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39화 (39/150)

# < 038. 물어뜯기 >

강민식이 붙잡혔다.

작전이 실패했다.

“역시 무능한 피조물은 어쩔 수가 없군.”

그 시점에서 모든 게 틀어졌다. 김우진은 완벽하게 진실을 숨길 것이고 그들은 깊게 파고들 수 없다.

어떻게 진실을 알았느냐고 묻는다면, 집행자의 파견을 말해야 한다. 강민식의 탈옥에 관여했음을 밝혀야 한다.

그건 명백한 계약 위반이었다.

오히려 김우진을 이롭게 하는 행위. 때문에 모든 관리자들은 이번 일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아무 것도 얻을 건 없다고 판단했다. 당연히 감찰에도 의미는 없었다. 김우진이라는 짜증나면서도 하찮은 피조물을 봐야한다는 불이익만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베른 오르티안은 모두가 포기한 감찰관의 자리를 자원했다.

일부 용사들은 죄수로서 연옥에 썩기 아까워서.

그리고 그 어떤 신보다 김우진의 몰락을 바라기에 만에 하나 아주 작은 건덕지라도 건질 수 있을까 하고.

쫘악-

보고서를 찢었다.

어떠한 문제가 있었는지 알고 왔음에도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깔끔하기 그지없다. 문제가 없다.

딱히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김우진이라면 당연히 이럴 것이라고 예상 했기에.

“안내해라.”

김우진은 그를 4층으로 안내했다.

“죄수들이 갇혀 있는 건 3층으로 알고 있다.”

“리모델링 중. 전원 4층으로 옮겼어. 보고서에도 써 있고.”

“그걸 어떻게 믿지?”

“확인해 봐. 원한다면 얼마든지.”

확실히, 교도관들 몇몇이 돌아다니며 뚱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무언가 구린 냄새가 났다.

감이었으나 무시했다. 김우진은 그렇게 쉽게 단서를 내어줄 멍청이가 아니었다. 진짜 리모델링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완벽하게 위장해 놓았거나.

어쨌든 괜히 꼬투리를 잡아 김우진에게 건수를 내어주는 건 좋지 않다.

“가지.”

4층까지 올라가는 내부는 깨끗했다. 탈옥사태가 있었다면 분명히 여파가 있었을 터인데. 아니, 있다고 들었는데.

‘드워프들의 솜씨겠군.’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깔끔하게 복구할 수 있는 건 드워프들 뿐이다. 하지만 신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는 그들을 어떻게 이용했느냐다.

예전부터 의문인 것들은 많았다.

특히나,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른 죄수들의 출소 간격.

김우진이 연옥의 소장으로 부임하고 2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출소한 죄수가 무려 여섯이다.

무난하게 오랜 세월 김우진을 제약할 수 있을 거라 여기던 신들이 경각심을 가지게 된, 직접적으로 조치를 취하게 만든 계기였다.

그 첫 시도가 허무하게 끝났지만 시작일 뿐이다. 신들은 위대하고 결국 김우진은 그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문을 열어라.”

마침내 4층에 당도했다. 다른 층과 마찬가지로 중앙이 텅 빈 갈림길의 형태다.

양 옆의 복도를 따라 독방의 문들이 쭉 보였다.

“문을?”

“죄수들 개개인의 상태를 확인해 보겠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나는 하겠다고 했다.”

“난 널 걱정해주는 거야. 연옥의 죄수들은 좀 거칠거든. 알다시피 신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같잖은 소리를 하는군.”

베른이 코웃음쳤다.

“네놈의 더러운 주둥이도 시간이 지나니 조금 깨끗해진 모양이구나. 나는 신이다. 하찮은 피조물들 따위가 아무리 모여 봐야 내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

“열어.”

교도관들이 시스템을 조작했다. 철컥, 끼익. 독방의 문들이 일제히 열렸다.

고요한 정적이 감돌았다. 죄수들은 그 누구도 갑자기 열려버린 문에 섣불리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베른이 그 사이를 걸었다. 성큼 성큼, 열린 방들을 흘기며 빠르게 지나쳤다.

