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66화 (66/150)

# < 065. 첩자 >

“······?”

“···어?”

데이드람에 다시 복귀했을 때, 김우진을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율리아였다.

그리고 하이엘프와 인간은 서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너, 무슨 일이 있었냐?”

“그러는 소장님이야 말로 뭐죠?”

달라진 분위기, 달라진 기도. 김우진은 빠르게 율리아를 탐색했다.

외형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그 내부는 달랐다. 마나가 보다 정순해지고 풍부해졌으며 깊고 방대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지고 있던 용사의 힘 이상의 신의 힘이 느껴졌다.

“···뭘 한 거야?”

“데이드람의 어머니 나무의 열매를 먹었어요.”

“만 년이 지난 세계수의 열매?”

들은 적이 있다. 만 년을 살아 아카식 레코드에 뿌리가 닿은 세계수는 열매를 맺는 주기가 길어지지만 그만큼 농후한 열매를 맺는다고 했지.

“네. 그러는 소장님은요?”

“신을 죽였어.”

“아하···예?”

아침 티타임을 가졌다는 것 같은 평온한 어조에 율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해요?”

“저 양반이 꼬리를 잡혀서 신이 쫓아왔거든. 그래서 죽였어.”

“어···. 그렇군요.”

신을 죽이셨군요···. 멍하니 끄덕거리던 고개가 삐걱, 멈췄다.

“잠깐, 잠깐만요. 뭐라고요?”

“신을 죽였다고.”

“신을 죽였다니요?”

“그렇게 놀랄 일인가? 처음이 아니라는 건 알 텐데.”

“아니, 그걸 안다고 신을 죽인 일이 사소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김우진이 신살자라 불리며 이미 신을 죽인 경험이 있고, 이번에도 새로운 신을 포로로 잡아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래서 김우진이 신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계약으로 묶여 있다고 했다.

“내가 죽이지만 않으면 상관없어.”

“그러면 알베니우스님이?”

“아니.”

김우진과 율리아가 서로의 이변을 눈치 챘다면 알베니우스와 세계수는 서로의 일을 이야기했다.

“성공했어. 타이탄의 마지막 생존자가 우리의 아군이 되었다.”

- 계획대로 되었군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리아에게 열매를 먹였어요.

“그런 것 같더군.”

- 주신을 죽였다는 말입니까?

“그래. 내가 한 건 아니지만. 덕분에 김우진도, 타이탄도 더욱 강해졌고 백신전의 기둥 중 하나를 뽑아버렸으니 엄청난 이득이다.”

비록 백신전의 대응을 봐야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더 없이 이로운 결과물들이다.

수만의 마물 군단과 주신에 필적하는 타이탄이 아군으로도 모자라 주신을 죽이다니.

알베니우스와 세계수는 터져 나오는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마물 군단은 모든 것을 갉아 먹는 악의 군단이지만 그게 아군이 된다면 더 없이 든든해진다. 하물며 백신전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보이는 이상,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김우진. 이제는 좀 함께할 마음이 들었나? 타이탄과 이야기를 나눈 걸 들어보니 거의 된 것 같긴 하지만.”

“예.”

타이탄과 마물의 군단은 확실히 큰 힘이었다. 특히, 주신인 칼카르를 죽여 버렸으니 백신전의 전력이 감소한 시점에서 더 크게 작용한다.

어쩌면 정말로 백신전을 무너트리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김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가 나서는 건 무조건 계약이 끝나는 뒤입니다.”

“나도 네가 심연에 끌려가는 걸 바라지는 않아. 타이탄을 끌어들였다고 해서 바로 백신전과 맞붙을 것도 아니고.”

주신이 하나 죽었다고 해도 백신전은 여전히 백신전이다. 가능하면 최대한 전력을 깎아먹고 판을 조율해야만 승산이 있다.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행할 일은 절대 아니었다.

“예. 그럼 일단은 다시 연옥으로 가겠습니다. 릴리를 통해 필요할 때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그래.”

김우진이 공간을 열었다.

참새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 잠깐만, 율리아는 아직 이대로 가면 안 된단다.

- 열매를 흡수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불안정해. 며칠 여유를 가지고 내가 직접 조율해줄 필요가 있단다.

