강한 자의 말은 맹목적으로 믿고 따를 자신이 있습니다!”

박상준이 무릎을 꿇었다.

서열 정리가 끝났다.

* * *

“이건 티비라는 겁니다. 영상을 보여주는 거죠. 아, 영상이라는 건···.”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정말요?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김우진이 지구의 문물들을 몇 개 연옥에 들여놓은 덕분에 구 연옥 시절에 전부 익혔다.

“그나저나 직접 보니 신기하긴 하군. 유리 건물 숲이라니.”

김우진이 보여준 영상으로 보거나 들은 게 전부였다. 확실히 여러 차원들을 다녔지만 지구는 지금까지 차원들과는 꽤 달랐다.

유리 건물 숲과 저절로 굴러다니는 강철 마차들.

전부 마나가 없기 때문이겠지.

“차 좀 드시겠습니까?”

“커피로.”

“예.”

두리쉬마가 고급 소파에 앉았다. 따스한 커피를 음미하며 티비를 켰다.

본래 차를 마시지 않는 그였지만 김우진과 지내면서 생긴 고풍스러운 취미 중 하나다.

티비에서는 뉴스가 한창이었다.

【···정부는 양반탈과 각시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추가적인 각성자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여부를···.】

【미국의 각성자, 카일리 로퍼가 모든 국가가 힘을 합쳐 이 난관을 타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각성자인 그녀의 발언에 사람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이며···.】

【프랑스와 독일이 국방비를 GDP의 5%까지 증액할 것이라 공언하며 재무장을 선언했습니다. 특히 각성자가 없는 독일은 강력한 군대만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 주장하며···】

【전 세계에 열린 게이트는 총 51개로 다행히 바다에 열린 건 없었습니다. 때문에 해운업에는 큰 피해가 없···.】

【두 번째 게이트를 막은 지 일주일, 하늘에는 세 번째 카운트다운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오후 12시 정각. 갑자기 생겨난 카운트다운은 언제나처럼 일주일을···.】

“카운트다운?”

두리쉬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과연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저게 0이 되면 균열이 열리고 몬스터들이 나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신기한 방식의 종말이군.”

“종말은 차원의 구성원들에게 친숙한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들었습니다. 그 때문이 아닐까요? 게임은 지구인들에게 더 없이 친숙하거든요.”

“게임?”

“예, 그게 뭐냐면···.”

박상준이 컴퓨터를 켜고 두리쉬마에게 RPG게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때, 기절해 있던 킬리언 패럴이 눈을 떴다.

“이것도 약하군.”

“마우스가 다섯 개나···! 제발 힘 조절 좀 부탁드립니다!”

“이것도 약하고.”

“내 무접점 키보드가···!”

“크윽···!”

가슴을 부여잡으며 일어나는 그의 신음에 박상준이 고개를 돌렸다.

“아, 일어났어요?”

“내가 왜···?”

“기억 안 나세요? 두리쉬마님한테 까불다가 한 대 맞고 기절했잖아요.”

“······.”

기억났다. 킬리언이 입을 다물었다. 조심스레 두리쉬마를 살폈다. 그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어떻게, 아직도 내게 도전해볼 마음이 있나?”

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그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본능에 각인된 공포에 킬리언이 숨을 삼켰다.

“···아, 아니.”

“아니?”

“아, 아닙니다.”

“앞으로는 내 말에 복종해라. 물론 의견이 있다면 얼마든지 내도 좋다. 이의 있나?”

“···없습니다.”

“좋군.”

두리쉬마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빠각, 그 순간 마우스가 박살났다.

“또 부서졌다.”

“···제발, 이제 마우스도 없단 말입니다.”

“약해빠졌군.”

“두리쉬마님의 힘이 너무 센 겁니다.”

울상을 짓던 박상준이 두리쉬마를 컴퓨터에서 때어내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꺼내왔다.

“선물입니다. 두리쉬마님.”

“선물?”

“두리쉬마님을 위해 준비한 겁니다. 앞으로 싸우실 때는 무조건 이걸 착용하셨으면 합니다.”

“가면?”

“저희는 탈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게 아니라 이 세상은 대중의 앞에 나설 때는 자신의 정체를 최대한 숨기는 게 이롭거든요.”

“못생겼군.”

“못생기긴 했지만 얼굴은 확실하게 가려줍니다.”

“쓰고 싶지 않다만.”

“그러면 사람들이 두리쉬마님을 가십거리로 삼을 겁니다.”

“모두 죽이면 그만이다.”

“안 됩니다! 그건 범죄입니다!”

“남을 험담할 거라면 목숨을 걸어야지. 그게 당연한 것 아닌가?”

“지구에서는 절대, 절대 당연하지 않습니다!”

“나를 모욕했는데 그냥 참으라고?”

“그게 지구입니다, 두리쉬마님.”

“만약 죽이면 문제가 되나?”

“크게 됩니다.”

“고문은?”

“그것도 안 됩니다!”

“사지만 부러트리는 건?”

“고문하고 뭐가 다른 겁니까?”

“최대한 아프게 부러트리느냐와 그렇지 않느냐?”

“···안 됩니다.”