그리고는 곧 한 독방 앞에 멈춰 섰다.

“너로군.”

넓은 독방의 침대에 앉아 멍하니 문을 바라보고 있는 죄수가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빛의 머리칼, 백옥 같은 피부,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눈. 죄수복을 입었음에도 그녀의 아성을 완전히 가리지 못한다.

“연옥의 하이엘프가.”

우주가 빚어낸 하나의 작품과도 같은 종족. 하이엘프, 율리아 카르센.

이따위 감옥에 처박아두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인재다.

베른이 굳이 의미 없는 감찰관을 자처한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보필할 우수한 인재에 목말라 있기에.

“자비로운 내가.”

불안한 동공이 그를 올려다 본다.

죄수복과 비교적 초췌해진 얼굴은 그녀가 연옥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려준다.

당연하다. 연옥은 용사들의 의지를 꺾는 곳. 용사로서 인류의 떠받듬을 받던 자가 한 순간에 죄수가 되었으니 마음고생이 없을 리가 없다.

“너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겠다.”

베른이 노리는 것이 그 부분이었다.

하찮은 피조물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할 줄을 모르지만 잃어버린 것은 더 없이 실감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시금 동아줄이 내려온다면.

“집행자가 될 생각이 있느냐?”

손을 내밀었다.

율리아 카르센, 고귀한 하이엘프이나 지금은 한낱 날개가 꺾인 죄수인 그녀가 잡지 않을 도리는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여겼다.

“···아뇨.”

“···뭐라고?”

“여기 가둬 놓고 선심 쓰듯이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 양심이 터진 것 아닌가요?”

“······!”

그렇기에 이런 경우는 조금도 예상해 본적이 없었다.

* * *

“그게 네 목적이었군. 죄수를 집행자로 만들어서 써먹으려고.”

“이런 곳에 처박혀 있기에는 조금 아까웠을 뿐이다.”

“그러면 그것도 출소로 되나?”

“만약 집행자가 된다면 그건 네 공과는 상관없다.”

베른은 김우진의 조롱을 애써 무시했다.

여전히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왜, 거부한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썩어빠진 감옥보다는 집행자로서, 위대한 자신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백 배, 천 배 나을 터인데.

“신 체면이 구겨져서 어떡해?”

“아둔한 피조물이 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설마 김우진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럴 리는 없다. 지고한 신을 눈앞에 두고 고작 감옥의 소장 따위가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어대지는 않을 거다.

그냥 너무 성급했을 뿐이다. 조금 더 차분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베른이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냈다.

“집무실을 비워라.”

“갑자기?”

“감옥의 관리를 확인하기 위해 온 감찰관으로서 죄수들의 상태 또한 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

신경질적으로 읊조리며 집무실로 성큼 성큼 걸어갔다.

“그러니 내가 명령하면 잠자코 따라라. 토 달지 말고.”

김우진이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집무실에 자리했다. 마나를 퍼트려 주변을 살폈다. 특별히 수상해 보이는 물건은 없었다.

죄수들과 독대를 나누기에는 더 없이 적합한 곳이다.

“한 명씩 모든 죄수들을 들여보내라.”

집무실 안에서의 외침에 부소장이 물었다. 집행자 둘이 호위 기사처럼 문을 지키고 섰다.

“어떻게 합니까?”

“원하는 대로 해줘.”

솔직히 말하면 김우진도 궁금하긴 했다.

율리아야 당연히 거부하겠지만 다른 죄수들도 과연 그럴까?

거인에게, 다크엘프에게, 수인들에게 베른의 제안이 좋은 기회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타르칸 톨리스.’

힘을 숭상하는 자들의 정상. 김우진의 힘 앞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으나 신은 누가 봐도 그 이상이었다.

타르칸이 신 앞에 자신의 충성을 번복할지, 흥미가 돋았다.

* * *

“죄수번호, 1100번. 타르칸 톨리스.”

