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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114화 (114/150)

# < 113. 살아있다! >

아침식사를 마친 세이드는 시종들의 도움을 받아 갑옷을 착용했다.

“좋은 아침이다.”

연병장으로 나가자 일천의 기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렬해 있었다.

인간과 엘프가 다양하게 섞인 이들은 남은 다섯 개의 왕국에서 추리고 추린 정예 기사들이었으며 세이드는 그들을 이끄는 단장이었다.

“종말은 끝났다. 하지만 언제 다시 시작할지 모른다.”

언제나처럼 연설로 아침을 시작했다.

글라크의 인류는 차원의 방벽을 뚫고 들어오는 마물의 파도를 경험했다. 신을 목격하고 그들의 진면목을 확인했다.

그리고 김우진의 희생을 지켜보았다. 지금의 평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깨달았다.

신은 결코 선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신은 무조건적인 아군이 아니다.

“우리는 신들의 진면목을 보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렇기에 종말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신에게 대항할 힘을 길러야 한다.

인류가 내린 결론이었고 적지만 일천의 최정예 기사단을 이그라실 왕국에서 머물고 있는 세이드에게 맡긴 이유였다.

세이드는 김우진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용사였고, 지금도 가장 강한 용사니까.

“그렇기에 지금의 훈련은 단순히 너희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다. 항상 그 사실을 잊지 말도록.”

“예!”

“질문 있습니다!”

우렁찬 대답 사이로 바이저를 내린 기사 하나가 손을 들었다.

“말해라.”

“공주 전하와는 언제부터 그렇게 사이가 좋아지셨던 겁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뜻이지? 질문은 훈련과 관련된 것만···.”

“오늘 아침에 꽤나 재밌는 걸 보았습니다.”

크흠, 기사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언제 일어나셨습니까?”

옆에 있던 다른 기사가 목소리를 자연스레 대꾸했다.

“한참 전에?”

“왜 깨우시지 않고.”

“곤히 자는 사람을 어떻게 깨워요. 매일 같이 고생하는 걸 아는데.”

“······.”

세이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건 아침에 그와 넬리아가 나누었던 대화였다.

“···지금 뭐하는 거지?”

은은한 분노를 드러냈음에도 두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행위를 이어갔다.

“몇 시입니까?”

“왕국의 기사단장이 곧 출근할 시간이죠. 어서 일어나요. 곧 시종들이 올 테니.”

“···한 번만 더.”

“이럴 때 보면 애랑 다를 바가 없네요.”

“전하 앞에서만 그렇습니다. 사랑합니다. 오늘은 더 사랑스럽군요. 전하는 모든 인류 중에 가장 아름다우니, 그 누구의 미모도 전하 앞에 선다면 빛이 바래질 겁니다. 제 심장을 꺼내줘도 아깝지 않고 저 하늘의 별도 따다 드릴 수 있습니다.”

“어머, 감동이에요. 달링.”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참지 못한 세이드가 버럭 소리쳤다.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는 거냐!”

“그건 넬리아 전하께서 가장 아름답지 않으시다는 겁니까? 심장도, 별도 못 따주고? 사랑이 식으신 겁니까?”

“···그런 말이 아니지 않느냐!”

“정확히 이야기 해주시죠. 오백만 이그라실의 백성들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삼천만 비엔데르크의 백성들도요.”

“닥쳐라! 감히 왕실과 나를 능멸하다니. 네놈들은 누구냐···!”

스릉, 검을 뽑아 겨눴다.

기사들이 두 기사를 포위했다.

“순간적인 팩트 폭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해버리시는 겁니까?”

“무슨 헛소리를···.”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세이드가 잠시 눈을 깜빡였다.

“···어쩐지 익숙한 말투인데.”

설마?

“그게 누굽니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김우진은 신들에게 잡혀갔다. 상식적으로 신들이 신을 죽인 김우진을 살려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저 깐죽거리는 목소리와 말투는, 그리고 특이한 단어들은 김우진이 아니면 맹세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뭐가 그럴 리가 없다는 겁니까? 세이드님이 넬리아 전하께 어떤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던 것 말입니까?”

