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28. 추적 >
강민식이 탈옥에 성공했다.
차원의 방벽을 넘은 순간, 당장 그를 잡아들일 수는 없었다.
김우진은 아무런 수확도 없이 연옥으로 돌아왔다.
“세계수로 어떻게 안 됐던 겁니까?”
“그건 도둑놈처럼 창문 따고 들어가는 경우고, 당당히 열쇠 들고 정문으로 나가겠다는 걸 막을 순 없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뭘 물어. 좆된 거지.”
탈옥을 막지 못했다는 것은 연옥의 관리를 부실하게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신이라고 으스대는 윗대가리들이 더 없이 바라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김우진을 압박하고자 했으니.
다가올 후폭풍은 상상만으로도 진저리가 났다.
허나, 그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상황이 차악으로 가긴 했지만 아직 최악은 아니니 괜찮아.”
“탈옥에 성공한 것부터가 이미 최악 아닙니까?”
“잡으러 갔다가 허탕 치고 돌아와야 최악이지. 아직은 차악이야. 내가 이런 일, 한두 번 겪는 줄 알아?”
“탈옥에 성공한 건 처음입니다.”
“사소한 건 좀 넘어가. 웃고 있어도 상당히 열 받은 상태니까.”
톡톡톡, 탁자를 두드리는 손가락은 예전보다 더욱 빠르고 힘이 있었다. 손가락 자국 그대로 구멍이 뚫릴 정도로.
“1177번은 이미 차원을 넘었습니다. 별처럼 많은 차원들 속에서 어떻게 그를 찾습니까?”
“그래봐야 두 곳만 뒤지면 돼. 모든 생명체는 연어와 같아서 회귀 본능이라는 게 있거든.”
차원 이동이란 건 차원 마법에 정통해 목표 차원의 좌표를 알고 있지 않는 이상, 매개체를 따라가는 법이다.
그리고 생명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연옥은 수많은 차원들이 교차하는 곳이라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도망간 강민식이 갈 곳은 많아야 두 곳이다.
그가 태어나고 일생을 보낸 지구.
아니면 용사로서 십수 년을 활동했던 크라프트.
“고작 두 곳이야. 시간만 충분하다면 찾지 못할 것도 없어.”
그래, 시간만 충분하다면.
“그 전제부터가 틀렸습니다. 놈은 명명백백하게 상부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탈옥하자마자 성공 사실을 알렸겠죠. 상부가 움직이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지.”
“방법이 있겠습니까?”
“오랜만에 휴가를 좀 가볼까 해.”
1년에 딱 일주일. 휴가 혹은 일종의 연차를 쓸 수 있다고 상부와의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다.
연옥의 핵심이 김우진인만큼, 그 기간 동안은 만약을 대비해 연옥의 방벽을 완전히 닫고 외부의 출입을 통제한다.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 김우진 본인이나, 그가 동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물론 상부에서 임의로 뚫고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 경우, 그들이 감수해야 할 불이익이 꽤 많아진다. 그렇게 계약이 되어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 기간 동안은 상부 또한 개입할 수 없다. 의심을 한다고 해도 휴가 중이라고 모두 씹어버리면 그만이다.
“일주일 가지고 되겠습니까?”
“이주. 작년에는 안 썼으니까.”
“그래도 그 큰 차원을 두 개나 뒤지는 일입니다.”
“덕구를 데리고 갈 거야.”
차원 이동의 여파로 후각이 당분간 저하되겠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다.
“여기서처럼 어디에 있든 쫓아갈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근처에 있으면 알 수 있겠지.”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죄수도 하나 데려갈까 해.”
“예?”
* * *
“그렇게 됐으니까 네가 함께 가줘야겠어.”
“···죄수가 탈옥을 했는데 그 죄수를 잡으로 다른 죄수와 함께 가겠다고요? 제가 들은 게 맞나요?”
“정확해. 참고로 이건 부탁이 아니라 통보야.”
율리아는 리자스 꽃차의 향을 음미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무슨 숨겨진 뜻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죄수가 탈옥을 했다는 걸 죄수에게 알릴 이유도.
