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134화 (134/150)

# < 외전. 지구의 종말(4) >

카운트가 모두 끝났다.

지구의 인간들이 결코 바라지 않는 미래, 지구의 종말이 시작되었다.

[실시간 잠실에 게이트 열림]

시작은 서울이었다.

[술 마시고 있는데 L타워 위에 게이트 열림. 시커먼 덩어리들이 우수수 쏟아지더니 이상한 촉수 같은 게 L타워 먹어버림.]

↳와 ㅁㅊ 정상에 저거 뭐냐 ㄷㄷ

↳ㄹㅇ 사우론의 눈이 되버렸네

↳일단 L타워 근처 5km까지 퍼졌고 그 이후에는 잠잠함.

↳사람들은?

↳모름

↳왜 모름?

↳내가 들어가서 확인해볼 수는 없잖아...

↳왜 없음?

↳사탄 : 절레절레

↳상태창!

↳상태창!

[약혐) 이거 뭐냐]

[농사짓는 농붕이 실시간 좆됐다.

내 쌀 밭에 게이트 열려서 몬스터 쏟아졌다. ㅅㅂ 수확이 코앞인데 벼가 다 검은 색으로 변함.]

↳벼가 문제임? 니 목숨이 검게 될 것 같은데.

↳몬스터들이 쫓아와서 차타고 도망치는 중.

↳ㅅㅂ도망치는데 커뮤를 하고 있네.

↳상남자

↳상ㅂㅅ이 아니고?

↳ㄹㅇ미친새끼네ㅋㅋㅋ

↳살았다. 다행히 5km 정도 멀어지니까 안 옴

↳어디임?

↳김해. 다행히 근처 다 내 논밭이라 사람은 안 다쳤을 듯.

↳다행인거지?

↳다행(눈물)

↳상태창!

[크아아아아]

[jpg]

[겁나 센 오크가 울부지졌따! 이상하다 내가 아는 오크는 이러지 않았는데.]

↳저딴 게 오크?

↳존나 무섭게 생겼네 ㄷㄷ

↳3대5000은 칠 듯

↳언더아머 10장 쌉가능

↳어디임?

↳설악산 중턱에 게이트 열림

↳전국 곳곳에 다 열리는구나. 어디로 튀어야 되냐

↳왜 cg 아님? 왜 cg 아님? 왜 cg 아님? 왜 cg 아님?

↳이게 영화가 아니라고? ㅅㅂ

↳상태창!

↳ㅅㅂ상태창 빌런 모든 글에 다 있네

[실시간 재평가]

[jpg]

[카운트 끝나는 순간, 게이트 열리고 몬스터 튀어나올 거라고 예언한 현자.

씹덕 망상이라고 지랄하던 댓글들 다 삭제 중.]

↳ㄷㄷ종말 진행 중인데 커뮤에서 댓삭을 하고 있네

↳커뮤에서 댓글 달고 있는 너는?

↳아앗

↳아앗, ㅇㅈㄹㅋㅋㅋㅋ

게이트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아시아, 유럽, 북미, 아프리카 남미, 오세아니아. 지구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고 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게이트가 열린 지역을 장악하고 던전을 형성했다.

그 소식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전 세계로 퍼졌고 각국의 군대가 움직였다. 그런 상황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이 나타났다.

* * *

[실시간 L타워]

[동영상]

[번개 쓰는 각성자 나타남. 가면 쓰고 나타나서 하늘에서 뚝 떨어지더니 몬스터들 전부 튀겨버림.]

↳??

↳뭐임?

↳진짜 각성자라고?

↳와, 몬스터들 다 터져나가네

↳상태창! 상태창!

↳나는 왜 각성 안 해? 나는 왜 각성 안 해? 나는 왜 각성 안 해? 나는 왜 각성 안 해?

↳하회탈 ㅎㄷㄷ

↳이걸 하회탈을 쓰네 ㅋㅋ

↳ㄹㅇ각시탈이 근본인데

↳정보)각시탈도 하회탈이다. 저건 하회탈 중 하나인 양반탈이다.

[각시탈 떴다!]

[동영상]

[김해에 각시탈 떴다! 주먹으로 다 때려 부수고 다님. ㄹㅇ상남자.]

↳이걸 각시탈이?

↳이왜진?

