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76화 (76/150)

# < 075. 전투 >

마침내 침공이 시작되었다.

하늘을 가득 채운 검은 덩어리들.

마물들이 몰려온다.

느껴지는 가공할 마기에 타르칸 톨리스가 전율했다.

“크흐흐흐.”

싸움은 수인들의 본능이다.

강함을 추구하고, 보다 강한 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싸운다.

최고. 그것이 타르칸 톨리스가 추구하는 투쟁이었다.

언제나 그가 밟고 선 대지 위에, 그보다 강한 자가 없어야 했다. 적어도 연옥에 오기 전까지는 항상 그랬다.

하지만 소장을 만나면서 진짜 벽이라는 게 뭔지 깨달았다.

그 강인함, 그 강대함, 그 위압감.

모든 면에서 타르칸은 꺾였다. 완벽하게 패배했고 완벽하게 굴복했다.

하지만 그건 오직 김우진 한정이었다.

시에나에게 패배하는 것은.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했던 율리아가 먼저 신격을 얻는 것은.

결코 원치 않았다.

분하고 억울했으나 굴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누구냐! 명색이 싸움을 업으로 살아온 수인인데 귀쟁이와 난쟁이들에게 밀리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

“맞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전장이다! 날뛰지 않을 이유가 없어!”

“옳습니다!”

조금 뒤쳐졌다면, 다시 따라잡으면 그만이다. 넘어버리면 된다.

“가자!”

“마물의 피로 포식하자!”

마물과의 전투는 그 발판이 될 것이다. 용사는 마물을 죽임으로서 업을 쌓을 수 있으니까.

수인들은 실전을 통해 더욱 빠르게 성장하니까.

“하아아아···!”

고향에 온 것 같은 친숙한 전장의 향기를 맡으며.

타르칸이 돌진했다.

‘굳이 무식하게 싸울 필요는 없지.’

그리고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사람 하나가 은밀히 그 뒤를 따랐다.

애초에 강민식의 전투 방식은 스타일리쉬하다. 힘이 아닌 속도와 독으로 승부를 보기에 마물의 군단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건 자충수다.

암살자에게는 암살자만의 전장이 있는 법.

다행히 이곳에는 암살자가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후퇴를 모르는 짐승들. 그들의 돌진은 해일과 같고, 그 해일에 휩쓸린 이들은 은밀하게 스치는 독과 검을 의식하지 못할 테니.

‘이번에 최대한 많은 독기를 흡수한다.’

그래서 힘을 쌓고 김우진이 만족할 만한 강자가 된다.

그리고 신이 된다.

‘내가 신이라니.’

꿈같은 미래에 강민식이 웃음을 터트렸다.

* * *

마물들이 밀려온다.

율리아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검을 다잡았다.

마물이 무서운 것은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다.

하이엘프로서, 율리아로서는 많이 싸워왔다. 하지만 신으로서는 처음이었다.

신으로서 마물들과 대적하고, 신으로서 신과, 집행자들과 대적하는 것은.

“평소처럼 하렴.”

시에나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어깨의 떨림이 멈췄다.

“넌 강하단다. 소장을 제외하면 이곳의 그 누구보다.”

“하지만.”

“그래서 더 불안한 거지? 네 실수로 일이 잘못되면 어쩌나 하고.”

“네. 소장님이 안 계시니까요.”

소장은 신들에게 맞고만 있을 수 없다며 알베니우스와 함께 잠시 연옥을 벗어난다.

자연스레 이곳의 최강자는 율리아, 그녀가 되었다.

그리고 힘에는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뒤 따른다.

“만약 한 명이라도 살아서 돌아가면 어떡하죠?”

집행자들이 숨어 있을지 모르는 마물의 군단에 율리아가 나선다는 건 그런 의미다. 그녀가 신위를 받았다는 것을 누구도 몰라야 하기에, 목격자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

“할 수 있단다. 나는 70년이 넘도록 연옥에 있었어. 그만큼 소장과 많이 부딪혔지.”

그래서 알고 있다.

