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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88화 (88/150)

# < 087. 경계 중 이상 무 >

“타르칸의 수준이 신에 필적하게 올랐다는 겁니까?”

“내 생각은 그렇다.”

“두리쉬마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수인들이 원래 그렇다.

아주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그저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진다. 실전으로 육체가 단련되고, 경험이 축적된다. 싸우기 위해 살아가는 짐승들은 수준이 올라가는 것도 언뜻 보면 그렇게 단순하다.

뭐,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환영이지.

만약 연옥에 들어온 처음부터 수인들과 매일 같이 대련을 해줬다면 어느 수준까지 올랐을까하는 가정도 들었지만 그저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신을 죽여 업을 쌓는다.’

그것으로 힘을 회복한다.

상대가 신인만큼 무조건적으로 효과가 있을 거다. 거부할 이유가 없다.

신들을 세계수의 배터리로 써 먹는 건 여전히 효과적이지만 하나 정도가 빠진다고 큰 문제가 일어나는 건 아니니까.

문제는 타르칸 톨리스가 정말로 신이 될 자격을 갖추었느냐다.

김우진은 타르칸을 비롯한 죄수들의 수준이 어지간한 집행자들을 씹어먹을 정도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신은 또 다르다.

신들을 제외하고 가장 신에 근접한 자. 율리아는 세계수의 열매라는 기적까지 따라주어 그 자격을 갖추었으나 타르칸은 아니었다.

페트로가 신이 된 게 그 증거다. 타르칸보다 신에 가까운 자가 몇이나 더 있을지 알 수 없다.

“일단 당장은 말고 유예기간을 좀 가져보도록 하죠.”

자칫 잘못하면 기껏 잡은 신을 다시 돌려주는 꼴이니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신중은 곧 확실한 대비다.

“당분간 저만 따로 봐주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두리쉬마님과 번갈아가며 네 수준을 끌어 올릴 거다.”

“두리쉬마님도 말씀이십니까?”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강약약강의 전형과도 같은 수인족답게 타르칸은 두리쉬마에게 한 번 패배한 이후 예의를 주입 당했다. 김우진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어쨌든 수인에게 있어 실전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다. 김우진과 두리쉬마,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강자가 번갈아 가며 실전처럼 붙어준다면 과연 신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최대한 종식시킬 수 있다.

“앞으로는 개인 교습이다. 차라리 죽게 해달라고 빌 정도로 격할 거니까 마음 단단히 먹도록.”

“살다 살다 수인의 훈련을 도와주게 될 줄은 몰랐다만, 백신전에 한 방 먹일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허나, 나는 정말 실전처럼 할 것이다.”

김우진과 두리쉬마는 적당히라는 것이 없었다.

“바라던 바입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수인들의 귀족이라는 달의 늑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세 달이 지났다.

* * *

금속은 때릴수록 단단해진다.

그리고 수인은 때릴수록 강해진다. 어느 만화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수인을 더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확신이 생겼을 때, 두리쉬마는 신 하나를 죽였다.

콜카트라는, 김우진이 잘 모르는 자였다.

신을 죽인 업이 두리쉬마의 몸으로 흡수되었고 업은 막대한 마기를 함께 제공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풍족한 마기에 두리쉬마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변은 두리쉬마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번쩍, 한 줄기 빛이 차원을 그대로 관통하여 타르칸의 몸을 뒤덮었다. 그리고 빛 줄기가 사그라진 자리에는 한 마리의 짐승이 신이 된 채 서 있었다.

“이게 신의 힘···!”

느껴지는 전능감에 타르칸 톨리스가 포효했다.

“크하하하하하!”

용사로서 신의 힘을 다루는 것과 신이 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당연히 그 고양감과 충만감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하는 수준의 것이다.

그래서일거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리쉬마 덤벼라!”

그의 투지가 다시 샘솟고, 말이 다시 짧아진 것은.

그나마 뼛속 깊이 각인된 공포로 김우진에게는 하지 못하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역시 짐승은 짐승이군. 주기적으로 매가 필요하니.”

망치가 춤을 추었고 짐승은 복날에 개 맞듯이 맞았다.

“어, 어째서···?”

쪽도 못쓰고 당한 타르칸이 신음을 흘렸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신이 하나 늘었다.

