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13. 이게 뭐야 >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율리아의 천연덕스러운 얼굴에 김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딱히 말하면 안 된다고 한 적은 없다. 그렇게까지 비밀인 이야기도 아니고.
단지, 베르너가 좀 성가셨을 뿐이다.
정문을 나서기 전, 씨앗을 심어둔 곳으로 슬쩍 시선을 옮긴다.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을 위해서 율리아를 데리고 가지만 그 안에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쓸데없는 기우. 하지만 연옥의 소장이라는 자리가 기우라 할지라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자리긴 하다.
죄수들이 평범한 자들은 아니지 않은가.
끼익-
정문의 철문에 열쇠를 꽂아 넣은 김우진은 첫 발을 내딛었다.
붉은 모래가 그를 반긴다. 열을 빨아들이는 특성의 붉은 모래는 사람의 수분을 빼앗고 쉽게 지치게 만든다.
생명체가 다니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지만 그런 곳으로 정문을 만든 것은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뻔 한 의도다.
“상당히 덥네요. 불쾌하기도 하고.”
시선을 돌려봐도 보이는 건 지나치게 청명한 하늘과 건조하고 텁텁한 붉은 모래뿐이다.
“왜 소지가 되고 싶었는지 묻는다면 알려주나?”
슬며시 줄곧 가지고 있었던 의문을 묻는다.
“그냥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하이엘프는 땀을 주륵주륵 흘리고 있는 와중에도 섣불리 자신의 본심을 말하지 않는다.
“내가 살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그냥은 없다는 거야.”
“왜 궁금하신지는 알겠는데요, 제가 순순히 말씀드릴 거라고 생각하세요?”
“꿍꿍이는 있다는 거군.”
“제가 깨달은 건 세상은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다는 거예요. 씨앗을 보여주세요. 그러면 조금 말씀드릴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어떻게 할까.
김우진은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씨앗은 심었다. 영약도 동봉했다. 그 상태로 두 달이 지났으니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해도 무방했다.
아니, 정말 무방한가?
“세계수가 발아하는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지?”
“갑자기 화제를 돌리시네요?”
율리아의 의심스러운 눈빛이 그를 훑는다. 그럼에도 순순히 대답이 돌아왔다.
“소장님은 모든 인간이 똑같이 자란다고 자신하실 수 있나요?”
“세계수도 개체마다 차이가 있다?”
“주변 환경, 마나의 유무, 엘프와의 교감 등에 따라 달라요.”
마지막 세 번째는 사심이 담겨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은 이상, 자신이 꼭 필요하다는 눈빛을 보낼 리가 없으니.
“평균은?”
“마나가 지나치게 풍부하지만 않았다면 보통은 10년 정도면 발아해요.”
10년. 그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에 비하면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만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지나치게 길다.
“지나치게 풍부하다의 정의는 어느 정도지?”
“글쎄요. 지나치게 풍부하게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애초에 하이엘프라고 한들 세계수의 씨앗을 심을 기회는 몇 번 없어요.”
“왜 그렇게까지 씨앗을 확인하고 싶어 하지?”
“그러는 소장님은 왜 갑자기 어머니 나무에 대해 궁금한 게 많으시죠? 설마 이미 심으신 건 아니죠?”
제법 날카로운 시선이다.
“그게 중요한가?”
“당장은 씨앗에 무슨 짓을 해두셨는지가 더 중요하긴 하죠.”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닌데.”
“어머니 나무의 씨앗은 그 자체만으로 완전해요. 그것을 뚫고 간섭하고 성공한다는 사례가 없어요. 그러니 하이엘프로서 궁금한 건 당연한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내가 씨앗에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궁금하다는 거군.”
“직설적이고 부정적으로 표현한다면 그렇게 되겠네요.”
대화는 거기서 끊어졌다.
두드드드-
막이 진동한다. 겉 표면이 아닌 내부. 땅속에서 올라오는 울림은 무언가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샌드웜인가요?”
“아마도.”
김우진은 가볍게 몸을 띄웠다. 마나를 조작하자 율리아의 육신도 함께 떠올랐다.
