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55. 진짜 >
‘대체 어떻게?’
의문에 의문에 의문에 의문. 꼬리를 무는 의혹들은 드네르바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김우진은 강하다.
안다.
김우진은 신을 죽인 신살자다.
안다.
김우진은 신 둘을 죽였다.
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에는 전제가 붙어 있다.
그 신들은 하위 차원에서 싸웠다.
그 신들의 권역이 아니었다.
그 신들은 따로 따로였다.
“그런데 어째서!”
“누가 그래? 따로 따로였다고.”
프흐흐흐, 김우진이 웃었다.
“다른 신들이 제대로 이야기 해주지 않았나 보지?”
하긴, 그러니까 주제도 모르고 이렇게 설치고 덤비지.
하지만 제대로 이야기 해줬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다. 이들은 김우진을 겪어보지 못했고 신의 자존심으로 인해 그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을 테니.
“넌 다른 신들에게 감사해야 할 거야.”
계약으로 인해 김우진은 신인 드네르바를 죽일 수 없으니.
뿌득, 드네르바의 목이 꺾였다. 사지도 친절히 모조리 부러트렸다. 그럼에도 드네르바는 살아 있었다.
당연하다. 신이 고작 이 정도에 죽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사, 살려···!”
허나, 목이 꺾인다는 건 상상 이상의 공포를 자극한다. 설사 신이라고 할지라도 죽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직접적인 고통이다.
드네르바가 울먹이며 빌었다.
“걱정 마. 죽이지는 않는다니까?”
김우진의 불꽃이 드네르바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아아아아아악!”
심장이 불타는 고통에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실제로 심장이 불타지는 않는다. 다만, 그녀의 육신에서 비롯되는 모든 마나를 불태우고 있을 뿐. 그 고통은 아마 신이 아니라면 쇼크사를 만 번 해도 부족할 정도로 끔찍할 거다.
하지만 신이기에 고통스럽기만 할 뿐, 그녀는 살아 있다. 앞으로도 살아 있을 거다.
“얌전히 있어. 날 더 빡치게 하지 말고.”
김우진은 온 몸을 뒤트는 드네르바를 내버려 둔 채, 구덩이를 빠져 나왔다.
파직, 푸른 섬광이 김우진을 저격했다.
손에 붙잡힌 뇌전의 창이 불꽃을 만나 소멸했다. 그의 시선이 괴성을 지르며 질주하는 번개에 향했다.
“김우지이이이이인!”
“그렇게 열렬하게 부르지 않아도 내 이름이 김우진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아.”
─!
불꽃과 뇌전이 충돌한다.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충격파에 잠시나마 잠잠해졌던 바다가 다시 요동친다.
“죽어어어어!”
10m가 넘어가는 거대한 창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
붉은 검기가 창을 쪼갠다. 부서진 권능의 여파가 베른을 덮친다. 울렁거리는 속을 간신히 삼키며 다시 창을 만든다.
김우진을 쪼갤 듯이 찌른다. 허나, 역시나 가로 막힌다. 반탄력은 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크다.
“대체!”
창이 수 십 개의 그림자를 그리며 덮쳐온다.
“대체 왜 이렇게 내 앞을 막는 거냐!”
검과 창이 연달아 부딪힌다.
“왜!”
“말은 똑바로 해야지.”
카가각, 불의 검이 창을 타고 미끄러진다. 불꽃을 튀기며 뇌전을 가르고 신의 살갗을 벤다. 지진다. 연기와 신음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네가 날 방해하는 거야. 가만히 있는 나를 건드리는 거라고.”
“모든 신이 말한다. 네놈에 비하면 발끝만도 못하다고! 자격도 부족한 놈이 신이 되었다고!”
“내가 그런 건 아니잖아? 우리는 그런 걸 자격지심에 피해망상이라고 해.”
“닥쳐라!”
창의 움직임이 더욱 격렬해진다. 연달아 터지는 충격파에 공간이 일그러진다.
“그래서 증명하고자 했다! 나는 신이니까! 지고하고 완전한 존재니까! 신을 모욕하고 신에 대한 예의를 잊어버린 네놈에게 천벌을 내리고 이 세상에 신위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지구의 한 철학자가 말했지. 신은 죽었다.”
“끝까지!”
“애새끼처럼 투정 부리지 마.”
김우진의 기도가 달라졌다. 불꽃이 드높게 치솟는다. 그 열기에 베른이 주춤거리고 검격이 그 위로 떨어진다.
