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68. 감찰 >
푸른 하늘, 풍부한 마나.
연옥의 공기는 무척이나 상쾌하고 맑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낯익은 건물이 보인다. 차원 ‘연옥’의 중심에 위치한 감옥, ‘연옥’.
“시간은?”
“8시 55분입니다.”
“적당하군.”
계약에 의거하여 백신전에서 연옥으로 죄수나 감찰관을 내려보내려면 반드시 하루 전에 통보를 해야 한다.
하지만 굳이 시간까지 맞출 필요는 없다.
항상 모든 시간을 11시로 맞췄던 것은 그저 그게 편해서일 뿐,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엇, 충성!”
정문 앞에 당도하자 얼빠진 표정의 교도관들이 보였다. 말이 교도관이지, 그저 김우진의 꼭두각시들에 불과했다.
“비켜라.”
“예!”
문이 열렸다.
정문에서부터 건물의 입구까지, 이어지는 정원은 꽤나 넓었으나 베리안과 그의 집행자들에게는 큰 문제가 없었다.
베리안의 눈짓에, 집행자가 문을 열어 재꼈다.
···역시.
깔끔한 내부, 잘 사열된 교도관들, 그리고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김우진까지.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빨리 왔음에도 미흡한 부분은 없었다. 허나, 베리안은 피식 웃었다. 이 정도 가벼운 수작에도 대응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거다.
신을 죽인 신살자가 그리 한심하면 신의 위신 자체도 떨어지니.
“김우진. 통신만 나누다가 직접 보는 건 오랜만인가?”
“베리안. 설마 네놈이 직접 올 줄이야.”
그것까지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는지 김우진의 동공이 미약하게 커졌다.
“헌데 갑자기 무슨 일이지? 베른이 감찰을 하고 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감찰은 언제나 이루어질 수 있다. 굳이 이유가 있어야지만 올 수 있는 건···아니지. 못 보던 얼굴들이 있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신의 힘이 느껴졌다. 그래, 정말 멀지 않았다. 바로 옆이었으니까.
사열된 교도관들 중 열.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다.
“헌데 내 눈에는 낯이 익고.”
“주신을 뵙습니다.”
신의 시선을 받은 집행자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들이 있는 장소와 태도, 입고 있는 복장이 베리안의 심기를 거슬렸다.
“이게 과연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김우진.”
“자발적으로 내 권속이 되겠다하여 들인 권속이다.”
“자발적으로? 베른의 집행자들인 너희들이 어째서 김우진의 교도관이 되었지?”
“······.”
“대답해라, 디아네 디트린.”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재미있군.”
짝짝. 베리안이 박수를 두어번 쳤다.
“베른은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그 집행자들은 전부 네 품 안에 있으니.”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주인에게 분노한 개의 한이지.”
“내가 데리고 가겠다.”
“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이유가 있나?”
“이들은 신의 집행자다. 집행자를 네가 수족으로 삼을 권리는 없다.”
“그렇지 않아야만 하는 의무도 없지.”
“선을 넘지 마라. 이미 나는 많은 것을 봐주고 있다.”
“하루 종일도 넘을 수 있다만.”
베리안의 얼굴이 굳었다. 김우진이 속삭였다.
“그냥 볼 것만 보고 가. 남의 것에 눈독 들이지 말고.”
“집행자는 백신전의 것이다.”
“정확히는 베른의 것이지. 허나 베른은 어디 있지? 놈이 직접 내게 와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면 돌려줄 마음도 있다. 헌데 넌 베른이 아니지.”
“그래서 신의 힘 또한 넘겨줬나?”
집행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신의 힘은 저들이 베른을 따라다니던 것을 훨씬 상회했다.
거의 최상위 집행자들에게 맞먹는 수준에 혹시나 새로운 신이 있나 확인했지만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
“이왕 권속으로 삼은 거, 잘해줘야지.”
“아주 막나가는군.”
“그게 내 장기라.”
“좋다, 지금부터 감찰을 시작하지.”
“목적은?”
“네놈이 그렇게 좋아하는 권리와 의무로 이야기해볼까. 감찰의 목적을 네게 알려줄 의무는 없다.”
베리안이 천천히 감옥을 거닐기 시작했다. 김우진과 교도관들이, 그리고 베리안이 이끌고온 집행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제법 깔끔하군. 마치 얼마 전에 수복한 것처럼.”
“포스타가 내려올 때, 부대 전체를 쓸고 닦는 건 유구한 전통이지.”
“3층은 왜 폐쇄되어 있지?”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문제가 조금 생겨서 복구중이다.”