“소장이 성격이 좀 그렇고 문제가 많긴 하지만 적어도 불가능한 일을 시키지는 않는단 걸. 하물며 여기에는 너만 있는 게 아니야. 굳이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단다.”

소장과 알베니우스가 없지만 시에나가 있다. 타르칸이 있고 데르카인이 있으며 광신도와 강민식, 소지가 있다.

그들은 결코 약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의존할 자들도 아니다.

“그냥 가서 날뛰렴. 신으로서 처음 맛보는 신의 힘을 마음껏 방출해. 모두 쓸어버리는 거야. 뒤처리는 우리에게 맡기고. 저 미친 짐승들처럼.”

율리아의 시선이 시에나의 손끝을 따라갔다. 그곳에는 마물들을 향해 질주하는 열다섯의 짐승들이 있었다.

선두에서 은빛 털을 휘날리며 마물들을 찢어발기는 달의 늑대는 광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 뒤에 이상한 인간 하나가 따라 붙었지만 그건 별개였다.

“너도 저래도 돼.”

“···정말 그래도 되겠죠?”

“그럼. 당연하지.”

“좋아요.”

검을 움켜쥔 율리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사실 처음부터 그러고 싶긴 했어요.”

은은한 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휘날렸다.

산들바람은 곧 폭풍이 되었다. 거대한 풍랑을 일으키며 주변을 할퀴었다.

율리아의 장기는 바람이었고 신위를 얻으면서 그 힘이 더욱 강화되었다. 바람은 그녀의 친구이며, 그녀의 검이 되었다.

율리아가 검을 내질렀다.

폭풍이 군단을 덮쳤다.

그리고 폭풍 사이로.

“쏴라!”

“모조리 박멸해!”

쾅쾅쾅쾅!

무한동력을 핵으로 삼은 마력포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 * *

마물들이 밀려온다.

데르카인은 심장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두려움? 공포?

아니, 이건 그딴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다.

고양감이며 투지이고, 호승심과 광기다.

“마침내···!”

“마침내 실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워프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두 명의 신을 흡수한 세계수의 무한동력. 그것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수 십 개의 마력포.

그 위력이 어떨지, 마력포를 제작한 드워프들조차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들은 미지를 향해 한 걸음 내딛었고 이제는 그 결과를 확인할 때다.

신과 세계수의 힘을 그대로 받은 마력포가 얼마나 강한지.

포대가 버틸 수는 있는지.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작정하고 쏘아대면 저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을지.

“프흐흐흐.”

드워프들이 광소했다.

“조준!”

“조준!”

마력포들이 일제히 각도를 조준했다. 목표는 하늘. 쏟아지고 있는 마물의 파도다.

하늘을 새카맣게 메운 덕분에 세세한 조절은 필요 없었다. 저 시커먼 덩어리 어디에 쏘든 맞을 테니까.

“응집!”

“응집!”

마나가 모이기 시작했다.

- 삐이···.

힘이 빠져나가는 감각에 릴리가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비례해 마력포에 응집된 마나들이 점점 많아졌다.

마나를 모으고.

그대로 압축하여.

폭발시켜 쏘아낸다.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마력포의 원리.

허나 마력이 신의 힘으로 대체되었을 경우는 그 누구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것이 지금.

“발포!”

이 자리에서.

“발포오오오!”

실현되려 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의 손에 의해.

─────!

고막이 찢어질듯한 굉음과 함게 마력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그것은 단순한 포탄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했다. 광선. 번개와 여러 가지 복합적인 힘으로 뒤섞인 수십 줄기의 광선이었다.

섬광은 그대로 마물의 군단을 휩쓸었다.

────!

연달아 일어나는 폭발이 마물들을 집어 삼켰다. 비명도 시체도 없었다. 그대로 소멸시키는 압도적인 파괴력은 전율, 그 자체였다.

“···아아!”

드워프들이 감탄했다. 자신들이 일구어낸 걸작에 눈물을 흘렸다.

“대박입니다!”

“데르카인님! 이걸 정말 우리 손으로 만들어낸 겁니까!”

“그래, 우리 손으로 만들었···?”