─!
베른의 신형이 뒤로 튕겨져 나간다.
“가만히 있는 날 자극한 것도, 계약의 종료만을 바라는 날 굳이 건드린 것도,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도 모두 네놈이야.”
어째서 신이라는 작자들은 하나 같이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할까? 감사함이라는 것을 모를까?
“오히려 넌 나한테 절을 해야지. 고맙다고 밥이라도 한 번 사줘야지.”
“내가 왜 네놈 따위에게···!”
쩌엉, 창이 부서진다.
그대로 번개를 자르고 신의 육신을 가른다.
“커헉···!”
베른이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흩뿌리는 피는 광신도들이 보면 좋아할 신혈이다.
놈의 육신이 김우진에 의해 만들어진, 드네르바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구덩이로 떨어진다.
“남 덕분에 한 자리 얻었으면, 한국에서는 밥이라도 한 번 사주는 게 예의야, 이 씨발놈아.”
그런데 밥은 못 사줄망정 지랄 염병을 해?
하여간, 신이란 것들은.
김우진이 뿌득, 이를 갈았다.
* * *
“···말도 안 돼.”
드네르바를 섬기는 집행자, 파른이 경악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집행자들이 그랬다.
무려 ‘신들’과 일개 피조물의 싸움이다.
맹세코 신들의 승리를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헌데 어째서일까. 결과는 그들의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들이 밀렸다. 신들이 압도당했다. 신들이 패배했다.
이것이 과연 말이 되는 걸까?
말이 된다. 그 결과가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심장을 부여잡고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는 드네르바, 기절한 채, 축 늘어져 있는 베른.
과연 누가 지금 저들을 보고 신이라고 부르며 경외할까. 오히려 그들의 멱살을 움켜쥐고 천천히 떠오르는 반역자 김우진이 더욱 신에 어울렸다.
“···어떻게 합니까?”
“나한테 묻지 마.”
다른 집행자의 물음에 파른이 입술을 깨물었다. 신들도 당했는데 그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저항도, 도망도 불가능하다.
“뭐해?”
그렇기에 신들을 압살한 반역자의 시선에 눈을 깔았다.
“싸울 거야?”
“···아닙니다.”
“그럼 꿇어. 이 개새끼들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 * *
“너희들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자칭 하늘의 신 케이룸, 베른.
그리고 그의 조력자이자 또 다른 관리자 드네르바.
불꽃을 심장에 박아 넣고 혈도들을 틀어막는 직접적인 제약에 약해진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
“······.”
치밀어 오르는 치욕스러움에 두 신이 입술을 깨물었다. 단순히 패배한다해도 치욕스럽기 그지없는데 하물며 휘하의 집행자들이 보는 앞이다.
신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졌다. 아니, 체면뿐일까?
다시없을 굴욕이다. 그럼에도 드네르바는 살고 싶었다.
“···우리를 어떻게 할 생각이야?”
“질문할 처지라고 생각하나?”
“계약의 의거하여 너는 우리를 죽일 수 없어.”
“죽일 수는 없지. 다르게 말하면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사지가 부러지고 피부를 모두 벗기고, 수천, 수 만년을 감금해도, 신들의 근원을 부숴도 계약을 위반하지는 않는다.
“그건 억지야!”
“오만한 네놈들의 아둔함이지.”
신들이 언제 계약서라는 것을 써봤겠나. 감히 피조물 따위가 신을 상대로 계약의 맹점을 노릴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나.
그렇기에 신과의 계약서에는 전문 변호사라면 충분히 찾을 수 있는 맹점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연옥에 가둬두면 그것도 재밌겠군.”
신을 가두는 감옥이라니. 명실상부한 우주 최고의 감옥이다.
“나는 신이야! 그 따위 감옥에 있을 수 없어!”
“그건 내가 정해. 너희들이 만든 징벌방에 들어가 있는 것도 재밌을 것 같지 않아?”
“그런 짓을 벌이고도 네 놈이 무사할 줄 알아?”
“무사할 것 같은데. 지금처럼.”
드네르바가 입을 다물었다.
“너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그쯤에서 김우진은 당근을 내밀었다.
“처음 말한 대로 연옥에 갇혀 죽지만 않는 상태로 수 천 년, 수 만 년을 버티던가.”
김우진에게 힘으로 족쇄를 채우려고 했던 버러지들이나 이들은 결국 앞잡이에 불과하다.
이들의 움직임을 다른 신들이 모를까?
