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37화 (37/150)

# < 036. 이 달러 >

김우진이 군대에 있을 때, 군단장이 부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군단장에게 지저분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대대장은, 모든 병사와 간부들을 동원해 부대 전체를 청소했다.

생활관 내부부터 외부까지. 바닥을 닦고, 꽃을 심고 잔디를 깎고, 차가 들어오는 도로에 낙엽하나 없을 정도로 쓸고 또 쓸었다.

하지만 정작 군단장은 헬기를 타고 연병장에 나타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버렸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하나다.

한 집단의 관리자가 되면 아무리 쓸데 없는 짓이라도 부하직원들을 마음껏 부려먹을 수 있다는 것.

김우진은 관리자의 신분이 되었고 부려먹을 교도관들과 죄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자칭 신이라 칭하는 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애쓰는 1초도 아깝다. 그들은 대접받을 자격이 없다.

“누가 올 것 같아?”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발톱을 드러낼 자는 한 명 뿐입니다.”

“그래, 그렇지.”

관리자는 하나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차원을 홀로 관리할 능력이 없다.

허나 많지도 않다. 딱 백 명, 흔히들 백신전이라고 한다.

“내일이니까 오늘은 개인면담을 하자.”

겸사 겸사다. 탈옥 사태로 인해 꽤 오랫동안 면담을 못했기도 하고, 관리자가 오기 전에 죄수들을 한 번 단도리하는 역할도 할 거다.

“전원을 오늘 하루만에 보시겠다는 겁니까?”

“두 명은 못하겠지. 기절해 있으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부소장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도관이 죄수를 데리고 왔다.

찬란한 은빛의 머리카락과 황금의 눈동자를 가진 짐승, 타르칸 톨리스가 그 첫 번째였다.

“······.”

이전과 같은 당당함이 사라진 타르칸은 얌전히 김우진의 앞에 앉았다.

“탈옥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무엇이?”

“오만하여 소장님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습니다.”

전 차원을 뒤져보아도 수인만큼 철저하게 힘의 논리를 따르는 종족은 없다.

그들은 강함을 숭상하며, 보다 강한 힘 앞에 굴종하고 복종한다.

연옥의 수인들에게 김우진은 압도적인 강자였다. 타르칸은 수인들을 대표해 김우진의 수족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완벽한 굴종이라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가고도 싶었고, 이곳에 저희를 가둔 소장님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너희를 가둔 건 내가 아니다만.”

“하지만 언제나 곁에서 저희를 관리하는 것은 소장님이잖습니까.”

“그래서?”

“물론 소장님이 강한 것은 압니다. 저 혼자서 안 된다는 것도. 하지만 구속구가 풀린다면, 함께라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짐승은 무리 사냥을 한다. 짐승들을 이끄는 타르칸 톨리스는 김우진의 강함을 알고 있었으나 그 명확한 한계를 몰랐다.

혼자라면 무리라고 할지라도, 온전한 상태에서 함께라면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미약하나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희망이 있기에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가두고 억압하는 것에 대한 분노 어느 정도 작용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은 아니란 것처럼 느껴지는군.”

“직접 몸으로 체득한 것마저 인정하지 못할 만큼 아둔하지는 않습니다.”

타르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아주 작은 가능성마저 완전히 차단당한, 절대적인 힘 앞에 더 이상의 희망을 보지 못한 짐승은 완전히 굴복했다.

“말로 만?”

“기회가 된다면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런다고 연옥에서 나가지는 못해.”

“그것이 소장님의 뜻이라면.”

“힘을 포기하고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그건.”

하지만 이 부분에서 타르칸은 멈칫했다.

힘 앞에 굴복했기에 따라야 하나 스스로의 힘을 버린다는 것은 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힘을 숭상하기에 강자를 따르지만 힘을 빼앗기는 것은 가장 최악으로 여기는 종족.

김우진이 픽 웃었다. 애초에 그렇게 쉽게 수인들을 내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진즉에 50명을 채우고 원하는 바를 이루었겠지.

“수인들 잘 관리해.”

“예.”

“한 번만 더 이따위 짓거리를 벌이면 네가 어떻게 될 지는 기대해도 좋아.”

“꿈에서도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가봐.”

“예!”

타르칸이 나갔다. 타르칸이 저런다면 다른 수인들도 마찬가지일 터. 15마리의 충견이라. 큰 혼란을 겪고 얻은 보상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이후, 14명의 수인들이 들어왔으나 모두 대동소이했다. 그리고 시에나가 들어왔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니?”

“뭡니까?”

“데르카인이 그러더구나. 네가 신들의 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맞다면 세계수를 숨기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저는 제가 한 번도 신들의 개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만.”