* * *

“···음?”

아카식 레코드를 살피던 베리안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방금 전, 이 우주에 이변이 일어났다.

다급하게 백신전의 신들이 소집되었다. 그들 휘하의 모든 집행자들도 마찬가지.

“방금 전, 아카식 레코드가 새로운 신을 선택했다.”

허나, 집행자들 중에는 신이 된 자가 없었다.

이번에도.

“또 없다는 말입니까?”

“미치겠군.”

신들이 헛웃음을 지었다. 신이 하나 늘었다는 것은 신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행자가 신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백신전의 눈 밖에 벗어난 존재가 신이 되었다는 뜻이다.

둘 다 백신전 입장에서는 최악이다.

“죽은 건 이 자리에 없는 여섯 명 중 하나겠군.”

알비츠가 뿌득, 이를 갈았다.

그날 이후, 한 달이 지났고 알비츠는 꾸준히 변방 차원을 수색하며 사라진 신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무엇 하나 나오지 않았다.

헌데 갑자기 신이 죽었다고? 완전히 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망할 타이탄 놈.

“그들의 위치는 찾았나?”

“찾지 못했다.”

“우리를 벗어난 신의 존재는?”

“그것 또한.”

“타이탄은?”

“마찬가지다.”

“아카식 레코드를 종종 살피면서 찾아내는 게 없군. 정말로 그들을 찾기 위해 살피고 있는 게 맞나?”

상황이 좋지 않으니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직접 발품을 팔고 있는 그와 달리 베리안은 아카식 레코드를 살피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선을 넘지 마라, 알비츠. 아카식 레코드의 기록은 방대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그렇지 못한 것이 더 많다. 너라도 마찬가지일 터.”

“우리는 계속해서 농락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명확한 주체도 모르지. 그런 상황에서 너는 여전히 아카식 레코드랑 허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알비츠는 최근의 상황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우진도, 타이탄도, 새로운 신도. 모든 게 어그러지고 백신전이 만들어 놓은 판이 엎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스운 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주신 중 하나인 베리안이 생각보다 태평해 보인다는 것이다.

아카식 레코드? 좋다. 그 기록에는 모든 게 있으니 당연히 뒤지다 보면 답이 나온다. 하지만 그 방대함은 주신이라 해도 몇 백년, 몇 천년이 걸릴지 모른다.

지금처럼 시간이 중요한 일에는 직접 나서는 게 차라리 낫다.

‘칼카르만 있었어도.’

같은 주신이라고 한들 균형이 완전히 딱 떨어지지 않는다. 셋이서 맞추고 있던 균형이 깨어지자 베리안이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기색이 늘어났다.

“조만간 그러도록 하지. 허나 지금 이 자리는 그런 사소한 것을 논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다. 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신의 죽음과 탄생을 알지 못했을 거다.”

“···그건 인정하지.”

“해서 나는 이번에는 반드시 연옥의 죄수가 신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없다. 직감이다.

허나 가장 그럴듯하다.

무엇보다.

“때마침 준비도 끝났다.”

죄수들이 모두 모였다.

총 43명의 죄수들. 김우진이 내보낸 7명을 포함하면 50이다. 계약을 끝내기에 충분한 숫자다.

“죄수들을 연옥으로 보내 계약을 끝내고 김우진을 친다. 그럼 우선 신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찬성입니다.”

신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진 신들을 찾는 것이나 타이탄을 찾는 건 이 일을 해결한 뒤에 해도 되지 않나?”

“···좋다. 허나, 김우진을 처리한 뒤에는 반드시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약속하지.”

마침내 계획이 실행되었다.

* * *

“더 많아졌군.”

신들이 죽이고 싶어 하는 대상 2위로 꼽히는 알베니우스는 틈틈이 릴리의 용인 아래 차원의 틈새를 벌려 외부를 살폈다.

점점 촘촘해지는 포위망에 그리 멀리 나갈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저걸 뚫어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김우진의 방법들이 통했으면 좋겠는데.”

정면승부는 답이 없다. 김우진의 말대로 잘 되어 시간이 끌리고 이쪽의 전력을 올려야 한다.

문제는 올린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해답이 보이지는 않는다는 거다.