↳양반탈 하남자네 비겁하게 창이나 들고 ㅋㅋ

↳ㄹㅇㅋㅋ

↳양반탈보다 각시탈 떡대가 더 미쳤는데? 가면 바뀐 거 아니냐?

↳10m넘어가는 몬스터 그냥 던져버리는 거 보면 3대50000은 칠 듯 ㄷㄷ

- 상태창!

한국, 미국, 프랑스, 브라질. 네 개의 국가에 다섯 명의 각성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단숨에 처리하고 몬스터들의 영역이 된 게이트 반경 5km, 일명 던전을 파괴했다.

그들의 활약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L타워 게이트를 닫은 양반탈, 강릉의 게이트에 이어 만주 게이트까지···!】

【각시탈, 김해 게이트에 이어 나고야 게이트까지 닫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이세요?

↳와 각시탈 미쳤다. 맨손으로 게이트를 잡아서 붙여 버리네? 이게 가능한 일이냐?

↳김해에 있던 놈이 10분 만에 나고야 나타나는 건 말이 되고?

↳근데 비자는 있는 거냐?

↳없어도 있다고 해야 할 판

↳드,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진짜 필요 없음)

다섯 명 뿐인 용사들의 활약은 한 국가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이 신들에게 받은 사명은 지구의 종말을 막는 것.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지구의 게이트들을 막기 위해 국경을 넘어 다녔다.

지구인들에게 다행인 것은 그들이 이미 차원을 막은 경험이 있는 강자이자, 그들을 용사로 만든 신들이 업을 감당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인류는 피와 생명으로 경험을 쌓고 나서야 제대로 된 대항이 가능했을 테니.

그렇게 종말이 시작되고 사흘. 용사들은 모든 게이트를 닫았다.

【다섯 명의 영웅들,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

【갑자기 시작된 게이트 사태.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각성자들? 퍼지는 음모론.】

↳한국만 가면 씀. 다른 나라들은 맨 얼굴로 돌아다니더라.

↳가면 X 탈 O

↳현명한 거지. 그놈들 신상 털리더라.

“네 말을 듣기를 잘했다.”

“그렇죠?”

스마트폰을 하고 있던 킬리언의 말에 샤워를 하고 나온 박상준이 머리를 털며 대답했다.

“얼굴 팔리면 바로 신상 털린다니까요? 특히 저희들은 공인이잖아요?”

세계에서 제일 권위 있는 이종격투기 대회의 구 챔피언과 새로운 챔피언이니 얼굴이 팔리는 순간 그 신상은 바로 전 세계에 퍼질 것이다.

“그러면 형님이 불법체류자인 사실도 드러나겠죠.”

“그건 이미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

“그렇긴 하죠.”

박상준이 낄낄 거리며 웃었다.

“그나저나 신들이 엄포를 놔서 기대 많이 했었는데 생각보다 약해서 아쉽네요. 손맛이 부족해요, 손맛이.”

“이제 시작이겠지. 게임과 비슷한 방식으로 간다면 앞으로 열리는 게이트들은 점점 많아질 거다. 당연히 거기서 나오는 마물들도 강해질 거고.”

“알죠, 알죠. 그런데 그래봤자잖아요?”

용사가 어떤 존재인가. 한 명 만으로도 판도를 바꾸는 자다. 그런 용사가 무려 다섯이다.

“그것도 막 시작하는 용사가 이날 이미 차원을 구한 전적이 있는 용사들이죠.”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지구의 종말을 막는 건 식은 죽 먹기라는 거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종말은 종말이다. 방심해서는 안 돼. 우리가 아니어도 이미 세 명의 용사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신들은 우리를 용서하면서까지 내려 보냈지. 과연 아무린 의미 없이 그럴까?”

“···그것도 그렇네요?”

으음, 박상준이 웃음기를 지웠다.

“소문으로는 드물게 용사들이 소환되는 차원도 있고 그곳의 난이도는 일반적인 차원과는 상당히 다르다는데 지구도 그런 걸까요?”

“그게 사실이라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 근데 그 사실을 누구한테 들었지?”

“미국에서 활약하는 사람한테요. 이미 만난 적이 있었거든요. 그 사람은 세 명의 용사가 소환되었던 차원에서 싸웠다고 하더라고요.”

“미국이라면 카일리 로퍼?”

“네. 형님은 같은 나라 사람인데 안 만나 보셨어요?”

