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44. 감 >
김우진은 급하게 연옥으로 복귀했다.
10명의 죄수들.
적어도 그가 연옥의 소장이 된 20년 동안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 이전의 과거는 잘 모르나 데르카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소 300년간은 마찬가지였다.
당연하다.
차원이 아무리 우주의 별처럼 많다고 해도 멸망의 위기에 닥친 차원이 몇이며, 간택된 용사가 그 세상을 수호할 가능성이 몇이며, 신의 말에 따르지 않고 힘을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은 또 몇인가.
“열 명, 열 명이라.”
관리자 놈들의 수작질이 분명하다. 과연 무엇일까.
저것들이 과연 진짜 용사일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갔다. 설마 신들이 집행자를 용사로 둔갑시켜서 넣었겠나.
아마도 그저 유보했을 뿐일 거다. 그를 엿 먹이기 위해 마땅히 연옥에 가야할 죄수들을 보내지 않고 억류해 두고 있다가 기회를 틈타 한 번에 보내는 거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긴, 받아야지.”
신들이 보내는 죄수를 받는다. 그건 결코 변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열 명의 용사들 중에 관리자들이 보낸 개가 얼마나 되는지, 꿍꿍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파악하는 거다.
“아예 나쁘기만 한 건 아니야.”
어찌 되었든 감옥에 들어온 이상 죄수고 김우진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된다. 그들을 잘 다져서 출소하게 만든다면 순식간에 10명을 클리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김우진과 신들의 계약이 이루어지는 날도 그만큼 당겨질 거고.
“열 명 전부 내보낸다.”
그렇게만 된다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열 명의 용사들을 한 번에 보내는 지는 결국 중요하지 않다.
신들은 스스로의 멍청한 자충수에 땅을 치고 후회할 거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을 조심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그들과의 대면은 상담실에서 이루어질 테니.
“···데이드람의 세계수한테 영약을 넉넉하게 받아와서 다행이네.”
그전에 릴리를 다시 하늘구름에 넣어야 한다.
* * *
날이 밝았다.
모자를 쓰고 담배를 한 대 태운 뒤, 죄수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11시 정각. 1초의 오차도 없이 정문이 벌컥 열렸다.
익숙한 시커먼 호송관들이 고개를 내민다.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지만 이질적인 것은 갖가지 구속 도구들을 착용한 채, 따라오는 죄수가 하나가 아닌 열 명이라는 것.
“오랜만에 뵙습니다. 소장님.”
호송대장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죄수들에 대한 서류를 건넸다.
서류에 등록된 사진들과 실물들을 대조해보며 죄수들 한 명, 한 명을 확인했다.
그러다 문득, 특이한 죄수를 발견했다.
“본 적은 있지만 연옥에서 보는 건 또 처음이군.”
말과 같은 하체에 붙여진 인간의 상체. 켄타우로스다. 켄타우로스 용사라니.
켄타우로스 엄연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이종족이다. 하지만 그 수가 극히 적고 용사로서 활약할 수 있는 차원도 적다.
대부분의 차원의 주 종족은 어디까지나 인간이고, 용사의 과업은 그들의 편에 서서 종말을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켄타우로스가 익숙하기보다는 생소한 차원이 더 많고 용사로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는 차원들도 많았다. 때문에 켄타우로스 용사는 드물었다. 거인족보다 더.
“인간 여섯에 엘프 하나, 드워프 하나에 수인 하나라. 골고루군. 특이사항은 있나?”
절반 이상이 인간이라는 건 좋은 일이다. 심지어 여섯 중 둘은 지구 출신이었다.
“딱히 없습니다.”
“어째서 용사들이 한 번에 열 명이나 들어온 거지?”
“우연입니다. 아시잖습니까? 용사가 생겨나고 그들이 죄수가 되는 건 결코 계획적인 일이 아닙니다.”
“명색이 신이라는 자들이 그런 말을 잘도 하는군.”
“저는 지고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제게 물으신다 한들 원하시는 대답을 들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호송대장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히 대꾸했다.
“출소자는 잘 도착했겠지?”
“그는 신께서 부여해준 신의 힘을 자진하여 반납하고 본래의 차원으로 돌아갔습니다. 온전히 소장님의 과업에 추가되었습니다.”
“가봐.”
“예,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열 명의 죄수들을 남긴 집행자들이 사라졌다.
“차례대로 한놈씩 상담실로 넣어라.”
“예.”
상담을 시작했다.
“너희들이 용사로서 얼마나 떠받듬을 받고 살았는지, 어떤 존재인지 나는 티끌만큼도 궁금하지 않아. 얌전히 있을래? 아니면 일단 한 대 맞을래?”
똑같은 시작, 거기에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용사는 없다.
“널 죽여 버리고 여기서 벗어나겠어!”
인간 용사 1179번.
“지구인? 나도 지구인이야! 지구인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 날 제발 내보내 줘!”
지구인 인간 용사 1180번.
