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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58화 (58/150)

# < 057. 연락 >

신들의 수작을 분쇄했고 연옥을 빠져나갔던 탈옥수를 붙잡았다.

안타깝지만 엘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두 확인했다.

케이룸에 온 목적은 모두 이루었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나보고 패배자가 되어 도망가라고?”

드네르바가 질색했다.

“나는 신이야! 내 위엄과 위신은···!”

“닥치세요. 찬탈자 주제에 어디 주신께 함부로 지껄이는 겁니까?”

“너나 닥쳐! 누가 주신이야! 주신들은 백신전에 있어!”

“그들도 가짜지요.”

“디아네.”

“예, 신이시여.”

디아네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글거리는 시선은 여전히 드네르바를 향하고 있었다.

“저거 좀 아예 치워주면 안 돼?”

“나는 무사히 탈옥수를 잡았고 베른은 나와 함께 연옥으로 갈 거다. 그런 상황에서 네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멀쩡히 돌아가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그래서?”

“너희들은 나에게 패배한 거야. 그리고 넌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간신히 목숨만 부지해서 도망친 거지. 걱정 마. 이미 신 두 명을 죽여 봐서 개연성은 충분해. 놈들도 납득할 거야.”

아마, 그럴 줄 알았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내, 내 위신은?”

“그냥 갈래, 맞고 갈래?”

“위신은 나중에 충분히 쌓으면 되겠다는 뜻이었어.”

“집행자들의 입단속은 알아서 잘 할 수 있겠지.”

“물론이야.”

집행자는 결국 신들과 계약을 맺은 강한 용사다. 그들은 신들과 연결되어 있어 배신이 불가능했다.

“그럼 저 미친년은 어떻게 저러는 거니?”

“제가 베른의 몸에 제약을 걸고 기절까지 시켰으니까요.”

신과 집행자 사이의 결속력이 약해졌다, 정도로 설명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녀가 받은 거대한 충격이 추가적인 역할을 했을 거고.

김우진은 베른의 집행자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너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집행자란 결국 보다 특출 난 용사들이다. 그들이 신의 가호를 받아 더 오랜 세월 동안 성장해왔다.

그들은 아주 훌륭한 병사다.

“나와 함께 연옥으로 가 죄수 혹은 간수가 되거나.”

허나, 그렇기에 품 안에 들이지 못한다면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

“신앙을 지키고 지금 이 자리에서 죽거나. 너희는 순교라고 하던가?”

“당연히 주신을 섬길 것입니다!”

“저도 따르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아네를 비롯한 집행자들이 조금의 고민도 없이 무릎을 꿇었다.

“베른에 대한 충성심 같은 건 없나?”

“진정한 신을 만났으니 찬탈자들에 대한 충성심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디아네, 너한테 물은 게 아니야.”

“···죄송합니다.”

잠시 주저하던 집행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신들마저 당신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데 저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무의미하게 목숨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신들의 힘을 알 텐데?”

“패배하신다면 어차피 죽을 거, 죽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지 않겠습니까?”

“좋아.”

그들의 의도가 어떻든 크게 상관은 없다. 어차피 베른에게 향하던 결속을 비틀어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 생각이니까. 그가 죽어 구속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배신할 수 없다. 이미 죽은 시점에서 배신은 그가 알 바 아니고.

“좋아. 야, 일어나.”

김우진이 기절한 베른을 깨웠다.

신의 권속이라고 할 수 있는 집행자를 강탈하는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은 역시 당사자에게 직접 인계 받는 것이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내가 그럴 것 같나?”

물론 베른이 순순히 자신의 집행자들을 넘겨줄 리는 없었다. 김우진도 그저 한 번 물어봐 본 것뿐이었다.

콰앙, 김우진이 베른을 다시 기절시켰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한 집행자가 불안하게 떨었다. 집행자와 신의 결속은 아카식 레코드의 힘을 빌린 것. 신이 아니라면 만들 수도, 끊어낼 수도 없다.

“의심하지 마세요. 이 분은 주신. 모든 신들의 위에 계신 신 중에 신입니다.”

“아니, 하지만···.”

성녀가 김우진을 두둔했으나 사실 그가 주신이라는 것을 믿는 집행자는 없었다. 그들에게 김우진은 그냥 강자였다. 신을 압도할만큼의 괴물이지만 신의 권능과는 또 의미가 달랐다.

김우진은 그들의 의문을 해소해주는 대신 디아네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이변이 일어났다.

“아.”