“확인하겠다.”
“볼 게 없을 텐데?”
베리안은 두 번 말하는 대신 그대로 3층으로 진입했다.
“시스템이 일부 파손되었군. 이런 보고는 없었는데.”
“천재지변으로 집나간 죄수를 잡아 오느라 좀 바빴거든. 그때 이런저런 일이 좀 많았어서.”
“나중에 시스템을 복구할 담당자를 내려 보내주지. 앞으로는 사소한 것이라도 보고를 빼먹지 마라. 이건 경고다.”
“노력해보지.”
3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3층을 지나 4층으로 넘어갔다.
느껴지는 죄수들의 기운에 베리안이 조용히 기감을 퍼트렸다. 배식구를 열고 그 내부의 죄수들을 확인했다.
거기에 신위를 가졌다고 판단되는 자는 없었다.
“왜 수갑을 두 개씩 차고 있는 죄수들이 있지?”
“특별히 위험한 놈들이니까.”
과연, 구속구가 두 개씩 차고 있는 자들은 모두 그럴만 했다.
하이엘프 율리아 카르센, 엘프의 한계를 뛰어넘은 시에나 올름, 달의 늑대 타르칸 톨리스 그리고 차원의 명장, 데르카인 알베트까지.
베른이 이들을 집행자로 만들려다가 전부 거부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 하이엘프, 꽤나 초췌해보이는데. 가혹행위라도 한 건가?”
“무엇을 하든 그건 내 자유다. 출소를 하고 싶게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작업 중 하나라고 해두지.”
“그렇군.”
혹시나 싶어 다시 확인했으나 하이엘프에게 신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숲의 정기만이 가득할 뿐.
이후, 연옥의 나머지 부분들을 둘러보며 감찰을 마쳤다.
“정원 끝에는 뭐가 있지?”
“그냥 숲이 있다. 딱히 특별한 건 없어.”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데.”
“아니, 됐다. 감옥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군. 죄수들의 상태가 엉망이지만 전부 네게 일임했으니 죽지만 않는다면 크게 문제 삼지 않겠다.”
아, 그리고 하나 묻겠다만.
“최근에 연옥을 나간 적이 있나?”
“그건 너희들이 더 잘 알지 않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사태를 제외하면 연옥의 방벽이 열린 적은 없다. 허나, 정말로 나간 적이 없나?”
“없다.”
“그렇게 알고 있지.”
감찰이 끝났다.
* * *
베리안은 연옥의 사막을 걸었다.
“백신전에 돌아가거든, 곧장 신들을 소집해라.”
“신위를 얻은 자를 찾으신 겁니까?”
“아니, 신위를 얻은 자는 없었다.”
율리아 카르센이라는 자가 조금 의심되기는 했지만 아니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명백한 신의 기운이이기는 했으나 그보다 진한 것은 세계수의 농밀함이었다.
세계수의 열매와 가호를 받은 것인 분명하다.
“김우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급하게 숨긴 티가 나지만 하이엘프에게서 느껴지는 진득한 세계수의 힘을, 은은하게 연옥 전체에 퍼져 있는 세계수의 기운을 주신인 그가 정말로 느끼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연옥에 세계수가 있다.”
“···세계수 말씀이십니까?”
그래, 베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케 세계수를 들여온 것은 칭찬해주마.”
어떻게 세계수를 얻었고 심었는지는 모른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김우진이라면 어떤 수라도 냈겠지.
“씨앗을 심고 아무리 길어도 20년이다. 그럼에도 세계수가 발아했다는 것은 연옥의 특성 때문이겠지.”
마나의 농도가 무척이나 짙은 교차 차원의 특성. 그렇기에 세계수가 일반적인 경우보다 빠르게 발아했다는 것도 납득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이 정도의 농밀함을 알아내지 못한 베른의 아둔함과 무능력함이었다.
그런 놈에게 김우진을 상대하라고 맡겨 놓았으니 지금의 결과는 어찌 보면 예정된 미래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허면···.”
“몰랐으면 모르되, 알았는데 가만히 둘 수 있나.”
세계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완전해지는 존재다. 차원에 뿌리를 내려 핵이 닿게 되면 그 차원에서는 거의 신과 같은 힘을 발휘하는 자들.
연옥에 심은 세계수가 김우진의 아군이라면,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난다면 차원의 방벽에도 간섭할 터.
그러면 김우진이 어디를 가든 알 수 없게 된다. 그건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세계수는 반드시 뿌리 채 뽑아버려야 한다.
“가능하시겠습···!”
콱, 베리안이 집행자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네 신을 의심하지 마라.”
