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127화 (127/150)

# < 외전. 하이엘프와 차원용(4) >

훈련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용사의 힘을 보다 원활하게, 각성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일반적일 수 없었다.

“한 걸음도 못 움직이겠어요!”

“견뎌. 김우진은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녔어.”

우주의 힘으로 율리아를 압박하고.

“···제 의도랑은 완전히 다르게 움직이는데 이거 성공할 수 있는 건 맞죠?”

“한참 부족하네. 김우진은 그냥 바로 감으로 권능의 규칙과 틈새를 찾아냈는데.”

비틀린 공간에서 용사의 힘을 이용해 바람을 컨트롤 하며.

“가까이 가기만 해도 힘이 상쇄되잖아요!”

“그러니까 그 이상으로 결속을 다지거나 총량을 늘리라고!”

“그게 말처럼 쉬우면 진즉에 했죠!”

“김우진은 매번 할 때마다 나아졌는데 넌 왜 그 모양이냐!”

“그러니까 대체 그 김우진이 대체 누구냐고요!”

용사의 힘을 상쇄시키는 마나석까지.

알베니우스는 김우진을 가르쳤던 방법 그대로 율리아를 가르쳤다. 그게 가장 효율적이니까.

그래서일까, 비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김우진은 금방 금방 했는데 하이엘프라는 작자가 이렇게 무능하다니.

거친 훈련 끝에 율리아가 탈진해 쓰러졌다. 세계수가 정령체를 통해 그녀에게 숲의 정기를 보충해주었다.

- 괜찮니?

“아니요.”

- 솔직하구나.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요. 특히, 대체 그 김우진이 누군지 궁금해 죽겠어요.”

- 인간이란다. 신을 죽인.

“···그런 게 인간?”

그럼 나는 뭐지. 잡초인가?

- 나도 들은 거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알베니우스가 말했던 세이드의 동료기도 하단다.

“···불가능에 가깝던 종말을 막았다던 그?”

- 그래.

“그럼 저도 알베니우스님한테 배우면 신과 같은 힘을 얻는 건가요?”

- 그건 아니란다. 그때는 상황도, 김우진도 워낙 특수했다고 하더구나.

“···아쉽네요.”

어쨌든 더욱 열심히 배워야 할 이유가 생겼다. 알베니우스의 말이 조금의 거짓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반드시 김우진을 찾아내리라.

세이드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그녀를 길러준 부모나 다름없었다. 살아있다면 찾아내고, 죽었다면 그 마지막이라도 듣고 싶었다.

“휴식은 끝났어. 다시 간다.”

“네!”

그렇게 반년이 흘렀다.

* * *

“이제 그만 하산하거라.”

“···갑자기 말투가 이상하신데요.”

“역시 엘프에게 무협은 이른 건가.”

“···네?”

율리아가 엘븐에 있는 사이, 전황은 급변했다. 남하하던 마물들이 갑자기 진군을 멈추고 오염된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맴돌았다.

연합은 이것이 광룡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다.

“광룡이 잠을 자기 시작한 건 아닐까 싶습니다.”

드래곤은 반드시 주기적으로 긴 동면에 들어야 한다. 단순히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몸을 한층 진화시키는 과정이었다.

“동면에 든 드래곤의 가디언들은 드래곤의 레어만을 지키고 활동 반경이 급격히 줄어드오. 가능성이 있소.”

“그렇다면 한시름 놨군···.”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오? 반대로 생각하면 동면이 끝나면 광룡이 더 강해진다는 거요.”

“그전에 광룡을 처치해야 하오.”

“하지만 무슨 수로? 모든 마물들이 광룡의 보금자리를 중심으로 포진해 있을 텐데.”

“총력을 다하면 뚫지 못할 것도 없잖습니까?”

“허면 광룡은? 동면중이라 한들 위험하면 결국 일어날 텐데 놈을 죽일 수 있소?”

없었다. 용사는 강했으나 광룡은 더 강했다. 이미 한 번의 전투로 인류는 크나큰 손실을 입었고 다시 붙는다고 한들, 승리할 거란 보장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엔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엘븐에서 자신하고 데려갔으니.”

“세계수와 하이엘프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 가능성이 아예 전무한 것도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가능성과 확신은 또 다르다. 괜히 섣불리 건드렸다가 분노한 광룡이 다시 남하한다면 기껏 얻은 아슬아슬한 평화마저 사라져 버릴 수 있으니.

율리아가 패배했다는 것이 참으로 크게 다가왔다.

“···엘프들의 장담이 사실이기만을 빌어야겠구려.”

