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34. 용사가 옛 동료에게 남기는 편지 >
“···미친 새끼.”
강민식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 따위 농담을 하겠다고?”
“심각한 건 너지, 내가 아니니까.”
“대단한 자신감이군.”
“그럴 만하니까.”
“대체 어떻게 쫓아온 거지?”
“말했잖아. 이런 건 내가 가장 잘하는 짓이라고. 넌 그때 내 말을 들었어야 했어.”
탈옥 직전의 이야기였다. 차원의 장벽을 눈앞에 두고 김우진은 강민식에게 한 번의 기회를 줬었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하지만 그걸 어떤 멍청이가 받아들이겠나.
힘을 포기하느냐, 늙어 죽느냐의 악의적인 선택지밖에 없는 감옥에 순순히 남아있을 자는 없었다.
“개자식.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뿌득, 강민식이 이를 갈았다.
“말했잖아. 도망치면 쫓아가서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그 말을 거부하고 도망친 건 너야.
“그리고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일그러지는 그의 표정에, 김우진이 헛웃음을 지었다.
“화를 내야 하는 건 나야.”
“닥···!”
“닥쳐야 할 것도 너고.”
가공할 마나가 강민식의 턱을 압박해 강제로 다물어버렸다.
“널 연옥에 가둔 것도, 네 발작버튼을 누른 환영 장치를 만든 것도 다 신들이야.”
그런데 넌 신들을 위해 탈옥했지.
“날 엿 먹이기 위해서.”
콱-
거친 손길이 강민식의 목을 움켜쥐었다. 콰앙,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강렬한 격통에 신음을 삼켰다.
“분노 표출의 방향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닥···쳐···!”
“그래. 순순히 굴복할 리가 없지. 그놈들의 개가 된 것부터가 네 싹수가 글러먹었다는 반증이니까.”
그래도 할 건 해야지.
“그놈들에게 어떤 걸 약속 받았지?”
“내가 말할 것 같아···?”
“말하게 될 텐데.”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순순히 말한다와 고통스러워한 뒤 당한다로 과정이 나뉘어질 뿐. 김우진은 그렇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징벌방을 버티고 마음대로 벗어날 수 있는 건 놈들의 권한을 일부 받았기 때문일 거야. 그렇지?”
“헛소리···!”
“그런데 말이야. 왜 하나만 생각하고 두 개는 생각을 안 할까? 징벌방은 그냥 내가 죄수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야.”
김우진에게 편의성을 제공하면서도 무엇보다 확실해서 애용하고 있을 뿐, 연옥에는 징벌방만 있는 게 아니다.
“설마해서 묻는데 아직도 신이 널 구해줄거라는, 헛된 망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
“그래, 아예 멍청이는 아닌 모양이군.”
하지만 신을 믿고 탈옥한 시점에서, 멍청이임은 변함이 없다.
김우진이 다른 손을 뻗었다. 쭉 솟아난 화염의 검이 충격파를 발산했다.
“대화중이잖아. 네가 섬기는 그 잘난 신은 기본적인 예의범절도 안 가르치나?”
뒤를 노리던 바람의 칼날이 소멸했다. 그 여파로 은밀하게 숨어 기회를 엿보던 집행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다른 집행자들은 어디 있지?”
“네가 생각하는 그곳에.”
저승.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쩌엉, 김우진의 칼날이 지팡이에 가로 막혔다.
“좋은 지팡이야. 본래의 용도로만 사용한다면.”
빠드득, 지팡이가 충격과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파열음을 냈다. 집행자는 당황했으나 다급하게 마법을 영창했다.
순식간에 완성된 것은 공간의 비틀림이었다. 공간 자체를 비틀어 상대의 육신을 일그러트리는 마법.
파직, 그것은 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파훼되었다. 그 순간, 무너진 천장의 일부가 김우진을 향해 떨어졌다. 애초에 정면은 눈속임이었다.
돌무더기가 김우진을 덮쳤고 집행자가 용사의 손을 낚아챘다.
준비해두었던 마법을 터트렸다.