“···투구를 벗어라.”

“벗기 싫다면요?”

───!

세이드의 검이 기사의 코앞에서 멈췄다. 폭발 하듯, 터져 나오는 충격파에 주변의 기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세이드님의 검을 맨손으로 막았어?”

“어떻게 저런···?”

기사들이 경악했다. 하지만 세이드는 오히려 웃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뭐가 말입니까?”

“연기는 그만 집어 치워라. 어떻게 돌아온 거냐.”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네.”

“이걸 눈치 채지 못하면 병신 아닌가?”

“그것도 그래. 날 붙잡은 신 새끼들을 전부 족치고 당당히 왔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

“불가능할 건 또 뭐야?”

철컥, 김우진이 바이저를 올렸다. 더 없이 익숙한 얼굴에 세이드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신들을 전부 족쳤다는 건 의외지만 솔직히 살아 있을 줄은 알았다.”

“정말로?”

“너 같은 바퀴벌레가 그리 쉽게 죽을 리가 없지.”

“욕이냐, 칭찬이냐?”

“칭찬이다. 적어도 지금의 경우에는.”

“두 분이서 너무 다정해보여서 저는 질투가 조금 나네요.”

“너는 누구···율리아···?”

···네가 어떻게?

세이드의 눈이 더 없이 커졌다.

“오랜만이에요. 세이드. 잘 지냈···아, 엄청 잘 지내고 있던 것 같으니 묻는 의미가 없나요? 결혼 축하드려요.”

율리아가 생글거리며 웃었다.

* * *

“···그런 일이 있었다고?”

세이드는 쉽사리 믿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그의 기억은 김우진이 신들에게 잡혀가는 것에서 멈췄다.

그런데 그 뒤에 신들과의 전쟁이 있었고 결국에는 승리를 쟁취했으며 율리아가 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믿겠는가.

하지만 세이드는 멍청한 엘프가 아니다. 직접 보고 겪는다면 믿지 못할 수가 없다.

“···그렇군. 믿겠다.”

율리아의 손에 직접 제압 당하는 것으로 세이드는 진실을 이해했다.

“···나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율리아한테 지다니.”

“이게 바로 세이드와 내가 헤쳐나온 고난과 역경의 차이죠.”

에헴, 율리아가 콧대를 으쓱였다.

“네가 한창 때의 글라크에 떨어졌다면 바로 죽었을 거다.”

“아니요. 어떻게든 적응해서 살아남았겠죠. 신들과의 전쟁에서도 아득 바득 살아서 신이 되었으니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김우진과 두리쉬마라는 어둠의 사도가 처리하고 넌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아주 정확한 관측이다. 역시 세이드는 엘프다.

“어떻게 한 게 없어요! 릴리 어머니 나무도 제가 가져왔고, 도망친 죄수를 잡을 때도 돕고, 신들과의 전투에도 참가했는데요!”

“심부름꾼에, 기껏해야 집행자고, 다른 하나는 싸우다가 결국 김우진이 결판을 냈다고 하지 않았나?”

“···이익! 세이드는 누구 편이에요!”

“아르반의 그 착한 아이라면 몰라도 공주 전하와 나를 조롱한 네 편은 아닌 것 같군.”

“그건 어디까지나 소장님이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고 해서 한 것 뿐이에요. 주신마저 죽이신 분이 하자고 했는데 따라야죠. 제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당연히 김우진이 주도했겠지만 율리아. 안 본 사이에 많이 영악해졌구나.”

음, 내가 주도했다는 부분은 디폴트로 깔고 가는군.

역시 엘프의 날카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우진은 구석에 앉아 얌전히 넬리아가 건네주는 다과를 씹었다.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입니다, 전하.”

“솔직히 용사님이 대단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제 생각보다 더 대단해지셔서 돌아오셨네요? 놀랐어요.”

“저도 놀랐습니다.”

“뭐가 말이죠?”

“설마 저 목석같은 놈을 냉큼 꼬셔서 결혼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세이드가 목석같기는 하죠.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도 봐요. 꽤나 말이 많지 않아요?”

