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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101화 (101/150)

# < 100. 용사 김우진(9) >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다.

그것보다 더 이 현상을 잘 표현하는 말은 없었다.

“저게 뭐야?”

“세상에···!”

“하늘이···! 마물들이 내려온다!”

“습격이다!”

“종말은 끝난 거 아니었어?”

잠을 자지 않고 승리의 축배를 들던 이들이 가장 먼저 그것을 발견했고 경악했다.

땡땡땡땡-

모든 도시에 요란한 경종이 울렸다.

“이게 대체 무슨···!”

당황하는 김우진의 옆으로 알베니우스가 나타났다.

“이미 종말을 막아낸 차원에 대규모 마물의 군단이 기습을 가해온다니.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어!”

수많은 차원을 떠돌아다니던 차원룡 또한 보지 못한 전례가 없던 일.

“알베니우스님. 하나 짚이는 게 있습니다.”

“짚이는 게 있다고?”

“방금 신을 만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지?”

이야기의 전반을 들은 알베니우스는 분노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들이야! 나와 너를 잡기 위해서 간신히 종말을 벗어난 차원에 마물 군단을 쏟아 붓는다고?”

기가 차 헛웃음이 나왔다. 어이가 없게도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효과적이라는 겁니까?”

“저들이 나를, 그리고 나를 돕는 너를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 제약 때문이다.”

아카식 레코드에게 힘을 받은 자들은 우주의 균형을 위해서 제약을 받는다. 신도, 신의 힘을 받은 집행자들도 마찬가지다.

용사들은 경우가 좀 달랐다. 제약이란 건, 벽을 넘어 초월의 격을 얻은 자들에게 해당되기 때문이다. 용사란, 신의 힘을 받아 그 벽을 넘기 직전의 상태인 자들이었다.

“하위 차원에서는 힘이 제약되기에, 그걸 해소하려면 막대한 업이 필요하기에 잠시 방관했지.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하위 차원이 아니면 되는 거야.”

이를 테면 종말 차원 같은. 이미 종말을 맞이해 피조물이 존재하지 않고, 균형을 이룰 필요가 없는 차원에는 제약도 없었다.

“···미친. 그런 저와 알베니우스님을 잡기 위해서 간신히 종말에서 벗어난 차원을 직접 멸망시키려고 한다는 겁니까?”

“일단 상황은 그렇군.”

“완전 미친 새끼들이네? 저딴 게 신이라고요?”

김우진이 뿌득, 이를 갈았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그 고난을 헤쳐온 차원을 직접 멸망시켜버린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그렇다면 김우진이, 수백의 용사들이, 이곳의 인류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대체 무엇인가.

신들의 손가락질 한 번에, 저들의 변덕에 그냥 무너져 버리는 모래성이었나.

“···이건 막을 수 없다.”

알베니우스가 단언했다. 이전의 종말과는 다르다. 신들이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마물의 군단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있다.

그 규모도 수준도 미상이다. 하지만 신들이 차원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작정하고 쏟아내는 마물의 군단이 결코 수준 낮을 리가 없다.

“도망쳐야 해···!”

“도망치라고요? 대체 어디로요?”

도망치고 도망쳐서 이곳까지 왔다. 고작 열 개의 왕국만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종말을 막아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이들에게 마침내 평화를 안겨주었다고 생각했다.

헌데 그 끝이 더 무자비한 종말이라니.

“도망치려거든 혼자 가세요.”

“김우진. 감정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야.”

“저는 지금 굉장히 냉철합니다.”

“저 군단에 맞서는 것은 자살행위다.”

“저는 죽고 싶은 마음도, 죽을 생각도 없습니다.”

막는다.

“차원의 종말을 막는 것이 용사의 사명이잖아요?”

오랜 시간을 바쳐서 직접 지켜온 세상이다. 그 세상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방관하고 싶지 않다. 신 같지도 않은 자들에게 굴복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가망이 없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아니다. 이전의 김우진과 지금의 김우진은 다르니까.

불꽃이 김우진을 감쌌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술기운을 날려버린 세이드가 뒤늦게 나왔다. 하늘을 가득 채우는 마물의 군단에 경악했다.

“세이드, 혼란을 수습하고 사람들을 지켜.”

“너는? 뭘 하려는 거냐?”

“나는 저것들을 쓸어버려야지.”

김우진이 날아올랐다. 붉은 홍염이 유성처럼 솟아올랐다.

─────!

* * *

하늘이 붉게 물든다.

차원을 좀 먹는 어둠들을 밝히며 모든 것을 태우고 녹인다.

“···용사님이다!”

“김우진 용사님이다!”

“김우진 용사님 만세!”

“저희를 구원해주세요!”

“마물들을 물리쳐라!”

아주 잠시 맛보았던 희망을 꺼트린 거대한 어둠에 절망하던 인류가 세상을 밝히는 불빛에 환호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피어오르는 하나의 촛불은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불꽃이었다.