그 순간.

치이이익-

포신에서 불안한 신호가 왔다.

쩌적, 붉게 과열된 포신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그 불길한 징조에 드워프들이 비명을 질렀다.

“피해!”

“도망쳐라!”

“마력포가 터진다아아아!”

콰아아아아앙!

폭발이 드워프 무리를 덮쳤다.

* * *

“···저런 아둔한 난쟁이들 같으니라고.”

하찮은 피조물 주제에 감히 신의 힘을 다루려고 한 죄다. 자격이 없는 자들이 신의 힘을 탐하다니.

소장님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모조리 목을 베었을 거다.

디아네가 코웃음쳤다.

“그래도 파괴력은 쓸만합니다. 꽤 많은 마물들이 휩쓸렸습니다.”

“그야 당연하지요. 그것을 이용한 것들은 난쟁이들이지만 그 본질은 결국 신의 힘이니까요.”

저것은 난쟁이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신의 힘이 행한 마땅한 이적이다.

비록 그것이 본래의 주신에게서 앗아간 가짜들의 힘이지만 신의 힘은 신의 힘이니까.

“저희도 슬슬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서야지요.”

디아네가 날개를 펼쳤다.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던 손님들이 왔습니다.”

그녀가 일직선으로 날았다. 마물들이 넘쳐나는 어두운 하늘이 아닌,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집행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디아네 디트린?”

그리고 마물들이 만들어낸 자그마한 균열을 통해 은밀히 잠입하던 집행자들과 마주했다.

“오랜만입니다. 발라스님. 이렇게 뵈니 느낌이 새롭군요.”

“어째서 네가 여기에? 죽은 게 아니었나?”

“가짜들이 그렇게 말한 모양이군요. 제가 죽었다고.”

“가짜들이라고?”

“자신들을 신이라고 말하며 백신전에서 한 자리씩 해먹고 있는 가짜들 말입니다.”

“···너, 갑자기 돌아버린 거냐?”

“원래 돌아있다가 이제야 제 정신을 찾은 것입니다.”

디아네가 집행자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51명이라. 많이도 왔습니다.”

“다시 묻겠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베른님은 어디 가시고?”

“그 가짜는 진짜 주신을 위한 거름이 되었습니다. 가짜에게 마지막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니 영광된 길입니다.”

“무슨 헛소리냐! 가짜는 뭐고, 진짜는 또 뭐야!”

“가짜는 여러분이 섬기는 백신전의 무도한 반역자들입니다. 그리고 진짜는 이 감옥의 주인, 반역자들에게 찬탈 당한 진짜 주신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연옥의 주인? 김우진을 이야기하는 거냐?”

“김우진이 주신이라고? 미쳐버렸군.”

“애초에 제정신이 아닌 건 알았지만 더 심각해졌군.”

“베른님이 김우진에게 당하고 나서 아예 돌아버린 건가.”

“헛소리 집어치워라. 죽기 싫어서 감히 신들을 배신하고 김우진을 섬긴 버러지 주제에.”

“네놈들 모두 마찬가지다. 위대한 신들을 대신하여 천벌을 내려주겠다.”

집행자들이 그녀를 조롱했다. 허나, 디아네는 무표정하게 그들을 지켜보았다.

“본디 생명이란 어리석어서 진리를 알려주어도 쉽게 믿지를 못합니다. 이해합니다. 당신들의 마음을.”

찢어지는 듯한 살기가 폭사되었다. 허나, 디아네는 태연히 배틀엑스를 들었다.

“허나, 선구자들은 본디 의심을 받는 것. 그것은 진리와 진정한 신을 구하는 자의 마땅한 시련입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가짜들을 잊고 진정한 신을 섬길 마음이 있으십니까?”

“널 죽이고 나무를 뽑아버릴 마음은 있···!”

콰아아아앙!

도끼가 떨어졌다. 급하게 들어 올린 집행자의 검이 반으로 부서졌다. 팔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그렇군요. 더 이상 대화의 여지가 없는 듯 합니다.”

신의 자비를 조롱과 모독으로 되돌린 불신자들에게는 천벌이 내릴 지니.