마법의 빛줄기가 집행자와 용사를 감쌌다.
“어디가.”
파지직, 뜨거운 열기가 마법진에 간섭했다. 회로를 어그러트리며 발현을 방해했다.
빠르게 녹아내리는 술식에 집행자가 이를 악물었다.
“네 놈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아는지는 알겠으나 나 또한 용사였다.”
그 또한 용사로서 최강이라 칭송받던 자였다. 나아가 용사들 사이에서 뽑힌 용사들의 용사, 집행자가 될 정도로 우수했다.
자부심이 없다면 거짓이다.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자신의 장기인 공간 마법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도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
술식과 마법진을 녹여버린다면 그것보다 빠르게 다시 써버리면 된다.
황성에 숨어든 시간은 짧았으나 그 짧은 틈새에 쓰여진 술식은 방대했다. 그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녹일 수는 없다. 그러니 녹는 것보다 빠르게 재구성한다면 갈 수 있다.
파지지지직-
마나와 마나가 충돌한다. 그로 인해 튀어 오른 파동들은 집무실의 기물들을 박살낸다.
공간의 마법진이 그려진다. 열기가 그것을 녹인다. 술식이 덧붙여져 다시 재구성된다. 다시 녹인다.
마법은 파훼되나 마나는 남는다.
마법진을 그린 마나가, 그것을 녹인 마나가, 술식으로 덧붙여진 마나가, 다시 녹여버린 마나가 쌓인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쿠구구구구-
집행자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아, 안···!”
“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집행자의 비명이 김우진의 코웃음에 묻혔다.
마법이 발동 되었다. 집행자를, 용사를, 황제를 그리고 소장을 삼켰다.
텅 비어버린 접객실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심지어 접객실마저도.
“폐하, 전령이 왔습니다.”
“폐하?”
“폐하, 송구합니다만, 잠시 문을 열어도 되겠습니까?”
“폐하!”
딸각-
“···어?”
한참 후, 황제의 반응이 없자 기사들이 문을 열었다.
고풍스러운 가구와 벽지, 장식품들. 그리고 황제와 용사 대신 그들을 반기는 것은 접객실 밖에 펼쳐진 정원이었다.
“···폐, 폐하!”
“폐하, 어디 계십니까!”
기사들이 망연자실, 무기를 떨어트렸다.
* * *
공간 자체가 전이되었다.
접객실이 통으로 옮겨진 곳은 대륙 북부의 외딴 설원이었다.
“···대체 어떻게!”
알도가 마나 역류로 진탕된 속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대체 어떻게 내 마법에 간섭한 거냐!”
“나도 공간 마법에는 소질이 있거든. 이 정도는 껌이지.”
“···단순히 소질이 있다고 해서 그딴 게 가능할 줄 알아!”
“그런데 해버렸네.”
“···이 괴물 같은!”
“알면 주제 파악 좀 해. 귀찮게 하지 말고.”
콰직, 뒷목을 얻어 맞은 알도가 쓰러졌다.
여파에 휘말린 강민식은 이미 기절해 있었다.
김우진이 둘 모두의 목에 구속구를 채웠다.
“한 놈은 이빨에 독단, 다른 한 놈은 자살용 술식이라. 가지가지하는군.”
강민식의 이빨에 숨겨진 독단을 빼고 알도의 몸에 간섭해 자살을 위한 모든 술식들을 해체했다. 그 과정에서 육신이 상했지만 자업자득이다.
“너희 둘 다 곱게 죽지 못할 거다.”
강민식은 당연하고, 다섯 명의 집행자들 또한 모두를 죽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신을 가까이서 모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분명히 김우진에게 큰 힘이 될 거다.
훗날, 계약을 어겼다는 증거가 될지도 모르지.
“···근데 이놈은 또 뭐야?”
김우진의 시선이 접견실 한쪽에서 기절 한 채 쓰러져 있는 인영에게 향했다.
화려한 복장을 보아하니 일단은 황제 같은데.
“쓰읍, 귀찮게 됐네.”
