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117화 (117/150)

# < 116. 새로운 백신전 >

간단한 문제다.

아카식 레코드는 우주의 의지이자 진짜 전지전능에 가까운 힘, 그 자체다.

이들을 신으로 만든 것도 아카식 레코드이며, 베리안은 아카식 레코드의 힘을 일부 취했기에 주신을 포함한 열 명의 신을 포식한 김우진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들이 만약 딴 마음을 먹는다면 그 시작은 아카식 레코드에 간섭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없습니다!”

“결단코 그런 자는 없습니다!”

신들이 대경하며 대답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아카식 레코드의 힘을 취한 자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을 리가 없으니.

그럼에도 물어본 것은 그냥 경고다. 감히 허튼 수작을 부리지 말라는 경고.

“좋아.”

돌 맞은 개구리처럼 격렬하게 반응하는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은 원하는 걸 얻게 될 거다.”

목숨.

“스스로를 신이라 부르며 종말을 맞이하는 차원들을 구해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감사합니다!”

“다만, 용사들을 이용하고 버리지 마라. 그들에게 선택지를 줘라.”

“하지만 그렇게 되면 힘을 가지고 본래의 차원으로 돌아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보낼 때, 계약서를 써라. 아카식 레코드의 계약서로. 힘을 가지고 돌아가 되, 차원의 사정에 걸맞지 않은 힘을 사용하게 되면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는.”

차원의 사정이란 차원이 받아들이는 한계다.

일반적으로 김우진이 있던 글라크의 경우, 풍부한 마나로 인해 초인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 초인들이 지구에는 단 한 명도 없다.

글라크에서 적당한 힘을 쓰면 평범한 것이지만, 지구에서 적당한 힘을 쓰면 괴물이다.

“걸 맞는 부분은 어떻게?”

“그건 너희들이 알아서 고려해라.”

“···예.”

“아, 계약을 어기게 되면 심연이 아니라 연옥으로 보내게끔 계약서를 작성해라.”

아카식 레코드의 계약서는 디폴트가 심연이지만 조항을 넣는다면 다른 대가를 치르게 할 수도 있다.

“연옥 말입니까?”

“그래, 연옥은 감옥이잖느냐.”

감옥에는 진짜 죄수들이 들어오는 게 당연하지.

“그렇지 않나?”

“맞습니다.”

“옳습니다!”

“그럼 끝났군. 내 휘하의 신들도 곧 보낼 테니 그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라. 그들이 내 대리인이다.”

“···예.”

노골적인 낙하산이었지만 신들은 거부할 수 없었다.

“아, 그리고···.”

대전 밖으로 나가던 김우진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백신전 차원을 비워 놔라. 연옥이랑 합칠 거니까.”

“···예?”

“귀가 먹었나? 방 빼라고.”

“그, 그럼 저희는 어디로···?”

“빈 차원 많은데 아무거나 하나 잡고 살아라. 내가 그것까지 이야기 해줘야 하나?”

“···예.”

차원을 삥 뜯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 * *

“아카식 레코드 주변에는 방어막이 있습니다. 주신들이 다른 신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든 건데 아카식 레코드의 권능을 빌린 것이기 때문에 죽은 지금도 유지가 될 겁니다.”

“그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나?”

“아, 아닙니다.”

제이드가 고개를 숙였다.

김우진은 백신전을 벗어났다. 백신전은 아카식 레코드와 가장 가까운 차원. 저 멀리 거대한 빛의 기둥이 보였다.

위, 그리고 아래로 끝이 보이지 않게 쭉 뻗어 나간 아카식 레코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감을 자아낸다.

“아카식 레코드···.”

이 우주를 유지하는 중추. 생김새처럼 우주를 떠받드는 기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흡수할 수 있으려나?”

김우진은 그것을 삼킬 작정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굳이 대단한 무언가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 우주를 통치하는 것에도 큰 관심은 없다.

아카식 레코드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베리안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겨버렸다.

아카식 레코드에 간섭했다는 것,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성과를 냈다는 것.

그게 문제다.

