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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70화 (70/150)

# < 069. 무한동력 >

세계수를, 릴리를 지켜야한다.

릴리의 가치는 단순하게 환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 본질적인 가치든, 그간 쌓인 정이든.

아카식 레코드의 계약에 의거하여 백신전은 공식적으로 연옥의 정원을 어떻게 꾸미든 관여할 권리가 없다.

정원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 것이 잡초든, 세계수든 그건 김우진의 권한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것을 뽑기 위해 김우진을 상대로 개수작을 부리는 건, 계약을 위반하는 행위이며 계약 위반은 곧 심연행을 뜻한다.

심연. 신조차 거부할 수 없는 무저갱.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신은 없다.

물론 신들과 맺은 계약은 무척이나 포괄적이고 범위가 넓다.

계약의 모든 주체는 백신전의 신들과 김우진이다.

연옥에서 신이 김우진을 적대하는 것은 계약 위반이다.

연옥의 관리는 김우진의 소관이다. 이는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부하들을 이용해 세계수를 뽑는 건 계약 위반이 아니다.

신이 직접 행한 적대 행위가 아니니까. 계약서에는 명확히 ‘신’과 ‘김우진’이라고 적혀 있으니까.

불의의 사고로 세계수가 불타는 것도 계약 위반이 아니다.

우연한 사고일 뿐이니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지만 맹점이 많은 건 신들의 오만함 때문이었다.

감히 신들을 상대로 머리를 굴려 계약의 맹점을 노릴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상대는 김우진이었기 그는 빈틈을 노려 꽤나 많은 이득을 보았다.

그리고 김우진을 상대해온 20년, 신들 또한 강해졌다.

어쨌든 그것들을 감안하고 생각한다면 백신전에서 취할 행동은 몇 가지로 추려진다.

첫 번째, 죄수들 속에 심어 놓은 첩자를 이용해 세계수를 불태운다. 그리고 그들 개인의 일탈로 만든다.

두 번째, 마물들을 연옥으로 유도해 거대한 혼란을 야기한다. 지난 번 카를로의 탈옥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세 번째, 집행자들이 대놓고 나무 뿌리를 뽑아버린다.

- 삐삐삐!

김우진의 가정들을 들은 릴리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김우진이 릴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걱정 마,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니까.”

“적어도 세 번째는 못하겠군.”

“그러네요.”

데르카인의 말에 율리아가 동의했다.

“노리신 건가요?”

“당연하지. 애초에 네 힘을 릴리로 다 빼먹기만 하면 되는 걸 굳이 집행자들에게 준 이유가 그건데.”

“···역시 소장님이십니다! 스스로를 주신이라 칭하는 사이비마저 손 위에서 가지고 노는 그 위대함! 이 디아네, 다시 한 번 감동했습니다.”

디아네가 감격의 기도를 올렸다.

“확실히, 집행자를 뺏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시점에서 신들은 함부로 집행자를 보낼 수 없게 됐구나.”

“맞습니다. 물론, 그걸 감안하고 그 이상을 보낼 수도 있지만요.”

그들이 세계수의 가치를 얼마나 쳐주느냐에 따라 다르다.

“어쨌든, 결코 오지 않았으면 했던 위기인 것은 맞습니다.”

세계수를 들키지 않으려고 했던 건, 지금의 가정들처럼 신들이 작정하고 공세를 이어나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처음 릴리를 심었을 때와 지금은 꽤나 상황이 다르니 어떻게든 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다.

그때의 김우진은 혼자였다.

알베니우스와도 데이드람의 세계수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두리쉬마와의 연도 없었다.

김우진은 강하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아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 손 하나하나가 신이었기에 더욱 더.

그러나 더 이상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죄수들이 완전히 그의 수족으로 돌아섰으며.

광신도와 집행자들을 얻었고.

알베니우스, 데이드람의 세계수가 함께하기로 했으며.

두리쉬마와 함께 주신, 칼카르를 죽였다. 그는 필요하면 언제든 연을 쌓을 수 있도록 매개체를 주기도 했다.

그들이 있다면 계약의 맹점을 노려 해볼만하다.

물론 백신전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결코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아직 백신전은 모른다. 저들이 김우진의 뒷배가 되었다는 것을.

“방법은 있나?”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하시나요? 소장님께서 대안이 없으실 리가 없잖아요.”

“있으니까 우리를 부른 거 아니겠어?”

“당연한 소리를 하십니다. 소장님께서는···.”

“디아네, 좀 닥쳐.”

“네, 명하신대로.”