해줄 거다. 김우진이라면 어떻게든.

수십년간 수백명의 용사들이 하지 못할 걸 해준 위대한 영웅이니까.

그리고 위대한 용사는 그들의 희망에 부응하기 시작했다.

─!

──!

─!

───!

끝임 없이 들리는 폭음과 하늘을 달구는 열기. 잿가루가 흩날려 하늘을 검게 물들였고 반쯤 녹아내린 마물의 시체가 폭탄처럼 떨어졌다.

김우진은 싸우고 또 싸웠다. 전투는 몇날 며칠을, 몇 주를, 몇 달을 넘어갔다.

크워어어어-

수십 미터가 넘어가는 괴물을 불태우고.

개 때처럼 몰려드는 소형 마물들을 집어 삼켰다.

죽이고 또 죽였다.

마물을 죽인 업을 쌓아 에너지를 보충하고, 그 마저도 고갈되면 마물의 기운을 흡수했다.

포식은 피아를, 종족을, 마기와 마나를 가리지 않았고 사방에 넘쳐나는 게 마물이었다.

그에게 막대한 업을, 막대한 기를 주었다.

무분별하게 흡수한 마기는 누구에게나 해로 다가온다. 하지만 굳이 필요 이상의 마기를 계속 담아둘 필요는 없었다.

적이 넘쳐나니 모조리 불꽃과 함께 폭발하듯 쏟아냈다.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보자.”

필요한 건 그의 정신력 뿐.

사룡을 죽이기 위해 수십 년을 싸웠다.

고작 이 정도에 마모될 정신은 이미 마모될 만큼 되었다. 장기전은 그의 장기였다.

절대 저들을 죽게, 세상이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알베니우스가 죽는 것도, 신들에게 죽을 생각도 없다.

그러니 끝까지 간다.

급박하게 이루어지는 전투속에서 김우진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대한 양의 업과 마기가 쌓여 스스로의 격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음을.

* * *

“아직도 버티고 있다고?”

백신전은 두 개의 계획을 냈다.

김우진이 스스로 힘을 포기하고 지구로 돌아가겠다고 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

전자처럼만 된다면 모든 게 깔끔하지만 신들은 무수히 많은 용사들을 부려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멍청한 피조물들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만용을 부릴 때가 있다. 본래 신의 준 힘을 자신의 것이라 여기고 멍청한 아집을 부릴 때가 있다.

신이 준 힘을 다시 회수해주는 것은 당연한 건데.

때문에 신들은 만약에 사태에 대비했다. 김우진이 거부할 경우. 감히 신에게 반기를 들 경우.

단순한 감옥으로 다스리기에는 사안이 너무 컸다. 알베니우스가 감옥의 존재를 아는 만큼, 거부할 가능성도 높았다.

그래서 아예 차원을 멸망시키고자 했다.

하위 차원이기에 신들이, 집행자들이 제대로 나서지 못한다면 하위 차원이 아니게 만들면 되는 거니까.

글라크의 피조물들 따위야 몇이나 죽든 상관없었다. 수많은 차원 중 하나일 뿐이다. 피조물들 또한 신들을 위해 죽는다는 걸 기쁘게 여길 것이다.

문제는 김우진이었다.

백신전은 글라크의 종말이 순식간에 이루어날 것이라 여겼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인류는 그 이상의 군단을 막아낼 여유가 없다. 헌데 김우진, 그놈의 김우진이 홀로 몇 달을 버텨냈다.

대부분 멸망해버린 인류는 대륙 구석에 뭉쳐서 함께 버티고 있으며 김우진은 마물들을 말 그대로 찢어발기고 있다.

오직 김우진의 힘으로 마물 군단의 대부분을 물리쳤다.

“기가 차는군.”

“김우진, 난 놈은 난놈이군. 아무리 알베니우스가 도와줬다고 해도 이건 일개 용사는 물론 집행자의 수준도 아득히 뛰어 넘었다.”

칼카르가 순수하게 김우진의 전투 능력에 감탄했다.

“일개 용사로 그 수준까지 이르다니. 마음 같아서는 내 집행자로 삼고 싶군.”

“허튼 소리 하지 마라. 놈은 반역자다. 모두의 본보기가 되어야만 한다.”

“그냥 해본 말이다.”

칼카르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다른 방안이 있나?”

“있다.”

“뭐지?”

“수백만의 마물들이 대부분 쓸려 나갔다. 글라크의 인류는 왕국 다섯 개 정도가 더 멸망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고작 그 정도지.”

하지만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다. 마물 군단을 보낸 목적은 결국 차원을 하위 차원이 아닌 종말 차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제약을 없애기 위해서. 직접 김우진과 알베니우스를 잡기 위해서.

비록 마물 군단은 차원을 온전히 멸망 시키지 못했지만 차원의 장벽을 대부분 허물고 차원 자체를 약화시켰다. 종말 차원에 더 없이 가깝게 만들었다.

