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87화 (87/150)

# < 086. 방안 >

“김우진과의 계약을 끝내겠다고?”

오직 주신에게만 허락된 공간. 새하얀 빛의 기둥을 살피던 베리안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대꾸했다.

“그래.”

“김우진을 묶어두기 위해서 계약을 맺었다. 더 묶어두기 위해서 죄수들을 구슬리고 투입시켰다. 헌데 이제와서 계약을 우리의 손으로 끝내버리겠다고?”

“그러면 너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나? 우리는 그날, 그 자리에서 김우진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은 건 더 큰 피해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김우진은 강했고 신 둘을 죽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한 둘을 더 죽일 여력이 있었다.

주신들이 나선다면 피해는 줄어들겠지만 김우진은 영약한 자다. 작정하고 도망치며 다른 신들을 노린다면 추가적인 피해는 반드시 있었다.

신들이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신의 죽음을 처음 목격했기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당황하거나 패닉이 온 자도 있었다.

그런 버러지들을 과연 신이라고 해줄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일단은 신이었고 더 큰 피해는 막아야 했다.

신은 그들의 권속인 집행자나 피조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귀중한 존재들이었으니. 하나하나가 귀했다.

그래서 김우진과의 추가적인 전투를 회피했다. 신의 뜻에 반하는, 힘을 포기 하지 않는 용사들을 가두어 둔 연옥의 소장으로 부임시켜 묶어두고자 했다.

때마침 연옥의 새로운 소장이 필요하기도 했으며, 계약을 어긴다는 빌미로 잘하면 김우진을 평생 묶어 둘 수도 있었다.

헌데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계약은 오히려 김우진이 아닌 신들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해가 되어 버린 계약은 파기해야 마땅하다. 파기할 수 없다면 당장 끝이라도 내야지.”

그리고 미루어두었던, 김우진이라는 숙제를 해치우는 거다.

“계약으로 인해 김우진이 연옥에서 무엇을 하든 관여할 수 없었다.”

“계약으로 인해 김우진이 신들을 농락하는 것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으로 인해 김우진을 죽이지 못했다.”

그러나 계약이 파기 되면.

“놈도 끝이다.”

힘이 없어서 김우진을 내버려 둔 것이 아니다. 김우진을 옭아맬 그물이 아니라 놈을 지키는 방패가 되어버린 계약이라는 장애물이 사라지면 신들은 더 이상 거리낄 게 없다.

애초에 백 명의 신들이 작정하고 싸운다면 고작 한 명의 인간에게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

신 한두 명의 피해만 감수한다면.

“이전이면 모든 신들이 기피했겠으나 이제는 아니다. 한 둘의 피해로 김우진을 막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이미 여럿이 죽었다. 백신전의 질서가 더 어그러지는 것을 그들은 원치 않았다.

“김우진이 쉽게 당할 것 같나?”

“물론 순순히 당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놈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없다. 정당하게 끝나는 계약 앞에 놈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이미 용사들 대부분을 모았다. 곧이다.”

연옥에 들어가는 죄수는 ‘반드시 한 차원 이상을 구한 용사’라고 명시되어 있다.

김우진을 보다 확실하게 옭아매기 위해 설정해놓은 조건이 오히려 이쪽을 번거롭게 하고 있다.

차원은 많지만 종말 위기에 처한 차원은 흔하지 않고, 그런 차원을 구원한 용사는 더욱 희소하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차원은 종말을 맞이하고, 용사들이 발탁되며, 차원을 구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렇게 준비된 용사가 스물 한 명. 계속 추가되고 있으니 얼마 남지 않았다.

“또 다시 집행자를 밀어 넣지 않고?”

집행자는 엄연히 차원을 구했던 용사들이다. 때문에 그들은 연옥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했다.

“디아네가 있으니까.”

디아네는 모든 집행자들의 얼굴을 안다. 그리고 집행자들도 그 사실을 안다.

출소와는 별개로 김우진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스스로 사지로 걸어들어가기를 바라는 자는 없다.

물론 명령하면 가기야 하겠지만 그냥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뿐이다. 어차피 약간의 시간만 있다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니까.

“페트로 코페르크는? 페트로가 신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페트로가 아니면 없다. 집행자들이란 신들의 손과 발이기도 하지만 만약을 대비한 예비 신이기도 하다.

우주는 넓다. 신들이 잘 키워놓은 예비 신을 뛰어넘을 자가 하나 정도는 있을 수 있다. 김우진처럼. 하지만 둘은 아니다.

“알고 있다.”

“왜 하필 그를 연옥으로 보냈지?”

“가장 신에 근접하다는 것은 가장 믿을 만 한 집행자라는 뜻이다. 김우진을 상대로 믿을 만 한 자를 보내는 게 잘못인가?”

“···그건 그렇군.”