“나는 샌프란시스코고 카일리는 플로리다다. 대륙과 대륙 끝에 있지.”

“하긴, 미국이 워낙 크긴 하죠.”

어쨌든.

“지구의 멸망이 그만큼 끔찍한 수준으로 올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거네요.”

“신들이 굳이 다섯 명이나 쓸 일은 없을 테니까.”

“혹시 그냥 편하게 막으라고 그런 건 아닐까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그렇죠. 이미 차원을 구해본 다섯 명의 용사를 한꺼번에 내려보내야 할 정도라···.”

박상준의 안색이 점차 창백해졌다. 옷을 갈아입었다.

“갑자기 어딜 가려고?”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좆 될 것 같아서 태평양 한가운데로 가서 훈련이라도 하려고요.”

“같이 가자. 그렇지 않아도 한 판 붙기로 했었잖아?”

“저야 좋죠.”

두 용사가 태평양으로 날아갔다.

* * *

“재미있는 놈이네.”

지구, 두리쉬마에 이어 알베니우스까지.

더 없이 노골적인 도전장에 김우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함에도 세 개나 날렸다는 건 반드시 이쪽을 죽여버리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다만, 그렇게 똑똑한 방식은 아니었다.

‘경고가 아니라 기습을 했어야지.’

가능성은 두 가지다. 기습을 생각 못할 정도로 멍청하거나, 대놓고 알려주고도 이길 자신이 있거나.

그리고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복수심이 우주 끝까지 차올랐으니 이쪽이 최대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겠다는 거겠지.

톡톡, 김우진이 옥좌에 앉아 팔걸이를 두들겼다.

고요한 정적 사이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 백신전의 신들이 무겁게 침묵하며 김우진의 눈치를 살폈다.

“율리아.”

“네.”

율리아가 보고를 시작했다.

“지구의 종말이 시작됐어요.”

“그래. 방향성은?”

“예상대로에요. 게이트가 열리고 마수들이 쏟아져 나와요. 51개의 게이트가 열렸고 다섯 용사들이 최대한 처리했어요. 한국에는 3개가 열렸고요.”

“피해는?”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크지는 않아요. 확실히 종말을 막아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모두 능숙하게 할 일을 찾아서 처리했거든요.”

“좋아.”

김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명이었다면 피해는 더 커졌을 거다. 역시 죄수들을 다시 돌려보낸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그 두 놈은 뭘 하고 있지?”

“태평양 한 가운데서 서로 싸우고 있어요. 말릴까요?”

“내비 둬. 알아서 훈련을 하겠다는 걸 말릴 필요는 없어.”

“네.”

율리아가 서류를 넘겼다.

“지금 문제는 지구 정부들과 용사들 간의 관계에요. 죄수 두 분은 처음부터 가면을 써서 정체를 숨겼지만 나머지 세 분은 얼굴을 드러냈거든요. 정부가 접촉을 시작했어요.”

“당연한 수순이지. 알아서 하라고 해.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단, 잘못된 선택으로 지구의 피해가 커지면 후회하게 될 거라고 해.”

“네. 지구에 관한 건 이걸로 끝이에요.”

율리아가 다시 앉았다. 김우진의 시선이 돌아갔다.

“프로니우스의 행방은?”

“최선을 다해 찾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폴로이드에서의 흔적은?”

폴로이드는 알베니우스가 별장을 지어놓고 생활하던 차원이었다. 프로니우스가 알베니우스에게 경고를 날렸던 곳.

“완벽하게 지워져서 찾을 수 없습니다.”

김우진은 신들을 탓하지 않았다. 상대는 차원룡이다. 공간의 권능만큼은 신에 필적하는, 그 이상인 놈들. 그런 놈이 어둠의 사도까지 되었으니 신들로는 감당이 안 되는 것도 당연했다.

“알베니우스님. 혹시 프로니우스를 찾을 만한 단서가 없습니다.”

“···없어. 도움이 안 돼서 미안하지만 나도 마지막으로 봤던 게 신들에게 종족들이 몰살당하던 수 만 년 전이라.”

“······.”

“······.”

그의 발언에 몇몇 신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생각해보니 그냥 니들 업보잖아? 이걸 왜 내가 감당해야하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김우진의 짜증에 주신들과 함께 차원룡 박멸에 한 손 보탰던 신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두리쉬마님,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아무래도 이대로 가만히 두면 문제가 생겨도 백번은 더 생길 것 같거든요.”