콰아아아!
직후, 거대한 지렁이가 방금까지 그들이 있던 자리의 모래를 집어 삼키고 사라졌다.
땅 속을 기어 다니는 샌드웜들에게 안 물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지 말고 나는 거다.
“와.”
대지가 저 아래 작아 보일 정도로 올라갔을 때, 율리아는 저 멀리 보이는 풍경에 감탄했다.
“특이한 구조네요.”
건조한 사막의 바로 옆에 늪지와 설원이 붙어 있는 건 확실히 평범하지는 않았다.
“직접 만드신 건가요?”
“아니.”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은 김우진의 의도가 들어간 바가 맞다. 비록 죄수들의 손을 빌렸으나 그 계획과 설계는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지난 20년 간 참 많이도 갈아엎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니었다. 기형적인 환경 구조를 띠고 있는 것도, 몬스터들이 생태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도 그가 연옥의 소장이 되기 이전부터 이어져오던 것들이었다.
둘은 빠르게 날았다. 사막을 지나 늪지대에 도착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착지하자 질퍽한 진흙이 달라붙는다. 끈적한 습기는 적절한 불쾌감을 양산한다.
“나쁘지 않네요.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맡으니 더 좋아요.”
허나 늪지라고 해도 주변을 가득 채운 건 나무요 식물이다. 하이엘프에게 있어 늪지 또한 숲이며 숲은 그들의 안방이었다.
숲에 도착한 김에 김우진은 다시 대화의 주제를 본래의 것으로 되돌렸다.
“마나에 따라 세계수의 발아 속도와 생장 속도가 달라진다고 했지?”
“맞아요.”
“만약 영약을 과잉으로 함께 심었다면?”
“어떤 영약을 얼마나요?”
“설명초의 뿌리를 예로 든다면?”
“최상급 영약이네요. 그게 다섯 개쯤이면 적어도 주변에 큰 피해는 없을 거예요.”
“29개면?”
“그만큼 많은 영약을 심을 필···?”
그 시점에서 율리아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모든 대화의 주제가 세계수를 향하고 있다. 세계수의 발아와 생장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영약의 개수가 지나치게 구체적이다.
“···이미 심으셨군요?”
힌트가 너무 많았다.
김우진은 부정하지 않았다. 이미 심었고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이제 와서 그녀가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한들,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그것도 29개의 영약을 함께 말이죠?”
“빨리 자랐으면 싶어서.”
“아무리 그래도···!”
9개도, 19개도 아니고 29개?
미친 건가. 하이엘프는 자신이 살면서 이토록 놀란 게 얼마나 있었을까 고민해 보았다. 없었다.
“혹시 마나가 과도해서 죽은 건 아니겠지?”
그래놓고 태평하게 저런 질문이라니. 하나만 던져놔도 전쟁이 일어날 수준의 영약을 29개나 때려 박아놓고.
“어머니 나무를 일반적인 식물과 비교하지 마세요. 지나치게 과생장했으면 과생장했지 죽는 일은 없어요.”
“하지만 지난 두 달 동안 아무런 마나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영약이 풍족하면 굳이 다른 마나에까지 손을 댈 필요가 없어서 준비를 끝마칠 때가지 알 수 없···심은지 두 달이나 됐다고요?”
다시 한 번 놀라는 율리아와 달리 김우진은 작은 안도를 얻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세계수는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
“그래. 그럼 앞으로 세계수가 발아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그건 저도 모르죠! 최상급 영약을 29개나 함께 심은 하이엘프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요!”
우지끈-
율리아의 고함은 잔잔하게 습지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습지의 주인들은 침입자들을 반기지 않았다.
질척이는 지에 깊은 족적을 남기며 나타난 건 거대한 바실리스크였다. 다섯 마리로 무리를 이루고 있는.
“그러면 내일이라도 발아할 수 있는 건가?”
“그 전에 저것들을 처리하는 게 먼저 아닐까요?”
“무기는 검이었나?”
검 하나가 율리아의 앞에 툭 떨어졌다.
