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20화 (20/150)

# < 019. 결행 >

진동과 소음, 균열과 불안정한 마나의 파동.

교도관들의 정신은 분산되고 소음과 불안정한 마나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탈옥을 하기 위해서 최고의 환경이 조성된 것은 맞다.

하지만 한 가지 맹점이 있다면 죄수들이 아는 것은 소장과 교도관들 또한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도관들은 죄수들에 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감옥은 통제된 곳이다. 죄수들은 통제된 삶을 산다.

그게 당연한 곳이 감옥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뛰고 있으면 걷고 싶고, 걷고 있으면 서고 싶다.

감옥의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고, 보다 많은 것을 하고 싶어 한다.

불시 검방은 그러한 죄수들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아무리 빡빡하게 통제한다 한들 죄수들을 완전히 통제 아래 둘 수는 없다. 일반 감옥도 그럴 진데 용사들로 이루어진 연옥은 어떨까.

나갈 날짜가 정해진 일반 감옥의 죄수들과 달리 연옥의 죄수들은 기약이 없다. 그렇기에 더욱 자유를 갈망하고, 탈옥을 준비한다.

“모두 나와!”

모든 독방의 문이 열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저녁을 먹고 있던 죄수들이 교도관들의 손에 이끌려나왔다.

“일렬로 서도록.”

강제로 벽을 짚고 고개를 파묻는다. 그 사이 교도관들이 방 안으로 들어가 문제가 있는 물건을 찾는다.

“크윽···! 이거 놔!”

“얌전히 있게.”

거친 몸부림으로 더욱 거세게 제압당한 강민식이 데르카인의 목소리에 조금 진정을 되찾았다.

“데르카인님? 이게 대체 뭡니까?”

“검방이네. 죄수들이 연옥에 허가되지 않은 물건을 들였는지, 들이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지.”

“그게 무슨···!”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은 했네.”

데르카인이 쓰게 웃었다.

드워프들에게 공방을 쥐어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세계수의 이동이 갖가지 변수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소장은 소장의 자격이 없다.

만약 그가 소장이었다고 할지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다.

“예상이요?”

“소장이 공방을 지어주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

대안도 있으신 겁니까. 물으려던 강민식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바로 뒤에 교도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저들의 앞에서 나눌 만한 대화는 아닌 거다.

그러는 사이 교도관들은 어느새 불법 반입물들을 찾아냈다.

불법 반입물들이 복도에 쌓여갔다. 그리 많지는 않았고 대부분이 정말 사소한 것들이었다.

부소장이 탐탁지 않은 눈빛을 했다. 딱히 탈옥을 위해 필요하다고 할 만한 것들은 없었다.

“정말 이게 전부입니까?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하면 참작의 여지는 있습니다.”

“왜 날 보는지 모르겠군.”

“우연입니다.”

어깨를 으쓱인 부소장이 다시금 명령을 내렸다.

“죄수들을 다시 감옥에 집어넣고 공방 쪽도 수색한다. 소장님이 요구하신 물건이 아닌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도록.”

“예!”

죄수들이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고 감시를 위한 교도관 두 명을 제외하고 복도는 텅 비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을 때, 데르카인은 무언가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식사입니다.”

소지, 베르너가 가져다주는 아침 식사까지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정신 교육 시간이 되지 않았다. 연옥을 수리하기 위해 공방으로 가지도 못했다.

“모든 일정이 취소된 건가?”

“세계수로 인해 불안정해서 당분간은 죄수들을 방에서 나오게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언제까지?”

“글쎄요. 한 닷새 정도 이야기하던데.”

길다. 너무 길다. 닷새라면 세계수의 이동은 완전히 끝나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갈구하던 기회도 사라진다.

“소장은 뭘 하고 있나?”

“매일 같이 세계수한테 간다는 걸 제외하고는 딱히 모릅니다. 애초에 밥 먹을 때를 제외하면 저를 부르는 일도 거의 없어서.”

소장의 신경이 세계수에 쏠려 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게 지금이 탈옥의 적기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소장은 필요 이상으로 세계수에 관심을 쏟고 있다. 아마 엘프들이 불안해서 더 그런 것이겠지만 그로 인해 정신이 팔려 있다면 이쪽은 좋다.

문제라면 이곳에 꼼짝 없이 갇힌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검방에 대비해 모든 것들을 치워놨기에 독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엘프들은 그대로 원예반에 나가고 있습니다.”

“엘프들이?”

대충 어떤 그림인지 예상이 갔다. 다른 것들과 달리 영초들은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세계수가 불안정한 마나를 발산하고 있으니 더 그럴 거다. 엘프들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죽을 가능성이 높으니 소장으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거다.