“뭐, 그렇긴 합니다. 사랑의 힘이 놀랍군요.”

단순히 그뿐만은 아닐 거다. 율리아도, 세이드도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분위기가 점점 더 익숙하고 편안해지고 있으니까.

진짜 가족이라는 거겠지.

“저 아이가 그 율리아라는 아이군요. 예쁜 아이네요.”

넬리아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엄마가 딸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엘프가 처음 보는 하이엘프를 딸처럼 느낄 정도라면 얼마나 지겹도록 이야기해야 하는 거지?’

세이드에게 팔불출 기질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 이상인 듯 싶었다.

“차원은 어떻습니까?”

“안정적이에요. 마물이 완전히 사라졌으니까요. 몬스터는 원래 그전부터 부대끼며 살아온 필요악 같은 느낌이고요. 한 가지 문제라면 죽어버린 대지네요.”

“죽어버린 땅이요?”

“정화가 쉽지 않아요. 신들도 이 세상에 관심을 꺼버렸고 저희를 가호하던 어머니 나무도 사룡에게 뽑혀버렸으니까요. 마법사들이 마법으로 조금씩이라도 정화를 하고 있긴 한데.”

오면서 보았다. 정화된 대지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아마 이대로라면 수천년이 지나도 그대로겠지.

하지만 수천 년이 걸릴 일은 더 이상 없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무슨 뜻이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 녀석은 신이 되었고, 저는 그 이상이 되었다고.”

“···솔직히 말하면 현실감이 없어서요.”

“곧 현실감이 있게 될 겁니다. 이미 조치를 취해놨거든요.”

“···조치요?”

김우진은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그날 밤, 넬리아는 그 말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 * *

“···밤이 사라졌다!”

처음 이변을 발견한 것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오후 다섯시 치고는 대낮처럼 밝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겨울에는 해가 짧아지고 여름에는 길어진다. 대륙의 남부는 현재 여름이었고 그걸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여섯시, 일곱시.

“오늘은 해가 좀 많이 기네.”

여덟시.

“···이거 좀 이상한데?”

아홉시.

“태양은 이미 없잖아. 뭐야, 이거! 왜 밤이 오질 않는 거야?”

열시.

전 대륙의 밤이 사라졌음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열한시.

새하얀 백야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열두시.

“···이거 괜찮은 겁니까?”

“···종말이다! 또 다시 종말이 오는 거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벽 3시.

마침내 사람들은 어째서 세상의 어둠이 사라졌는지, 그 원인과 마주할 수 있었다.

“···불꽃?”

“새하얀 불꽃?”

“불꽃이 대지를 태운다!”

“불꽃이 넘어온다!”

새하얀 불길은 모든 대륙을 가리지 않았고 마기로 인해 저주 받은 땅들을 불태우며 빠르게 인류의 영역 근처로 다가왔다.

경비병들이 가장 먼저 그것을 발견했고 이미 비상이 걸린 각국의 수뇌부는 경악했다.

황급히 마법사들을 소집해 물 마법과 방어 마법을 준비했다.

“···꺼지지 않아?”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지만 수 계열과 빙 계열 마법은 불길을 아주 조금도 약화시키지 못하고 소멸했다.

“마법적 힘이 가미된 불길입니다!”

“대체 시전자가 누구기에 이렇게 광범위한 마법을?”

“저희들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끌 수가 없습니다.”

“당장 대피령을 내려야 합니다!”

끌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불. 인류는 공포에 떨었다.

각국의 왕도로 한 통의 통신들이 전해지지 않았더라면 대대적인 대피령이 떨어졌을 거다.

“···용사, 김우진이 살아 있다고?”

“이게 김우진의 권능?”

“마기만을 태워서 대지를 정화시키는 거라고?”

“전 대륙의 대지를? 그게 가능한 건가?”

“아니, 잠깐만. 김우진이 살아 있다고? 돌아왔다고?”

“김우진이 살아 있다!”

“김우진은 지금 어디 있나!”

대륙이 다른 의미로 뒤집어졌다.

각 국의 왕들이 일제히 이그라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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