“압수된 네 검에 비하면 품질이 떨어지지만 나름 상등품이니 쓸 만할 거다.”
“제가 싸우라고요?”
“소지의 역할은 교도관이 할 일을 대신해주는 거다.”
“구속구는 풀어주시는 거죠?”
쿵, 천천히 거리가 가까워졌다. 몬스터 특유의 악취와 진득한 살기에 율리아가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올렸다.
찰칵-
언제 손을 쓴 것일까. 구속구는 해제되어 어느새 김우진의 손에 들려 있었다.
율리아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서늘함과 함께 묶여 있던 마나가 용솟음 치는 것을 느꼈다.
힘이 돈다. 그녀가 달뜬 숨을 내뱉었다. 환희에 차올랐다.
들어온 자리는 몰라도 나간 자리는 안다고 했다. 고귀한 하이엘프인 그녀가 언제 마나를 구속당할 일이 있었을까.
마나를 잃은 상실감과 박탈감은 상상 이상이었고 다시 되찾았을 때의 고양감과 충만함 또한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검을 곧추세웠다.
그녀가 익숙하게 쓰던 애검과는 조금 다르지만 나쁘지 않았다. 예기가 느껴졌다.
아주 잠시, 세계수에 대한 것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푸하앗-
코앞까지 다가온 선두의 바실리스크가 입을 벌렸다. 푸학, 녹빛의 독무가 뿜어져 나왔다.
율리아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혼탁한 독무와는 다른, 보다 청명한 녹청빛의 오러가 산뜻한 기세를 발했다.
독무가 갈라졌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흐트러진 독무를 밀어냈다. 뒤이어 바실리스크가 당도했을 때, 율리아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하늘. 태양을 등진 검격이 바실리스크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나쁘지 않아.”
전장이 한 번에 내려다보이는 나무 위, 김우진은 뒷짐을 진 채 모든 것을 관망했다.
율리아의 움직임은 가볍고 부드럽다. 동시에 날카로우면서 빠르다.
힘보다는 속도와 부드러움에 치중한, 결을 베는 전형적인 엘프들의 검술이다.
그녀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강철보다 단단한 바실리스크의 비늘들이 떨어져 나간다. 키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은 엘프의 고막을 충분히 타격하지 못하고, 독무는 여전히 닿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압도적이다.
“나쁘지 않아.”
어째서 하이엘프라는 작자가 아무리 몬스터라 한들 생명을 죽이면서 기쁜 듯이 웃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딱히 중요치는 않다.
새로운 죄수가 들어오면 보통 두 가지를 확인한다.
서류를 통해 신상명세를 비롯한 정보를, 상담실의 상담을 통해 무력의 수준을.
율리아는 지나치게 협조적이었던 탓에 후자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지금의 관찰은 당시 이루어지지 않은 상담의 일부였다.
그리고 결과는 그녀가 죄수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라는 것.
그냥 타고난 재능일까, 하이엘프라는 이름값일까. 아마 둘 다일 거다.
용사들로 득실거리는 연옥에서도 손에 꼽히려면 노력 없는 재능으로는, 재능 없는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니까.
전투는 빠르게 끝이 났다. 다섯 마리의 바실리스크들은 모두 대지 위에 몸을 누였다. 연옥의 풍부한 마나로 인해 중간계의 어떤 바실리스크들 보다 강한 놈들임에도 그랬다.
“오랜만에 하니까 힘드네요.”
바위 위에 걸터 앉은 율리아가 숨을 헐떡였다. 그 순간, 원활히 흐르던 마나가 탁 막혔다.
어느새 목에는 다시금 구속구가 착용되어 있었다.
‘···언제?’
율리아의 동공이 커졌다.
풀 때는 마나가 제약되어 있어서라고 백 번 양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비록 전투 직전이고 오랜 제약으로 마나하트가 원활하지 않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실력과 감각 자체가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코앞까지 다가와 그녀의 목에 손을 댈 때까지 알지 못했다.
‘괴물이 한 마리 있다더니. 진짜 괴물이네.’
율리아가 혀를 내둘렀다. 은근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왔다.