베른이 은빛 머리카락의 남자를 보며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하이엘프가 최우선 목표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오직 그녀만을 위해서 온 것은 아니었다.

연옥은 오랜 세월 수많은 죄수들을 수용해왔고 그 중에 집행자가 되어도 부족하지 않은 능력자들이 몇 있었다.

달의 늑대, 타르칸 톨리스.

차원의 명장, 데르카인 알베트.

하이엘프인 율리아 카르센까지 목표한 이들은 셋이었으나 그녀가 거부한 이상, 나머지 둘이라도 수습해야 했다.

“연옥의 생활은 할 만한가.”

“그걸 질문이라고 합니까?”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적의. 하지만 대놓고 야성을 드러내지 않는 건 베른의 존재감을 인식해서다.

정확히 베른이 생각한 그대로였다. 아무리 대단한 용사라고 할지라도 결국엔 일개 피조물이다. 신을 위해 존재하는, 신을 위해 봉사하는 자들.

어떤 마음을 품었든 신께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 앞에서 보여야 할 태도로 적합하지 않은가.

“알고 있다. 김우진 밑에서 제법 힘들었겠지.”

“나를 여기서 내보내주십시오.”

“원한다면 얼마든지.”

“힘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베른이 손가락을 폈다.

“내가 네게 하나의 기회를 주겠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신을 모실 영광스러운 기회를.”

집행자가 되어라.

“집행자가 되어 나를 섬겨라. 그리하면 넌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 힘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언제고 널 괴롭혀온 소장을 물어뜯을 수도 있을 거다.”

손을 내밀었다.

“잡아라. 잡는 순간, 너의 생은 달라질 터이니. 위대한 나와 함께 비상하는 거다.”

타르칸은 멍하니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랄하고 있네.”

베른이 무어라 대꾸를 하기도 전에, 타르칸은 나갔다.

“···뭐, 이런.”

대체 왜?

무려 신을 모실 수 있는 기회다. 더 없이 영광스러운 자리다.

그들을 억압하는 김우진으로부터, 연옥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율리아도, 타르칸도 어째서 거부하는 것일까.

“···하찮은 피조물 주제에.”

너무 유하게 나간 모양이다. 그러니 신의 위대함을 모르는 어리석은 것들이 마음대로 제단하고 멍청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아니면 짐승이라 감히 신이란 존재에 대해서 파악할 머리 자체가 없는 것이거나.

그래, 그런 게 틀림없다.

그러니 감히 신 앞에 저 따위 태도를 보이겠지.

그러니 데르카인이라면 조금 다를 거다.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수인과 달리 드워프는 고도로 문명화된 지성체니까.

“어이가 없구려.”

“뭐라?”

“명색이 신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감옥까지 와서 죄수들을 회유하는 꼴이라니. 당신, 정말로 신이 맞소?”

“감히 신을 의심하는 것은 불경이다. 하찮은 피조물이여, 네 주제를 알아라.”

“소장은 당신들을 다르게 부르던데. 관···.”

“그만.”

거대한 힘이 데르카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이상 내 자비를 기대하지 말아라. 어리석은 난쟁아.”

“내가 살던 차원에는 이런 말이 있소. ‘방귀 뀐 놈이 성낸다.’라고.”

“하나 같이 마음에 드는 놈이 없구나.”

쿠그그그그, 마나가 요동쳤다. 분노한 신의 기분에 따라 난쟁이를 압박했다. 데르카인의 무릎이 강제로 굽혀졌다.

“신을 향한 존경과 신앙이 없다. 마치 김우진, 그놈처럼.”

베른의 서늘한 시선이 데르카인을 내려다보았다.

“그거 아느냐? 나는 지금 손가락 하나만으로 네게 천벌을 내릴 수 있다.”

그것이 신이 가진 힘이다.

하찮은 피조물 따위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감히 신의 자비를 거부하고 신성을 모욕한 죄.”

죽어라.

베른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끼긱, 권능이 덧씌워진 마나가 데르카인을 눌렀다. 아니, 누르려 했다.