“그냥 직접 하면 되지 않습니까?”

- 가능은 하지만 시간이 몇 배는 걸리겠지.

- 너도 칼카르를 흡수하고 아직 완전히 갈무리 하지 못했잖니? 만약 여기서 함께 완전히 흡수하고 가는 게 어떻겠니?

- 만약 칼카르가 실종된 것을 문제로 연옥에 다시 감찰관이 오면 조금 곤란하잖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군요.”

백신전의 입장에서 칼카르는 알베니우스를 찾으러 갔다가 실종되었다.

그리고 알베니우스는 김우진, 그와 친분이 있다. 만약 칼카르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그가 나섰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적어도 오래 전에 멸족시킨 타이탄이 살아남아 마왕이 되었다는 것보다는.

“좋습니다.”

며칠의 체류가 더 결정되었다.

* * *

“하암.”

연옥의 아침이 밝았다. 난쟁이들을 이끄는 난쟁이 중에 난쟁이, 데르카인은 소지가 가져다주는 통닭을 뜯었다. 풍부한 육즙과 기름기가 절로 맥주를 부르는 맛이었다.

“맥주는 없나?”

“술은 안 되는 거 아시잖습니까.”

“고작 맥주 한 잔에 취하지는 않지 않나. 소장도 없는데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그랬다가 걸리면 저 큰 일 납니다.”

“자네, 정말 이럴 건가? 내가 만들어준 게 몇 개인데!”

“끄응, 알겠습니다. 딱 한 캔입니다. 들키시면 안 됩니다.”

“걱정 말게.”

치익, 소지가 가져온 시원한 흑맥주와 통닭을 함께 흡입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자네는 언제까지 연옥에 있을 건가?”

“무슨 소리십니까?”

“자네는 용사의 힘에 별다른 미련이 없잖나. 그렇지 않나?”

“대신 다른 것에 관심이 있죠. 연옥은 천국입니다. 연옥만큼 다양한 차원의 재료를 접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야 교차차원이고 백신전의 신들이 소장이 요구하는 걸 나름 잘 가져다주니까.”

그 계약이라는 거 때문이겠지.

“자네도 요즘 분위기 알고 있지 않나.”

감찰관이 나와 연옥을 확인하고, 소장이 그 감찰관이자 신을 붙잡아 세계수에 봉인시키고.

소장과 신들의 관계가 결코 우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사이가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요즘의 분위기나 긴장감을 고려하면 어쩌면 백신전과 김우진이 충돌하는 날이 그리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율리아를 데리고 다른 차원에 간 것도 또 다른 아군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라고 했으니.

“나야 수백년간 나를 이곳에 가둔 머저리들에게 원한이 생겨서 있다지만 자네는 아니지 않나? 여기 계속 있다가는 진짜 위험해질 거네.”

“충고 감사합니다만 아직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뭐, 마음대로 하게. 자네가 있는 편이 나야 좋기는 하지. 이제는 자네가 없을 때의 식사는 기억도 나지 않을 지경이야.”

잡담과 식사를 마친 후, 데르카인은 출역을 나갔다. 하지만 출역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본래 그냥 굴리기 위해서 나무를 베었다 다시 심는 것 같은 쓸모없는 짓을 시키는 게 출역이었다면 이제는 아예 공방에다 그를 풀어 놓았다.

자연스레 데르카인과 드워프들은 마음껏 신들과 싸울 무기와 장비들을 제작했고.

땅땅땅-

한창 망치질을 하고 있으니 누군가 다가왔다.

“데르카인님.”

“강민식인가?”

“예.”

“찾았나?”

“찾았습니다.”

데르카인이 망치질을 멈추지 않은 채 물었다.

“누군가?”

“놀라지 마십시오. 무려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었습니다.”

“카를로를 포함해서?”

“제외하고.”

“미쳤군. 탈옥하라고 밀어 넣은 놈들이 한 놈이 아니라 네 놈이나 된다고?”

300년이 넘게 연옥에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니, 애초에 강민식 이전에는 의도적으로 탈옥수를 투입한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서로가 같은 사명을 받았다는 걸 모릅니다. 아마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

“일단은 그들 모두 저를 조력자로 여기고 있습니다만,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소장한테 말해야지. 신의 뜻대로 되면 모든 게 끝장이네.”