알비츠가 손가락을 튕겼다. 새하얀 공간에 생성된 의자에 앉았다.

“데리고 오지 않을 생각인가?”

“데리고 오려면 데리고 올 수는 있겠지. 허나, 김우진이 순순히 내어줄 리가 없다.”

반드시 무언가 꼬투리를 잡아서 그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무언가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신이 된 이상, 죄수가 아니더라도 김우진이 페트로를 죽일 수는 없다.”

애초부터 백신전 소속의 집행자였고 이제는 백신전 소속의 신이니까.

“그러니 조금 늦게 구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지.”

어차피 죄수들을 모두 보내고 전쟁이 벌어지면 김우진은 죽는다. 자연스레 페트로는 백신전의 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리가.

“헌데 아까부터 아카식 레코드에서 눈을 때지 않는군.”

“네가 놓쳤다는 어둠의 사도를 찾고 있다. 더불어 새로운 신이 탄생했는지도 확인하고 있고.”

“의외군. 평소에 넌 아카식 레코드에 자주 오지 않았잖나?”

“상황이 이러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군.”

알비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잡히는 게 있다면 알려줘라. 나는 김우진을 끝낼 준비를 마저 할 테니.”

그가 사라졌다.

홀로 남은 베리안이 중얼거렸다.

“권속의 끈이 끊어졌으니 내가 놈을 돌봐줄 필요는 없다.”

권속이 주신과의 연결을 끊었다는 것은 주신에게 더 없는 수치다. 때문에 베리안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김우진에게 어떤 일을 당했든, 주신과의 연결이다. 그 끈을 끊어내고자 한다면 권속 본인의 의지가 없어서는 안 된다.

놈은 고통에 못 이겨 주신을 버렸다.

그런 놈을 신경써줄 필요는 없다.

베리안이 상념을 지우고 다시 아카식 레코드에 집중했다.

“어둠의 사도를 찾는다라.”

틀린 말은 아니다. 겸사겸사 찾고는 있으니.

* * *

“음.”

김우진은 계약이 종료된 이후를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 일로 독기가 바짝 오른 신들이 계약이 끝났다고 순순히 보내줄까? 차원 밖에 병력을 모으고 있는 것만 봐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력으로 부딪혀 올 거다. 지금의 그라면 신 몇 십 놈은 씹어 먹을 자신이 있지만 주신 둘이 한꺼번에 공격한다면?

“···죽겠지.”

패배한다. 반드시.

설사 기적적으로 이긴다고 해도 그 뒤에 남은 신들을 상대할 여력이 남지 않는다.

죄수들을 이용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전면전은 필패다.

“일단 막긴 막아야 하는데.”

방법이 뭐가 있을까.

“페트로처럼 출소를 한다고 해도 내보내지 않는 건요?”

“그건 당연한 거고.”

“차원 자체를 닫아버리는 건 어떨까요?”

“차원을 닫는다?”

“어머니 나무님들의 힘이면 가능해요.”

세계수의 뿌리는 차원의 핵에 닿아 있고 세계에 간섭할 수 있다. 당연히 차원의 방벽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문을 아예 폐쇄해 버릴 수도 있다.

“아무리 신들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뚫어낼 수 없을 걸요.”

“주신은?”

“···창문을 여는 정도?”

“강화 유리야?”

“그게 뭐죠?”

유리창을 깨부수고 들어오는 건 생각보다 쉽다.

“상황에 따라서 고려는 해보겠지만 일단은 기각.”

율리아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법 없습니까?”

“네가 원하면 이주일인가 닫을 수 있지 않니?”

“됩니다. 딱 이주지만 그것도 일단 써먹죠.”

일 년에 딱 이주일의 휴가. 작년에 강민식을 잡으러 썼으나 일 년이 지났으니 리셋 됐다.

“병가를 핑계로 손님을 안 받는다고 하는 건 어떻습니까?”

타르칸이 손을 들고 말했다.

“저희 부족에서 다른 부족을 뜯어먹을 때 많이 쓰던 방법인데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러 오라고 해놓고 오면 족장님이 아프다고 만나주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약속한 기한이 지나면 그걸 명분으로 전쟁을···.”

“딱 당신 같은 짐승이랑 어울리는 추한 방법입니다.”

“뭐라고?”

“소장님,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디아네가 경건하게 입을 열었다.

“다 받아 들이 되, 출소라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입을 전부 봉해버리는 겁니다. 애초에 출소의 권한은 소장님에게 있으니 못 들었다고 내보내지 않으면 신들이 무어라 하겠습니까.”

“그게 내가 말한 거랑 뭐가 다르냐!”

“소장님이 가짜들 앞에서 아프다는 거짓말을 해야 하잖습니까. 소장님의 위신을 깎는 일은 결코 허용되서는 안 됩니다.”

