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5. 소장절대신 >
“신들은 위대하기에 신입니다! 절대적이기에 신입니다! 헌데 그저 오만하기만 하고, 스스로를 과신하며, 패배하고 또 패배하기만 하는, 결국에는 도망까지 치는 자들을 어찌 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속고 있었습니다! 저 가짜들을 신이라 믿고 따르며 거짓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절대신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저희를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절대신께 충성을!”
“충성을!”
음.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래파토리인데.
“···진정한 신앙을 찾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연옥의 광신도가 광기에 찬 눈을 희번뜩이며 환희에 차올라 있었으니까.
“···디아네.”
“예, 절대신님!”
“절대신이라고 부르지 마라.”
“소장절대신님?”
“······.”
빌어먹을.
김우진이 아픈 머리를 부여잡았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 잠시 생각해보자.
이천이 넘는 집행자들이 신들의 패배에 그들의 품에서 벗어났다.
말로는 진정한 신앙을 찾겠다는 거겠지만 그건 극소수. 디아네처럼 광신이 느껴지는 자들은 10%정도다.
간단하다. 침몰하는 배는 버리는 게 당연하듯이, 우주의 판도가 백신전에서 김우진으로 옮겨왔다고 생각한 이들이 살기 위해 도망친 거다.
‘하지만 우리는 신들의 권속이잖아?’
‘무슨 상관이야. 디아네 이야기 못 들었어? 김우진이 기존의 권속 계약을 끊어버리고 김우진의 권속이 되었다고.’
‘그 소문이 진짜라고?’
‘그러니까 도망쳐. 이 새끼들은 글렀어. 뭐가 신이야. 다 겁먹고 목숨이나 구걸한 주제에. 우리랑 다를 바 없어. 김우진이 모든 걸 쥐고 있다고.’
‘김우진이 우리를 새로운 신으로 만들어주면 이놈들 밑에 있을 필요도 없어!’
‘최대한 빨리 가서 선점해야 해!’
이런 대화를 나누며 왔겠지.
합리적인 판단이고 김우진 입장에서도 그리 나쁠 건 없다.
단순히 백신전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그들을 휘하로 받아들인다는 유일무이한 선택지에서 또 다른 방향성이 제시된 거니까.
기존의 신들을 싸그리 박멸하고 집행자들을 새로운 신으로 만들어 새로운 백신전을 꾸린다는 선택지가.
디아네가 저것들을 전부 자신과 똑같은 복제품으로 만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딱히 그런 쪽으로 취미는 없다고.’
디아네를 격리시켜야 한다. 저것들과 마주해서 이상한 교리를 설파할 수 없도록.
“타르칸.”
“예, 소장님!”
“오늘부터 디아네와 무기한 대련을 허락한다.”
“정말입니까?”
“저, 절대신님? 갑자기 그게 무슨···?”
“명령이다. 너는 오늘부터 투기장에 들어가서 타르칸과 대련을 해라.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나오지 말고.”
“···따르겠습니다.”
“빨리 가자! 오랜만에 지칠 때까지 싸울 수 있겠군!”
투기를 끌어올린 짐승이 어깨가 축 늘어진 광신도를 질질 끌고 투기장으로 향했다.
“저들을 전부 받아주실 생각이십니까?”
“받아주지 않을 이유도 없다.”
백신전의 신들에게 크게 경각심과 위기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들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리고 신들과 비교하면 부족해서 그렇지 저들은 한 명 한 명이 차원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강자들이다. 그렇기에 신들의 심부름꾼역할을 할 수 있는 거고.
“릴리.”
- 응.
“정원 한쪽에 공터를 만들어줘라. 그리고 저놈들을 전부 그곳에 몰아넣어.”
- 응!
- 낑!
세계수의 힘이 거대한 연병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내부로 집행자들이 쏟아졌다.
“절대신께서 우리를 받아주셨다!”
“김우진 만세!”
“그때 대부분 파괴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다 복구한 건가?”
“역시 절대신의 차원인가···.”
