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90화 (90/150)

# < 089. 억울함 >

교도관과 죄수, 그리고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자들까지. 연옥의 구성원들은 누구나 느끼고 있었다.

백신전과 격돌할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김우진은 여섯 명 모두를 신으로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했고 두 그루의 세계수를 심으면서 쑥쑥 자라나는 영약은 거기에 도움을 주었다.

“훈련? 물론 훈련도 좋네만, 일단은 마력포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 게 먼저 아니겠나? 신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번에는 신에게 확실하게 통하게끔···!”

“신이 되시는 게 우선입니다. 신이 되고 마력포를 만들면 마력포의 성능도 올라갈 겁니다.”

“정말인가?”

난쟁이의 반색에 김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 거다. 김우진이 신이 되어보지 않았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마도구는 제작자의 마력이 깃든다. 당연히 용사인 데르카인보다는 신 데르카인의 신력이 마력포의 성능을 올린다에 손모가지를 걸 수도 있었다.

“크흠, 그렇다면야. 그런데 잠깐만.”

무언가를 깨달은 데르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신이 되려면 기존의 신이 없어져야 하지 않나?”

“그렇죠.”

“그럼 배터리는?”

“신을 언제까지 일개 배터리로 여기실 겁니까?”

“그놈들이 내게 한 짓을 생각하면 배터리 취급도 과분하다는 걸 알아야 할 거네.”

하긴, 이곳의 용사들 치고 신들을 좋아하는 자는 없다. 그들의 요청으로 세상을 구원했더니 자유를 박탈당하고 선택을 강요당했다.

좋아하고 싶어도 좋아할 수가 없다.

“알베니우스님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신들이 죽어도 문제는 없을 거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미 세계수들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고 그만큼 세계수들은 성장했다고.”

“그럼 준 무한동력 정도는 되겠군?”

“세계수를 무한동력 취급하는 것도 그만두세요. 그러니까 릴리가 데르카인님을 난쟁이라고 부르면서 싫어하는 거 아닙니까.”

“미움 좀 받으면 어떤가. 나는 그 어떤 드워프도 해내지 못한 전무후무한 일을 하고 있는데!”

“뭐, 마력포를 부탁한 입장에서 저도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긴 하죠.”

아무튼 그렇게 데르카인 또한 신이 되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역시 특별한 것은 없었다.

“···영약을 백신전 놈들에게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 아시잖습니까.”

영약을 먹이고.

“도끼! 도끼가 부서졌네!”

“바로 여분을 꺼내시죠.”

실전과 같은 대련을 했다.

데르카인은 이미 거의 완성된 용사였고 굳이 추가적인 깨달음 같은 게 필요한 게 아니었다.

물론 고작 이주만에 그렇다고 신으로 만들 수 있느냐는 의문이지만 다른 자들에 비하면 부족할지 몰라도 틈틈이 노력을 해왔으니 최선을 다해볼 수밖에.

“···이제는 망치를 휘두르지도 못하겠군.”

데르카인을 녹초로 만들고 나면 그 다음은 소지였다.

“너는 특히 문제가 많아.”

“제가 말입니까?”

“먹은 게 워낙 많아서 마력은 가장 넘쳐나지만 그걸 제대로 쓸 줄을 모르니까.”

설사 신이 된다고 해도 과연 다른 신들과 비등한 전투를 펼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린아이에게 명검을 쥐어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피조물을 상대로는 총이지만 같은 신을 상대로는 칼이다.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았습니까? 그 동안 꽤 빡세게 했는데.”

“나아지긴 했지.”

하지만 역시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부족하니 비교가 된다.

“걱정 마, 인간은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어.”

죽기 싫으면 하겠지.

“···잠깐만! 훈련을 할 때, 하더라도 밥은 먹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시간 없어.”

“이번에 도축장에서 페이그람을 잡았습니다.”

페이그람은 돼지를 닮은 몬스터로 몬스터답지 않게 육질이 부드럽고 단백질과 지방의 조화가 좋은 놈이었다. 몬스터 특유의 독기와 악취가 문제지만 베르너의 손길을 만나면 천상의 진미로 바뀐다.

“···좋아.”

김우진은 베르너와 함께 그가 준비한 만찬을 먹었다.

“꾸에에엑!”

그리고 베르너는 먹었던 것을 모두 토해냈다.

* * *

날이 밝았다. 동쪽에서부터 해가 떠오른다.

“제게 어둠을 해쳐나갈 용기를 주시옵고.”

디아네가 경건히 기도를 드린다.

신앙과 믿음이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어떤 악에도 굴복하지 않은 담대함을.”

