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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34화 (34/150)

# < 033. 숨바꼭질 >

마력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완벽은 없다. 완벽하게 보인다면 그 마력의 주인이 더 우월하다는 뜻이다.

없어서 읽지 못하는 게 아니라 능력이 부족해서 읽지 못하는 거다.

허나, 알도라는 집행자는 결코 김우진보다 격이 높지 않았다.

김우진의 감각을 속일 만큼 압도적인 능력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김우진에게는 공간을 찢어 탐험하는 능력이 있다.

그게 김우진이 저들을 추적할 수 있는 이유였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쫓아간 곳은 인적이 드문 몬스터는 넘쳐나는 늪지였다.

한쪽에는 수십의 리자드맨들이, 다른 쪽에는 다섯 마리의 거대한 크로커들이 살기를 드러낸다.

강민식과 알도, 기절한 루이네와 김우진이 도착한 것은 정확히 그 중간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달려 나가던, 극히 가까워지던 충돌의 순간.

콰직, 공간이동의 여파에 휘말린 리자드맨 둘의 육신이 그대로 찢어졌다. 리자드맨들을 향하던 크로커의 두터운 이빨이 사이로 끼어든 김우진을 노렸다.

콰아앙!

화염이 크로커를 밀어냈다. 가죽을 녹이고 살을 익혔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잿더미가 되었으나 아주 짧은 틈은, 집행자가 다시 한 번 공간이동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서걱-

김우진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걸려나온 옷가지와 미약한 핏물이 그대로 재가 되었다.

“쓸데없는 짓을.”

다시 한 번 공간 속으로 손을 비집었다.

“···이것 봐라?”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마치 미로처럼, 여러 갈래의 길이 나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혼란을 주기 위해 공간을 비튼 거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결코 해낼 수 없는 불가해의 일이지만, 그 대상이 공간의 권능을 가진 집행자라면 아예 불가능도 아니다.

“마나소모가 컸겠군.”

허나, 아무리 집행자라고 해도 아무런 대가 없이 이런 짓을 하지는 못한다.

“조금 번거롭지만 찾아내지 못할 것도 없고.”

어차피 급조한 탓에 그리 복잡하지도 않았다. 아주 잠깐의 틈일 뿐이니 결국 잡히는 건 시간문제다.

김우진이 몸을 던졌다.

* * *

“···제기랄!”

알도가 옆구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핏물에 새하얀 옷이 붉게 변했다.

“괘, 괜찮으십니까?”

“이럴 시간이 없다. 수를 써놓긴 했지만 김우진이라면 금방 온다. 설마 공간 조작 능력도 있을 줄이야···!”

길어야 몇 십초다. 그가 급하게 술식을 그렸다.

“···도망칠 수는 있는 겁니까?”

“그러면 그냥 순순히 붙잡혀서 다시 연옥에 갇힐 테냐?”

“···아니, 그게 아니라.”

“일단 이 여자는 여기서 버린다.”

알도가 루이네를 수풀 속에 던졌다. 약자도 아니고 금방 깨어날 테니 별 문제는 없을 거다.

“설마 공간 관련 권능이 있을 줄이야.”

“···차원이동을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김우진에게는 권한이 있으니.”

알도는 그 권한이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소용이 없다는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다.”

“한 가지라면?”

파직-

흔들리는 공간에 알도의 손길이 다급해졌다.

“가서 설명해주마!”

마나가 요동쳤다. 공간이 뒤집어졌다.

거대한 도시였다. 와아아, 수많은 인파가 환호하는 도시, 카니발의 행진이 이어지는 대로.

대륙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며,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대도시에서 건국 기념일을 맞아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제도···?”

“모른다. 그저 가장 사람이 많고 북적이는 곳으로 이동한 것이니.”

알도가 급하게 강민식을 끌고 인파 속에 섞여들었다.

“최대한 기척을 죽여라.”

한 발 늦게, 그들이 있던 자리에 김우진이 나타났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다행히 이건 예상대로군.”

“무슨 뜻입니까?”

“김우진은 이번 사태가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의 과격 행동은 최대한 자제할 거다.”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이미 전 대륙에 제가 왔다고 소문이 났습니다만?”

“소문이 난 것과 네가 실제로 목격되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문제가 촉발되는 건 다른 문제지. 네가 표면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다니다 잡히는 것과 누가 봐도 이상한 짓을 하다 잡히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의 표정을 확인한 알도가 사족을 덧붙였다.

“네가 이대로 문제없이 잡힌다면 그냥 사람들이 누군가를 너로 착각한 해프닝으로 끝나던가, 네가 잠시 소장의 권한으로 귀휴를 나온 것으로 마무리 될 거다.”

