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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44화 (44/150)

# < 043. 당부 >

“···신을 죽였다고요? 누가요? 소장님이요?”

“재미있는 농담을 하시는군요.”

창백하게 질린 율리아와는 반대로 김우진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을 만큼 태연했다.

“저는 연옥의 소장입니다. 가두어진 죄수가 아닌, 가두기 위한 간수. 그 누구도 간수를 죄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 일반적으로는 그렇겠지. 넌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고.

- 신들도 알고 있단다. 다른 용사들처럼 너를 가두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은 신입니다. 신이 하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관리자라고 모욕하고 폄하하긴 하지만 그들이 가진 힘은 진짜다. 백신전의 신들은 모두 신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존재들이었다.

-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지.

- 네가 그들이 잊고 있던 ‘공포’를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에.

“···알베니우스입니까?”

- 알베니우스가 너의 필요성을 가장 부르짖기는 했지.

“알베니우스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 당장은 이 차원에 없단다. 워낙 자유로운 존재이니.

김우진은 스스로가 조금 당황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데이드람의 세계수가 알베니우스와 함께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는 것도.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

“대체 당신과 알베니우스가 노리는 것이 뭡니까?”

아니, 그 전에.

“승산은 있습니까?”

백신전은 전 우주를 다스린다. 그들의 손에 쥐락펴락되는 차원이 한두 개가 아니며 그들 밑의 군단은 결코 약하지 않다.

세상이 탄생한지 억겁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탄생한 용사가, 집행자가 된 용사가 몇이겠나.

신의 군단은 전원 전직 용사들이다. 그들이 개떼같이 몰린다면 아무리 김우진이라고 할지라도 무조건 이긴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김우진이 가진 가장 큰 의문은 그것이었다.

신은 신이다. 그들이 가진 힘이, 세력이 강하기에 신으로서의 이름을 지킬 수 있는 거다.

그가 굳이 그들과 합의하여 억지로나마 소장을 맡은 이유이기도 했다.

- 신들의 치세는 오래되었고 시간은 그들을 더 없이 오만하게 만들었지.

- 이 우주에 그들에게 불만을 가진 자들이 한둘이 아니란다.

“개미들이 여럿 모여 봐야 인간 하나한테 안 된다는 것, 아시잖습니까?”

- 개미들만 모인다면 그렇겠지.

- 대부분은 개미겠지만 호랑이도 있단다. 알베니우스나 나와 같은.

- 그리고 용사들도 많단다.

“용사‘였’던 이들이겠지요.”

사실, 용사의 힘을 빼앗겼다고 해서 용사가 완전한 약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용사의 권능이란 결국 한계를 넘게 해주는 힘. 피조물의 벽을 부수게 해주는 신의 힘이다.

그것을 빼앗긴 용사는 그저 평범한 강자로 돌아갈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한 차원에서 최강이라 불리겠지만 용사의 권능을 가지고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연옥에 있지 않으면서 신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결국 이런 자들을 의미한다.

- 네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안단다.

- 하지만 우리도 나름의 방책이 있어. 연옥이 무너지고 그 분노가 우리를 향하겠지만 비틀어 낼 수 있단다.

“그 방법이 뭡니까?”

- 그건 네가 확실하게 우리에게 동조하겠다는 맹세를 해야지만 알려줄 수 있단다.

“맹세합니다.”

- 살아온 세월이 세월인만큼, 그런 말뿐인 맹세를 믿을 만큼 어수룩하지는 않지.

“제가 신들과 맺은 계약을 원하시는군요.”

- 그것만큼 확실한 건 없으니까.

“불가합니다. 적어도 지금의 상태로는. 저는 보다 확실한 것을 원합니다. 당신이 숨기고 있는 무언가와 같은.”

- 그래도 일단은 호기심은 있다는 뜻이구나.

- 무작정 신의 졸개가 된 것이 아니라고 한 알베니우스의 말이 맞았어.