결전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 연옥을 감싼 긴장감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만큼 진해졌다.

“어느 순간에도 바래지지 않을 믿음을.”

누군가는 긴장하고, 누군가는 투지를 불태우며, 누군가는 두려워하지만 디아네는 평온했다.

적들의 세력이 강하다고 겁을 먹을 필요도,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타락한 이 땅에 신의 뜻과 말씀을 바로 잡을 수 있는 힘을.”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갈 지니.

위대한 소장, 아니 주신께서는 결국 찬탈자들에게 천벌을 내리고 모든 것을 순리대로 되돌리실 것이다.

승리는 당연한 거다.

그렇기에 그녀의 걱정은 승패 따위가 아니다. 그 뒤를 따라갈 수 있을지.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그분의 곁에 자신이 서 있을 수 있을지.

“끝까지 그 뒤를 따르겠나이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눈을 뜬다. 그리고 무기를 다잡는다.

“끝났냐?”

그녀의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 걸 기다리고 있던 김우진이 한숨을 쉬었다.

“예,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싸우기 전과 후에 기도를 하는 거, 그거 꼭 해야 되나?”

“신께 기도를 드리는 건 신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신이 너한테 하지 말라고 한다면?”

후우, 김우진이 온 몸에 일어나는 두드러기를 긁으며 간신히 내뱉었다.

설마 스스로를 신이라고 말하는 날이 올 줄이야. 백신전 놈들은 이 부끄러운 말을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의 말에 디아네의 눈가가 묘하게 호선을 그렸다.

“···드디어.”

“뭐라고?”

“드디어···! 드디어 스스로를 신이라고 하셨군요!”

“······.”

김우진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디아네가 환하게 웃었다. 기쁘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제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기다려?”

“모든 이름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하물며 지고한 이름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신께서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지 않는데 누가 믿고 따르겠습니까! 무지몽매한 자들이 어찌 신의 진면목을 확인하겠습니까.”

허나, 이제는 다릅니다.

“신께서 스스로 자각 하셨으니 마땅히 모두가 신을 섬길 것입니다!”

환희에 찬 눈빛은 거의 광기였다.

“전 우주가 주신의 위대함을 깨닫고 스스로 섬길 것입니다!”

“······.”

김우진은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결국 정정을 포기했다.

“···조용.”

“명하신다면.”

“일어나라.”

“예.”

“도끼 들고.”

“예.”

“견뎌.”

콰아아앙!

검이 떨어졌다. 도끼가 간신히 버텼으나 디아네의 두 다리가 종아리까지 대지를 파고들었다. 그녀의 혈관이 도드라졌다.

“···신께서 견디라고 하신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견디겠습니다.”

믿고 따르는 자에게 은총이 있나니.

그렇지 않아도 충만한 믿음에, 신께서는 그녀에게 신위를 약속하셨다.

“신께서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으니!”

따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설마 그게 신을 후드려 패라는 명령일지라도.

신성력으로 뒤덮인 배틀엑스가 불꽃을 갈랐다. 그대로 김우진을 강타했다.

───!

충격파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김우진은 도끼날을 잡고 잠시 멈칫했다.

지난 3개월간의 훈련이 효과가 있는지 그녀의 마력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정순해졌다. 자연스레 방어하는 불꽃의 소모가 더 커졌다.

‘언제 이렇게까지 됐지?’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그녀는 집행자였다. 집행자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자였다.

‘아니. 그럴 거였으면 진즉에 됐겠지.’

디아네의 성장은 단순히 그런 것을 뛰어넘었다. 이건 믿을 수 없지만 신앙이다. 그의 권속이 됨으로서 힘을 부여받고, 그를 충실히 따름으로서 그 힘에 대한 감응력이 올라가고 있다.

미친.

믿을수록 강해진다니. 어디 만화나 소설에나 나올 법한 광신도다.

그 신앙의 대상이 자신인 것에 감사해야 할지, 아니며 두려워해야 할지 김우진은 혼란스러웠다.

“너.”

“예. 신이시여.”

“신이라고 부르지 말고.”

“하지만 신을 신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무어라 부른다는 말입니까?”

“소장이라고, 소장.”

“···자각을 하셨음에도 아직 숨기길 원하신다면 이 또한 종의 입장에서 충실히 따르겠습니다.”

“됐고.”

어째 대화를 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프다.

괜히 들였나 싶다가도 손에 꼽히는 전력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너 이제 신해도 되겠다.”

때가 되었다는 것.

그날, 두리쉬마는 이전의 힘을 한층 되찾았고, 새로운 신이 탄생했다.