“적어도 엘프들은 거짓말을 하지는 않으니 믿어볼 수밖에 없겠소.”

“하지만 대체 언제 준비가 되고, 언제 온다는 겁니까? 광룡이 일어난 다음이면 다 말짱 꽝이 아닙니까.”

“엘븐에 사신을 보내 독촉하는 한 편, 2차 원정군을 준비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그런 상황에서 마침내 용사가 엘프들과 함께 출발했다.

* * *

“곧장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반대해요. 동료로 믿을 만한 자들을 제게 내어주셨으면 해요.”

연합의 핵심이자 제국의 황도로 돌아온 율리아는 연합에 요구했다.

“동료들?”

“지난번의 전쟁은 너무 성급했어요. 저는 마물에 대해서도, 광룡에 대해서도 아는 게 적었고 권능에 익숙하지도 않았어요. 제 힘이 얼마나, 어디까지 통하는지도요.”

“급했었다는 것은 인정하네. 허면, 무엇을 하시려는 건가?”

황제의 물음에 율리아가 답했다.

“마물들에게 오염된 점령지의 외곽을 돌다가 점점 안으로 들어가며 마물들에 대한 조사를 할 겁니다. 잠든 광룡이 깨어나지 않는 선에서.”

“실력이 어느 수준까지 통하나 확인해보겠다는 것으로 보이는군.”

“지난번처럼 우를 범하면 안 되니까요.”

“소수정예를 원하는 건가?”

“네.”

“알겠네. 그게 그대의 뜻이라면 원하는 대로.”

연합은 각 분야 최고의 인재, 세 명을 끌어 모았다.

대마법사, 에드먼드 프로인.

아르칸 왕국 최고의 기사, 데이지 호크네.

그리고 성자, 갈라스 콜먼까지.

한 명의 용사와 그 동료가 될 운명을 가진 셋은 황도의 별궁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반가워요. 부족하지만 용사라고 불리고 있는 율리아 카르센이라고 해요.”

“에드먼드 프로인입니다, 용사님.”

에드먼드 프로인은 30대 후반의 남자였다. 그는 천재라 불리는 자였으며, 어렸을 때 제국 마탑주의 제자로 들어가 유래없이 재능을 폭발시켜 최연소 대마법사의 경지를 이루었다.

“데이지 호크네입니다.”

데이지 호크네는 제국 다음으로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는 아르칸 왕국의 기사였다. 기사 명가인 호크네 가문에서 태어나 오라비와 아버지를, 나아가 이전의 왕국 제일검을 꺾고 그 칭호를 이어 받았다.

“갈라스 콜먼입니다. 용사님의 앞길에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성자, 갈라스 콜먼. 그는 신을 섬기는 사제로서 신의 총애를 받는 자였다. 막대한 신성력은 다른 사제들과는 비교를 거부할 정도 농밀했다.

“이야기는 다 들으셨죠? 저희는 함께 북방으로 올라갈 거예요.”

“듣긴 했습니다만, 정확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설마 저희들만으로 잠자는 광룡을 요격한다는 그런 허무맹랑한 작전은 아니겠지요?”

생각만해도 진저리가 난다는 듯, 에드먼드가 몸을 떨었다.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아요. 그저 확인해보려는 거예요.”

“무엇을 말입니까?”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도 되는지.”

“···용사님, 한 번 패배해서 겁을 먹었구나?”

데이지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율리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부정하지 않을게요. 광룡은 강했고 저는 패배했어요. 엘븐에서의 시간들로 인해 그때와는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광룡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미지수에요.”

그래서 확인이 필요하다. 그녀를 위해서, 그리고 인류를 위해서.

한 번 더 실패한다면 이번 피해는 지난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테니까.

“···반드시,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막아내고 알베니우스에게 들어야만 하는 게 있다.

“걱정하지 마시길. 당신은 신께서 선택하신 용사입니다. 굳은 믿음을 가지고 전진하신다면 신께서 당신을 언제나 바른 길로 인도해주실 겁니다. 그 어떤 어둠도 신의 빛을 막지 못할 겁니다.”

성자가 축복을 빌어주었으나 율리아에게 필요한 건 말뿐인 축복이 아닌 경험이었다.

“그래서 가실건가요?”

“용사님이 가시는 길이 어디든 함께 하겠습니다. 그것이 신의 뜻이니.”

“그러려고 모였으니 가긴 가야겠지요. 제발 무리하게 심부로 향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만···.”

“좋아. 용사님. 솔직해서 좋네. 아, 말 편하게 해도 되려나?”