“아니라고 한 적도 없지.”

“대답해야 됩니까?”

“충분히 대답이 되었단다.”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의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시에나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개인면담 시간에 묻는 질문입니다만, 출소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세계수가 있는데 엘프가 어딜 가겠니.”

“···세계수.”

톡톡, 김우진이 탁자를 두들겼다.

그러고 보니 세계수의 씨앗을 심었을 때부터 계획했던 계획이 하나 있었다.

세계수의 입을 통해 엘프들의 출소를 강요하는 것. 엘프들과 세계수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을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언가 애매해졌다. 율리아와 협조하기로 하고 엘프들이 이상할 정도로 협조적인 시점에서 당장 내보내는 것보다 이용하는 것이 더 효용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건 좀 두고 볼 필요가 있겠어.’

적어도 짧게 생각하고 바로 결정지을 문제는 아니었다.

“아티팩트는 완성됐습니까?”

“그건 나보다 다음에 상담할 죄수한테 묻는 게 더 확실하지 않겠니?”

“그것도 그렇네요.”

“추노는 어땠니?”

“노예가 아니라 죄수인데요?”

“뜻만 이해했으면 됐지.”

별 의미 없는 잡담이 짧게 이어진 뒤, 그녀가 나갔다. 이어 들어온 건 데르카인이었다.

“내일입니다.”

“내일 바로 온다던가?”

“이런 면에서는 또 칼 같은 면이 있어서 말입니다.”

“자네도 참 귀찮겠군.”

“아티팩트는 완성 됐습니까?”

“하늘구름이네.”

“하늘구름은 완성 됐습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완성되지는 않았네. 하지만 오늘 안에 완성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네.”

“믿고 있었습니다. 역시 최고의 장인답습니다.”

김우진이 반색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네.”

“릴리입니까?”

데르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저히 들어갈 생각을 하지를 않더군.”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가능한 건가? 억압적으로 한다고 들어먹을 나무는 아닌데?”

“어떻게든 해봐야죠.”

“이 악물고 세계수를 숨기려는 걸 보니 원만한 협조 관계가 아닌 건 확실하군.”

“언제까지 확인해보실 참입니까?”

“자네가 제대로 말해줄 때까지.”

“어차피 곧 나갈 양반이 무슨.”

“아, 그거 말이네.”

데르카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

“···혹시 출소, 번복해도 되나?”

“······.”

* * *

모든 개인면담이 끝났다.

그리 어려울 것도, 딱히 문제도 없었다.

타르칸이 굴복한 시점에서 수인들이, 율리아와 시에나, 데르카인이 협조적인 시점에서 엘프들과 드워프들이 똑같이 변했기 때문이다.

남은 건 기껏해야 다크엘프와 거인족이었으나 오히려 그들은 더욱 긍정적이었다.

그들은 김우진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무릎을 꿇은 전례가 있었고 격의 차이는 본능에 각인 되었다. 그것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발전하여 더 이상의 희망을 벗어 던지게 만들었다.

“출소하겠습니다.”

다크엘프 용사가 용사의 힘을 포기했다.

“···거부합니다.”

거인족은 아니었으나 반쯤 꺾인 의지가 여실히 엿보였다. 때문에 김우진은 기분이 좋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한 번 지랄을 하고 나니 그에 합당한 보상들이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기분이 좋아, 릴리.”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며 하늘을 주홍빛으로 물들인다.

높게 솟아난 가지 위에 엉덩이를 붙인다. 파랑새 한 마리가 무릎에 앉아 머리를 들이민다.

김우진은 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릴리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네가 내일 하루만 하늘구름에 들어가면 더 좋을 것 같아.”

- ···삐이!

릴리의 눈매가 굳어졌다.

“내일 하루만이야. 릴리. 딱 하루.”

- 삐삐!

“네가 들어가지 않으면 내가 꽤나 곤란해져. 나뿐만이 아니라 너도.”

- 삐삐삐! 삐이이이이!

“···이건 아직 모르겠는데.”

“새장은 더 없이 불쾌한 곳이라고 하시네요. 자신을 억압하고 제약해서 숨이 막힌데요.”

통역사로 끌려온 율리아가 밑에서 중얼거렸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야.”

힘을 가린다는 건 단순히 가리기만 하는 게 아니다. 애초에 아무런 조치도 없이 세계수라는 나무를 완벽하게 가릴 수는 없다.

당연히 힘 자체를 억압하고 약화시키는 작업 또한 들어간다. 하늘구름은 내부의 기운이 외부로 표출되지 않도록 차단함과 동시에 내부의 존재를 억압하는 역할도 함께 한다.