“소장신이시여! 제가 신이 되었음에도 소장님을 향한 신앙이 굳건하니, 소장님은 신마저 섬기는 신이시니 진정한 주신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하, 소장신은 또 뭐야.

돌아버리겠네, 진짜.

* * *

신이 된 하이엘프가 세계수가 가지 위에 앉아 바람을 즐겼다.

“과연 이길 수 있을까요?”

이 날을 바라오기는 했다. 세상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주무르는 백신전을 무너트리고 싶었다.

처음에는 지인의 복수였으나 이제는 그냥 대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겪으면 겪을수록 백신전의 방법은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과연 승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녀가 신이 되었고, 신들 조차 농락하는 김우진이라는 괴물이 있긴 하지만 백신전은 백신전이다.

주신들이 있고 그 휘하의 신들과 무수히 많은 집행자들이 있다.

지금까지는 계약에 기대어 허점을 이용해 나름 몇 방 먹였다지만 전면전으로 간다면 과연 승산이 있을까.

이쪽의 전력이 다 신이 된다고 한들 여섯인데.

물론 어머니 나무도 둘이나 있고 죄수들과 집행자들도 있긴 하지만 역시 상대가 상대다.

“역시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있는 건 없단다. 어쩌면 승리할 수도, 어쩌면 패배할 수도 있지.”

중요한 건 승리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과 백신전과는 더 이상 같은 우주 아래 살 수 없다는 거다.

“이겨야만 하는 거란다. 그래야 미래가 있어.”

시에나는 동족들의 몰살을 떠올렸다. 엘프들의 뼈로 쌓아 올린 산은 결코 잊혀 지지 않는 절망적인 기억이다.

신이란 그런 것들이다. 인류를 위한다고 하지만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쳐내 버리는 독재자들.

“하지만 누군가는 죽겠죠. 그게 연옥의 누가 될지 모르고요.”

“두려운 거니?”

“두렵지 않다면 거짓이에요. 그리고 만약 죽는 게 제가 된다면 억울할 거예요.”

“억울?”

“세이드님에 대해서 듣지 못한 거요.”

그래,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더 미루어둘 게 무엇인가.

율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이 된 그녀조차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백신전과의 전쟁을 눈앞에 두고도.

그녀는 아직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 * *

- 바빠. 다들.

- 끼잉?

가장 높은 가지. 그 위에 앉은 두 정령이 연옥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차례대로 죄수들을 훈련시키는 김우진.만찬을 즐기고 다 게워내는 베르너.

율리아와 대화를 나누는 시에나.

곤죽이 되고도 마력포를 보강하겠다고 공방에 들어가는 데르카인.

김우진을 찬양하며 졸졸 따라다니는 디아네.

두리쉬마에게 흠씬 얻어맞고 기절한 강민식.

그 틈을 타 지치지도 않고 두리쉬마에게 달려드는 타르칸까지.

이제는 익숙하다면 익숙해진 풍경이었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풍경이기도 했다.

- 전쟁. 한대.

- 낑?

신들이 쳐들어온다고 했다. 김우진을 죽이기 위해서, 연옥을 망가트리기 위해.

- 안 돼.

용납할 수 없다.

이곳은 그녀의 보금자리였다.

그녀가 살아 숨 쉬는 고향이자, 그녀의 세상이었다.

김우진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며 율리아는 그녀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 둘만이 아니었다. 이곳의 사람들과는 어느새 정이 들었다.

자신을 애정해주는 소장도, 놀리는 맛이 있는 하이엘프도, 푸근하게 그녀를 쓰다듬어주는 엘프도, 자신과 나르를 놀아주는 초소형 소인도 좋았다.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미친 짓을 벌이는 난쟁이도, 매일 같이 찾아와 함께 김우진을 신으로 섬기자는 광신도도, 열매를 달라고 징징거리는 인간도, 매일 김우진이나 두리쉬마에게 덤볐다가 기절해있는 시간이 더 많은 짐승도 좋지는 않지만 썩 나쁘지도 않았다.

그래서 잃고 싶지 않았다.

백신전이 무엇인지, 어째서 전쟁이 벌어지는지 그녀는 몰랐다. 딱히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하나.

이곳은 그녀의 영역이다.

저들은 그녀가 지키고 싶어하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 못 해. 용납.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의 품 안에 든 자들을 죽일 수 없다.

- 그렇지?

- 끼잉!

릴리가 결연하게 각오를 다졌다.

나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세계수들 또한 전쟁을 준비했다.

세계수의 권능이 더욱 단단하게 방벽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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