함께 가자고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리 저희가 협력 관계가 되었다고 하지만 벌써부터 저를 완전히 신뢰하실 만한 분은 아니잖아요. 소장님이.”
“맞아. 나는 너를 믿는 게 아니라 그냥 네가 필요한 거야.”
“이유는요?”
“시간이 이주 밖에 없거든.”
“다른 차원으로 도망친 사람을 고작 이주일 만에 찾는다고요? 어느 차원인지도 모르면서?”
“두 개 중 하나야. 태어난 지구거나 용사로 살았던 크라프트거나. 왜 그런지는 알고 있겠지?”
“···차원을 찾아갈 때 가장 확실한 건 좌표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차원에 해당되는 무언가가 곧 길잡이 역할을 하니까요. 당연히 그 차원에서 지내온 생명체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길잡이죠.”
“그래. 차원 이동은 특별한 좌표가 없는 한 무조건 네비를 따라가게 되어 있지.”
“네비요?”
“대충 넘어가.”
“그러니까 시간은 이주밖에 없는데 찾아야 할 차원은 무려 두 개라는 거네요.”
“맞아.”
“제 역할은 1177번을 찾는 사냥개 정도가 되겠고요.”
“하이엘프는 모든 식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잖아?”
차원이라는 드넓은 세상에서 작정하고 숨어버린 용사를 찾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극한의 후각을 가진 머리 세 개의 사냥개와 이 세상의 모든 식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하이엘프는 깜깜한 심연 속에서 비추는 한 줄기 빛과 같다.
특히, 생명체가 살아갈만한 차원에서 식물이 없는 곳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막에서도 선인장은 자라난다.
어떤 오지로 숨어들었든 식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제가 소장님을 도와드려야 하는 이유는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희가 협력하기로 한 사항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은데요.”
“연옥을 부수겠다며?”
“네.”
“놈을 잡지 못하면 내 임기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나는 충실하게 감옥을 지켜야만 하지. 그리고.”
“그리고요?”
“이 탈옥 자체가 날 여기 앉혀둔 개새끼들의 수작이야.”
“당장 가요. 어디를 먼저 가시나요?”
“크라프트. 조금 더 가능성이 높거든.”
살아온 시간은 지구가 더 길었으나 가장 최근까지 강렬한 흔적을 남긴 곳이 크라프트다.
연결점이라는 것은 멀어지면 조금씩 희미해지기 마련. 적어도 김우진이 보기에는 크라프트의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런데 구속구는 풀어주시는 거죠?”
“도망칠 생각만 없다면.”
“당연히 없죠.”
멍멍멍!
그렇게 한 명의 인간, 한 명의 하이엘프, 그리고 세 머리의 개가 차원의 방벽을 넘었다.
그들이 떠난 직후, 차원의 감옥, 연옥의 모든 문이 닫혔다.
* * *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차원들이 존재한다.
당연히 모든 차원은 같지 않다. 환경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며, 마나의 분포는 물론 살아가는 종족도 문명도 다르다.
“그런데 크라프트는 어떤 차원이에요?”
“나도 몰라.”
죄수로 들어온 용사의 서류에는 그간의 행적과 여러 가지 사항들이 상세하게 적혀 있지만 거기에 용사로서 활동했던 차원에 대한 이야기는 극히 적었다.
당연했다. 이미 연옥으로 들어와 죄수가 된 이상, 어느 차원에서 용사를 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니까.
하지만 추측할 수는 있다.
엘프가 주를 이루는 차원에는 엘프 용사를 보내는 상부의 패턴을 대입해보자면 크라프트의 주 종족은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강민식에게 압수한 물품들이 가죽 갑옷과 검이었음을 상기하면 중세의 문명을 가지고 있을 거다.
마법 또한 사용했으므로 마법 또한 발전했을 거고.
마법이 적당히 발전한 차원이면 마도 공학은 당연히 뒤따른다.
“대체로 아르반이나 데이드람하고 비슷하네요?”
“대부분의 차원이 그래.”
일반적으로 차원의 발전 방향성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마력의 농도다.
마나가 적당히 있는 곳은 대부분 마법이 발전하며, 그에 따라 마도 공학도 함께 융성해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차원들은 적당한 수준의 마력 농도를 가지고 있다.