비록 신이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신의 위용에 걸맞는 힘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바리온.”

“예, 주신이시여.”

글라크를 담당하는 신이 무릎을 꿇었다.

“네가 직접 가라. 가서 감히 신에게 반기를 든 반역자에게 그 대가가 무엇인지 뼈져리게 느끼게 해주어라.”

“명을 받듭니다.”

“아스트마.”

“예.”

또 다른 신이 무릎을 꿇었다.

“네가 함께 가라. 김우진은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으니 만약에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명을 받듭니다.”

“너무하는군. 아예 살아날 구멍 자체를 안 만들어주는 건가.”

“반역자에게 자비는 필요 없다.”

두 명의 신이 백신전을 떠났고 백신전의 그 누구도 김우진과 알베니우스의 죽음을 의심치 않았다.

* * *

종말이! 종말이 끝났다!

이번에는 진짜로 끝이다!

용사, 김우진 만세!

몇 달에 걸친 사투가 끝났다.

수백 만의 마물 군단은 차원의 모든 것을 짓밟고 파괴했다. 차원의 힘을 갉아 먹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인류의 절반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나 그들은 살아남았다.

사룡에게서 버티기 위해 열 개의 왕국이 대륙 구석에 뭉쳐 연합을 이루고 버틴 게 행운이었다. 그들은 단단하게 결의했고 김우진을 믿고 의지하며 투쟁했다.

그렇게 살아남았다.

“···정말로 끝난 거지?”

“또 오는 건 아니지?”

인류는 불안해하면서도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처음처럼 기쁘지도, 축하하지도 않았다.

두 번 일어난 건 세 번 일어날 수도 있다. 깊은 불안감이 인류를 휘감고 있었다.

“···고맙네. 용사, 김우진. 백번을 고맙다고 이야기해도 모자라군.”

몇 달 사이 십 년은 더 늙어버린 것 같은 비엔데르크의 국왕이 김우진을 치하했다.

“그대가 아니었으면 인류를 멸망했을 거네.”

“아닙니다.”

“이해가 가지 않아. 대체 그 마물의 군단은 어디서 나타난 건지. 피해가 너무 커.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 건가?”

“있습니다. 있게 하겠습니다.”

“자네에게 너무 의존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종말은 끝났으나 인류는 기계적으로 다음 종말에 대비했다. 하지만 이미 찾아온 절망을 떨쳐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 번의 종말을 막는데 인류의 90%가 죽었네. 두 번의 종말에 그 절반이 죽었지. 또 다시 종말이 찾아온다면 우리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신께서는 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건가.”

한탄 섞인 외침에 김우진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 때문이라고, 자신이 순순히 신에게 목을 내놓지 않아서라고 말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또 다시 종말이 온다면 최선을 다해서 막겠습니다.”

그저 이게 최선이었다.

왕을 알현하고 나온 김우진이 복도를 걸었다. 비엔데르크의 왕도는 사룡의 습격 이후 새로운 도시로 선정되었지만 두 번째 종말로 그마저도 파괴되었다. 남은 도시들 중 그나마 멀쩡한 곳을 임시 왕도로 정했으나 멀쩡한 도시보다 그렇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더 쉬웠다.

“용사님.”

1왕녀 아이닌 비엔데르크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당연한 일은 없어요. 용사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정말 다 죽었을 거예요.”

“···최대한 노력했는데 전부 살리지 못했습니다.”

“그건 애초에 불가능해요. 이번 종말은 사룡보다 더 강대했어요. 막아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죠.”

김우진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 다만, 애초에 그가 아니었으면···.

‘아니, 아니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국 잘못한 건 신이다. 마물을 보낸 것도, 이유 없이 알베니우스와 김우진을 죽이려고 한 것도, 애초부터 차원을 버릴 생각으로 가득했던 것도.

그들은 김우진을 이유로 들지만 모든 것을 행한 주체는 신들이다.

그때였다.

번쩍-

새하얀 빛이 하늘을 가득 매웠다.

“···저게 뭐죠?”

“설마 또?”

간신히 닫힌 균열이 다시금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경악하며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저들은.”

“김우진! 최악의 상황이다!”

어느샌가 알베니우스가 김우진의 곁에 있었다.

“당신은 누구···?”

아이닌의 물음은 알베니우스의 고함에 먹혔다.

“저들은 신이다! 차원의 방벽이 약해진 탓에 신들이 강림할 여유가 생긴 모양이야!”

“···신이라고요?”

“신···?”

두 명의 절대자였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위압감에 김우진은 피부가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 불쌍한 아이들아.

신이 입을 열었다.

신성함과 거룩함이 느껴졌다.

뇌에 직접 주입하듯, 생생하게 울렸다.

- 너희들의 불행을 끝내러 왔으니.

인류는 그들이 누군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신을 향해 무릎을 꿇고 경배했다.

- 반역자, 김우진을 우리의 앞에 데리고 오거라.

그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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