작은 불씨가 신의 권능을 가로 막았다.

힘과 힘의 충돌, 견디지 못한 공간이 일그러졌다. 균열이 벌어지며 폭발이 일어났다.

────!

집무실이 통째로 소멸했다. 허나, 데르카인은 멀쩡했다.

“···누구 마음대로 내 죄수를 죽여.”

“김우진.”

“감찰관한테 즉결 처형의 권한은 없는데?”

“명시하지 않았을 뿐이다. 신에게는 언제나 피조물들의 운명을 좌우할 권한이 있다.”

“어쩌나, 내 감옥에서는 그런 법이 없는데.”

“비켜라.”

“싫다면?”

“베른님!”

“움직이지 마.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대가리 날아가니까.”

문을 지키던 집행자들이 멈춰 섰다. 그들을 압박하는 힘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김우진. 네놈은 언제나 마음에 안 드는군.”

“피차 마찬가지야.”

“죄수들에게 신들을 향한 증오라도 가르치나?”

“웬 걸, 그 증오는 네놈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 같은데. 멀쩡한 용사들을 죄수로 만든 게 누구인지 잊었어? 인간들은 그걸 자업자득이라고 해.”

“······.”

“······.”

침묵을 깨트린 건 베른이었다.

“접객실을 준비해라.”

“갑자기?”

“네놈으로 인해 집무실이 이렇게 되었으니 면담을 이어갈 다른 장소가 필요하다.”

“집무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계속 하겠다고?”

“난입하여 집무실을 부순 건 너다. 그리고 난 분명히 모든 죄수들을 면담하겠다고 말했다. 연옥의 소장, 김우진. 명령에 따라라.”

“따라와.”

김우진이 코웃음치며 등을 돌렸다.

“그런데 부서진 건 전부 청구할 거다?”

* * *

베른을 접객실로 안내한 김우진이 타르칸을 호출했다.

“왜 거부했지? 네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을 텐데.”

솔직히 의외였다. 헌데 타르칸은 오히려 반문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수인은 힘을 숭상하지. 신만큼 강한 자들은 이 세상에 없다.”

“힘도 힘 나름입니다. 소장님 말씀대로라면 모든 수인들은 광신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랬다.

신들은 의심할 여지없는 최고의 존재들이었고 수인들이 숭배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존재였다.

하지만 신을 믿는 수인은 없다. 오직 자기 자신을 믿을 뿐.

“직접 목도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너무 먼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둘 모두, 지금의 너에겐 해당 사항이 없지 않나?”

“저희들에게도 선이라는 게 있습니다. 저희를 이곳에 처박아 놓은 당사자가 같잖은 위선을 떨고 있으면 오히려 뭉개버리고 싶어집니다.”

김우진은 그제야 수인들이 힘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를 떠올렸다. 은원이다.

“물론 혹하지 않았다면 거짓입니다.”

탈옥에 실패하고 모든 가능성을 차단당했다. 격의 차이를 느끼고 김우진을 섬기기로 했지만 절망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놈이 그러더군요. 소장님을 물어뜯을 기회가 생길 거라고.”

크흐흐, 타르칸이 웃었다.

“놈은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소장님 곁에 있으면 우리를 이곳에 가둔 신들을 물어뜯을 기회가 생긴다는 것 아닙니까?”

단순히 감옥의 관리자인 김우진과 그들을 직접 연옥으로 쳐 넣은 신들. 어느 쪽이 더 물어뜯고 싶은 가는 당연하지 않은가.

“음.”

그게 그렇게 되나?

김우진은 자신이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고맙다, 베른.’

역시 혼란스러운 내부를 하나로 뭉치는데 외부의 적 만한 것이 없었다.

* * *

한편.

강민식은 신과 마주했다.

“지고한 신이시여.”

지고한 존재감에 절로 고개를 숙였다.

“제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너에게 신의 권능을 주겠다. 내가 너를 지켜볼 것이니.”

그러니.

“연옥을 무너트려라.”

강민식이 마른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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