“오냐, 다르멘을 구한 전설의 용사가 나야, 이 개새끼야!”
지구인 용사 1181번.
“나는 용사다! 죄수 취급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죽어!”
“대체,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난 용사라고! 세계를 구한 영웅!”
인간 용사 1182번, 1183번, 1184번은 대체로 대동소이했다. 처음엔 현실을 부정하고 분노했으나 힘 앞에 굴복하고 비탄했다. 그리고 굴복했다.
그중에서 1184번은 유난히 강했다. 단순히 힘을 잃는 것이 아니라 집행자 제안까지 받았을 것이 분명한 실력이다.
“그러니까 용사들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개소리도 정성껏 하는군. 감히 나를 가둘 수 있는 놈은 없다! 사지를 뽑아 씹어 먹어주마!”
1185번, 수인 용사. 짐승은 역시 그 특성에 맞게 끈질겼고 그만큼 더 맞았다. 기절시킨 후, 독방에 던져놓았다.
“···용사로서 정점에 오른 입장에서 말하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저는 당신을 이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허나, 이 황당한 감옥에 그대로 갇힐 수도 없는 노릇.”
1186번, 엘프 용사. 역시 엘프는 모든 용사들을 통틀어 가장 침착하고 전투를 지양하는 자들이었다. 그는 패배를 인지했으나 싸웠고 김우진에게 굴복하여 죄수로 안착했다.
“내가 직접 제련한 도끼가 열기에 녹아? 제기랄, 넌 대체 뭐야?”
1187번, 드워프 용사는 무기를 녹여버리자 손쉽게 굴복했다.
“···그렇군. 이곳이 연옥이라는 곳인가. 힘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갇히다니. 신이라는 자들이 옹졸하기 그지없군. 난 그대와 싸울 마음이 없소.”
그리고 대망의 1188번, 켄타우로스. 그는 무척이나 건장한 전사였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오늘 들어온 열 명의 용사들 중 가장 강인했다.
그리고 김우진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연옥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오래 전에 연옥에서 돌아온 자가 있었소. 내 할아버지셨고 그분은 위대한 전사셨지.”
“그자가 너한테 말해주었다?”
“맞소.”
“그럴 리가.”
신들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피조물들의 차원에 연옥에 대한 정보가 퍼지는 건 결코 그들에게 긍정적이지 않았다.
김우진이 알기로 힘을 반납한 용사는 맹세를 한다. 김우진과 신들의 계약처럼 신조차 어길 수 없는 맹세를.
연옥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놈이 관리자가 보낸 첩자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수백년만에 돌아오셨다고 했소. 그분은 늘 분노하셨지. 허나, 어렸을 때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 몰랐소. 할아버지는 그 대상에 대해서는, 분노의 이유에 대해서는 항상 함구하셨으니까.”
“그런데?”
“하지만 돌아가시기 직전, 이 연옥에 대해 이야기하셨소. 그리고 갑자기 일어난 균열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가셨고 그 이후, 본적이 없소.”
맹약을 어긴 대가로 심연으로 굴러 떨어진 거다. 심연은 맹약을 어긴 자들이 가는, 신조차 나올 수 없는 지옥.
신들에 대한 분노가 너무 깊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진실을 이야기 했다면 나름의 이해는 간다.
고작 삭히지 못한 분노 때문에 연옥에 굴러 떨어졌다는 건 개연성이 조금 부족하지만 감정이라는 게 원래 그런 법이니까. 적어도 켄타우로스의 이야기만 듣자면 틀린 부분들은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 내가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구려. 졸렬한 신 같으니. 어찌 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 용사들이 두려워 이따위 짓거리를 하는지.”
그에 따른 신에 대한 적개심도 적절하다. 하지만 너무 적절해서 오히려 의심이 간다.
김우진은 어쩌면 이 켄타우로스가 신들이 심은 첩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봐, 아무리 그래도 내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일단은 내가 여기 소장인데.”
“그게 중요하오? 하든, 하지 않든 내가 힘을 포기 하지 않는다면 풀어주지 안을 텐데. 나는 힘을 포기할 생각이 없고 말이오.”
“맞는 말이야. 맞는 말이긴 한데 앞에 한 글자가 빠졌어.”
뻐억, 상담실을 울리는 타격음과 함께 켄타우로스의 고개가 돌아갔다. 굳건한 네 개의 다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볼품없이 뒹굴었다.
“크헉, 이게 무슨 짓인가!”
“너는 죄수고, 나는 소장이야. 어디서 반말을 찍찍 내뱉어, 말 새끼야.”
김우진이 수많은 죄수들 중 반말을 허용해 준 죄수는 딱 둘이었다. 죄수번호 1077번, 연옥 최고의 장기수 데르카인. 그리고 죄수번호 1152번, 엘프들의 대장이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켄타우로스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나는 반말을 한 적이 없소!”