이미 신이 된 율리아 카르센, 그리고 신 후보로 만들고자 하는 타르칸 톨리스, 시에나 올름, 데르카인 알베트, 강민식, 베르너 레트만, 디아네 디트린까지.

계획대로만 된다면 일곱의 신이 아군이 된다. 일곱의 신에 김우진을 포함하면 정말 더 없이 강력한 전력이 된다.

상대가 백신전만 아니라면 그렇다.

주신 하나가 죽었다고 한들, 아직 둘이나 남았다. 수많은 신들이 죽고 납치 되었다고 한들 아직 수십 단위의 신들이 남아있다.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집행자들은 훨씬 많고.”

집행자들 또한 신들에 비하면 약할 뿐, 모두 초월자들이다.

“두리쉬마가 있다고 한들, 두리쉬마가 회복하려면 시간이 엄청나게 필요하고.”

애초에 연옥을 벗어나지 않고는 크게 방법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깜깜한 앞날에 알베니우스가 한숨을 쉬었다.

해결책이 필요한데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용사들을 끌고 오면 집행자들이라도 덜 상대하게 될 텐데.’

281명의 전직 용사들이다. 알베니우스가 직접 우주의 힘을 넘겨줬으니 이제 전직 용사란 이름을 때버려야겠지만.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종말 차원에 던져놔서 전원이 살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꽤나 업을 쌓았을 거다.

‘그러고 보니 두리쉬마가 없으니 더 이상 차원을 이동할 수도 없을 텐데.’

설마 다 죽은 건 아니겠지. 아니면 두리쉬마를 찾는 신들의 수색에 걸렸다거나.

- 뭐?

그때, 파랑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다가왔다.

신력을 꾸준히 흡수해서인지 릴리의 언어 능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혀 짧은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신에 생략된 게 많았다. 알아서 파악하려면 머리가 아픈 건 이전이나 지금이나 같았다.

“신들을 살피고 있다. 포위망이 더 두터워졌어.”

- 가?

“가고 싶냐고? 지금 가면 죽는다. 그러는 너야 말로 여기까지 뭐하는 거냐?”

- 근무.

“근무?”

- 소장. 경계.

“소장이 경계 근무를 서라고 했다고?”

- 응.

두 그루의 세계수가 연옥에 뿌리를 박았지만 차원 전체에 뿌리를 퍼트린 건 릴리였다. 연옥 전체는 릴리의 손 안에 있었고 차원에 누군가 접근한다면 가장 먼저 반응할 수 있었다.

- 저!

그때 릴리가 날개를 뻗었다. 그녀의 날개 끝에는 연옥으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저건···.’

신은 아니다. 그리고 저 복장은 김우진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호송대다.

‘죄수들이다!’

과연 김우진과 두리쉬마의 예상대로다. 죄수들을 보내 계약을 끝내려는 거다.

“빨리 김우진에게 알려야···!”

하지만 그보다 릴리가 더욱 빨랐다.

- 발견. 적.

릴리가 눈을 샐쭉하게 떴다. 삐이이이, 맹렬한 울음소리가 연옥 전체에 퍼져 나갔다.

경고음이었고 준비를 알리는 시작음이었다.

엘프와 드워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빨리, 빨리!”

“마침내 때가 왔다!”

- 저쪽! 각도. 조금 위로. 더!

릴리의 날개가 향하는 방향으로 수십개의 마력포대들이 자리했다. 엘프들이 세계수와의 연결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응집!”

“응집!”

- 거리. 약 100km.

“거리 약 100km!”

“방향은 동북!”

- 끼잉, 낑!

기운이 빨려나가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르가 신음을 내뱉는다.

한 번 해보았던 릴리는 의연한 표정으로 적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 쏴!

“발포!”

“발포하라!”

─────!

광활한 신력이 요동친다.

수십 줄기의 섬광이 전진한다. 차원의 방벽을 통과해 그대로 뻗어나간다.

100km의 짧은 거리를 순식간에 지나치고.

죄수들을 이끌고 오는 호송대를 덮친다.

비명도, 저항도 없다. 광활한 폭발이 그저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뿐.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폭발이 소멸한 끝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아니, 조금 남긴 했으나 적어도 죄수들은 거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 처리!

- 이상! 경계 무!

릴리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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