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132화 (132/150)

# < 외전. 지구의 종말(2) >

“···저게 뭐야?”

“숫자?”

어느 날, 지구의 하늘에는 숫자가 떠올랐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보이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속보입니다! 전 세계의 하늘에 갑자기 기이한 숫자가 떠올라···!】

【정부, 전투기를 통해 숫자 확인···. 그대로 숫자를 통과하는 전투기들. 무슨 원리?】

【전문가들은 이 숫자가 무언가의 끝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일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과연 이 카운트다운이 무엇을 위한 카운트다운일지···.】

【성천교의 교주, 카운트다운은 종말의 카운트다운, 신께서 내리신 종말의 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신을 믿어야 천국을 가···.】

【“신께서 무지한 인간에게 천벌을 내린다!” 종말론자들의 대두.】

【의외로 조용한 절대신교. “그저 절대신님을 믿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갑자기 얌전해진 절대신교의 교주.】

【“완전 만화 같지 않아요? 카운트가 끝나면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들이 쏟아지고, 각성자들이 각성하는 거죠. 아, 내가 각성자가 됐으면 좋겠다.” 종말을 반기는 사람들?】

【“검술. 검술을 배워야 해요. 몬스터 잡으려면.” 갑작스러운 검도 열풍. 종말에 반기는 사람들?】

【“뭐든 간에 북한이 핵 쏘는 것보다는 나을 것 아니에요.” 난리 난 세계, 유독 시큰둥한 한국.】

【남은 시간은 엿새. 각 국 정부, 숫자에 모든 감각을 곤두세워···.】

【뉴욕에서 UN정상회담 개최, 가장 첫 번째 문제는 하늘 위의 숫자.】

카운트다운의 시작은 열흘이었다. 고작 나흘이 지났지만 인류가 패닉에 빠지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김우진은 신들을 소집했다.

* * *

“종말은 각 차원의 주 인류의 익숙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지구의 인류들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만화와 게임, 그리고 영화입니다. 그 방식 그대로 전개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 카운트가 끝나면 진짜로 게이트가 열리고 마물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거군.”

“예, 그렇습니다.”

하하, 김우진이 헛웃음을 지었다.

“지구에 종말이 일어난다. 이게 지금 말이 되는 건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데.”

종말이란 수명을 다한 차원을, 어둠이 수거하는 것과 같은 일. 종말은 어느 차원에서 찾아올 수 있다.

당연히 지구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오게 되어 있고, 반드시 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타이밍이 이상했다.

“한 몇 만 년 뒤면 몰라도 지금은 아니지.”

종말이란 차원이 가진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면서 폐기처리 되는 거다.

종말을 통해 완전히 폐기 되던, 재활용을 잘해서 조금 더 수명을 연장하던 하나다.

하지만 그게 피조물과 마물들의 생명력과 피가 차원의 수명을 늘리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건 아니다.

생명력과 피는 결국 기운이다. 이 우주를 이루는 근본적인 기운 중 하나.

우주의 힘, 신의 힘, 용사의 힘, 차원의 힘. 모두 같은 힘이다.

그리고 신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주의 힘을 은은하게 흘린다.

그 양은 무척 적어 차원 자체에 영향력을 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신이 아닌 김우진이, 그리고 다른 일곱 신들이 자주 지구에 들락날락하며 살다시피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언젠가는 종말이 찾아오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단순한 가정이 아니다. 실제로 신들이 권역으로 삼은 차원은 종말이 아예 사라져버리기도 하니까.

“저희도 그게 이상합니다. 아무리 권역이 아니더라도 절대신님이···아니, 소장님이 다른 주신들과 함께 머무르고 계신데 종말이 나타난다는 게···.”

“원인은 아예 모르겠고?”

“죄송합니다. 백신전이 생긴 이래로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신들의 보고에 김우진이 신경질적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종말이 일어난다는 건 평범한 일이다. 하지만 종말은 반드시 평화를 해친다. 문명을 파괴한다.

평화롭게, 문명을 즐기고 싶어 차원 연옥이 아닌 지구에서 생활하는 김우진이 결코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한 번 시작한 종말을 중단시키는 법 같은 건 없겠지?”

“예. 종말은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합니다.”

“아예 종말을 시작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구 전체를 차단해서 마물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다면?”

“가능은 합니다만, 그리 추천해드리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지만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차원의 수명이 끝에 다다랐다는 겁니다. 지구를 유지하고 싶으시다면 마물을 유입해서 그 기운을 차원이 흡수하게끔 하는 것이 옳습니다.”

신들이 있음에도 종말이 일어났지만 그렇기에 마물의 기운이라도 더 부어보는 게 나았다.