지금까지 이용된 적이 없었으나 연옥의 소장인 김우진에게는 실제로 그런 권한이 있었다.

“귀휴요?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순식간에 우리를 쫓아온 김우진이다. 네 명의 집행자들을 쓸어버렸다는 뜻이고 그런 놈에게 말이 안 되는 건 없다.”

어쩌면 그 소문들이 진짜 한 치의 과정도 없는 사실일지도 모르지. 알도가 미약하게 몸을 떨었다.

“대체 왜 이래야 하는 겁니까? 신께서 나서신다면 끝나는 것 아닙니까?”

“신께서는 우리를 보내주신 것으로 너에 대한 책임을 다하셨다.”

“아니, 그게 무슨···!”

“잘 들어라.”

알도가 화제를 돌렸다. 강민식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인파에 숨는 건 임시방편이다.”

마법이란, 보다 많은 시간을 들일수록 더 많은 걸 담을 수 있다. 권능 또한 마찬가지다.

“내 권능은 집행자들 사이에서도 공간적으로는 독보적이다. 급조하느라 따라 잡혔지만 시간만 충분하다면, 최대한 복잡하게 꼬아버린다면 충분히 숨을 수 있다.”

그러면 된다. 애초에 목적은 김우진과 싸워 이기는 게 아니라 강민식이 잡히지 않게끔 돕는 것이니.

“그러니 이렇게 된 이상, 황궁으로 간다.”

“예?”

“인간들이라면 당연히 너를 반기겠지. 그들을 방벽으로 삼아 시간을 끈다.”

“아. 사람들이 많으면 김우진도 소란을 일으키지는 못하겠군요?”

“최대한 자제는 하겠지.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 그러니···.”

“그러니 뭐?”

알도가 다급하게 몸을 굴렸다. 쩡, 미약한 진동과 함께 대지가 파열된다. 그 굉음은 카니발의 열기에 묻힌다.

“어, 어···?”

아니, 완벽하지는 않았다. 쯧, 김우진은 혀를 차며 그들을 전부 잠재워버렸다.

그 틈은 알도와 강민식에게 다시 한 번 도망칠 여유를 주었다.

김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방향은 황궁. 제국과 황제를 방패로 삼을 셈인가.

“재미있는 짓을 하네.”

나름의 발악인가.

꽤나 성가시긴 하다.

이주일 안에 아무런 문제없이 강민식을 잡아넣는 것이 베스트라면, 온갖 소란을 다 일으키며 잡는 게 워스트다.

강민식이 귀휴가 아니라 탈옥을 했다는 증거가 드러나게 되니.

다시 잡는 시점에서 내줄 건 아주 사소하겠지만 그것마저도 저들에게 내주기는 싫다.

그러니 그런 요소들은 사전에 배제한다.

“차라리 그냥 다시 공간이동을 하지.”

그게 더 쫓아가기 쉬운데.

김우진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수백 개가 넘는 검은 불꽃들이 일렁였다. 그것은 뜨겁지도, 밝지도 않았다. 그러나 타올랐다.

사람들은 누구도 불꽃을 인지하지 못했다.

“집행자와 강민식을 찾아라.”

불꽃들이 날아갔다. 황도를 향해서.

“꼭꼭 숨어라.”

김우진이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순간이동처럼 거리가 삭제되었다.

“머리카락 보일라.”

황궁. 이 긴 숨바꼭질의 마지막 무대다.

* * *

건국 기념일은 제국의 가장 큰 축제다.

대륙의 절반 가까이 통치하는 거대한 국가의 탄생일, 위대한 시작.

모든 제국 민들은 스스로가 제국민이라는 것에 깊은 자부심을 가진다.

제국이 위대한 만큼, 위대한 제국의 지존인 황제에 대한 충성심 또한 높다.

특히, 현 황제는 용사, 강민식과 함께 멸망을 막은 위대한 전사였다.

강민식과 함께 최후의 전장에 섰던 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며 전장의 선두에서 대륙을 위해, 인류를 위해 싸운 영웅.

“폐하의 연설을 직접 들을 수 있다니.”

“용사, 강민식이 돌아왔다던데 그것에 관해서도 말씀해 주시려나?”

“당연한 소리를. 폐하께서는 강민식의 가장 절친한 동료 아닌가.”

자리에 모인 백성들 모두가 황제의 말 한 마디라도 듣기 위해 연단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연단처럼 조성된 황궁의 테라스. 이제 곧 저 문을 열고 황제 폐하께서 나오실 거다. 그리고 고귀한 말씀을 시작하시겠지.