“제가 주신을 대신해 당신들을 벌하겠습니다.”

“이 빌어먹을 년이!”

“너만 집행자라고 생각하는 거냐!”

“이 미친 광신도를 죽여라!”

사방에서 공세가 쏟아졌다. 아군마저 비명을 지를 정도로 거친 파도였으나 디아네는 태연히 도끼를 휘둘렀다.

공세의 파도를 갈랐다. 속이 진탕되었으나 할만 했다.

애초에 이 정도는 이제 익숙했다.

“불쌍한 자들.”

진정한 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의 자비조차 받지 못하고.

그분의 은총조차 얻지 못했으니.

“당신들에게 질 이유는 없습니다.”

그분의 불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니.

김우진에게 실전 훈련을 받고, 릴리로 하여금 신을 힘을 주입받은 디아네는 충만함을 느꼈다.

신이 함께하고 계신다.

그러니 나는 무적이다.

김우진은 주신이고.

배틀엑스가 세상을 찢었다.

* * *

···라고 생각했던 적이 디아네에게도 있었다.

신에게 훈련을 받은 디아네는 분명히 강했다. 본래도 집행자들 중에서도 상위에 꼽히는 그녀는 여럿의 집행자들을 홀로 상대할만한 능력자였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라는 게 있다. 집행자들이 50이 넘어가니 답이 없었다.

그녀의 부하들이 한 명씩 맡았고 홀로 42명과 부딪혔다.

그녀는 분투했다. 여덟 명을 죽이고 다섯 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하지만 아직도 29명이나 되는 집행자들이 남았으니 중과부족이었다.

“이 괴물 같은 년···! 분명히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진정한 신의 은총을 받았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분의 은총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당신들 따위를 모조리 쓸어버리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미친 년. 아예 돌아버렸구나.”

“설득할 마음도 들지 않는군. 그냥 죽여라. 반역자에게는 반역자의 말로가 무엇인지 보여주어라.”

집행자들이 검을 뻗는 순간이었다.

파캉, 검이 부러졌다.

거대한 등이 그녀와 집행자들 사이를 가로 막았다.

“···넌 또 뭐냐.”

단숨에 부러진 검에 집행자들이 그를 경계했다.

디아네는 그럴 수 있다. 그녀는 애초에 집행자들 중에서도 상위권의 강자로 왜 베른 같은 자를 섬기는지 의문인 자였으니.

하지만 정체불명의 피조물이 일격에 집행자의 검을 부러트리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난 소지야.”

소지, 베르너가 가볍게 자기소개를 했다.

“소지? 그게 뭐지?”

“교도관을 돕는 죄수 아닌가?”

“맞아. 연옥의 밥을 책임지고 있지.”

맛있는 것이 먹고 싶으면 나중에 연옥으로 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한 차원 높은 미식을 맛보여 줄 테니.

“물론 감히 소장님을 노리고 이곳에 온 이상, 글렀지만. 아니지, 새로운 죄수들이 될지도?”

소지가 움직였다. 서늘한 참격이 집행자 하나를 덮쳤다.

“크윽···!”

집행자가 서둘러 방패를 들어올렸다. 검격이 그대로 방패를 쪼개고 전진했다. 깊은 상흔이 새겨졌고 집행자는 쓰러졌다. 그리고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을 공격한 무기가 무엇인지 눈치 챘다.

“···식칼?”

“말했잖아. 요리사라고.”

소지가 양손에 식칼을 빙빙 돌렸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이건 식칼이 아니라 회칼이야. 드워프들에게 부탁해 특별 제작한.”

더 두텁고, 더 날카롭지.

“너희들의 뼈와 살을 부드럽게 분리해줄 만큼.”

“···당신, 이 정도였습니까?”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집행자들을 이렇게 가볍게 유린하다니. 디아네의 상상 이상이었다.

“어떻게 신의 힘까지?”

“이것저것 많이 주워 먹어서 그렇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짐작하시다시피 제 권능이 소장님과 조금 비슷하거든요.”

하위호환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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