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8화 (8/150)

# < 007. 같잖은 수 >

죄수들을 관리하는 교도관. 그리고 교도관을 관리하는 교도소장.

교도소가 원활히 돌아가게 하는 것. 그게 소장의 본질적인 업무다.

지구였다면 교도소의 평판을 생각해 외부 활동이나 압력 같은 것을 추가적으로 신경 써야 하겠지만 적어도 연옥에서는 아니었다.

그저 보다 많은 죄수를 비교적 무사히 출소시키기만 한다면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거기에 추가하자면 몇 가지 납품할 것들을 잘 납품하기만 하면 된다.

“오셨습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순찰.

김우진은 감옥 밖으로 나갔다. 천천히 그가 만들어놓은 광경을 구경했다.

모든 편의시설과 죄수들을 감금하기 위한 감옥이 존재하는 한 채의 건물. 그곳을 중심으로 정원이 펼쳐져 있다.

원예반을 통해 가꾸고 관리되는 정원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럽다.

정원을 가로지르는 잘 깔린 길을 지나면 비닐하우스 같은 가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드넓은 정원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수많은 식물들을 기르는 식물원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수많은 식물들이 펼쳐져 있었다. 간수와 죄수들이 보였다.

“얌전히 좀 있으라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한 죄수의 머리에 시커먼 독을 뿌리는 식물은 알트미히라는 식인식물이다. 인간과 동물은 물론 몬스터까지 잡아먹는 흉악한 놈. 놈의 독은 모든 것을 부식시키는 지독한 산성이다.

“이쪽은 제압했습니다!”

“그럼 바로 안정제 투입시켜!”

“그러니까 제때 비료 주라고 했잖아! 밥을 늦게 주니까 배고파서 이 지랄이 난 거 아니야!”

수십 개의 줄기를 뻗어 죄수들을 제압하려고 하는 식물은 아르니카. 마찬가지로 생명체를 잡아먹는 식인 식물이다.

언제나와 같은 평화로운 모습에 김우진은 굳이 자신이 왔음을 알리지 않았다.

식물원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주변에는 마력 결계가 쳐져 있어 식물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

한참 후, 모든 소동이 종료 되었다. 교도관과 죄수들은 그제야 소장이 왔음을 알아차렸다.

“소, 소장님!”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전에. 커피 한 잔 줘.”

“예.”

교도관이 아이스 커피를 타왔다. 죄수들이 김우진의 앞에 일렬로 섰다.

“영약 수확은 예정대로 되고 있나?”

“예. 11종류의 영약이 각각 하나씩 수확되었습니다.”

“다행이군.”

영약은 기르기도 수확하기도 까다롭고 힘들다. 하지만 윗놈들의 요구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고 영약의 수확량을 맞추는 것은 언제나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아슬아슬하군. 10개만 추리고 나머지는 저장고에 넣어놔. 저장고에 들어가는 건 가장 훌륭한 놈으로.”

“예.”

“사료 공급은?”

“문제없습니다.”

“다른 특이사항 있나?”

“설명초가 죽었습니다.”

“몇 뿌리나?”

“네 뿌리가···.”

“하나 남았군. 이유는?”

“온도입니다. 두 개는 얼었고 두 개는 말라 죽었습니다.”

설명초는 극한의 설원에서 자생하는 식물이었다. 추운 곳에서 살아가는 주제에 너무 추우면 얼고 조금이라도 온도가 높으면 말라 죽는다.

구하기 어렵고 키우기는 더 까다로운 놈. 그럼에도 유명한 건 만개한 설명초의 열매가 꽤나 정순한 영약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나는?”

“일단은 살아 있습니다. 온도를 찾은 것 같기도 하지만 미세하게 조금씩 변하는 놈인지라···.”

“계속 지켜봐. 씨앗을 몇 개 더 구해줄테니.”

“예.”

“더 없나?”

“더 이상은 없···아, 하나 있습니다.”

“만드라고라! 만드라고라가 싹을 피웠습니다.”

회색빛 귀를 가진 수인족이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그의 안내에 따라 식물원 심처로 들어가자 검은색의 흑토 위로 자그마한 싹 한 개가 올라와 있었다.

주변에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수십개의 마법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진짜네?”

만드라고라는 식물이라기보다는 마물이다. 하지만 그 뿌리가 가지는 효용은 어지간한 영약들을 모조리 씹어먹는다.

“이걸 어떻게 길러냈지?”

김우진이 찬찬히 열 명의 죄수들을 훑었다. 키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 있다. 동물의 귀가 나 있다는 것.