납득이 가는 이유였기에 김우진이 수긍했다.

“지구의 용사들을 이용하는 건?”

“용사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제약이 따릅니다.”

신들이 굳이 다른 차원에서 용사들을 소환하는 것은 그들이 해당 차원에 얽매인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원의 규율에 얽매이지 않기에 한계까지 용사의 힘을 남발할 수 있었다.

“지구의 전직 용사들 담당했던 신들 손들어.”

일곱 명의 신들이 손을 들었다.

“너희들이 용사들의 업을 감당한다.”

“그건···!”

“대신, 그에 합당한 보상을 약속하지. 마침 너희들 전부 교세가 미약하군.”

일부는 김우진에게 죽은 신들을 대신해 새롭게 신이 된 자들, 또 일부는 기존부터 신이었지만 최하위에 가까운 신이었다. 상위권의 신들은 굳이 김우진의 차원에 발을 들여놓고 싶어 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딱히 신경 안 쓰는데 말이지.’

하지만 이 상황은 기꺼웠다.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면 교세 확장에 도움을 주겠다. 어떻게 하겠나?”

“···하겠습니다!”

“저도!”

이미 기존 신들이 자리 잡은 곳에서 새롭게 종교를 퍼트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절대신 김우진이 도와준다는 것은 아주 큰 기회였다.

“각자 용사들을 찾아가서 상황을 알리고 협조를 구해라.”

“예!”

“저기 제 용사는 연옥에 있습니다만.”

“제 용사도···.”

두 명의 신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 * *

“···지구에 종말이 왔다는 말씀이십니까?”

“지구에···.”

“물론입니다! 용서만 해주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종말을 막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고로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멸망을 막아본 저희가 훨씬 잘 막지 않겠습니까?”

“예, 맞습니다. 종말을 막는 건 자신 있습니다!”

박상준과 킬리언 패럴이 필사적으로 자신들을 어필했다. 지구의 종말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 하늘에서 내려온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데리고 가라.”

“예!”

“···내 죄수들.”

두 죄수가 집행자들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 카르딘이 울상을 지었으나 애써 괜찮은 척을 했다.

어떤 심정인지는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최대한 피해 없이 지구의 종말을 막는 게, 그래서 일상을 최대한 빠르게 되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율리아가 물었다.

“직접 나서실 생각은 역시 없으신 거죠?”

“못 나서.”

아카식 레코드는 균형이라는 명목 아래, 자신이 선택한 신들이 하위 차원에서 힘을 제약 받게 만들었다.

때문에 신들은 용사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아카식 레코드의 입장이고 아카식 레코드에게 선택 받은 게 아닌 김우진에게는 굳이 그럴 의무가 없었다.

그래, 없‘었’다. 아카식 레코드와 이런저런 타협을 하면서 아카식 레코드는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이제는 김우진 또한 균형을 위해 하위 차원에서 힘을 제약 받기로 했다.

신들을 평정한 시점에서 딱히 하위 차원에서 난장을 필 일은 없다고 생각해서 수긍한 게 이렇게 후회될 줄이야.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안락하고 편안한 지구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종말이 있다면 종말의 사도 또한 존재할 테지. 사도를 찾아. 찾아서 용사들한테 알려줘.”

“네. 최선을 다할게요. 저도 지구의 평온한 삶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망하면 게임을 못하니까?”

“그것도 물론 있죠.”

“아. 사도 찾는 건 강민식한테 맡겨.”

“확실히 적임자긴 하겠네요.”

김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게요?”

“무슨 일인지 가장 확실하게 알 만한 거인한테 물어보러.”

오랜만에 두리쉬마를 볼 시간이다.

* * *

“저 카운트가 끝나면 게이트가 열리면서 마물들이 쏟아져 나올 거다. 절대신께서는 지구에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기를 바라신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최고의 성과를 내라. 절대신께서 베푸신 자비와 은총을 매 시간마다 곱씹으며. 명심해라. 너희에게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집행자는 그들을 한국의 한 야산에 떨어트리고 사라졌다.

죽다 살아난 박상준과 킬리언 패럴이 멍하니 집행자가 사라진 자리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용사 처지가 어쩌다가···.”

“무릎을 꿇고 빌다니···.”

“······.”

“······.”

“···갈까요?”

“···가지.”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날이 어두웠지만 어둠은 그들에게 별 다른 제약이 되지 못했다.

“저거군.”

“진짜로 숫자가 떠 있네.”

지구 어디에서나 보이는 하늘 위의 숫자. 두 전직 용사는 지구의 종말이 시작되기 직전임을 실감했다.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고국으로 돌아가야지. 여기가 어딘 줄 아나?”