“음, 없다. 아카식 레코드와 달리 어둠은 뚜렷한 형체가 없고 당연히 어둠에 가까운 특별한 차원도 없다.”

“그럼 어떻게 사도가 되셨습니까?”

“의지가 전해진다.”

“세계수처럼 정령체라도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의지가 전해질 뿐이다. 설명이 힘들군.”

“아뇨, 이해했습니다.”

아카식 레코드처럼 대놓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비슷하기는 하다는 뜻이었다.

“그럼 일단은 할 수 있는 일이 없군요.”

“그렇겠지.”

절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군. 김우진이 잠시 생각했다.

프로니우스는 대놓고 세 번이나 선전포고를 날린 놈이다. 과연 그놈이 이대로 지구의 종말을 지켜보며 가만히 있을까?

‘만약 내가 그놈이라면 그랬을까?’

그럴 리가.

자고로 공격하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려운 법이다. 어둠과 프로니우스는 공격자고 아카식 레코드와 백신전은 수비자다.

지켜야 할 것들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빈틈이 가득한 표적.

‘내가 프로니우스라면 모든 차원을 동시다발적으로 휩쓴다.’

예상 밖의 마물 군단이 폭증하면 차원들은 버티지 못한다. 대부분의 차원들이 고작 용사 하나로 해결이 되는 건 균형이라는 명목 아래 어둠이 적당선을 지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은 지구의 종말을 앞당긴 미친놈에게 그런 리미트가 있을 리는 없다.

“지금 종말에 들어선 차원이 몇 개지?”

“61개입니다.”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다. 하물며 지구를 비추어 보았을 때, 종말에 들어선 차원만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용사들을 늘려라.”

“놈이 다른 차원들을 공격할 가능성을 보시는 겁니까?”

“놈의 목적은 백신전과 백신전이 짜놓은 판 자체의 괴멸이다. 그건 이 우주의 종말이고 앞뒤 가릴 것 없지. 종말 차원들과 가장 가까운 외곽 차원들에 대한 경계와 감시를 강화해라. 집행자들 있는 대로 다 동원하고 필요하면 너희들이 직접 나서. 차원 내에서던, 밖에서던. 업 아끼다가 판 자체가 엎어진다.”

하위 차원은 처음 탄생했을 때, 아카식 레코드와 가깝다가 점점 멀어진다. 그리고 종말 차원과 적당히 가까워지면 종말이 찾아온다.

거기서 종말을 막으면 다시 중앙으로 이끌리고, 막지 못하면 그대로 종말 차원들 중 하나가 되어 더 멀어진다.

프로니우스가 노를 가장 손쉬운 차원들은 당연히 종말 중이거나, 종말이 코앞까지 당도한 차원일 터.

“당장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저를 보내주시면 감히 소장절대신님께 도전장을 내민 그 건방진 놈의 머리를 쪼개 버리겠습니다!”

디아네가 으르렁거렸다.

“안 돼. 넌 사고 칠 것 같아.”

뒤가 없는 광신도들은 눈에 보이는 곳에 둬야지만 그나마 안심이 된다.

“그럼 저를 보내주십시오. 제가 다 때려 잡겠습니다!”

“너도 안 돼.”

짐승 싸움광도 마찬가지다.

“본거지가 없으니 결국 할 수 있는 게 기다리는 것뿐이네.”

어쩌겠나. 일단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신과 집행자들이 대거 움직였고 몇 주가 지났다.

“음.”

놀랍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 *

김우진은 오랜만에 차원. 연옥을 찾았다.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우주는 평화로웠다.

지구의 종말이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지구가 김우진의 고향이고, 그가 조금 머물렀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리고 그게 어둠의 사도라는 놈이 의도적으로 앞당긴 종말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종말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게 없었다.

‘그게 문제인가.’

문제긴 문제다. 차라리 대놓고 나타나주면 속 시원하게 잡으러 갈 텐데, 알베니우스에게 경고를 전달하고 나서 행적이 묘연해졌다.

“릴리, 나르. 너희들도 어떻게 안 되겠지?”

- 당연하지.

- 당연히.