마나가 극히 희박하여 지구처럼 과학이나 또 다른 학문이 발전하거나, 마나가 너무 풍부해 융성한 문명보다는 개개인의 괴물들이 탄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면 잠깐만요.”
율리아가 근처의 나무에게 다가갔다. 손을 얹고 눈을 감아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길 잠깐.
“어쩌면 쉽게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안내할게요.”
“갑자기 자신감 넘치는 그 말투, 묘하게 거슬려. 이유는?”
“이 세계에도 엘프들이 있데요.”
“그리고?”
“어머니 나무도 있고요.”
“···썩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데.”
“왜요?”
“아니, 아무것도. 그래서 어쩌겠다고?”
김우진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으나 곧 펴졌다.
“제가 어머니 나무께 여쭈어 볼게요. 최근에 차원의 방벽을 뚫고 들어온 누군가가 있는지. 그러면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엘프들은 서로 배척하지 않아? 다른 차원의 엘프라고 말이야.”
“연옥의 엘프들이 그러던가요?”
“그건 특수한 경우잖아.”
“저도 모든 엘프들을 장담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하지만?”
“적어도 하이엘프는 어느 차원에서든 특별해요. 특별하게 여겨지고요.”
“좋아, 일단 가보자고.”
불안한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세계수라면 누군가 차원을 넘어 왔다는 것 정도는 눈치 챘을 거다.
그렇다면 강민식이 크라프톤에 있는지, 지구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세계수가 희소식인 것만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율리아를 데리고 온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 * *
유난히 밝게 빛나며 밤하늘을 빛내는 별은 열에 다섯은 차원이다.
그 정도로 많은 세계가 우주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레 흘러간다. 우주를 수놓으며 은하수를 그린다.
남자는 그런 하늘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법칙에 의해 원활하게 흘러갈 것 같은 세상도 완벽하지는 않다. 애초에 완벽한 세상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완벽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었다.
그의 손길에 따라 일어나던 불협화음이 다시금 부드러운 선율로 돌아간다는 건 참으로 즐겁고 아름다운 일이다.
“신이시여.”
새하얀 로브를 뒤집어쓴 여인이 천천히 다가와 그를 경배했다. 그의 발에 입을 맞추고 귀에 속삭였다.
“성공했다는 말이군.”
기다리고 있던 소식에 남자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진해졌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당히 궁금하군. 지금 당장 콕콕 쑤시는 심장을 들쑤셔···휴가? 그것도 붙여서?”
프흐흐흐, 남자의 시선이 찰랑이는 붉은 빛의 와인에 닿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이는군.”
“하명해주시옵소서.”
“집행자 다섯을 보내어 그 인간을 보호해 주거라. 하지만 결코 김우진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고 일러라. 비루하게 도망치는 것을 도우면 되니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도 고작 이주다. 그리 길지도 않다.
“외람된 말이오나, 하찮은 피조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멍청한 소리 하지 말아라. 일개 피조물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위대한 우주의 이름으로 맺어진 계약은 더 없이 신성한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감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여인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하물며 김우진은 피조물이나 이미 피조물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는 존재.”
남은 포도주를 마저 삼켰다. 투명한 유리잔이 빛을 반사하며 그 자태를 뽐냈다.
“겨우 다섯으로는 정면 승부에 답이 없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내야만 한다면 결코 신분을 노출시키는 일은 없게 하라 일러라.”
빈 잔을 던졌다. 쨍그랑, 수백 개의 조각들이 비산했다. 튀어 오른 조각들은 다시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허공에 머물렀다. 진짜 별처럼.
“그게 불가하다면 살아서 돌아올 생각은 말라고도 이르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주동안 그 인간을 피신시켜야 할 것이다.”
“예! 모두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옵니다!”
딱, 남자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사방에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다시금 하나로 합쳐졌다.
“내가 직접 가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없는 것이 아쉽구나.”
쯧, 혀를 찬 남자가 잔을 내밀었다.
“이번엔 다른 것이 마시고 싶구나.”
“예, 세계수의 수액으로 만든 백주를 대령하겠나이다.”
여인이 더욱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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