아니다.
이들의 움직임은 결국 백신전 모두의 의지다. 백신전이 본격적으로 김우진을 견제하고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며, 앞으로 더 험난한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신들은 김우진이 무사히 모든 죄수들을 출소시키기 전에 어떻게든 족쇄를 더욱 단단하게 조이려 할 것이다.
그건 아무리 김우진이라고 해도 부담스럽다.
계약을 맺은 건, 신들이 죽음이라는 미지를 두려워하고 김우진을 경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김우진이 백신전과의 전면전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100이고 김우진은 하나니까.
그렇기에 무작정 오는 것들을 다 부술 수는 없다. 반드시 한계를 맞이하니까.
“···버티던가?”
“아니면 내 손을 잡던가.”
“···위대한 신이 내가 일개 피조물인 너 따위의 손을 잡을 것 같아?”
“아직도 주제나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뚜둑, 김우진이 주먹을 쥐었다.
“손을 내밀어야 잡던가, 말던가 하지!”
“신 치고는 꽤나 신박한 캐릭터네.”
김우진이 픽 웃었다.
“대체 뭘 할 생각인데?”
“가만히 앉아서 네놈들 뜻대로 당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계란으로 바위치기야. 아무리 네가 강하다고 해도 백신전을 이길 수는 없어! 우리를 이겼다고 기고만장하지 마. 우린 백신전의 신들 중 최약체라고!”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김우진은 이들이 어떻게 신이 되었는지도 알고 있었다.
“내가 너희들을 신으로 만들었는데.”
저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그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능력으로 신이 됐어.”
“이미 꽉 차 있던 백 개의 자리에 공석을 만들어 준 건 나지. 그게 저 버러지가 나만 보면 발작하는 이유고.”
일개 피조물 덕분에 신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에, 베른에게 있어 지우고 싶은 얼룩과도 같기에.
베른이 대답 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정말 백신전이랑 한 판 붙겠다고?”
“네놈들이 날 가만히 두지 않으니 끝장을 봐야지.”
“승산이 없는 싸움이야.”
“그건 네 생각이고.”
“네 편을 들었다 들키면 나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소멸 당할 거야.”
“그럼 지금 당장 연옥으로 갈래?”
“그러니까 안 들키게 잘해야 한다는 거지!”
드네르바가 어느새 김우진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쪽은 됐고. 네 대답은?”
“드네르바, 신으로서의 위신을 지켜라.”
“패배한 상황에서 위신이고 나발이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러니까 다른 놈들이 우리를 무시하는 거다!”
버럭, 소리친 베른이 김우진을 노려 보았다.
“꿈깨라. 내가 네놈의 종이 되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
“그러든 말든, 상관없어. 앞으로 벌어질 일을 감당하는 건 온전히 네 몫이니까. 그리고 너한테 딱히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뭐라고?”
“난 백신전을 무너트릴 거다. 그 혼란 속에서 살아남은 신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렇게 신들이 줄어든다면.
“네 위치가 어떻게 변할까?”
“같잖은 설득이군. 전제가 글러먹었다. 넌 절대 백신전을 이길 수 없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사실 나도 네놈은 손수 조져주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났거든.”
“후회하게 될 거다.”
“한숨 자둬. 다음에 만났을 때는 연옥일 테니까.”
콰직, 김우진이 베른을 기절시켰다.
* * *
한편, 시에나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였다.
“···대체 뭐야.”
집행자들이 내뱉던 말과 같았으나 그 주체가 달랐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온 몸을 파르르 떠는 성녀가 있었다.
“아아···! 그래, 그래서였어!”
성녀는 깨달았다.
신은 완벽해야만 한다.
신은 지고해야만 한다.
신은 패배할 수 없다.
그래야 신이다. 그러니 신이다.
“애초에 거짓된 신이었던 거야! 진짜가 아닌 가짜!”
그렇기에.
패배한 저 패배자들은 신 아니다.
신은 패배자일 수 없으니까.
일개 반역자의 손에 쓰레기처럼 들려 목숨을 구걸해서는 안 되니까.
그렇다면?
신이라고 우쭐대던 저 가짜들에게 천벌을 내린 저자는?
과연 저자가 반역자일까?
아니면.
가짜들이 숨기고자 했던 ‘진짜’인가.
“저분, 저분이야말로···!”
성녀가 김우진을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제발 빨리 이쪽으로 좀 와줘.”
나 무서워.
시에나가 불안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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