아카식 레코드를 신성시 여겨 그저 섬기고 따르던 백신전의 신들에게 역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심어 줘버린 거다.

물론 베리안은 주신이었고 신들 중에서도 특별했다. 그가 성공했다고 다른 신들 또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언제고 김우진의 뒤통수를 칠지도 모른다.

김우진은 후환을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 전에 내가 먹어버려야지.”

새하얀 기둥을 향해 손을 뻗는다.

아카식 레코드 자체를 흡수하는 게 아니다. 목표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도록 그 통제권을 완벽하게 가져오는 것. 겸사 겸사 힘을 취할 수 있으면 좀 취하고.

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베리안이 했으니까. 그보다 약한 놈이 했으니 그가 하지 못할 리가 없다.

환한 빛줄기가 김우진을 감쌌다.

* * *

김우진이 아카식 레코드로 들어간지도 몇 달이 지났다.

그간 백신전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 방 빼!

- 빼!

“···연옥을 아예 가지고 오다니.”

“혹시 했지만 정말 이런 게 가능할 줄이야.”

“차원을 합친다고? 그게 가능한 건가?”

릴리라는 선장의 항해 끝에 연옥이라는 차원은 마침내 백신전과 맞닿았다.

신들은 쫓겨날 수밖에 없었고 릴리와 나르는 합심하여 차원 병합 작전을 시작했다.

“부딪힌다!”

쿠그그그-

두 개의 차원이 맞부딪히며 거대한 충돌했으나 예상했던 충격은 없었다. 마치 도킹하듯, 자연스레 곁에 안착하여 맞닿았다.

그리고 연결이 시작되었다.

콰콰콰콰-

연옥에서 시작되는 세계수의 뿌리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백신전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가볍게 차원의 방벽을 허물고 들어가 대지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신기하네요. 마치 조각난 옷을 맞추는 것 같아요.”

“···이런 게 가능할 줄은 상상도 못했네.”

“일반적인 세계수라면 당연히 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절대신의 세계수이기에 가능한 일이죠.”

차원이라는 옷감을 세계수의 뿌리라는 실로 옭아매고 있었다. 차원과 차원이 맞닿는 부분이 점점 늘어났다.

그렇게 1차적인 작업이 끝났다.

- 멀어.

“아직 멀었다는 건가요?”

- 응. 차원. 하나로. 시간 필요.

뿌리는 곧 백신전이라는 차원의 핵에까지 내려간다. 이후 핵에 간섭하여 핵과 핵을 합치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다.

이후 핵을 합치게 되면 둘은 서로를 같은 차원으로 인식하게 되어 자연스레 차원의 합일이 일어난다.

물론 말은 쉽지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릴리와 나르가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았을, 하지 못했을 일이다.

“···백신전에서 쫓겨나다니.”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오?”

“자, 다들 따라 오세요!”

백신전이라는 본래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난 신들은 율리아와 일곱 신들의 인도에 따라 인근의 한 상위 차원에 안착했다.

“···여기는.”

“베리안님, 아니 베리안의 차원이군.”

신앙은 신들에게 힘이 된다. 그렇기에 나름 힘이 있는 신들은 자신만의 권역이 하나씩 있었다.

주신들도 마찬가지였고 주신들의 권역은 당연히 다른 신들의 차원들보다 알토란 같은 곳이었다.

그 중 베리안은 피조물들이 살아가는 하위 차원은 물론 상위 차원도 하나 점거 하고 있었다.

가장 아카식 레코드와 가까운 백신전과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결코 부족하지는 않은 곳.

“오늘부터 여기가 새로운 백신전이에요.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지내시게 될 거예요.”

“허허벌판이네만?”

“지금부터 개발해야죠.”

새로운 백신전이라고 하나 차원은 허허벌판이었다. 상위 차원이기에 피조물들이 살아가지도 않았고 조용하고 자연을 좋아하던 베리안의 취향에 맞춰 아무 것도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장님의 전언이 있으세요. 오늘부터 신들의 개인 권역은 모두 폐기에요.”

“뭐라고?”

