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06. 대체재 >
감옥의 열흘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2징벌방에 들어간 당사자는 몰라도 바깥의 죄수들에게는 그랬다.
“더 이상 탈옥의 탈자도 꺼내지 못할 걸.”
“인간이잖아? 거기다 소장과 같은 지구인 출신. 거기 출신들은 대체로 허약해.”
2징벌방이 가지는 의미를 아는 죄수들은 강민식이 180도 달라져서 나올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마침내 강민식이 나왔다.
“여기 아침 식사요.”
풍성한 샌드위치 하나가 배급구 위에 놓여지자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소지가 자리를 뜨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렸다.
“더, 더 줘.”
소지는 샌드위치 다섯 개에 탄산음료까지 하나 얹어주었다. 징벌방에 들어간 이들은 오직 고통만을 되뇌며 식음을 전폐 당한다. 열흘을 굶었으니 배고픈 건 당연하다.
샌드위치를 일곱 개까지 해치우고 나서야 강민식은 만족스러운 트림을 했다.
“1177번. 출역이다. 나와.”
식사 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언제나와 같은 환경 조성반으로의 출역.
“어땠나?”
“어땠나요?”
그리고 같은 죄수들의 물음이었다.
“끔찍했습니다.”
고통은 손과 발을 가리지 않았다. 외부와 내부를 가리지도 않았다.
“제 몸이 제 몸인지도, 멀쩡히 남아있는지도 모르겠고 도저히 끝이 보이지도 않고···.”
사각이 없는 완전한 고통.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흐려지는 감각까지. 지옥, 그 자체였다.
“그게 징벌방이네. 한계까지 죄수를 몰아붙이지. 그래서 죄수들 중 누구도 징벌방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네. 만만하게 보는 사람도 없지.”
어중간하면 그저 감당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생긴다. 그리고 연옥의 징벌방은 그런 죄수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 어중간함을 뛰어넘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탈옥을 포기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연옥의 죄수들에게 탈옥이 어떤의미인지 더 없이 잘 알기에.
그저 마음이 조금 꺾여 신중하게 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그의 무분별한 행동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지만 않으면 된다.
허나 강민식의 대답은 그의 바람과는 달랐다.
“고작 그 정도에 저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고작이라고···?”
“물론 징벌방은 괴로웠습니다. 2말고 3도 있는 걸 알았지요.”
하지만.
“솔직히 할만 했습니다.”
“할만 했다고···?”
데르카인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는 징벌방에 다녀온 이를 수도 없이 봐왔다. 견디지 못하고 정신이 붕괴하는 이도, 잘 견뎌내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곳이라고 말하지, 할만 하다고 하는 자는 없었다.
그 스스로 조차도.
시간이 흐려지고, 모든 감각이 차단된 상태에서 오직 통증만이 극대화된 것은 단순히 아프다는 것 이상의 고통이었다.
“2징벌방이라는 곳은 할만한 곳인가 보네요.”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돼는 소린가! 징벌방은 결코 할 만한 곳이 아니야!”
“다들 떨어지지 못해!”
교도관이 난입한 뒤에야 소란이 멈췄다. 데르카인이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입을 가렸지만 이미 주변의 시선은 모두 이쪽으로 향해 있었다.
* * *
탁-
탁-
김우진이 야구공만한 작은 구체를 던지고 받기를 반복했다.
그것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복합적인 색감의 융합이었다. 마치 색들을 모조리 뒤섞어 버린 듯한, 하지만 완전히 섞이지 않은 듯한.
율리아 카르센이라는 하이엘프에게 거래의 대가로 받은 세계수의 씨앗이었다.
세계수. 세계를 지탱하는 나무. 신목이라 불리는 나무.
품은 마나는 더 없이 정순하고 묵직하다. 그렇기에 진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세계수는 엘프들에게 있어 신과 같다. 어머니 나무라는 호칭에서부터 경외와 존경의 마음이 가득 드러난다.
그런데 그런 세계수의 씨앗을 거래의 대가로 넘겼다.
엘프들의 귀족이라는 하이엘프가 직접.
“어떻게 생각해?”
“그걸 어떻게 반입해왔는지부터···.”
“숨겨둔 한 수가 있다고 했으니 어떻게든 해왔겠지. 그러니까 거래를 하자고 했고 지금 내 손에 있지.”
하이엘프는 우주의 수많은 종족들 중에서도 특출난 자들이다. 한 수가 있다는 율리아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닐 것이다.