켄타우로스가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의 말이 맞다. 하오체는 반말이 아니니까. 하지만 애초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켄타우로스. 하이엘프만큼은 아니지만 수가 적고 특별한 종족이다. 하지만 그게 다른 죄수들과 차별점을 두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그들은 수인들만큼이나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종족. 초반에 기강을 잡아놔야 편하다.
전투를 원치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싸워서 굴복을 시켜야 한다. 그래야 관리가 편하다.
“짐승이 인간과 겸상을 하며 하오체를 쓰는 것 자체가 문제야.”
“···그대 같이 무도한 인간은 본적이 없소! 과연 졸렬하기 그지없는 신의 하수인인가!”
네 개의 다리가 충격을 최소화하며 빠르게 몸을 바로잡았다. 상체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마나로 만들어진 창을 내던졌다.
────!
허나, 그것은 김우진의 가벼운 손길에 튕겨져 나갔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신의 하수인도 말이지.”
화륵, 불꽃이 피어오른다.
“능력이 되야 할 수 있는 거거든.”
너 같은 인간 상체에 말 하체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지.
“나를 무시하지 마시오! 나는 위대한 칸의 일족이오!”
히히힝, 실제로 말의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느껴질 만큼, 켄타우로스는 거칠게 투레질했다. 마나로 만들어진 거대한 랜스를 손에 들고 돌진했다.
검은 빛의 오러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하나의 거대한 창이 되었다.
켄타우로스들이 자랑하는 랜스 차징. 그 수가 많아질수록, 그 규모가 커질수록 파괴력은 극대화된다.
허나, 불행하게도 그의 상대는 김우진이었다.
불꽃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거대한 주먹의 형상은 창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주먹과 창, 부서진 것은 창이었다.
“크아아악!”
콰아아앙, 집무실이 흔들리는 거대한 충격과 함께 켄타우로스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콰직, 바닥을 기며 꿈틀거리는 그의 육신을 김우진의 다리가 짓밟았다.
그리고는 다른 아홉 명의 죄수들에게 했던 사상검증을 끝으로 상담을 마쳤다.
“신, 개새끼 해봐.”
* * *
“···10명 모두 했어.”
“···예?”
무엇을 말이지.
부소장은 잠시 대화의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고민에 잠겼다.
“10명 모두 사상 검증을 통과했다고.”
“사상검증이라면?”
“신 개새끼 해보라니까 잘하더라고.”
“···고작 그게 통하겠습니까?”
“그래서 다른 욕도 시켰는데 다 하던데.”
“아니, 애초에 그런 건 효과가 없지 않습니까.”
“지구에서는 잘 통했는데. 대상이 달라지긴 했지만 신실한 신자라면 신을 모욕하면 안 돼는 거 아니야?”
“저들은 신자가 아닙니다. 강민식처럼 단순히 대가를 약속 받고 신의 사주를 받은 거라면 신을 모욕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맞네.”
김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또 다른 가정, 집행자를 죄수로 속여서 집어넣는다는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설마 신실한 신자인 집행자들이 임무라고 할지라도 신을 모욕하거나 하지는 않겠지.
“어쨌든 골치 아파졌어. 어떤 놈이 첩자인지 감이 안 잡혀. 있다며 몇 놈인지도.”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알아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맞아. 그리고 다행히 이쪽에는 아직 방법이 있어.”
“무엇입니까?”
“엘프는 엘프에게, 드워프는 드워프에게, 수인은 수인에게 맡기는 거야.”
시에나, 데르카인, 타르칸이 알아서 온갖 검증을 거칠 거다. 그들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그러면 셋을 제외할 수 있다.
“나머지는 어떻게 합니까?”
“강민식에게 맡겨야지.”
“강민식 말입니까?”
“그래.”
강민식은 공식적으로는 아직, 신의 개다. 베른이 그렇게 알고 사라졌으니 다른 신들도 그렇게 알고 있을 거다.
그리고 쓸 수 있는 카드를 쓰지 않을 놈은 없다.
“같은 신의 끄나풀로서 접근하면 살살 나올 가능성이 높아. 저놈들을 보낸 신이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나를 엿 먹이는데는 이놈저놈 가리지를 않거든.”
그러니 첩자놈들도 강민식에 대해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강민식을 완전히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안 믿어.”
강민식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김우진은 확신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때 당시에는 진심이 느껴졌으나 인간의 마음이란 더 없이 간사한 법이니까.
그가 믿는 건 상황이다.
“놈의 마음이 어떻든, 지금은 협력하는 척이라도 할 수밖에 없어.”
그럼 누군가와 반드시 접촉을 하긴 할 거다.
그대로 김우진과 협력하는 사이가 되고자 한다면 진짜 첩자들과.
신에게 다시 마음이 돌아섰다면 가짜 첩자들과.
놈의 태도를 보고 결정하면 된다. 거짓말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
“내가 또 기가 막히게 잘 알거든.”
단순한 감이 아니라, 권능의 일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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