두 정령체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세계수가 차원 어딘가에 숨은 어둠의 사도를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아무래도 세계수의 도움을 워낙 많이 받은 덕분에 자신도 모르게 세계수를 만능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릴리라면 무언가 해줄 것 같단 말이지.’

김우진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폈다. 달달한 카페 모카 한 잔을 마시며 경치를 살폈다.

구 백신전 차원과 연옥이 합쳐져 새롭게 탄생한 연옥은 현 백신전처럼 이것저것 무언가를 많이 하지 않았다.

그저 릴리와 나르가 마음대로 하게 두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의 연옥이었다.

차원의 중심에 우뚝 선 두 그루의 세계수와 광활한 원시림, 사막, 호수, 설원, 초원에 산맥까지. 상위 차원이지만 연옥도 백신전도 그리 큰 차원은 아니었다.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접경부마다 칼로 자른 듯 전혀 다른 환경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김우진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예전의 연옥처럼.

다른 거라곤 감옥 대신 나무로 자연스레 엮어진 집이 여러 채 있다는 것 정도? 저 하나 하나가 주신들의 거주지다.

대부분 지구나 백신전에서 시간을 보내는 만큼 거주지보다는 별장에 더 가깝지만 주신들만 올 수 있다는 상징성과 두 세계수와 놀 수 있다는 것이 차원 연옥의 매력이다.

- 이게 좋아. 그때랑 똑같이.

- 맞아!

“니들이 좋으면 좋은 거지.”

“역시 여기 계셨네요?”

- 귀쟁이!

- 귀쟁이!

“네네, 이젠 익숙해요. 아무런 타격도 없다고요.”

율리아가 제 집처럼 자연스레 차를 내리고 김우진의 옆에 앉았다.

“어떻게 찾아왔어?”

“지구 아니면 백신전, 아니면 여기잖아요.”

“단순하긴 하네.”

“지구에서 새로운 소식이에요. 뉴스 보셨어요?”

“뉴스?”

김우진이 거대한 105인치 티비를 틀었다. 김우진의 권능과 알베니우스의 권능을 결합해 지구와 연결해 놓은 티비였다.

【속보입니다! 어제 새벽, 두 번째 카운트다운이 전 세계의 상공에 떠올랐습니다! 한 번의 종말을 막아내 안도하고 있던 사람들은···.】

“예상했던 바잖아?”

프로니우스라는 놈이 작정하고 준비한 종말이 겨우 한 번으로 끝날 리가 없다.

예상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어쨌든 예정된 결과였다.

“마물의 움직임은?”

“없어요.”

“없다고?”

“지구를 중심으로 집행자들을 쫘악 깔아놨는데 아직까지는 잡히는 마물이 없어요. 변방의 종말 차원과 가까운 곳들도 마찬가지고요. 마물이 아예 보이질 않아요.”

이상했다.

“카운트다운은 일주일이에요. 지구는 강제로 종말 상태에 들어간 거라 변방 차원과 그리 가깝지 않단 말이죠. 지구까지 대규모 마물 군단이 변방 차원에서 지구로 향하려면 아무리 못해도 지금은 출발을 해야 해요.”

그래, 이 부분이.

“우리가 막아놔서 조심하는 건가?”

“어쩌면요.”

“넌 다른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차원룡이잖아요.”

“퀵으로 직배송을 한다고?”

“제 예상이 맞다면요.”

“아니, 가능성은 있어. 차원룡이 어둠의 사도까지 됐으니.”

씨발, 김우진이 욕설을 내뱉었다.

“이러면 상당히 곤란한데?”

여차하면 차원으로 들어가는 마물들을 사전에 제거하려고 했다. 하지만 차원으로 직배송을 꽂아버리면 하나의 방법이 막혀버린다.

죽으나 사나 신들이나 집행자가 나서려면 업을 소모해야만 한다. 그리고 업은 무한이 아니다.

“···임무 완수하고 잘 쉬고 있는 용사들 수배해 봐. 최대한 많이.”

“지구로 보내시게요?”

“지구도 그렇고 다른 곳도 그렇고.”

“여차하면 진짜 사방에서 밀고 들어올 수 있으니 확실히 대비가 필요하긴 해요. 알겠어요.”

일주일이 지났다.

게이트가 열리고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예상이 맞았어요. 정확히 어떤 변방 차원인지는 몰라도 저 진득한 마기는 변방 차원이 확실해요.”

마물들이 퀵으로 배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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