그리고 그건 데르카인 입장에서 한 줄기 빛이었다.

* * *

늦은 밤, 바깥에는 달빛이 내려쬐어 있겠지만 꽉 막힌 독방에는 빛 한 점 새어나오지 않는다.

절대 꺼지지 않는 마법 전등만이 흐릿하게 쓸쓸한 독방을 비춘다.

데르카인은 조심스레 배급구를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텅 빈, 복도는 을씨년스러웠다. 딱히 인기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좌우를 살피니 배급구를 닫아놓지 않은 방은 딱 하나였다.

“자나?”

“안 잡니다.”

작은 속삭임에도 대답은 바로 들어왔다.

“늦은 시간에 미안하군.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열어놓으라고 했네.”

“무엇입니까?”

“검방 때 말이네. 자네는 용케 안 들켰다 싶어서.”

아무리 작다고 한들 교도관들의 수색은 제법 빡빡하다. 데르카인은 강민식이 그가 준 증폭기를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모든 용사들에게 나름의 한 수가 있겠지만 강민식은 검방의 존재 자체를 모르지 않았나.

“입 안에 넣어놨습니다.”

“입 안도 검사했을 텐데?”

“어금니 안쪽에 본래 독단을 숨기고 다니던 공간이 있습니다. 거기에 넣어놨습니다. 크기가 무척이나 작아 우겨넣으니 어떻게든 되더군요. 마력 차단 각인이 새겨져 있어서 마나가 새어나올 일은 없습니다.”

어금니에 독단이라. 데르카인이 쓰게 웃었다.

“자네도 험난한 삶을 살았군.”

“제가 살던 세계에는 초인이라 불릴 만한 자들이 없다보니 더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용사의 힘을 받았다고 한들, 처음부터 강한 게 아니다. 용사의 힘이란 결국 주어진 업을 뚫어낼 수 있도록 한계를 없애는 힘일 뿐이니.

재능이 있어 용사가 되었으나 막 소환되었을 때의 강민식은 너무 약했다.

“그렇다고 딱히 자살용은 아닙니다. 오히려 비장의 한 수였죠.”

“그 말이 딱 맞군. 비장의 한 수로 용케 숨겨서 징벌방을 피했으니.”

“예, 맞습니다.”

강민식은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만.”

더욱 목소리를 낮추고.

“덕분에 성공했습니다. 구속구를 풀 수 있습니다.”

“······!”

진짜 비장의 한 수를 이야기했다.

* * *

죄수들이 아는 건 소장도 안다.

데르카인이 세계수의 이동이 탈옥의 적기라고 여겼던 것처럼, 소장도 똑같이 생각했다.

소장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죄수들을 가두어 놓았다. 죄수들이 방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모두는 아니었다.

영초를 위해 엘프들은 원예반으로 출역에 나가야 했다. 소장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다. 영초란 개복치 같아서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금방 죽으니까.

데르카인이 통신기를 꺼냈다.

아주 작은 양의 마나를 소모하는 대신 보낼 수 있는 메시지도 극단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구형.

교도관들이 마나에 민감해 어지간하면 쓸 수 없지만 세계수로 인해 마나가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지금 같은 시기에는 아무리 이용한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때. 당도.]

때가 다가왔다.

탈옥 계획은 드워프들만, 수인들만 새운 것이 아니었다. 드워프, 수인, 엘프를 비롯해 다크엘프, 거인족까지. 모든 죄수들이 동참했고 모두가 협력해야만 한다.

때문에 엘프들과의 계획 조율은 반드시 필요했다.

아니, 단순한 조율을 넘어 지금은 엘프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난. 그만.]

허나 돌아온 대답에 데르카인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난, 굳이 해석할 필요 없이 시에나 본인을 이야기한다.

그만. 하지만 이건 무어라 해석해야 할까. 통신을 그만? 아니, 아니다. 짧은 한 단어지만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해하고 싶지 않을 뿐.

탈옥을 그만 두겠다.

“어째서?”

늙은 난쟁이로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다.

단순히 자기가 아니다. 시에나 올름은 엘프 죄수들을 대표한다. 그녀가 탈옥을 포기했다는 것은, 다른 엘프들 또한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변수다. 그것도 엄청나게 좋지 않은 변수.

엘프들에게 모든 것을 의존해야 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더.

“대체 왜···?”

연옥의 탈옥은 혼자서 이룰 수 없다. 모든 죄수들이 하나가 되어 조금씩, 조금씩 쌓아나가야 하는 금자탑이다.

무려 15년이다. 그 긴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이제 결실이 맺어지기 직전이다.