저들은 모두 수인이다. 큰 이유는 아니다.

엘프에게 나무를 벌목하게 만들었듯, 수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식물을 맡긴 것이다.

처음에는 온갖 사고를 치고 난장판을 만들어놓았던 그들이 지금은 어느 차원에서나 영약으로 친다는, 엘프도 피워내기 어렵다는 만드라고라를 피워냈다.

연옥이 아니라면 보기 힘든 진귀한 광경.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면 세계수를 맡겨도···.’

물론 세계수는 김우진이 직접 관리할 거다. 하지만 24시간 모든 정신을 쏟을 수는 없었고 틈틈이 그를 대신해 잘 관리해줄 자가 필요했다.

씨앗을 준 당사자에게 맡기는 게 베스트겠지만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에 믿을 수 없었다.

물론 죄수들 중에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자란 존재하지 않다. 그저 파악이 된 자와 덜 파악이 된 자로 나누어질 뿐.

연옥이라는 감옥이 상실과 탈옥. 오직 두 가지의 선택지만 제공하는 한, 언제나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섣불리 수인족에게 세계수의 씨앗을 맡기는 건 무리가 있어.’

아직은 더 신중해야 할 일이다.

식물원을 한 바퀴 돌며 마저 확인한 김우진이 밖으로 나왔다. 가볍게 발을 구르자 몸이 높이 떠올랐다.

감옥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앙의 감옥, 주변으로 넓은 정원, 그 내부에 존재하는 식물원과 도축장, 숲과 호수, 여러 풍취들. 그리고 정원을 감싸고 있는 낮은 담과 그 너머의 광활한 대지.

산이, 설원이, 숲이, 사막이, 바다가 펼쳐진 땅은 마치 행성 하나를 축소해 놓은 것과 같았다.

“숲에 심는 게 낫겠지.”

세계수는 다른 나무들과 어우러져 있을 때 그 진정한 힘과 아름다움을 발한다. 숲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세계수는 쉽게 상상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그냥 심을 수는 없다.

김우진은 세계수에 대해 무지하지는 않지만 많은 걸 알지도 못했다.

특히, 씨앗을 보는 건 처음이었고 세계수가 자라나면서 어떤 게 필요한지도 미지수였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역시 전문가다.

* * *

“세계수는 숲에다 심으면 안 돼요.”

개인면담은 죄수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닌 소장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면 숲이 모조리 말라비틀어질 거예요. 그건 끔찍하기 그지없는 일이죠.”

세계수가 싹을 피우는데는 막대한 마나가 필요하다. 자연스레 씨앗이 발아하면서 주변의 마나를 모조리 빨아들인다.

숲과 산이라면 나무들이 생명력을 잃고, 호수라면 물이 모두 마른다.

“그러면?”

“그래서 사막이나 황무지에 씨앗을 심는 게 일반적이에요.”

율리아의 말에 김우진이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세계수는 언제나 숲의 중심에 있지 않았어?”

“순서가 잘못 됐어요. 숲에 세계수를 심은 게 아니라 세계수가 성장한 뒤, 숲을 만든 거예요.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는 생명력을 주변으로 퍼트리거든요.”

“그렇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의 생각을 변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럼 숲 중앙에 심는 걸로.”

“제 말 이해하신 것 맞죠?”

“결국엔 다시 자라난다는 거잖아. 시간이 걸릴 뿐이지.”

나무들이 모조리 죽겠지만 다시 자라나면 결국 똑같다.

“하지만 굳이 나무들을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하이엘프에게는 아니겠지만.

“다른 방법이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양분으로 삼을 마나가 필요할 뿐이에요. 부족하다면 보충해주면 되죠. 굳이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지 않아도 될 만큼.”

김우진은 율리아의 말뜻을 이해했다.

“싫어.”

그래서 거부했다.

“아까운 영약을 이런 곳에 쓸 수는 없지.”

영약을 키우는 건 어렵다. 굳이 구태여 수인들에게 그 역할을 맡겼기에 더 그렇다.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하나가 아쉬운 상황. 굳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를 영약으로 해결해줄 용의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포기가 빠르군.”

“이미 마음을 굳히셨는데 제가 억지를 부린다고 들어주시진 않을 거잖아요?”

정확히 봤다.

김우진은 율리아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둘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전 출소할 마음도 없고요.”

만약 격하게 달라붙는다면 출소를 거래 조건으로 삼으려고 하기도 했고.