마나가, 권능이 디아네의 머릿속을 파고 들었다. 그대로 심장으로 흘러 베른의 잔재를 지웠다. 베른을 향한 결속의 흐름을 비틀어 방향을 바꿨다.

권능에 개입해, 권능을 변환시켰다.

“···주신이시여.”

“맙소사, 권능이···?”

“비틀렸어?”

그 이적에 디아네가 더욱 경건해졌다. 변화를 눈치 챈 집행자들이 경악했다.

“나머지도 와라.”

“어떻게 한 겁니까? 어떻게 신이 아니면서 아카식 레코드의 권능에 개입을···?”

“내가 그걸 친절히 설명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묻는 건가?”

“···아닙니다.”

집행자들이 하나둘, 김우진과 결속되었다.

“디아네.”

“예. 주신이시여.”

“주신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허면 제가 무어라 존함을···.”

“그냥 소장이라고 불러.”

“예, 소장님.”

“대충 챙길 것 있으면 챙기고 이곳에서 마무리할 게 있으면 마무리해라. 전부 연옥으로 갈 테니. 한 시간 주겠다.”

“예.”

성녀와 집행자들이 흩어졌다. 그제야 꿋꿋이 서 있던 김우진이 비틀거렸다.

“괜찮아?”

시에나가 다급히 김우진을 부축했다.

“땀이···.”

“후우, 빡세네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아카식 레코드의 권능에 간섭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이미 신의 이름으로 이어진 결속을 비트는 건 아무리 김우진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심력을 소모해야 했다.

무엇보다 그는 아카식 레코드에게 선택받은 것이 아닌, 그 힘을 강탈한 거니까.

“괜찮은 거니?”

“괜찮습니다. 조금 쉬면 나아질 거예요. 그냥 무리를 조금 해서 그래요. 싸우는 것보다 더 힘들긴 하네요.”

그만큼 아카식 레코드란 절대적인 법칙이었다.

“이래서 신들이 널 경계했구나. 신의 힘에 간섭하다니.”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신이 아니면서 신의 힘을 사용하는 자.

그렇기에 김우진은 모든 신의 경계를 샀고 싸웠다.

그리고 신을 죽였다.

“어떻게, 더 제 편이 되고 싶어졌습니까?”

“그래. 저 빌어먹을 놈에 의해 내 동족들이 모조리 죽었어. 헌데 우습게도 나는 저 놈을 죽일 힘이 없단다.”

기절해있다고 해도 마찬가지. 평범한 용사인 그녀에게는 신을 죽일 방법이 없었다.

“그 계약이라는 것 때문에 너가 죽이지는 않겠지.”

“적어도 당장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훗날이 되면 언젠가 싸울 거고.”

“그렇게 되겠죠.”

“그럼.”

연달아 벌어진 일들에 잠시 잊었을 뿐, 분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신이라는 이름하에, 정의라는 대의 아래 세상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주무르는 신들은 절멸되어야 한다. 신보다는 악마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기에.

“그럼 내가 너와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니.”

시에나가 눈을 번뜩였다.

김우진이 연옥으로 복귀했다.

갈 때는 둘이었으나.

올 때는 열 셋이었다.

* * *

“오셨습···꽤나 많이 늘어났습니다만.”

“꽤나 많은 일이 있었거든.”

“맙소사. 저건 베른 아닙니까?”

“잡아왔어.”

“···계획에 있던 겁니까?”

“아마도?”

“뭡니까, 그 애매한 대답은.”

“이놈은 내가 특별 관리 할 거야. 그래도 명색이 관리자인 이상, 연옥의 시스템은 아무렇지 않게 해제할 테니.”

제약을 걸어 대부분의 힘을 구속하긴 했지만 그래도 관리자다. 방심은 금물이었다.

“나머지들은?”

“베른의 집행자들이다. 이제는 내 간수들이고. 그렇지 않아도 간수들의 파손이 심해서 수가 부족해졌잖아? 잘 됐지. 권능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배신은 걱정할 필요없다.”

“그럼 교육하겠습니다.”

“그래, 너희들 전부 부소장 따라가. 절대복종하고.”

“예.”

“명령에 따릅니다.”

집행자들이 부소장의 뒤를 따라갔다.

김우진은 교도관들에게 카를로를 넘겼다.

“독방에 넣고 관리 잘 해. 또 빠져나갈 수도 있으니까.”

“예.”

“시에나님. 시에나님도 그만 돌아가시죠.”

“그래야겠지.”

카를로와 시에나를 인계 받은 교도관들이 전부 떠났다.