[상황. 변.]

상황이 변했다. 뭐가 어떻게 변한 걸까.

사실, 변한 건 많다. 하이엘프라는 엘프들의 정신적 지주가 들어왔고 세계수가 발아했다. 감옥이기 때문에 대놓고 표현하지 못할 뿐, 평범한 세계였다면 엘프들에게 있어 엄청나게 큰 대격변이다.

[율리아? 세계수?]

“율리아 카르센 때문인가? 아니면 세계수 때문인가?”

어쩌면 둘 다 일수도 있다.

[모두.]

역시. 대답은 데르카인의 예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허나 그게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하이엘프와 세계수가 엘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는 모른다.

그는 드워프이고 세계수를 위대한 나무로 알고 있지만 그 이상의 가치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했다. 과연 그게 15년을 준비한 탈옥을 포기할 정도인가.

함께한 죄수들을 버릴 정도인가.

[포기. 우리 모두.]

“절대 안 된다. 자네가 포기하면 우리 모두가 망해.”

[미안. 하지만.]

미안하지만 그래도 안 된다.

이 무슨 무책임한 말인가.

뿌득, 데르카인은 엘프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연옥에서 길러낸 인내심은 간신히 그의 감정을 억제했다.

[모름. 세계수. 중요.]

[들어서. 짐작.]

“나는 자네들에게 세계수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네. 하지만 자네들이 얼마나 귀히 여기는지는 들어서 짐작하고 있지.”

[세계수. 탈옥. 포기.]

[목적. 무엇?]

“대체 무엇인가. 율리아 카르센, 그렇게 귀하게 여기는 세계수까지 제물로 삼아가며, 자네들이 탈옥을 포기하면서까지 하이엘프가 이루려하는 것이 무엇이냔 말이야!”

단순한 탈옥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게 과연 탈옥보다 가치 있을까.

허나 곱씹은 그의 분노에 대한 대답은 지나치게 간단명료했다.

[말할 수.]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메시지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탈옥. 불가. 협조. 가능.]

[최대한. 가능한.]

탈옥은 불가하지만 협조는 가능하다.

최대한, 가능한 도와주겠다.

그제야 데르카인의 가슴속에 피어오르던 불꽃이 차갑게 식었다.

다행히 완전히 손을 놔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전히 가능성은 있다. 비록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것만 못하지만.

[더 이상. 사정.]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더 이상 묻지 않겠네. 엘프들만의 사정이라는 게 있겠지.”

그 사정이 대체 무엇이기에 15년을 함께 준비한 죄수들을 버리느냐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참았다.

지금은 엘프들의 도움이 무엇보다 절실하기에.

[상황. 인지?]

“지금의 상황은 알고 있나?”

[인지.]

알고 있다.

[도움. 절실.]

“엘프들의 도움이 절실하네.”

[해방.]

“우리를 독방에서 해방시켜 주게.”

탈옥을 휘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독방에서 탈출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구속구를 해제하는 것이다.

[언제?]

언제?

[세계수. 이동. 언제?]

“세계수의 이동은 언제까지 이어지나?”

[길면 닷새. 이제 나흘.]

길어야 닷새. 하루가 지났으니 이제 나흘이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세계수의 이동이 계속되는 와중에 결행하는 것과 끝난 직후에 하는 것.

장단점이 있다. 전자는 소장이 세계수에 관심이 쏠리는 대신 교도관들의 감시가 심해졌다는 것, 후자는 소장이 풀려난 대신 지금에 비해 감시는 약해질 거라는 것. 그리고 그 허점을 찌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역시 맹점이 있다. 소장이 세계수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다. 소지의 말로는 세계수의 곁을 계속 지키고 있다는데 그것 자체가 함정일 수도 있다.

[소장. 세계수. 어떤?]

“소장에게 세계수는 어떤 의미인가?”

[잘.]

잘 모른다.

제한적인 정보. 그 안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탈옥은 결국 도박이다. 교도관들은 퇴근을 하지 않는다. 소장 또한 감옥을 벗어나지 않는다. 연옥은 언제든 죄수들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결국 때란 그나마 감시가 조금 느슨해지는 순간을 이야기할 뿐, 모든 것이 사라진 완벽한 순간이 될 수는 없다.

[내일. 저녁.]

“내일 저녁.”

그렇기에 데르카인은 선택했다.

조금이라도 소장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 있는 지금을.

죄수들을 독방에 가두어 서로 대화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안심하고 있을 교도관들의 빈틈을 찌르기로.

[결행.]

“우리는 이 거지같은 곳을 벗어나 있을 걸세.”

어차피 그에게는 뒤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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