“잠깐만, 그건···!”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소장님이 결정하세요. 말씀드렸잖아요? 소장님의 전언이라고.”

“······.”

“······.”

김우진을 언급하자 신들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신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 않나?”

유일하게 제이드가 총대를 매고 반발했다.

신앙은 신들에게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아카식 레코드에게 부여받은 힘이 철 덩어리라면 신앙은 그것을 가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열과 망치다. 신앙이 없어도 신들은 신에 걸맞은 위엄을 가지고 있지만 신앙이 있는 신들은 그 이상이 된다.

신들이 단순히 용사들로 종말을 막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신앙을 퍼트리고 권역을 만들려는 이유다.

“신앙을 퍼트리는 것 자체를 막지는 않으신다고 하셨어요. 한 신이 독점하는 권역을 막는다고 하셨지.”

그렇기에 권역은 김우진에게 이로울 게 없었다.

“소장님이 그러시더군요. 독과점은 시장 경제를 어지럽힌다고. 자유경쟁으로 가시래요.”

“···그게 무슨?”

“저도 잘 몰라요. 그냥 그러래요.”

율리아가 어색하게 눈을 피했다. 크흠, 목을 가다듬고 당근을 던졌다. 채찍과 당근은 어디서나 중요하다. 신들이라고 다를까.

“그래도 여러분에게 좋지 않은 소식만 있는 건 아니에요. 저희들이 새로운 백신전의 10주신이니까요.”

율리아 카르센을 비롯한 일곱 명의 신들이 모두의 앞에 섰다.

“10주신?”

“7명이 아닌가?”

“잘 보셨어요. 아직 세 자리는 공석이에요.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실 거라고 믿어요.”

신들이 눈을 빛냈다.

비록 신이라는 위치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전과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해진 것이 맞다. 그들 중 다시 찬란했던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 자는 없었다.

김우진이 주도하는 백신전의 열 명뿐인 주신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

“···주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성과요.”

“성과?”

“누구보다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자가 원하는 걸 얻게 될 거예요.”

“본분이라면···.”

“차원을 구하는 것?”

본래 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균형을 맞추는 거다.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어둠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것.

“용사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는 소장님이 미리 말씀해주셨을 테고.”

율리아가 생글 생글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 * *

새로운 백신전은 데르카인의 주도 하에 만들어졌다.

그는 처음부터 거대한 대도시를 설계했다.

“신들이 사는 곳이라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위용이 있어야 하네.”

“그냥 그런 도시를 만들어보고 싶으신 건 아니죠?”

“당연히 맞지. 언제 또 신과 집행자들을 일꾼으로 부려 먹으며 도시를 만들어 보겠나. 최대한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야지!”

신들이, 집행자들이 일꾼이었고 재료는 전 차원에서 수급되었다. 속도는 유례없이 빨랐다.

“이거 높이가 얼마나 된다고요?”

“정확히 333333층으로 맞췄네. 소장이 말하길 자기가 살던 나라에서는 3이 행운의 숫자라고 하더군.”

“어···.”

“정확히 차원의 방벽과 맞닿아 있지. 역시 신들이네. 이런 건물을 만들 수 있게 될 줄이야.”

“그야 모두가 이런 건물은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네.”

“저건 뭔데요?”

“마력포네. 유사시에 신들의 힘을 뽑아서 동력으로 삼는.”

“저런 걸 만들 필요가 있나요?”

“모든 일에는 만약이라는 게 있네. 신들의 차원이라고 한들 공격당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나?”

“그런 것치고는 너무 많은데요?”

“그야 마력포는 많아야 그 멋이···아니, 마물은 한두 마리가 아니지 않나.”

“욕망이 뚝뚝 흘러넘치네요.”

데르카인은 차원 전체를 뒤집어엎었고 고작 두 달 만에 차원 도시 ‘백신전’이 완성되었다.

“일단 더 이상 신전은 아닌데 말이죠.”

“이름이 뭐가 중요한가. 상징성이 중요하지.”

신과 집행자들이 입주를 시작했다. 일곱 주신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새로운 백신전의 시작이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