“···짜증나는 차원이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김우진의 당부를 떠올린 두리쉬마가 마지 못 해 수긍했다. 박상준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빨리 저 시간이 0이 됐으면 좋겠군.”

어중간하게 몸을 푸니까 몸이 근질거렸다.

* * *

종말이란, 세계의 명운을 건 대전쟁이다.

성공한다 한들 많은 국가가 멸망한다. 대지가 초토화되고 많은 이가 죽는다.

실패한다면 조금도 남는 것이 없다. 차원 자체가 멸망한다.

그것이 일반적인 종말이다.

하지만 지구의 종말은 일반적인 것과는 꽤나 달랐다.

우주를 다스리는 절대신, 김우진의 의지였다.

자신의 고향이 종말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마음, 지구의 평화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려 보낸 다섯 명의 용사들이 종말을 꽉 틀어 막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구의 인류는 지구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호들갑 오지게 떨더니]

[종말이네, 뭐네 호들갑은 있는 대로 다 떨더니 그냥 괴수 좀 나오고 마네. 세상 멸망한다고 ㅈㄹ하던 새끼들 다 어디감?]

↳ㄹㅇㅋㅋ그나마도 양반탈이랑 각시탈선에서 컷

↳군대가 포격하면 다 쓸림

↳종말 희망편(현실판)

↳한국만 그나마 괜찮은 거지 다른 나라들은 개판이라던데

↳처음엔 그랬는데 거기도 군대로 적당히 잘 막는다더라

↳역시 화력이 짱인가

↳나도 각성하고 싶다. 각성자들 부럽다

↳상태창! 상태창!

일부는 지금의 사태를 하나의 게임으로 여겼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적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었다.

[두 탈쟁이 덕분에]

[쉽게 막았다고 김칫국 오지게 마시네.

첫 웨이브 때 죽은 사람이 몇인데]

↳ㄹㅇ전 세계적으로 웨이브로 인한 사망자가 50만명이 넘는다더라

↳운 좋게 각성자 두 명 있어서 살아놓고 쉽네 ㅇㅈㄹ

일부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걱정했으며.

[갑자기]

[그런데 갑자기 하회탈들 떠나는 거 아님? 그럼 우리 좆 되는 거 아님?]

↳ㅅㅂ그런 불길한 소리를 왜하누

↳그래도 군대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ㄹㅇ화력쇼하니까 정신을 못 차리던데

↳불꽃놀이에 눈이 멀어서 그럼

↳황천놀이

일부는 지금의 행운이 언제 끝날지 걱정했다.

[근데 진짜 행운이네]

[각성자가 꼴랑 다섯인데 우리나라에만 둘 있는 거 실화?]

↳대신 게이트도 3개 드립니다

↳아, 필요 없어요ㅡㅡ

↳쓰읍, 넣어둬, 넣어둬. 어른이 주는 건 거절하는 거 아니야.

↳나도 어른이야

↳밸런스 패치 오지네. 한 국가에서 세 개나 나온 건 우리나라뿐이라며?

↳땅덩어리 넓은 중국이랑 러시아도 두 개 뿐이라더라 ㅋㅋㅋ

↳근데 한국인은 맞음? 한 명 머리 노랗던데?

↳염색한 거 아님?

↳탈 써서 국적은 모름. 근데 한국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거 보면 일단 한국에 살고 있는 건 맞을 듯

수십억의 지구 인구에서 각성자는 고작 다섯이다. 그들 중 둘이 한국인이라는 건 정말 행운 중에 행운이었다.

[이거 봄?]

[jpg]

[일본에서 양반탈이랑 각시탈 팬클럽 만들어짐]

↳일본에 와달라고 제사를 지네네

↳이왜진?

↳일본은 한국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십니까?

↳우욱

↳부끄러운 자화상

↳두유 노우 양반탈? 두유 노우 각시탈?

↳벌써 두유 노우 시리즈에 들어갔누ㅋㅋ

하지만 마침내 세 번째 카운트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그 작은 불안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임?]

[얘네 왜 트리오 됨?]

↳ㅅㅂ말뚝이탈ㅋㅋㅋㅋㅋ

↳한 명 더 늘었네ㅋㅋ이번엔 말뚝이탈이냨ㅋㅋ

↳왜 백정탈 아님? 왜 이매탈 아님? 왜 선비탈 아님? 왜 초랭이탈 아님?

↳ㄹㅇ하회탈들 사이에 봉산탈이 난입하네

↳넌씨눈 새끼

↳ㄴㄴ양반이랑 각시, 말 끌어주는 하인까지. 완벽하잖아

↳부정부패 고발하는 게 아니라?

↳귀양 가는 거 끌어주는 포졸이었고요

↳엌ㅋㅋㅋ

↳근데 어째 갈수록 떡대가 커짐? 각시탈보다 1.5배는 더 있어 보이는데?

↳ㄹㅇ한 대 치면 머리 터질 듯ㄷㄷ

↳1 게이트 1 각성자 할당제

↳다른 곳으로 가버릴까 걱정했더니 오히려 증식을 했네 ㅋㅋㅋ

새로운 각성자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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