“이미 너무 편해보이시네요.”

“내가 좀 적응이 빨라.”

데이지가 호쾌하게 웃었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인간상은 아니었지만 느껴지는 기세는 제법 강했다. 그거면 된다. 이 자리는 인성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함께 싸울 동료를 구하는 자리니까.

용사 일행은 곧장 북상했다. 인간들이 쌓아올린 거대한 방벽을 통과해 죽음의 땅으로 발을 들였다.

* * *

“케트라입니다.”

케트라. 데이드람에 뿌리를 내린 마물 중 하나로 10m의 덩치를 가지고 오우거도 씹어 먹는 괴물이었다. 어지간한 기사들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후우···.”

율리아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검을 곧추세우고 바람을 일으킨다.

“도와줄까?”

“됐어요.”

“많이 긴장한 것 같은데. 광룡하고 나름 대등하게 싸웠다고 들었는데 케트라 따위로 긴장할 필요가 있나?”

“가정이 틀리지 않기를 바라니까요.”

케트라가 강하다 한들 율리아는 용사다. 연합군의 첫 번째 진격 때 수도 없이 잡아 보았다.

그래, 잡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탁, 그녀가 대지를 박찼다. 바람이 육신을 밀어주었다. 순식간에 케트라의 코앞에 당도한다.

───!

케트라가 괴성을 지른다. 함께 터져 나온 독무가 율리아를 덮친다.

하지만 세차게 불어오는 광풍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당황한 케트라가 뼈로 뒤덮인 양팔을 들어 올렸지만.

─!

그 채로 잘려나간다. 두 동강 난 상체가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뭐야. 한 방?”

“걱정이 무색하군요.”

“신께서 인도하시니 그 길에 거침이 없을 것입니다.”

율리아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거칠게 호흡하며 애써 숨을 골랐다.

‘됐다.’

한 방에 케트라를 죽였다. 그리 많은 힘을 쏟지도 않았다. 못해도 1분 이상 격전을 해야 했던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강해졌다. 달라졌다.

“···이번에는.”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을 거다. 그래야만 한다.

“···음, 케트라를 한 방에 죽일 정도면 더 이상의 확인은 필요 없는 것 같은데.”

“케트라는 오우거 이상의 괴물입니다. 그런 놈을 가볍게 죽인다면 용사님에게 고난을 줄만한 마물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아뇨, 그런 걸로는 확신할 수 없어요.”

물론 케트라는 강한 마물이다. 하지만 최강의 마물이라고 한다면 모두 고개를 젓는다. 마물은 무궁무진하고 케트라보다 강한 마물들이 꽤나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류가 계속해서 밀리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봐요.”

“그러다 못 나···올 것 같지는 않긴 한데. 혹시나 광룡이 깨어나면 전부 끝이야.”

“걱정마세요. 그 정도까지는 들어가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있습니까? 차라리 외곽을 돌면서 이번처럼 간혹 나타나는 마물들을 노리는 게···.”

“광룡이 언제 깨어날지 모르잖아요.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그 시간을 저희들의 목숨을 담보로 으음.”

안전지향주의 마법사가 신음을 삼켰다.

“위기가 온다면 제가 어떻게든 여러분은 도망칠 수 있도록 해볼게요.”

“저희가 살고 용사님이 죽으신다면 결국 광룡을 막지 못해 똑같은 결과가 나옵니다만.”

“뭐야, 마법사. 너 용사님 못 믿어? 케트라를 단 칼에 베어버렸는데?”

“물론 용사님이 강하다는 건 인정합니다만, 저희는 고작 넷이고 마물은 얼마나 많을지 모릅니다.”

“문제없을 겁니다. 신께서 길을 비추어주시니 용사님이 가는 그 길에는 항상 광명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자님이 간만에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마법사는 결국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방어 마법을 몇 겹이나 두르는 거야?”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겁니다.”

“그렇게 겁이 많아서 어떻게 대마법사가 됐어?”

“겁이 많으니까 철저하게 마법진과 마법, 술식들은 분해해서 낱낱이 파악한 뒤에야 마법을 썼죠. 그랬더니 깨달음이 왔습니다.”

“···나는 마법을 잘 모르지만 네가 이상한 놈이라는 건 알겠어.”

“매사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엔 당신들이 안전불감증에 걸린 겁니다.”

일단은 광룡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기 위해 외곽을 따라 천천히 들어가기로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마물들은 군단을 형성하고 있다기 보다는 벌판에 풀어놓은 야생동물 같은 느낌이었다.