참새가 웃었다.

- 허면, 보다 진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구나.

“다음에 말입니까?”

- 아마 그때는, 알베니우스가 함께할 것이란다. 너도 그쪽이 더 낫지 않겠니?

“···알베니우스.”

김우진이 그리운 이름을 되뇌었다.

“확실히 그게 낫겠군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많든, 적든.

* * *

···신을 죽였다고?

신을?

돌아가는 대화를,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이해를 아득하게 뛰어넘은 범주였다.

물론 데이드람의 어머니 나무와 알베니우스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그것이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신살은 아득한 미래의 일이었다. 언젠가는 이루어야 할 일, 하지만 언제 이룰지는 알 수 없는 미지.

그런데 김우진은 이미 이루었단다. 그럼에도 멀쩡히 신들과 거래를 해 살아있단다.

그런 게 가능한 건가?

‘가능하지. 그러니까 눈앞에 있지.’

율리아는 스스로의 멍청한 생각을 접었다.

- 혼란스럽니?

김우진은 이미 사라졌다. 세계수가 율리아와의 독대를 바랐기 때문이다.

“···네, 조금. 아니, 많이요.”

- 달라지는 건 없단다. 넌 연옥에서 네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면 돼.

“정말로 소장님이 신을 죽였나요?”

- 굳이 거짓말을 말할 필요가 있니?

“···알베니우스님이 왜 소장님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알겠어요.”

- 조금 과장이 섞였을지언정, 거짓은 없지.

“그런데 왜 신들은 소장님을 소장으로 만든 건가요? 신을 죽였다면 양립할 수 없는 대적 아닌가요?”

- 신을 죽였기 때문이란다.

신은 지고한 존재다.

완전무결한 존재다.

그들은 두려움을 느껴본 적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다.

최초의 신들이 생겨난 이례로 그들의 숫자는 평생 늘어가기만 했다. 그것을 부순 게 김우진이다.

피조물이 신에게 도전했다. 그리고 신을 죽였다.

신들은 아흔아홉이 남았고 함께 싸운다면 분명히 김우진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그를 죽이기 위한 과정에서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죽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누구도 그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그들은 합의했다. 관대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용서라는 이름으로 피했다.

세계수의 설명에 율리아는 납득했다. 솔직히 신들의 태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납득이 되었다.

“그런데 왜 완전히 손을 잡지 않고 여지를 두나요? 어머니 나무의 말씀대로라면 반드시 잡아야할 존재가 아닌가요?”

- 완전히 믿을 수는 없으니까.

이유야 어떻든, 그는 연옥의 소장이 되었다. 충실히 임무를 수행했다. 무려 20년을.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20년은 티끌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20년은 결코 짧지 않다, 그 시간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어떻게 짐작하겠나.

- 일말의 의심이라도 있으면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해. 우리가 하는 일이 그런 일이니까.

“···이해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한 가지 의문이 해소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겼다.

“어머니 나무께서는 그걸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시는 거예요?”

신과 김우진, 백신전과 김우진의 일이다.

거기에 설마 세계수들이 개입한 걸까.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신들이 세계수를 가만히 둘리가 없으니.

표면적으로는 서로 필요에 의한 협력 관계지만 그 상하관계는 명확했다. 단순히 백신전의 배려로 상하로 구분짓지 않을 뿐.

알베니우스도 아니다. 그는 율리아에게 신들로부터 도망쳤다고 했으니. 결코 마지막 전장까지 함께 하지 않았다.

- ···역시 율리아, 날카롭구나.

세계수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 너에게만 알려주마.

참새가 속삭였다.

- 사실.

- 신들 중에는.

“······!”

율리아가 경악했다.

“정말로요?”

- 그래. 그러니 절대 김우진에게는 말하지 말거라. 그가 확실하게 우리와 함께하기 전까지는.