광신도가 조용해지자 회의가 다시 이어졌다.

“데르카인님, 지원은 아끼지 않을 테니 세계수를 중심으로 방어 진지를 구축하는 게 가능합니까?”

“어느 정도 수준이느냐에 따라, 시간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가장 확실하고 완벽하게를 원합니다.”

“여유가 있는 건가? 주신이 벼르고 간 것 같았는데.”

“많지는 않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신들이 사용할 가장 유력한 방법은 마물들을 연옥으로 유도하는 거다. 하지만 그건 두리쉬마처럼 마물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유도하는 것이기에 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되는대로 해봐야겠군.”

“엘프들과 집행자들도 함께할 겁니다.”

“우리가?”

“아닙니까?”

“···뭐, 그래야지.”

“소장님이 명하신다면 기꺼이!”

광신도가 다부지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이건 릴리한테 허락을 받았습니다만.”

잠시 뜸을 들인 김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릴리를 중심으로 진지를 구축할 때, 필요하면 릴리를 핵으로 삼아도 됩니다.”

“···세계수를 핵으로?”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데르카인이 그 말뜻을 알아들었다.

“정말로 그래도 되는 건가?”

“물론입니다. 결국 릴리를 지키기 위해서인데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죠. 릴리도 한 손 보태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릴리?”

- 삐!

그렇다는 듯, 릴리가 날개를 퍼덕였다.

“어우, 귀여워.”

“으엑, 어머니 나무님, 체통을 좀 지켜주세요.”

- 삐이이이, 삐이.

“제가 불경하다고요? 흥, 아직도 제가 평범한 하이엘프인 줄 아세요? 저는 이제 신이라고요!”

율리아가 어깨를 으쓱이자 파랑새가 부리로 머리를 쪼았다. 율리아가 아악, 죄송해요! 같은 소리를 내뱉으며 머리를 부여잡고 쭈그러졌다.

“···세계수를 핵으로.”

그 난장판 속에서도 큰일을 앞둔 난쟁이의 눈은 올곧이 세계수의 정령에게 고정되었다.

“마나가 넘쳐나는 교차 차원의 세계수···.”

“신을 봉인해 그 힘을 뽑아 쓰는 세계수···.”

“무한동력···!”

“무한히 뽑아다가 무한히 쏴대는 마도공학을···!”

끓기 시작하는 열기에 이상함을 눈치 챈 릴리가 행동을 멈췄다.

- ···삐삐삐?

“취소할 수 있냐고? 당연히 안 되지. 그걸 질문이라고 해?”

- 삐이이!

“안 돼, 안 돼. 릴리. 낙장불입이라는 말을 알아?”

- 삐삐!

“안 돼, 못 물러줘. 돌아가.”

와장창, 릴리가 창문을 깨고 도망쳤다.

* * *

“이렇게 되면 켄타우로스 놈은 쓸모가 없군.”

디아네가 켄타우로스의 정체를 파악한 만큼, 베리안도 디아네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디아네가 켄타우로스의 정체를 알아보았다는 것 또한 짐작할 거다.

거짓 정보를 흘려 적당히 써먹으려고 했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처리해야지.”

이용가치가 없는 폭탄을 그대로 품고 있는 건 위험 부담이 상당하다.

하지만 문제는 죄수의 신분으로 정식으로 연옥에 들어온 이상, 자진 출소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죽여버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죄수의 신분으로 죽으면 내 임기가 늘어나.”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50명과 100명은 꽤나 차이가 크다.

“허나, 베리안의 집행자라면 자진 출소할리도 없습니다.”

“할 수도 있지.”

“무슨 뜻입니까?”

“용사들의 힘을 다시 회수하는 건 어디까지나 관리자들이야. 그러니 힘을 포기하겠다고 나가서 진짜로 힘을 회수 당할지, 안할지는 관리자 마음대로 아니겠어?”

“···확실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출소를 종용하시겠습니까?”

“알지? 지금까지는 내가 좀 예의를 차렸어.”

모두 다 끌려와서, 이용을 실컷 당하다가 들어와서, 진짜 죄수라는 생각을 안 해서.

죄수들의 입장은 또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김우진은 최후의 선은 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모조리 사지를 끊어버리고 숨만 붙여놓은 채 내장을 반쯤 녹여버릴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바리하 칸, 아니 페트로 뭐시기를 상대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놈은 끌려온 것도, 진짜 죄인이 아닌 것도 아니니까.

“진짜 죄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내 적이면 나한테는 다 죄인이야.”

