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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41화 (41/150)

# < 040. 목표 >

“죄수들의 관리 상태가 엉망이다. 조금 더 죄수들의 처우에 신경 쓰도록. 그리고 죄수들에게 신에 대한 불온한 사상을 전파하지 마라.”

“그런 적 없어.”

김우진이 코웃음쳤다.

“됐고, 면담을 했으니 죄수 하나가 출소 의사를 밝힌 건 알고 있겠지? 바로 내보낼 거니까 알아서 처리해.”

“···앵무새처럼 더 이상 연옥에서 버틸 자신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더군. 무슨 수를 쓴 거지?”

“다 능력이지.”

“헛소리하지 마라. 죄수들을 협박했겠지. 역겨운 방식으로.”

“그 역겨운 방식이 마음에 들어서 네놈들이 날 여기에 앉혀놓은 거야.”

“언제까지나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김우진은 코웃음으로 답했다.

“조만간 새 죄수가 들어올 거다.”

“벌써? 1177번이랑 1178번이 들어온지 얼마나 됐다고?”

“많아진다면 네놈 입장에서는 좋은 것 아니냐.”

“죄수도 죄수 나름이지. 네놈들도 참 징글징글해. 부려먹고 팽하고, 부려먹고 팽하고.”

“피조물들이 우매하여 주제를 모를 뿐이다.”

베른은 떠나갔다.

원하는 바를 하나도 이루지 못했지만 본인은 그걸 몰랐다.

그의 태도를 비추어 보았을 때, 세계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강민식의 말은 진짜일 것이다. 알았다면 결코 순순히 떠나가지 않았을 테니.

집무실 하나가 통으로 날아갔지만 이번 감찰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았다.

짐승들의 완전한 충성, 데르카인과 율리아의 신뢰, 그리고 강민식의 신에 대한 불신까지.

베른 오르티안의 존재로 인해 죄수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었으니 더 없이 좋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새로운 죄수다.

죄수가 들어오는 건 언제나 좋다. 수인이고, 엘프고, 드워프고, 인간이고를 떠나 결국 죄수들이 많이 들어오고 그들이 자발적인 출소를 선택해야지만 김우진은 묶여진 계약을 벗어날 수 있다.

허나, 그 타이밍이 절묘하다.

하필 강민식이 탈옥을 실패하고, 관리자가 감찰관으로 내려온 뒤.

그를 향한 새로운 마수라는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그들도 멍청이가 아닌 이상 바로 새로운 수단을 강구할 리가 없지만 그게 또 맹점이 될 수도 있으니까.

“뭐든 일단 인간이 들어왔으면 좋겠군.”

우주를 이루는 수많은 종족들 중 가장 많으며, 가장 출소시키기 쉬운 자들.

새로 오는 죄수가 인간이라면, 더 두고 볼 것도 없다. 관리자들의 스파이든 말든 그전에 출소시켜버리면 그만이다.

* * *

급한 불은 껐다.

김우진은 릴리를 찾았다.

하늘구름의 첫 번째, 울타리의 작동을 중지시켰다. 울타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라진 울타리 너머로 거대한 새장이 보였다. 그 안에 축 늘어진 릴리가 안쓰러워 재빠르게 문을 열었다.

- 삐!

마침내 자신을 억압하던 감옥에서 벗어난 릴리가 김우진을 반겼다.

“괜찮아?”

- 삐!

맹렬하게 끄덕이는 고개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당분간은 하늘구름에 들어갈 필요가 없을 거야.”

- 삐?

“왜 당분간이냐고?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는 장담을 못하거든.”

언제 또 저들이 감찰을 계획할지, 혹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하지만 그게 마음에 안 드는 듯, 릴리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렸다. 토라진 듯한 행색에 김우진이 픽 웃었다.

역시 지금이 낫다. 어느 차원의 순록처럼 흉측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삐삐.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릴리는 곧 화를 풀고 뺨을 부볐다. 그리고는 뜻밖의 이야기를 건넸다.

- 삐삐삐.

- 삐삐이이이, 삐삐.

다만, 그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조금 천천히 말해줘.”