마나가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통제하긴 했는데 황제까지 데리고 와버렸으니 모를 수가 없겠지?
김우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 * *
“황제 폐하께서 납치 당하셨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황제가 사라졌다.
용사도, 접객실도 통째로 사라졌다.
그 소식은 빠르게 황궁을 뒤흔들 뻔 했다.
황후가 급히 틀어막지 않았다면 더 큰 혼란을 야기했을 거다.
그녀의 분노에 모두가 몸을 떨었다.
평소에는 조용히 황제를 보필하지만 그녀가 한 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황제가 아니면 누구도 말릴 수 없다.
그녀가 용사의 동료였기 때문이다.
긴 여정을 함께하며 사랑을 속삭인, 무력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황제를 앞선다고 알려진 강자이기 때문이다.
“접객실에서 용사를 응대하고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대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겁니까!”
“송구합니다. 독대를 원하신다고 문 밖에서 대기하라는 폐하의 명에···.”
“백 번 양보해서 그랬다고 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것으로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묻겠습니다. 졸았습니까?”
“아닙니다.”
“허면 불의의 사고에 휘말렸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대들의 무능을 증명하는 꼴이군요. 고작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접객실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 하나 감지하지 못하였으니!”
“···죽여주시옵소서.”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는 호위 기사들이 머리를 처박았다.
무능했다. 무능했기에 황제가 납치당하는 것도 몰랐다. 상대가 용사라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황제가 조용히 납치되는 수준이 아닌, 접객실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시점에서 더욱 더.
“그대들의 처분은 내가 아니라 폐하께서 직접 하실 겁니다.”
싸늘한 눈빛에 기사들이 몸을 떨었다. 그녀가 대신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폐하의 소재는 파악했습니까?”
“현재 추적 중에 있습니다만···.”
“찾지 못하였다는 거군요.”
“···송구합니다.”
“이리도 무능해서야 어찌 폐하께서 그대들을 믿고 정사를 나누겠습니까! 건국 기념일에 폐하가 납치되었으니, 백성들에게 무어라 말할 참입니까!”
말할 수 없다. 황제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알려져서는 안 되며 그것이 소수의 고위 대신만이 은밀히 소집된 이유였다.
“···용사가 납치해간 것은 확실합니까?”
“예. 용사가 폐하를 찾아왔고 접객실에서 직접 대면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던 도중, 사라지신 겁니다.”
“그러면 확실히 용사밖에 없겠습니다.”
무능하다고 폄하했으나 무려 황제의 호위 기사다. 제국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들이었고 그들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은밀했다면, 그걸 이루어낼 수 있는 자는 이 대륙에서 오직 한 명뿐이다.
문제는 용사가 왜 그랬느냐다.
황후 또한 용사의 동료였다. 그가 갑작스레 돌아올 이유도, 황제를 납치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안다.
조금 또라이긴 했으나 이 정도로 막 나가는 등신은 아니니.
‘무엇보다 용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공간을 통째로 이동시키는 능력을 가진 마법사가 존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분명히 조력자가···.”
있을 거다. 그런데 용사는 혼자라고 했다. 황궁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전부 등신도 아니고 숨어드는 침입자 하나 눈치 채지 못했을까?
무언가 떨어진 건 그때였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그냥 툭, 떨어졌다.
“폐, 폐하!”
“폐하!”
황제였다.
갑작스레 대전을 구르는 황제에게는 의식이 없었으나 다행히 큰 부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숨도 잘 쉬었다.
황후가 재빠르게 천장을 살피자 팔랑거리는 쪽지 하나가 뒤늦게 따라오고 있었다.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을 뿐, 납치는 아님. 기절한 건 나약해서임. 운동 좀 시켜.
우리 사이에 이런 건 넘어가자.
용사 강민식]
“······.”
이게 갑자기 돌아버렸나.
빠득, 황후가 이를 갈았다.
* * *
그리고 그날, 황궁의 파발이 제국 전역으로 내달렸다.
용사 강민식을 찾는다는 포고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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