“한국입니다. 다행히 제 집에서 멀지 않네요.”

“···불법 채류자가 되어버렸군.”

“······.”

“······.”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일단 저희 집에서 머무실래요? 제가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보겠습니다.”

“···고맙군. 그럼 염치 불구하고···.”

두 남자가 초호화 펜트하우스로 들어갔다.

* * *

“···이 양반, 대체 어디 간 거야?”

반쯤 헤진 차원의 장벽을 찢고 종말 차원에 진입했다. 항상 두리쉬마가 있던 차원 중 하나였으나 보이지 않았다.

여기뿐 만이 아니었다. 두리쉬마의 흔적이 가장 진한 12개의 종말 차원에 방문했음에도 정작 두리쉬마는 없었다.

“이것도 먹통이고···.”

매개체가 있으면 네비처럼 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어째선지 두리쉬마의 물건을 가지고도 쉽게 찾기가 힘들었다.

“음.”

묘한 불길함이 뒷목을 콕콕 찌른다.

그가 아는 두리쉬마는 아무런 이유 없이 사라질 위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구의 종말 또한 이렇게 갑자기 열릴 타이밍이 아니었다.

이 두 개가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 걸까.

“설마 배신?”

가장 유력한 건 두리쉬마가 김우진을 배신하고 어떤 수를 써서 지구의 종말을 가속화시켰다는 것.

하지만 그래봐야 두리쉬마가 얻는 게 없다. 특히나 김우진과 현 백신전의 힘을 알고 있는 그이기에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할지 의문이었다.

“그럼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수십 개의 차원을 더 뒤졌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모든 차원들을 확인해볼 수는 없으니 김우진은 결국 차원, 연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 친구!- 친구!

“그러니까 몇 번을 말하느냐! 난 너희들의 친구가 아니라고!”

“···뭐야, 왜 여깄어.”

20cm. 그토록 오매불망 찾고 있던 거인이 인형에 가까운 자그마한 소인이 되어 두 정령들과 투닥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소장! 친구 왔어! 더 작아져서!

- 소장! 작은 친구!

“작지 않아!”

두리쉬마가 버럭 소리쳤다. 김우진이 성큼 성큼 그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왜 여기 있습니까? 왜 또 난쟁이가 되어 있고?”

“···이런 저런 사정이 있었다.”

“종말 차원을 아무리 찾아도 없던데요.”

“···서로 엇갈렸군.”

“지구에 종말이 일어나기 직전인 건 아십니까?”

“······.”

눈치를 보아하니 모르는 것 같진 않았다. 김우진이 한숨을 쉬었다.

뒷목을 콕콕 찌르던 불길함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새로운 어둠의 사도가 탄생했다.”

“어둠의 사도야 널리고 널리지 않았습니까.”

“틀리다. 그들은 종말의 사도지.”

종말의 사도는 말 그대로 한 차원에 종말을 일으키기 위해 선택받은 자들이다.

그리고 어둠의 사도는 어둠의 직속 부하 같은 느낌이다.

아카식 레코드로 따지자면 용사와 신의 차이다.

“그놈이 두리쉬마님의 말을 안 듣는 겁니까?”

“말을 안 듣는 정도가 아니다. 나는 모든 힘을 빼앗겼다.”

“···예?”

“이 모습을 보면 모르겠느냐?”

“아니, 힘이 쭉 빠진 모습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로 새로운 사도한테 다 뜯겼다고요? 두리쉬마님이 훨씬 전부터 사도이지 않았습니까?”

- 한심해.

- 한심.

세계수들이 김우진의 황당함에 동조했다.

“···그냥 붙었으면 당연히 이겼을 거다.”

“그런데요?”

“어둠이 내게 뜻을 거두었다.”

“그 말은 사도직을 박탈 당했다는 겁니까?”

“그래.”

“왜요?”

“내게 분노했으니까.”

두리쉬마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너와 합을 맞춰가는 그런 행위를 못마땅해 했다. 가짜 종말을 바라지 않는 거지.”

“어둠이라고 해봐야 관념적인 존재잖아요? 릴리나 나르처럼 의지를 가진 정령체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안다는 겁니까?”

“어둠과 빛은 이 세상의 근원이자 뿌리다. 적어도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수는 있다는 거겠지. 그리고 그런 어둠의 뜻을 이어 받은 새로운 사도는 가짜 종말을 행하는 모든 이들을 증오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숙청 당했다.”

김우진이 톡톡 허벅지를 두들겼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놈이 널 노리고 있다, 김우진. 만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해. 지구의 종말은 너에게 날리는 경고장이다.”

···씨발,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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