친근감이 높아진 탓에 더 잘 이해가 되긴 하지만 아직은 한계가 있었다.

- 삐.

답답하다는 듯, 릴리가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편린에 불과하지만 뜨문뜨문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연···락?”

- 삐!

“···누가 연락을 해왔다고? 너한테?”

- 삐!

김우진의 표정이 굳었다. 다른 차원의 세계수에게, 잘 알려지지도 않은 세계수에게 누군가가 연락을 했다라.

“누가?”

- 삐삐삐, 삐이이.

“······.”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 * *

‘신.’

살면서 세 번째로 보는 신이었다. 그리고 그 셋 중 가장 떨어졌다.

적어도 율리아가 보기에는 그랬다. 품위를 찾으나 가장 품위가 없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자연스럽지 않았다.

‘집행자가 되라고? 자비를 내려준다고?’

조삼모사도 아니고 단순히 힘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둬놓고 이제 와서 집행자로 삼는 자비라니.

신들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에게 용사는 그저 신의 말을 당연히 따라가야 하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런 거다. 그게 당연한 거다.

그리고 그게 신들이 몰락해야 하는 이유다. 무너트려야만 하는 이유다.

다른 생명체들을 모두 체스판 위의 졸로 보기에.

끼익-

그때, 문이 열렸다. 김우진이었다.

“신은 돌아갔···.”

“나와라. 급하다.”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 삐이!

릴리가 퍼득 율리아에게 안겼다. 세계수의 정령이 감옥 내부까지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빨리 릴리의 말을 통역해라.”

“갑자기요?”

“급하니까 빨리.”

“알았어요. 어머니 나무님, 제게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 삐삐삐.

- 삐삐이이이, 삐삐.

“네, 그러니까 어머니 나무께 누군가 연락을 했다는 말씀이세요? 네? 누가 연락을 했다고요?”

“거기까지는 나도 이해했으니까 그 다음.”

“음.”

하지만 율리아는 잠시 멈칫했다. 하나 퍼뜩 떠오르는 게 있어서였다.

슬쩍, 김우진의 눈치를 살폈다. 이거 그대로 통역해도 되는 걸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손을 잡기로 했고 어차피 들킨 거 감출 수는 없으니.

“누군지 말씀해주시겠어요?”

- 삐삐이이.

“네, 생물학적 어머니요?”

율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릴리가 혼자서 이런 단어를 터특할리는 없다. 말하는 느낌이 딱 세계수 하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네. 아무래도 데이드람의 어머니 나무께서 연락을 보내신 것 같아요.”

율리아가 용사로 있던 차원이었다.

* * *

“드워프들에게 내 집무실을 새로 만들라고 말해놨으니 알아서 잘 관리하도록.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거다.”

“또 자리를 비워도 괜찮겠습니까? 이제는 휴가도 없지 않습니까.”

“경우가 다르니까 상관없어.”

휴가를 써야만 하는 이유는 세계수가 완전히 가려질 때까지, 강민식을 잡을 때까지 관리자가 연옥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지금과는 경우가 다르다. 관리자가 올때는 보통 하루의 텀을 준다. 그게 계약의 내용이기에, 어지간하면 어기지 않는다. 그러니 그 전에만 연옥에 돌아와 있으면 문제는 없다.

“죄수들도 그렇고,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나갈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연옥은 김우진에 의해 운영되는 감옥이다.

김우진이 빠진 연옥은 생각보다 나약하다. 죄수들이 탈옥을 하고자 한다면 최고의 적기다.

하지만 지금의 죄수들에게는 탈옥의 의지가 없다. 하이엘프와 세계수에 의해 엘프들이, 최고의 명장에 의헤 드워프들이, 달의 늑대에 의해 수인들이 얌전해졌다.

다크엘프는 출소를 택했으며 거인은 그냥 죽은 듯이 있기로 했다. 그리고 한 인간은 소지에 만족하고, 다른 인간은 신에 대한 원한을 가졌다.

적어도 당분간은, 탈옥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 오래 걸릴 것도 없어. 최대한 빨리 돌아오지.”