“미친 광신도 같으니!”

“냄새나는 짐승이 지금 저한테 뭐라고 하셨습니까?”

짐승과 광신도가 으르렁거리기 시작했고 그 사이, 데르카인이 의견을 제시했다.

“그냥 마력포로 쏴버리는 거네. 호송대가 차원에 오기 전에 소탕해버리는 거지.”

“너무 대놓고 적대하는 건 안 됩니다.”

“적대할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되네.”

“마력포를 쏘고요?”

“최근 들어 균열이 벌어지고 마물들이 연옥에 침범한 게 한두 번인가. 그걸 핑계로 마물인 줄 알고 사전에 격퇴하려고 쏴버렸다고 하면 되지 않나.”

진실이 어떤지 지들이 알 바인가. 어차피 대충 짐작하고는 있겠지만.

데르카인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최곤데요.”

김우진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이제부터 들어오는 죄수들은 신들의 편에 서서 시키는 대로 하고 떡고물을 받아먹으려는 놈들일 터. 자비를 베풀 이유는 없다.

“좋았어. 전부 다 하도록 하죠.”

그러면서 두리쉬마가 힘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고 죄수들이 능히 신이 될 수 있는 수준까지 키우는 것.

당장 직면한 최우선 과제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꽤 많이.

* * *

“끄억, 나쁘지 않군.”

벌컥 벌컥, 빠르게 사라지는 독기들에 강민식은 피눈물을 삼켰다.

“내, 내 피와 땀이···.”

물론 그의 피와 땀에도 독기가 섞여 나오긴 하지만 실제 피와 땀은 아니다.

마물에게서 흡수한 마기와 독기를 정제한 것. 신들에게 치명상을 입힐 비밀 병기로 생각하고 열심히 뽑아냈더니 그게 애먼 불청객의 입 속으로 다 들어가고 있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두리쉬마.”

듣기로는 타이탄이라는 고대 종족의, 한 때는 신조차 위협했던 위대한 거인 종족의 마지막 후예라는데 저게 어딜 봐서 거인족인가.

기껏해야 10cm. 한 대 때리면 날아갈 것 같은 놈. 그러면서 어떻게 생겨먹은 위장인지 그의 독이 끊임없이 들어가고 있긴 하다.

“음? 불렀나?”

“아니, 아닙니다.”

강민식이 고개를 저었다. 신들에게 한 방 먹이고 공을 인정 받을 자신의 독이 저렇게 소모 되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쩌겠나. 김우진의 명령인 것을.

“독들이 꽤나 훌륭하군. 마기도 꽤나 순수하게 잘 정제했다. 덕분에 생각보다 더 회복이 될 것 같다.”

“별 말씀을.”

“허나 역시 한참 부족하다.”

쨍그랑, 두리쉬마가 마지막 빈 병을 내던졌다. 끄억, 거칠게 트름을 하고 의자에서 내려왔다. 가볍게 손을 뻗자 어딘가에 있던 자그마한 망치가 날아와 안착했다.

“충돌이 멀지않았으니 최대한 빨리 힘을 되찾아야 하는데 연옥을 벗어날 수 없는 게 너무 안타깝군.”

“포위 되었다고 하셨죠.”

“이제는 이 상태로도 나갈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게 되었다.”

솔직히 강민식은 잘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신격을 얻지 못한 그에게 차원 이동이란 그저 눈을 감았다 뜨면 세상이 바뀌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였다.

“여기 있었군.”

은빛의 짐승이 땀내와 피 냄새를 진득하게 풍기며 다가왔다.

“소장님에게 들었다. 네가 타이탄이라는 엄청난 종족이라지?”

“너는?”

“나는 위대한 달의 늑대, 타르칸 톨리스다. 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짐승들은 변하는 게 없군. 싸울 상대만 보면 발정난 개처럼 달려드는 게.”

음. 두리쉬마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자그마한 망치를 가볍게 휘둘렀다.

만전일 때에 비하면 역시나 한참 부족하다. 특히나 최근에는 칼카르를 죽이고 그 업을 흡수했기에 느껴지는 괴리감은 더 컸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앞뒤 분간 못하고 날뛰는 짐승 하나를 참교육 하기에는.

우드득, 두리쉬마의 몸이 기괴하게 꺾였다.

“어?”

강민식이 당황하며 눈을 몇 번 껌뻑였을 때, 자그마한 10cm의 소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2m에 가까운 근육질의 남자가 서 있을 뿐.

“따라와라.”

“크하하하, 타이탄이라더니 화끈하구나! 좋다!”

“너한테 예의와 존중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마.”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둘은 한 때는 도축장이라 불렸던, 그러나 지금은 투기장이라 불리는 곳에 도착 했다.

관중은 수인들과 타이탄에 호기심을 가진 거인족 하나가 전부다.