“···죄, 죄송합니다.”
집행자를 풀어준 그가 가볍게 손을 털었다.
공식적으로 세계수를 뽑을 권한은 없다. 연옥을 어떻게 가꾸든, 그건 우진의 자율이자 권한이다. 세계수도 그저 나무 한 그루일 뿐이라고 우기면 백신전에서는 간섭할 여지가 없다.
허나, 방법이란 건 여러 갈래다.
“아무래도 천재지변이 한 번 더 일어나야겠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거센 태풍에 거목이 부러질 정도로.
“그리고 전해라.”
김우진은 공식적으로 연옥을 나간 적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세계수의 성장이 그가 생각한 것 이상이라면.
“김우진이 칼카르의 죽음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베리안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속았군.”
김우진이 멀어지는 베리안의 뒷모습을 보며 커피를 음미했다.
통신으로나마 신들 중 가장 많이 부딪힌 게 베리안이었다.
김우진은 그가 속아 넘어갔다는 것을 확신했다.
율리아가 신위를 얻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이렇게 순순히 가지 않았을 거다.
- 삐.
“그래, 릴리. 덕분에 수월했어. 고마워.”
파직, 번개를 내뿜는 파랑새가 김우진의 어깨에 앉았다.
“하나 더 들어간 건 어때?”
- 삐이.
“먼저 것보다 쉽다고? 그야 당연하지. 그놈은 집행자고 먼저 번은 신이니까.”
강민식을 잡으러 갔을 때, 잡아온 알도라는 놈을 감옥에 그대로 둘 수 없어 릴리에게 맡겨 둔 상태였다.
“···다행이네요.”
초췌한 안색의 율리아가 힘겹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세계수의 잎을 우린 차를 마셨다.
“괜찮나?”
“죽을 것 같아요.”
힘들 법도 했다.
신이 아닌 척 속이기 위해서는 우선 신의 힘을 모두 없애야 했다. 그리고 연옥에는 신의 힘을 가져도 이상하지 않은 집행자가 열이나 있었다.
율리아는 자신의 모든 신의 힘을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녀가 신위를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양이 그리 많지 않은 상태여서 가능했다.
거기에 의도적으로 릴리의 힘을 덧칠했고 구속구도 두 개나 착용해 힘을 억제했다.
아주 미약한 뿌리만 남긴 신위는 흔적도 없이 감춰졌다. 신이 만든 구속구 두 개는 신위마저 억제하는데 성공했고 율리아는 지금 한 줌의 신의 힘도 남지 않았다.
덕분에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무사히 넘긴 게 맞을까요? 릴리가 들켰는데요?”
“놈이 나선 이상, 어차피 들킬 일이었다.”
이미 시험해 보았다. 하늘구름은 일반적인 신이라면 모를까 김우진마저 속일 수는 없었다. 김우진이 알아챈다면, 주신도 알아챈다.
“베른을 넣어주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글렀어.”
신을 쭉쭉 빨아먹고 있는 릴리의 성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이미 숨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어차피 들킬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릴리를 이용해 율리아를 감췄다.
집행자와 세계수, 둘을 내주고 하나를 감췄으니 완전 손해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 릴리를 뽑아버리려고 하겠지.”
“왜 그렇게까지?”
“세계수가 내게 힘이 되니까.”
“그럼 막을 방법은 없는 건가요?”
“딱히.”
애초에 계약으로 묶여있는 한 정상적인 방법으로 휘몰아치지는 않을 거다.
아마 또 다시 마물들을 이용하지 않을까.
“혼란을 틈타 집행자들이 잠입한다거나 할 가능성이 높겠지.”
세계수는 그 정도의 사안이니.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어차피 늦었어. 기차는 폭주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멈출 수 없어.”
세계수가 드러나는 것은 최대한 늦추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틀어진 이상, 세계수의 존재 자체를 최대한 이용할 수밖에 없다.
“내가 있는 곳에서 세계수를 부수려면 적어도 그에 준하는 강자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할 거야.”
그리고 그것들은 높은 확률로 신이 될 거다. 공식적으로 보낼 수 없으니 숫자는 적을 거고.
“그러니까 그것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릴리에게 봉인시킨다.”
세계수를 미끼로 신들을 유혹한다.
그렇게 백신전의 전력을 줄인다.
“나쁘지 않은데.”
“그러다 백신전이 화나서 다 보내버리면요?”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칼카르가 죽어서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전력이 뚝 쪼개질 테니.
“두리쉬마님께 연락이라도 해볼까···.”
아무래도 양동작전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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