“···무척이나 빠르시네요.”
“죄수들을 관리할 때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진짜로 29개에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나?”
“씨앗에는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건데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는 거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들까지 이야기 해줄 생각은 없는데.”
“저는 순순히 다 이야기해드렸잖아요.”
“너도 왜 씨앗을 나로 하여금 심게 했는지는 말하지 않았잖아.”
폐부를 찌르는 말에도 율리아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가 짐작하고 있을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
바람이 분다.
나무가 흔들린다.
나뭇잎이 떨어진다.
새들이 날아오른다.
마나가 휘몰아친다.
김우진과 율리아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연옥 방향이었다.
청명함과 산뜻함에 율리아가 경악했다.
“세계수, 맙소사. 설마?”
대답은 김우진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드드드드-
연옥과 늪지와의 거리는 꽤나 멀었다. 그럼에도 아주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범인을 초월한 인간과 하이엘프의 눈에 연옥 위로 피어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이게 되네?”
그건 나무였다. 무척이나 흐릿하고 작지만 분명히 나무였다.
그리고 이 정도의 파동, 이 정도의 거리에서 보일만한 나무는 하나뿐이었다.
“어떻게 고작 두 달 만에···.”
29개면 그럴 만 할지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반적으로는 못해도 10년···. 거기다 발아하자마자 저런 과생장은···.
율리아가 혼란을 느꼈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거의 평생을 세계수와 함께해왔으면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동시에 순수한 호기심이 일었다.
김우진이 씨앗에 무슨 짓을 했는지, 저렇게 자라난 세계수에 별다른 문제는 없는지.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서 세계수를 확인하고 싶다.
그것은 하이엘프로서 가지는 갈망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쿵쿵 거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세계수의 발아와는 완전히 달랐다.
무언가 오고 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는 곧 알 수 있었다.
“타르스크가···!”
김우진과 함께 여기까지 온 목적. 과연 이레귤러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타르스크가는 보통 5m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놈의 크기는 10m에 육박했다. 다리는 10개였고 꼬리는 세 개였다.
느껴지는 광폭함과 기세는 거의 드래곤에 필적했다.
놈의 눈에 깃든 광기를, 율리아는 눈치 챘다. 피 냄새다. 그녀가 죽인 바실리스크의 피 냄새를 맡고 여기까지 달려온 거다.
율리아는 아무리 소장이라도 쉽게 상대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네놈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어.”
하지만 그녀가 무어라 하기도 전, 김우진이 그녀를 밀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율리아는 김우진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가 주먹을 쥐었다. 화륵, 붉은 빛의 화염이 넘실거렸다.
달려오는 타르스크가를 향해 마주 주먹을 뻗는 건 일견 미련해보였다.
────!
찢어질 듯한 굉음에 율리아가 귀를 막았다. 열기에 몇 걸음 물러났다.
미련한 건 타르스크가였다. 타르스크가의 거구가 일개 인간에게 밀려 허공에 붕 떠 있었다.
타오르는 염화는 순식간에 비늘을 집어 삼켰고 놈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위로.
김우진의 주먹이 다시 한 번 떨어졌다.
“···미쳤어.”
그 전율적인 광경에 하이엘프의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세계수에 대한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 * *
세계수가 일반적인 나무와 다르다는 걸 김우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마나가 풍부한 지역이나, 영약을 주입하면 생장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래서 영약을 넣었다.
무려 스물 아홉 개. 하나만 떨어져도 그것을 갖기 위해 전쟁이 일어날 수준의 영약들을 스물 아홉 개나 넣었다.
그저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우람하게 자라나기를 바라서.
그 영약을 준 것을 생색내며 세계수의 호감을 조금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또 인정한다.
세계수가 연옥의 랜드마크가 되면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씨발, 이게 뭐야.”
한 순간에 건물을 타고 올라가 집어 삼키는 건 결코 바란 적 없었다.
거대한 나무가 연옥의 벽면을 타고 옥상 위로 우뚝 솟아나 있었다.
연옥의 일부가 무너졌음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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