“세계수를 심을 때 주의해야할 점 같은 게 있나?”

“아까 말씀드린 것만 조심하면 되요. 마나를 빨아들이는 것. 예외는 없어요.”

“참고하지.”

아, 한 가지 더.

“왜 순순히 다 대답해주지?”

“하이엘프니까요.”

그녀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어머니 나무의 씨앗을 넘기긴 했지만 어머니 나무가 무탈하게 싹을 피우고 자라나기를 바라니까요.”

“세계수의 씨앗을 거래의 대가로 넘긴 것부터가 하이엘프 실격 아닌가?”

“어머니 나무께서도 그 정도는 이해해주실 거예요.”

하이엘프는 뻔뻔한 게 종특인가.

김우진은 이전에 만났던 하이엘프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없었다.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들만을 무성하게 들었을 뿐 하이엘프를 직접 보는 건 율리아가 처음이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소지가 되고 싶었을 뿐이에요.”

“탈옥이 아니라?”

“말씀드렸잖아요. 연옥의 죄수들 중, 탈옥을 원치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고.”

“세계수의 씨앗에 이상한 짓을 해놓은 건가?”

“어머니 나무의 씨앗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해요. 그걸 건드릴 수 있는 존재는 아마 없을 걸요. 어머니 나무께 맹세해요. 그 씨앗에는 어떠한 손길도 가미 되지 않았어요.”

엘프들의 맹세는 믿을 수 있었다. 여전히 꺼림칙했지만 김우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정 고마우시면 원예반으로 보내주시는 게 어때요?”

“끌고 가.”

율리아가 사라졌다.

“교도관 한 명 더 붙여.”

“예.”

“···잠깐만.”

그리고 한 가지 생각이 김우진의 뇌리를 스쳤다.

“애초에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면?”

세계수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소지는 그저 더 중요한 것을 감추기 위한 연막에 불과하다면?

“···말이 돼.”

세계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대하다.

세계수가 품고 있는 힘은 무궁무진하다. 그 나무가 연옥에 뿌리를 내리고 제대로 가지를 뻗는다면.

어쩌면.

“감옥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혼란을 틈타 탈옥을 한다? 세계수의 조력을 받는 하이엘프라면 불가능은 아닐 거다.

아무리 김우진이 막는다고 하더라도 세계수와 하이엘프의 조합의 끝이 어딘지 짐작할 수조차 없으니.

“하, 같잖은 수를 쓰시겠다.”

김우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2징벌방은 분명히 힘들었다. 초반에는 특히 그랬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익숙해졌다.

본디 고통이라는 게 그렇다. 처음에는 죽을 듯이 아프다가도 계속되면 인간의 육신은 결국 적응하고 만다.

때문에 강민식은 자신의 말이 그렇게 파란을 불러일으킬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게 결코 나쁜 일은 아니었다.

특별한 사람은 어디서나 중심이 된다. 잘하면 이걸 빌미로 죄수들을 선동해 탈옥에 대한 의지를 불어 넣을 수도 있을 거다.

‘반드시 나간다. 반드시.’

평생 여기서 썩으라고? 그게 싫으면 개고생해서 얻은 힘을 전부 토해내라고?

그 따위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식사하세요.”

때마침 열린 배급구 사이로 들어오는 식판에 상념이 끊어졌다.

“어?”

하지만 그의 시선은 식판보다 그것을 내려놓는 손에, 귀는 목소리에 닿았다.

“···율리아?”

“맞아요.”

식판을 치우고 배급구로 고개를 내밀었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율리아가 배식 카트를 밀고 있었다.

“···어떻게?”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요.”

“맙소사.”

강민식은 어딘가 이상해보이던 동료 죄수가 더 없이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율리아가 작게 속삭였다.

“이대로 일단 연옥의 구조를 파악해볼게요.”

“네, 아, 잠시만요.”

그때, 교도관이 다가왔다.

“지금 뭐하는 거지? 배식을 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릴 필요가 있나?”

“죄송해요. 1177번이 자꾸 부족하다고 더 달라고 하네요.”

교도관이 수상쩍은 시선을 보냈지만 율리아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더 달라고 하면 더 주면 된다. 음식은 항상 충분하니까.”

“아, 그래도 되는 건가요? 몰랐어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새로운 식판에 음식을 가득 담아 배급구로 넣었다.

손이 다시 나왔을 때 자그마한 무언가가 들려 있었지만 손에 가려져 교도관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율리아는 몰랐지만 그건 카메라라고 불리는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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