“그냥 말입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대가를 요구하는 게 어떻습니까?”

“대가?”

“죄수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대가. 저희들도 결국 신과 싸우기 위해 남아서 소장에게 협력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함께 싸우기도 했는데 저희는 여전히 죄수입니다.”

평소에는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교도관들이 들어오면서 상황이 변했다.

김우진이 베른을 잡아올 때, 함께 왔던 열 명의 집행자들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적이었으나 아군으로 돌아선 경우다.

아니, 오히려 그들보다 더하다. 적어도 죄수들은 신에게 한 번 저항을 했던 이들이나 집행자들은 충실한 신들의 개니까.

하지만 대우가 극과 극이었다. 그들을 대하는 교도관들의 태도가 조금 유해지긴 했지만 죄수와 교도관, 이 말로 모든 게 정리가 가능하다.

“자네 말이 맞네. 이걸 빌미로 우리도 더 이상 죄수가 아니라 제대로 된···.”

“거기 모여서 뭐하고 있는 겁니까?”

뾰족한 목소리에 데르카인과 강민식이 입을 다물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자수정빛의 머리카락과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황금의 눈. 절로 느껴지는 신성함은 스스로를 성녀라 자칭하는 디아네 디트린이었다.

“출역 시간에 사사로운 잡담은 금지입니다.”

“아니, 그건 예전 일이고 요즘은 널널하게···.”

“저는 전달 받은 사항이 없습니다. 소장님께서 정하신 원칙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합니다.”

한 치의 타협도 없는 눈빛에 데르카인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가게.”

“예.”

“앞으로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주의해주시길.”

“명심하지.”

데르카인은 강민식의 제안에 더욱 혹하는 것을 느끼며 다시 장비를 다듬기 시작했다.

* * *

공방을 빠져나온 디아네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차원보다 더욱 짙은 마나의 농도에 몸이 절로 반응했다.

“역시 주신의 권역···!”

김우진은 이곳이 자신의 영역이라고 한 적이 없었고 디아네 또한 연옥의 마나 농도가 짙은 이유가 교차 차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주신, 아니 소장님께서 자리를 비우신 이때야 말로 더욱 더 이곳을 무사히 지켜야만 해.”

그것이 주신께서 그녀에게 내려주신 사명이니.

그때 그녀의 눈에 누군가 들어왔다.

교도관의 지도를 따라 축사장으로 출역을 나가는 죄수들이었다. 그들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하체가 말인 죄수.

그것을 제외하면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그리고는 곧 깨달았다.

백신전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라는 것을.

“···페트로 코페르크?”

그녀가 급하게 부소장을 찾았다.

“페트로 코페르크가 연옥에 왜 있는 것입니까?”

“페트로 코페르크? 그게 누굽니까?”

“켄타우로스 있지 않습니까? 하체가 검은.”

“그자는 바라하 칸입니다. 얼마 전에 연옥에 들어온···.”

“페트로가 아니라는 겁니까?”

“페트로라는 그자가 대체 누굽니까?”

“집행자입니다.”

“집행자?”

“어쩌면 제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같이 가시죠.”

부소장과 디아네가 바리하 칸이 출역을 나가 있는 축사장으로 향했다.

둘은 도축장이 훤히 보이는 관람석에서 미노타우르스를 도축하고 있는 그를 내려다 보았다.

“정말로 집행자가 맞습니까?”

“···조금 달라졌습니다만, 제 감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자는 분명히 페트로 코페르크입니다.”

어째서 털과 머리카락의 색이 바뀌었는지, 기운을 감췄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얼굴 자체와 기운의 느낌은 그녀가 알던 것과 같았다.

“맞다 치고, 페트로 코페르크가 누굽니까?”

“집행자입니다. 그것도 단순한 집행자가 아니라 백신전에서 주신이라고 꺼드럭거리는 자들의 집행자.”

“······!”

“만약 제 우려가 맞다면, 가만히 놔두면 큰 우환이 될 게 분명합니다.”

감히 주신의 권역을 어지럽히려 하다니.

디아네의 눈에서 귀기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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