“두 그루의 세계수···. 다시 봐도 적응이 안 되는군.”
“그때와는 느낌이 완전 달라.”
김우진에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에 기뻐하며 연옥을 둘러보기 바빴다.
그들이 가장 놀란 것은 신들의 전투로 초토화된 연옥의 대부분이 복구되어 있다는 부분이었다.
물론 그건 권능도 무엇도 아니었다. 그냥 공돌이들을 갈아 넣었을 뿐. 공돌이들의 신이라면 이 정도는 가능한 법. 달리 신이겠나.
“릴리.”
- 응.
“일단은 좀 거를 필요가 있어.”
모두 김우진의 권속이 되겠다는 마음은 진심일 거다. 하지만 그 중에 불순한 마음을 섞은 놈들이 있겠지. 그런 놈들에게 이곳이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다.
물론 김우진과 베리안의 전투를 목격한 놈치고 감히 그런 겁대가리를 상실한 생각을 할 놈이 존재하겠냐만은 언제나 철저한 게 좋으니까.
쉽게 말해 기선제압이다.
- 어떻게?
“굴려. 욕도 못할 정도로 지독하게.”
- 맡겨.
“그래.”
김우진은 릴리와 나르를 쓰다듬어주고 다른 신들을 소집해 집무실로 들어갔다.
집행자들의 집단행동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이에 따른 백신전의 대응이 어떨지 이야기해보기 위함이었다.
- 조용! 모두!
그리고 릴리는 연병장으로 날아가 정신 교육을 시작했다.
그녀의 외침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자그마한 파랑새에 불과하지만 그녀의 정체가 세계수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 정렬!
“우리는 김우진님을 보고 싶소!”
“절대신님을 만나게 해주시오!”
- 조용!
하지만 웅성거림은 작아지지 않았고 릴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권능을 발휘했다.
마력 통제.
“···힘이?”
“···내 마나가!”
마력의 흐름 자체를 막아버리는, 그래서 그 일대에서 어떠한 힘도 쓸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기술.
권능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뭐했다. 그냥 압도적인 격과 힘으로 찍어눌러버리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세계수에 의해 힘이 통제된다는 것을 깨달은 집행자들이 냉큼 입을 다물었다.
김우진에게 힘의 판도가 옮겨간다는 것을 깨닫고 곧장 연옥에 투항할 만큼 눈치가 빠른 이들이었으니.
- 기준.
“기준!”
릴리에게 선택받은 집행자 하나가 손을 들고 소리쳤다.
- 집합. 정렬.
“집합, 정렬!”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 너희들. 정신. 썩어.
김우진이 그랬다. 썩어빠진 정신 상태를 바로 잡으려면 굴리라고.
욕이 나올 정도로, 아니 욕도 못할 정도로 힘들게.
- 기절. 절반.
- 시작.
쿠그그그-
나무뿌리들이 사방에 밀려와 연병장 전체를 감쌌다.
그 모습에 당황한 대부분의 집행자들이 얼을 타고 있을 때, 눈치 빠른 집행자 하나가 옆에 있던 집행자의 면상을 후려쳤다.
퍼억!
“이, 이게 무슨···커헉!”
비명을 지르는 자의 몸 위로 올라가 무한 파운딩을 해 기절시켰다. 주변의 집행자들이 경악하며 그를 나무랐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입니까!”
“지금 같은 집행자를···!”
- 총 2214. 절반 1107. 하나 컷.
- 절반까지 1106.
“······.”
“······.”
릴리의 카운트만 아니었다면.
그제야 세계수가 요구하는 것을 깨달은 집행자들이 눈알을 굴렸다.
‘여기서 살아남아야 받아준다는 건가?’
‘자격 증명?’
‘이 새끼들을 다 족쳐야···.’
“뒤져!”
그게 시작이었다. 힘을 잃어버린 집행자들 사이의 난투가 벌어졌고 기절한 자들은 나르에 의해 밖으로 치워졌다.
- 절반까지 0.
“이, 이겼다!”
“살아남았다!”