하지만 1분.

“조금 늦으시나?”

“워낙 바쁘신 분이니 조금 늦으실 수도 있지.”

5분.

“저는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있습니다!”

“황제 폐하 만세!”

10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폐하께서는 약속을 어기시는 분이 아닌데.”

마침내 문이 열렸으나 그곳을 통해 나온 건 그들이 기다리던 위대한 황제 폐하가 아니었다.

“오늘의 연설은 사정이 있어 취소되었소! 모두 해산하고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시오!”

달갑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었을 뿐.

* * *

“어디 있지?”

제국의 위대한 황제, 칼마스 칸 도이리안 베르폰이 체통을 잊고 성큼 성큼 복도를 걸었다.

백성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기껏 준비한 망토와 거추장스러운 장식품들을 벗어 뒤따라오는 시종에게 넘겼다.

“방금 전, 접객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놈이 돌아오다니. 헛소문인 줄 알았더니 정말 사실이었나.”

세상을 구하고 떠난 용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고대 문헌에 남겨진 기록이었다.

그래서 신문을 봤음에도 믿지 않았다. 언론들은 언제나 관심을 받기 위해 사소한 가십거리들을 부풀린다.

감히 용사의 이름을 들먹인 건 괘씸해도 적당히 이용하다 선을 그어줄 생각이었건만.

“진짜였다니.”

어떻게 왔을까. 어째서 왔을까.

“폐하를 뵙습니다.”

“문을 열어라.”

“예.”

접객실을 지키는 기사들이 문을 열었다. 화려한 접객실의 내부, 소의 가죽으로 만든 고급스러운 의자에 그가 있었다.

대륙을 구한 영웅이, 그의 동료가, 용사가.

“황태자 전하, 아니 폐하를 뵙습니다.”

용사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황제에게 하는 예의로는 부족하나 그의 신분을 생각하면 적절하다.

황제라고 한들, 그는 용사이니.

“너무 퍽퍽하게 부르지 말지. 우리 사이에.”

황제는 너스레를 떨며 자리에 앉았다. 시종들이 차를 내왔다.

“모두 나가 있거라. 독대를 하고 싶구나.”

“하오나···.”

“강민식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대들이 있든, 없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 폐하.”

시종과 호위 기사들이 나갔다. 텅 비어버린 접객실 안에서 황제와 용사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솔직히 놀랐다. 그렇게 떠난 네가 다시 돌아올 줄이야.”

“제가 어떻게 떠났습니까?”

“연인을 잃고 빨리 잊고 싶다는 듯, 훅 가버렸지.”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그건 그랬다. 세상을 구한 이후에는 나름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완전히 잊지 못하고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도 맞았다.

“피차 서로의 성격을 잘 알고 있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왜 날 찾아왔느냐.”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용사인 네가? 내게?”

“폐하이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흠, 황제가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용사가 타인에게 도움을 구할 만한 일이 무엇인가. 그리고 용사에게 도움을 준 이후 받아낼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일까.

무엇이든 나쁘지 않다. 용사가 타국이 아닌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용사의 동료라는 타이틀이 이럴 때는 좋군.

“도와주시겠습니까?”

“계약서도 안 보여주고 계약부터 강요하는 꼴이 악마들이 하던 제안 같구나.”

“저는 쫓기고 있습니다. 추격자를 막아주십시오.”

“재미있는 농담이다.”

황제 또한 함부로 하지 못하는 자를 감히 누가 쫓을까. 통제 불능의 강자. 그가 순순히 돌아갔을 때, 기뻐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농담처럼 들리십니까?”

허나, 용사는 웃지 않았다. 황제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누구냐.”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 쫓기는지도 모르면서 막아 달라?”

“알게 되시면 감당하실 수 없으실 겁니다.”

“짐은 제국의 황제다. 짐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

“있습니다. 저 또한 감당하지 못할 대적입니다.”

“우스운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도와달라는 거지?”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시간?”

“황궁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아주 잠시의 시간을 벌어주신다···.”

용사의 말이 멈췄다.

“어딜 보는 거지?”

그의 시선은 황제를 향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미친.”

허나, 용사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시커멓게 불타오르는 불꽃이. 의심할 여지도 없이 소장의 것이었다.

불꽃은 곧 한 명의 사람으로 화했다.

“찾았다.”

“누···!”

퍽, 황제가 앞으로 고꾸라지며 기절했다.

“다행히 못 찾겠다, 꾀꼬리는 할 필요가 없네.”

김우진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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