“새로운 죄수는 어떡합니까?”

“연락이 오면 나한테 연락해.”

연옥에는 차원을 건너 연락할 수 있는 비상 통신구가 있었다. 막대한 마나가 소모되어 어지간한 자들은 사용할 수도 없지만 김우진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데이드람의 세계수가 소장님을 적대한다면···.”

“적어도 그럴 것 같지는 않아.”

단순한 감이 아니다. 율리아, 알베니우스의 존재들과 그의 지식들을 토대로 내려진 판단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데이드람이 아니더라도 어딘가로 가긴 가야해.”

구할 게 있기에.

* * *

김우진은 떠날 채비를 했다. 세계수를 통한 연락은 반드시 그 원인과 진상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잘 들어. 우리의 첫 번째 목적은 영약이야.”

잘못 들었나? 율리아가 눈을 깜빡였다.

“어머니 나무를 만나는 게 아니라요?”

“물론 그것도 해야지. 하지만 당장 급한 건 영약이야. 영약을 사야해.”

“사요?”

“그래. 릴리에게 영약을 두 개나 쥐어주면서 할당량을 채우기 어려워졌으니까.”

영약을 보충하려면 직접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

“그건 알고 있지만···.”

율리아 또한 통역사로서 그 거래의 현장에 함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 나무를 만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은데요.”

“아니. 영약이다.”

세계수들 간의 연락, 그건 서로 연관이 있는 부모 세계수들만이 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알베니우스와 데이드람의 세계수가 계획하고 율리아가 실행한.

원인을 알았다면 그렇게 두려워할 것도 없다. 그들이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면 더욱 더.

그러니 당장은 영약이라는 급한 불이 더 급하다.

“못하면 세계수의 열매라도 따와야지. 하나쯤은 주지 않을까?”

“···세계수의 열매가 그냥 달라고하면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영약을 산다뇨? 직접 구하는 게 아니라요?”

“영약은 귀해. 관리자들이 괜히 연옥의 죄수들을 이용해 납품 받는 게 아니야.”

영약이라는 건 결코 흔한 물건이 아니다. 마나가 풍부한 지역이어야 하며, 마나를 감당할 식물이 있어야하고, 오랜 세월 동안 손상되지 않아야 한다.

그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때문에 영약은 귀하다. 만약 귀하지 않다면 영약이라 부르지도 않았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연옥은 확실히 좋은 장소야.”

교차 차원이라는 건 여러 차원들이 교차한다는, 각 차원의 마나들이 뒤섞인다는 뜻이다.

더 없이 풍부한 마나에 신들의 권능이 뒤섞이고 그것들을 관리하는 건 용사다.

연옥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곳이니까 관리자들이 선점해 연옥을 세운 것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괜히 영약을 찾겠다고 차원들을 돌아다니며 기한을 맞출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야. 그냥 돈을 주고 사는 게 빠르고 확실해.”

아무리 못해도 차원 하나 당, 영약 한두 개쯤은 시장에 나오니까. 더럽게 비싸서 문제지만 김우진은 돈이 많았다.

“차원마다 화폐 단위가 다르지 않아요?”

“데이드람에 금이 통용되지 않나?”

“통용돼요.”

“그럼 됐어.”

사실 금이 통용되는 차원보다 되지 않는 차원을 찾는 게 더 힘들다. 금의 가치는 대부분의 차원을 관통하니까.

김우진과 율리아가 차원의 방벽 앞에 섰다.

천천히 벽을 어루만졌다. 문이 열렸다.

문이 열렸다는 것은 신들에게 전해질 거다. 하지만 그들은 김우진이 어떤 차원으로 갔는지 모를 거다.

차원의 방벽을 넘으면 관리자들에 의해 감지된다. 그건 방벽 자체에 내제된 방어 체계 중 하나라 김우진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허나 거기서 자유로운 자들이 있으니 차원의 근원에까지 뿌리를 내린 세계수다.

만 년을 살아온 데이드람의 세계수라면 김우진과 율리아의 방문을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터.

“가자.”

“네.”

인간과 하이엘프가 차원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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