‘타이탄.’

소장님이 엄청난 강자라고 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힘을 잃은 상태라고. 그럼에도 자신과 좋은 상대가 될 거라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과거에 얼마나 대단했든, 지금은 그냥 작은 소인에 불과했다. 힘을 얼마나 잃어버렸든, 당장 느껴지는 기운은 약해 빠졌다.

그런데 적수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결투를 신청했다. 소장님께 보여주기 위해서, 율리아 카르센보다 먼저 신이 되지 못해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선공은 양보하겠다.”

“고맙군.”

그와 동시에.

“······!”

타르칸 톨리스는 섬짓함을 느꼈다.

서늘해지는 동골, 확장되는 동공, 경고를 보내는 감각들.

피한다. 아니, 늦었다.

본능적으로 오러를 끌어 올리며 양팔을 들어 올렸다.

────!

그 직후, 망치가 떨어진다. 소장님의 검격보다도 한층 묵직한 충격에 숨이 턱 막혀온다.

그 한 방으로 상대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깨달았다. 허나, 타르칸은 본능적으로 대응했다.

무릎을 굽히며 한 걸음 물러나 최대한 충격을 흘리고 욱신거리는 팔에 힘을 주며 힘을 토해낸 망치를 밀어낸다. 가볍게 열리는 상대의 상체에 손톱을 들이민다.

카각!

손톱과 살이 부딪혔음에도 흡사 금속과 금속이 부딪힌 것 같은 파격음이 난다.

손톱이 빠질 것 같은 아픔에 타르칸이 신음을 흘린다. 상대의 피부는 어느새 검게 물들어 있었다.

“과연···!”

역시 소장님이 허언을 할 분은 아니었다. 잠시 소장님을 의심한 스스로를 타박하며 전의를 불태운다.

상대는 강하나 그렇기에 더욱 싸울 가치가 있다. 짐승의 투지는 꺾이기는 커녕 더욱 세차게 타오른다.

전신의 털이 바짝 선다. 온 몸을 휘감는 은빛의 오러가 그의 움직임에 따라 궤적을 그린다.

순식간에 공간을 격한다.

─!

──!

손톱과 주먹이, 손톱과 망치가 부딪힌다.

주먹은 할 만하다. 허나 망치는 너무도 무겁다. 망치에 담긴 거력은 너무도 쉽게 그의 오러를 깨부수며 전진한다. 충격이 누적된 근육이 파열하며 더욱 큰 고통을 선사한다.

그럼에도 타르칸의 정신을 더욱 맑아진다.

상대는 빠르다, 그리고 힘이 세다. 예전의 타르칸이었다면 순식간에 당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계속해서 이어지는 소장님과의 실전은 그를 잘 벼려진 한 자루의 칼날로 만들었다.

그 증거로 상처의 비율은 타르칸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상대에게도 분명히 새겨지고 있다.

통한다.

감각을 곧추세우고 아픔을 잊는다. 마기에 저항하느라 비명을 지르는 심장을 쥐어짜내며 더욱 마력을 끌어 올린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힘을 대부분 잃었다면 지금의 상태를 장기적으로 끌고 갈 수는 없을 터.

그건 안 된다. 이런 상대가 만전이 아닐 때 승부를 내는 건 수인의 예의가 아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전력을 다한다.

황금빛 동공이 찬란한 서기를 발한다.

상대의 검은 눈동자가 더욱 깊어진다.

손톱이 궤적을 그린다.

망치가 주인과 공명하며 힘을 방출한다.

──────!

거대한 충격에 세상이 흔들린다.

관람석을 지키는 방어 마법진들이 깨어진다. 관람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급히 자신들의 몸을 지켜낸다.

그리고 모든 것을 집어 삼켰던 충격파가 사라진 자리에는 기절한 짐승과 그를 내려다보는 두리쉬마가 있었다.

“···재미있군.”

두리쉬마가 욱신거리는 상처들을 매만졌다.

과연 김우진이 자신할 만하다.

아무리 그의 힘이 약해졌다 한들 격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 신들에게 대적하고 간신히 살아남아 어둠의 사도가 되어 격을 올렸다. 주신 칼카르를 죽이고 업을 쌓았다.

헌데 저 은빛 짐승은 그런 그의 육신에 제법 많은 상처를 남겼다.

김우진이 훈련을 시킨다 뭐한다 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그냥 스스로의 재능이다.

강하다.

만약 신격을 얻기만 한다면 분명히 어지간한 신들보다 더 강할 거다.

“···잠깐만.”

그렇다는 건.

적어도 지금 당장 타르칸을 새로운 신으로 만들어도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새로운 신의 탄생은 곧 기존 신의 죽음을 뜻하니.

“찾았다.”

어둠의 사도에게 신은 아주 좋은 경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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