- 이건 단순한 부탁이 아니니 명심하고.

세계수의 마지막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체 왜? 라는 의문만이 그녀의 뇌리를 가득 채웠다.

* * *

“가자.”

김우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짐을 털어내려 왔던 데이드람에서 오히려 짐을 얻어 버렸다.

물론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 내가 길러낸 영약들이란다.

- 릴리에게 주렴.

- 생물학적 부모가 되어서 그런 험지로 보냈으니 마음이 하루도 편하지 않구나.

참새가 있지도 않는 눈물을 닦아내며 최상급 영약 꾸러미를 건넸다.

무려 다섯 개. 과연 세계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러면 레이먼드나 데이지에게 굳이 영약을 구할 필요 없다고 말해줘도 되겠는데요?”

“아니. 그거야 말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영약이란 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세계수가 다섯 개를 줬다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둘은 다시 상단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소장님!]

통신구가 울렸다.

그건 평범한 통신구가 아니었다. 차원을 뛰어넘어 통신할 수 있는 권능의 통신구였다.

당연히 그 발신자는 김우진을 대신해 현재 연옥을 관리하고 있는 부소장이었다.

“무슨 일이지?”

[상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 새로운 죄수들을 보낸다고 합니다.]

그 일단의 문장에서 김우진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죄수‘들’이라고?”

용사는 흔하지 않다. 신의 제안을 거부한 용사는 더욱 많지 않다.

당연히 죄수는 드물고 적어도 김우진이 연옥을 맡아온 20년 동안 여러 명의 죄수들이 한 번에 들어오는 경우는 없었다.

[예, 열 명의 죄수들이 내일 한꺼번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

김우진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걸 좋아해야해, 말아야해?”

무언가 벌어지고 있었다.

* * *

“신이시여.”

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주인이 권태로운 눈빛을 보냈다.

“김우진이 연옥을 벗어났습니다.”

“또 다시?”

“헌데 이상합니다. 그 어느 차원에서도 김우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신들이 모든 차원을 관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부 버려진 차원을 제외한 모든 곳을 관리한다.

김우진이 소장으로 있는 연옥부터, 아주 작은 차원까지 전부 신들의 손바닥 위에 있다.

차원의 방벽에 대한 권한 또한 당연히 신들에게 있다. 헌데 김우진이 연옥을 나간 흔적이 포착되었으나 어디론가 들어간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미 돌아왔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나갔다 들어왔다면, 그 흔적이 남을 테니.

둘 중 하나다.

김우진이 몇 안 되는 버려진 차원을 찾아 갔거나.

“어느 나무가 김우진에게 협조하고 있는 모양이군.”

지고의 경지에 오른 세계수가 차원의 방벽에 새겨진 흔적을 완벽하게 지웠거나.

남자의 눈매가 휘어졌다.

“찾아내겠습니다.”

“찾아? 찾아서 무엇을 하려고?”

“당연히 김우진을 도운 죄를 물어 대가를 치르게···.”

“아서라. 들쑤신다고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세계수는 결코 많지 않다. 그들은 꾸준히 그 영향력을 높이고자 씨앗을 퍼트려왔으나 애초에 세계수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은 그리 많지 않았다.

별처럼 많은 차원들 중 세계수가 있는 비율을 따지자면 대략 1%정도. 허나 그것만으로도 적다고 할 수는 없다.

1%도 1%나름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이유로 그들을 건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 세계수란 분명히 경시할 수 없는 존재들. 신들의 눈치를 살피며 줄타기를 하는 모습은 분명히 언젠가 치워야 할 버러지 같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굳이 그런 일에 내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 김우진을 싫어하는 자들에게 슬며시 흘려라.”

그들이 알아서 어떤 수라도 낼 테니. 특히, 베른과 같은 놈들이.

“예. 신이시여.”

여인이 더욱 고개를 숙였다.

날뛰는 신들의 행동에, 과연 김우진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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