김우진은 연옥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며 집무실에 도착했다. 드워프들에 의해 다시금 리모델링된 집무실은 꽤나 쾌적했다.

온도와 습도, 그리고 빛의 밝기를 조절하는 마법진이 깔린 덕분이었다.

“카펫이나 가구들은 하나 같이 고급이고.”

드워프들의 손길이 닿았으니 고급이 아닐 수가 없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김우진이 베른을 구석에 던져 놨다.

당장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베른이었다.

연옥에 가둔다고 데리고는 왔지만 명색이 관리자인 만큼 일반적인 독방으로는 감금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연옥의 시스템에 개입할 수도 없다.

단순한 흐름을 트는 것과는 별개로 연옥은 여러 관리자들의 권능이 뒤섞인 복잡한 코딩과 같아서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튀어버리니까.

직접 만든 신들이 아니면 건드릴 수 없는 물건인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베른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릴리를 이용해 볼까.’

일단은 신목이라 불리는 나무다. 완전한 신은 아니지만 신에 가까운 존재. 김우진의 도움을 받는다면 약화된 신을 무난히 구속하는 것쯤은 가능할 거다.

‘결국 힘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신이라고 해도 조금 신체능력이 뛰어난 초인에 불과하니까.’

묶어두고 세계수의 뿌리를 이용해 꾸준히 힘을 흡수하는 거다. 그러면 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며, 릴리는 관리자의 힘을 골수까지 빨아들여 보다 거대한 신목으로 성장할 거다.

‘일석이조군.’

한참을 고민하고 있으니 부소장이 들어왔다.

“일단 기본적인 교육은 끝냈습니다.”

“숙소로 안내해줬나?”

“예. 과연 집행자들인지 이해가 빨라서 쉬웠습니다. 내일부터 교도관 일에 들어갈 겁니다.”

“좋군.”

“헌데 괜찮은 겁니까?”

“뭐가?”

“저거 말입니다. 저거.”

부소장의 시선이 집무실 한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베른에게 향했다.

“괜찮아.”

“정말입니까?”

“이번 일로 느낀 게 있어.”

어차피 전쟁은 시작되었다.

계약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백신전은 계속해서 김우진을 건드릴 거다.

가만히 있으면 맞는다. 쓰러질 때까지 맞는다.

그러니.

먼저 때리면 어떨까?

“어떻게 말입니까?”

“그건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지.”

“계약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들을 때리는 방법이라. 쉽지 않겠군요.”

“놈들이 흩어져 있을 때, 하나씩 사냥하는 건 어떨까? 죽이지만 않으면 계약 위반은 아니니까.”

“그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역시 한둘 이상은 쉽지 않겠지.”

처음이야 뭣도 모르고 당한다 쳐도 그 다음부터는 대응할 거다. 다섯, 열 씩의 신들이 모여 있다면 아무리 김우진이라고 해도 무리였다.

“열이나 돼야 무리인겁니까···.”

“내가 먹은 게 한둘이 아니잖아. 이 정도는 해줘야···.”

- 삐이이이!

요란한 울음소리가 김우진의 말을 끊었다.

어느새 집무실 내부로 들어온 자그마한 파랑새 한 마리가 김우진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릴리.”

- 삐이!

파랑새가 김우진의 얼굴에 뺨을 부볐다.

“릴리, 그렇지 않아도 너한테 부탁할 일이···.”

- 삐, 삐!

그리고는 곧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했다.

“율리아 불러와.”

“예.”

잠시 후, 율리아가 올라왔다.

“갔던 일은 잘 해결하셨다고 들었어요.”

“맞아. 이런 저런 사건들이 조금 있었지만 무사히 탈옥수를 잡아왔지. 관리자도 하나 잡아왔고.”

“다행이···네? 뭘 잡아와요?”

“들었으면서 다시 묻지 마. 그것보다는 릴리의 말이나 좀 통역해 줘.”

“아니, 잠시만요, 관리자라면 신 아니에요? 신을 어떻게···!”

- 삐이이이! 삐삐, 삐이익!

“아뇨, 어머니 나무님. 어머니 나무님의 말이 급한 게 아니에요.”

- 삐삐삐삐! 삐이이삐이이!

“아니, 그러니까. 아무리 알베니우스님이 데이드람에 오셨다고 해도 지금은 다른 게 더 급하다니까요? 신을 잡아왔다잖아요. 신을···어?”

“···뭐라고?”

김우진과 율리아의 눈이 마주쳤다.

“···알베니우스님이 데이드람에 오셨다는데요.”

알베니우스. 마침내 그를 만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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