“그 친구가 무척이나 불쌍해지는군요.”

“주인을 잘못 섬긴 죄지. 아, 그전에 우선 두리쉬마를 좀 만나봐야겠군.”

“그 타이탄 말씀이십니까?”

“그래. 신들의 공격 방법 중 하나가 마물들을 이용하는 것일 테니 이걸 역으로 이용해봐야지.”

괜히 두리쉬마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으니 위험부담이 크다면 무리겠지만 그렇지 않은 선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

김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칼카르님의 흔적은 여기서 끊어졌다. 완전히 소멸해버렸군.”

백신전의 상위 10신 중 하나인 델라푸스가 산산이 부셔져 어둠 속으로 삼켜져 버린 차원을 바라보았다.

이미 소멸했다면 아무리 신이라고 할지라도 할 수 있는 건 없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누굴 만났고, 어떤 일이 있었기에 주신께서 목숨을 잃으셨을까. 차원과 함께 소멸되셨을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집행자들의 물음에 델라푸스가 고개를 저었다.

“차원과 함께 소멸해버린 이상 찾을 방법은 없다. 여기서 시간 낭비를 하는 것보다는 알베니우스를 찾아서···.”

그때였다. 신조차도 꿰뚫어볼 수 없는 짙은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이 반짝였다.

그것은 더 없이 미약해 그냥 지나칠 뻔 했지만, 신이기에 감응할 수 있는 기운이었다.

그가 급하게 어둠속으로 발을 디뎠다.

“신이시여!”

“위험합니다!”

집행자들의 만류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그를 빨아들이려는 어둠의 인력에 저항하며 간신히 빛을 수습했다.

그것은 그토록 찾던 흔적이었다. 주신의 기운이었다.

“아직, 아직 하나가 남아 있구나.”

그리고 그 미약한 끈은 어딘가로 이어지고 있었다. 평범한 이라면 결코 알아볼 수 없지만 주신 바로 아래라는 10명의 신 중 하나였기에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쉽게 소멸하실 분이 아니실 줄 알았다!”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런 말을 하면 실례인 건 알지만 주신께서는 이미···.”

“돌아가셨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 주신의 기운은 감히 흉내낼 수 없으니. 이건 주신께서 남기신 게 맞다.”

기다렸다는 듯이 적절하게 나온 흔적에 미약한 의문이 생겼으나 곧 사라졌다.

무려 주신이다. 그분께서 의도적으로 흔적을 남기셨을지언정, 누군가 그 기운을 따라해 함정을 팠으리라는 가정은 있을 수 없었다.

“아, 이해했습니다.”

“흔적을 쫓는다. 주신께서 분명히 무언가를 남겨주셨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분께서도 죽을 수밖에 없던 강인한 적의 정체 같은.

델라푸스는 십여개의 종말 차원들을 헤쳐 나갔다. 마나가 고갈되고 강인한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종말 차원들이 그의 발목을 잡았으나 그뿐이었다.

주신을 찾겠다는, 흔적을 찾겠다는 그의 의지를 꺾지도 막지도 못했다.

“여기다.”

그렇게 마침내 흔적의 종착역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지내온 종말 차원들보다 마기가 더욱 진한, 차원에 발을 들이는 순간 진한 불길함이 엄습하는 곳이었다.

“···정말 신께서 이곳에.”

“너무 불길합니다.”

“다른 분들과 함께 다시 오는 것이···.”

“흔적은 미약하다. 지금이 아니면 금세 소멸할 터, 무조건 찾는다.”

델라푸스의 단호함에 집행자들이 의지를 꺾었다. 그리고.

“···김우진?”

“델라푸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만났다.

“네놈이 왜 여기에···?”

“그건 내가 할 소린데?”

“그렇구나. 역시 네놈이 주신의 죽음에 관여를···!”

“아하, 왜 왔는지 알겠네. 근데 혼자야?”

“뭐?”

“그렇답니다!”

김우진이 소리쳤다. 델라푸스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여럿이다만.”

“원래 신들을 셀 때는 집행자들은 카운트하지 않습니다. 도구로 여기거든요.”

“그렇군. 역시 신이라는 것들은 모조리 말살시켜야한다.”

“이게 무슨···!”

델라푸스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따르는 신을 찾기 위해 이곳까지 온, 너희들의 그 의지만큼은 칭찬해주마.”

거대한 망치가.

“너무 기꺼워서 너희들이 그리 따르는 주신의 곁으로 보내주리니.”

떨어졌다.

“내게 감사해라.”

“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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