“나는 내 자격을 증명했어요! 나를 받아주세요!”
1107명의 상처투성이 생존자들이 기쁨의 환호를 내질렀다. 율리아는 날개로 박수를 치며 그들을 축하해주었다.
“그럼 이제 절대신님의 권속이···?”
- 아니.
하지만 승리를 만끽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 나 공격.
- 너희 피해.
쿠그그그-
수 천 개의 나무뿌리들이 그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 * *
“···남은 집행자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어떻게든 막고 있기는 한데 폭동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백신전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어쩔 수 없었다. 전쟁은 패배하고 수십의 신들과 주신들이 모두 죽었다. 그런 상황에서 집행자들 대다수가 패배를 도망쳤다.
신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말 끝이라는 것을. 김우진에게 순응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쥐새끼 같은 놈들. 지금까지 우리에게 붙어 콩고물을 그렇게 얻어 먹고는···.”
“업보겠지.”
제이슨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힘이 없으면 빼앗기고 강탈당하는 게 이 우주의 순리 아닌가. 우리가 다른 종족들을 탄압했듯이. 이제는 우리가 힘이 없으니 이렇게 되는 거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제 신으로서의 생각은 버려야 하네. 우리는 더 이상 절대자가 아니야.”
신들이 침묵했다. 부정할 수 없다는 그 진실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럼 이제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내버려 둬야지. 달리 방법이 있나?”
없다.
“김우진이 그랬지. 얌전히 백신전에서 기다리라고. 알아서 오겠다고. 우리가 할 건 하나네. 더 이상 눈밖에 날 짓 하지 말고 얌전히 기다려 최대한 그에게 자비를 구걸하는 것.”
백신전은 방향을 결정하고 차원의 문을 활짝 열었다. 언제든 김우진이 원할 때 올 수 있도록.
그리고 마침내.
“잘들 있었나?”
김우진이 왔다.
* * *
신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김우진은 혼자였으나 그 누구도 감히 그에게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위압감도 위압감이었지만 베리안과의 격전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김우진은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았다. 극도의 저자세로 몸을 낮추고 있던 신들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 동안 잘 있었던 것 같군. 얼굴에 기름들이 반들반들한 걸 보니.”
“······.”
김우진을 걱정하느라 초췌하게 변한 신들은 별 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김우진의 대화에 말리면 안 된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다.
“저희는 결코 김우진님에게 대항할 의사가 없습니다.”
“네 이름은?”
“제이슨입니다. 부끄럽지만 현재의 백신전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백신전이 바라는 건 뭐지?”
“감히 말씀드려도 되는 것입니까?”
“말해 봐라.”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느낀 제이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희는 김우진님의 귀찮은 일을 맡아서 하길 바랍니다.”
“살고 싶다는 거군.”
“···예.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하지만 너무 섣부른 판단 아닌가? 내가 차원들을 관리하는 것을 귀찮아 한다고 누가 그러지?”
“···그건.”
명확히 나온 건 없었다. 그저 그간 김우진의 행보와 언사, 성격을 비추어 그렇게 추정했을 뿐.
‘설마 잘못 짚은 건가?’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다. 만약 김우진이 오히려 권력 잡는 걸 좋아하고, 귀찮더라도 오점이 있는 자신들보다 새로운 백신전을 만들길 원한다면 전멸을 피할 수가 없다.
제이슨이 곧장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셨으면 합니다. 결단코 백신전이 김우진님을 다시 적대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셨으면 합니다!”
신들이 일제히 머리를 박았다.
“너희들의 처우는 너희들의 대답 여하에 따라 결정하겠다.”
톡톡, 김우진이 의자의 팔걸이를 두들겼다.
“대답이라 하면?”
“너희들 중에.”
김우진의 시선이 천천히 신들을 훑는다.
“아카식 레코드에 손을 댄 자가 있을 거야. 그렇지?”
“······!”
“발뺌할 생각은 하지 마. 조사하면 다 나오니까.”
그는 또 다른 화근을 남겨둘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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