그게 불쾌하고 편하지 않다는 것은 인정한다.

“좋아, 릴리. 네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다 생각이 있어.”

- 삐?

“이 달러, 아니 두 개.”

김우진이 손가락 두 개를 폈다. 릴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약. 두 개를 주겠다는 거야.”

그제야 알아들은 릴리의 눈동자가 커졌다.

“어때?”

큰 출혈이지만 무작정 억압하여 기껏 쌓아올린 호감을 전부 깎아내릴 바에, 영약을 쥐어주는 게 나았다.

- 삐삐!

“알겠다고 하시네요.”

“굳이 해석해주지 않아도 알아. 그런데 이걸 바로 수락해?”

“그러게요. 대체 어머니 나무께서 왜 이렇게 속물이 되셨는지. 이건 전부 소장님의 영향이 아닐까요?”

“소장 비하, 벌점 1만점. 2징벌방 하루.”

“···씨앗에 간섭하셨잖아요. 가장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건데요.”

“사실적시 명예훼손. 벌점 1만점 추가.”

“그건 대체 뭔데요!”

빽, 소리치는 율리아를 무시했다.

손을 내밀자 릴리의 날개가 그것을 붙잡았다.

“악수도 알고, 누굴 닮아서 이렇게 똑똑하지?”

“다른 어머니 나무를 닮았겠죠.”

“너 자꾸 태클 건다?”

“근데 괜찮은 거예요?”

“뭐가.”

“아니,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이런 저런 소란 때문에 영약 수량이 되게 적잖아요. 그런데 어머니 나무께 두 개나 줘버리면···.”

“네가 걱정할 건 아니야.”

영약의 납품은 분기에 열 개다. 허나, 아무리 용사들이 길러낸다고 해도 영초는 쉽고 빠르게 자라나는 식물이 아니다.

당연히 모으기가 힘들고 납품 수량을 못 맞출 때도 있다. 때문에 잉여분을 모두 비축해 놓아야 하는 건데 세계수를 심으면서 모두 탕진해버렸다.

“한 달 안에 나올 영약이 몇 개야?”

“하나요. 그 이상은 절대 안 나와요.”

“네가 하이엘프인데?”

“하이엘프라고 만능은 아니거든요?”

“그럼 부족한 게···.”

“어머니 나무한테 두 개를 드리면 세 개죠.”

“그럼 어차피 하나가 모자라잖아.”

“그렇다고 더 부족하게 해요?”

“지구에는 이런 말이 있어.”

“뭔데요?”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대책이 없으시다는 말씀이시네요.”

“급한 불을 끄는 게 먼저란 소리야.”

영약은 기한이 남았고 관리자가 오는 건 내일이니.

어쨌든, 내일을 위한 준비는 모두 끝났다.

김우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실패.

어째서 실패했을까.

마나가 제한되고, 시야가 가려지고, 손과 발이 묶이고, 입에 재갈이 물려진다.

다시 돌아온 감옥. 강민식은 과정을 곱씹었다.

그를 연옥으로 보낸 신은 말했다.

‘탈옥은 쉽지 않겠지만 내 권능이 너를 도와줄 것이다.’

‘탈옥만 한다면 모든 게 끝이다.’

‘너는 다른 용사들처럼 아무 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다.’

말 그대로 탈옥은 쉽지 않았다. 허나, 신의 권능은 큰 도움이 되었고 탈옥에 성공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모든 게 끝난다는 신의 말과는 달리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다.

‘소장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구나. 2주 만 버티렴. 그럼 약속했던 모든 게 이루어질 테니.’

짧은 전언을 끝으로 망망대해에 내쳐졌다.

김우진이라는 괴물을 상대로 2주를 버티라는 건 누가 봐도 무리한 요구였다. 아무리 차원을 넘어 도망쳤다고 해도, 아무리 그가 용사라고 해도 김우진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름의 배려라고 신은 다섯 명의 집행자를 보내주기는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불안감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김우진은 기어코 그를 찾아냈고 집행자들은 모조리 쓰러졌다. 그리고 강민식은 다시 연행되어 연옥으로 돌아왔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신’이라면.

‘전지전능한 신’이면.

당연히 모든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안배해야하는 것 아닌가?

아니, 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째서 신은 김우진의 행보를 눈치 채지 못했는가.

어째서 돌발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는가.

어째서.

김우진의 눈치를 살피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가.

정말 ‘신’인가?

“···관리자.”

김우진이 신을 어떻게 부르는지 떠올렸다.

과연 그들은 다시 연옥에 갇힌 강민식이 다시 한 번 나갈 수 있게 도와줄까?

아니면 그냥 버려버릴까.

강민식이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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