오염된 땅이라는 한정된 땅에 마물들만의 생태계가 펼쳐져 있었다.

“굳이 우리가 필요할까 싶은 수준이네.”

그리고 율리아는 한 마리의 사자가 되었다. 마물이 초식동물들로 보일 정도로 휩쓸고 다녔다.

과연 용사라고 해야 할지, 데이지는 스스로에 대한 미약한 자괴감을 느꼈다.

“나 그래도 나름 왕국 최고의 기사인데.”

“일개 피조물이 스스로를 신의 선택을 받으신 용사님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괜히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마시길.”

“하···. 그럼 더 억울한 거 아니야? 단순히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로 강해지는 거잖아.”

“선후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럴 자격이 있기에 선택받은 겁니다.”

“그럼 그냥 처음에 내가 말한 게 맞잖아?”

“···그렇게 되겠군요.”

성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지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지만 그렇다고 낙담하고 죽어 있을 그녀도 아니었다.

검을 뽑고 전장에 끼어들었다.

“잘못하면 바람에 휩쓸립니다!”

저렇게 앞뒤 분간을 못해서야! 에드먼드가 마법을 영창했다. 다섯 개의 방호 마법들이 순식간에 데이지의 몸에 깃들었다.

그녀가 율리아에게 돌격하는 마물 몇과 드잡이질을 시작했다.

“확실히 실력이 있긴 합니다. 비교 대상이 용사님이기에 부족해보일 뿐.”

“그건 데이지 양에게 위로가 안 될 것 같으니까 굳이 말하지는 마세요.”

“그 정도 눈치는 있습니다.”

전투는 빠르게 끝났다. 율리아가 모든 마물을 일격에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용사 일행의 전투는 늘 이런식이었다. 오염된 땅을 돌며 천천히 중심부로 이동하고 마물과 조우한다. 그리고 율리아가 자신의 실력을 확인해보겠다며 모조리 일격에 끝낸다.

동료라고 함께하는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밤에 마물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은신 마법진을 설치하거나, 뒤지기 싫다면 뛰어 나가 검을 휘두르거나, 지친 체력을 보존해주기 위해 신성 마법을 걸어주는 것뿐이었다.

타닥 타닥-

밤이 되었다. 일행은 한때는 숲이었던 곳의 동굴에 자리를 잡았다. 은신 마법진을 설치하고 모닥불을 지폈다.

율리아는 멍하니 불꽃을 응시했다.

‘확실히 달라.’

그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광룡에게도 통할지는 의문이다. 알베니우스와 어머니 나무께서는 장담하셨지만 글쎄. 그때의 패배에 대한 충격이 너무 컸다.

‘안전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가는 거야.’

그녀의 패배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다. 그만한 대가를 동반하며 수많은 인류가 지워진다. 그런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

“저보다 더 안전지향주의적인 분은 처음 봤습니다.”

안전주의 마법사, 에드먼드였다. 데이지와 성자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가 꺼져가는 불씨에 마력을 더해 살려냈다.

“그런가요?”

“실패 때문입니까?”

“맞아요. 한 번의 실패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그런 경험을 두 번 하고 싶지는 않아요.”

“광룡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으신 것입니까?”

“맞아요.”

“하지만 마물들이 아무리 강한들, 광룡에 비하면 약합니다. 그들을 아무리 죽인다 한들, 광룡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정론이었다.

율리아의 집착은 결국 풀리지 않을 허기와 같았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직전까지 가려고요.”

“그 직전이라고 하신다면?”

“마물들은 피와 생명력을 먹고 자라나요.”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그걸 토대로 새롭게 태어나고 모이고 성장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먹을 피와 생명력이 없다면?

“그래서 소수 정예로 들어왔죠.”

어지간한 일에는 죽지 않을 수 있는 강자들로.

“···잠깐만요.”

순간, 에드먼드는 진한 불길함을 느꼈다. 그것은 마법사로서의 직감이기도 했다.

“분명히 단순한 확인을 위해 오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겸사 겸사죠. 확인 겸, 최악의 사태에 대한 대비.”

율리아가 생글 거리며 웃었다.

“군단을 이끄는 광룡과 그냥 광룡 혼자. 뭐가 더 상대하기 편한지는 아시잖아요?”

“중심부로는 안 가신다고···.”

“실수로 중심부에 발을 들일 수는 있는 거잖아요.”

“지금 그 말을 제게 하는 시점에서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늦었어요.”

눈이 마주쳤다. 에드먼드가 흠칫 몸을 떨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못 돌아가요. 끝까지 잘 부탁드려요.”

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갈 때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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