굳이 그 부분을 파고들 필요는 없다.
“씨앗에 특별한 장치를 해놓은 건···?”
“내가 씨앗의 중심까지 모든 것을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해를 끼칠만한 요소는 없어.”
“어쩌면 정말로 제대로 된 탈옥 계획이 있는 것 아닙니까?”
“연옥에서 말이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1178번이 세계수의 씨앗을 건넬 필요가···.”
“그게 있어도 건네면 안 되지. 그게 하이엘프고, 세계수지.”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세계수가 엘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하이엘프에게는 또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에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작 탈옥을 위해서 세계수를?”
연옥의 탈옥은 고작이 아니다. 하지만 탈옥을 시켜준다는 것도 아니고 소지라는 직책 하나를 맡는 것뿐이다.
그 희박한 가능성에 세계수의 씨앗을 태운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그렇다면 더 큰 무언가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이엘프에게 세계수보다 중요한 게 있다? 그런 게 존재할 수 있나?”
“어쩌면 더 많은 세계수의 씨앗이라던가···.”
“···더 많은 세계수의 씨앗?”
번개가 내리치듯, 정신이 번쩍 맑아졌다.
“그래, 그거야.”
생각해보면 하이엘프라고 할지라도 세계수의 씨앗을 들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만약 세계수의 씨앗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던 중이었다면?
그리고 그게 세계수를 심는 역할이었다면? 그래서 보다 더 많은 세계수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면?
대를 위한 소의 희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수를 대체할 만한 건 세계수 밖에 없으니.
“···그냥 뇌피셜이지만.”
김우진이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도 그게 그나마 가장 현실성 있는 가능성이었다.
“보통은 용사 일을 마치고 모든 게 끝났다 생각할때 연옥으로 끌고 오지만 너무 커지면 중간에 강제로 끌고 오는 경우도 있으니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부소장이 김우진의 가정에 동의했다.
“진짜 탈옥이 목표일 수도 있으니까 유심히 살펴봐.”
“예. 근데 그렇게 수상하면 안 심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아니, 심어야 해. 잘만 되면 꽤나 즐거울 거야.”
“무슨 생각이십니까?”
“나중에 때가 되면 이야기 해주지. 근데 아까 뭐랬지?”
“죄수들 사이에서 강민식이 2징벌방을 우습게 안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고?”
“교도관이 들은 바로는 할 만하다 정도가 다였다고 합니다.”
데르카인의 격렬한 반응 덕분에 소문이 났다.
그리고 소문이란 본디 과장되고 와전되는 법이다.
“솔직히 놀랍네. 테스트긴 하지만 잠깐 해본 입장에서 나도 두 번은 경험해보기 싫은 걸 할 만하다고 했다고?”
모든 징벌방은 김우진이 직접 실험해보고 강도를 정했다. 상대가 용사들이기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강함의 유무가 아닌 엿 같음의 부류인지라 장난으로라도 할 만하다는 소리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텐데.
김우진이 강민식의 서류를 찾았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하지만 서류상으로는 특이점이 없었다.
“그냥 타고난 건가.”
가끔 있다. 한 가지 부분에서 특출나게 타고난 놈들이. 그런 놈들을 보통 천재라고 부른다.
“애초에 용사들은 전부 천재입니다.”
그리고 그 천재들 중에서도 선별한 것이 용사였다.
명검이라고 할지라도 어린 아이의 손에 들어가면 썩은 무 하나 벨 수 없는 것처럼, 용사의 힘이 부여되어도 쓰레기는 세상을 구할 수 없으니까.
“고통 인내는 거기서 더 한 걸음 나아가나 보지.”
“조치를 취할까요?”
“조치? 무슨 조치?”
“이대로 놔두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는 아는데 너무 앞서 나가지마.”
처음으로 징벌방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훼손시키는 자가 나타났다.
징벌이 징벌의 의미를 잃어버리면 징벌방의 존재 의의 또한 흐릿해진다.
부소장이 걱정하는 것은 그 부분이었다.
“그런 일은 안 생겨.”
하지만 너무 과하다.
징벌방이라는 시스템이 지금까지 빈틈을 보여주지 않아 놀라울 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한 죄수가 겪어보고 할 만하다고 했다. 그게 전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의외긴 하지만 다른 죄수들은 징벌방이 어떤 곳인 줄 알아. 강민식이 할 만하다고 했다고 다른 죄수들도 갑자기 그게 만만해보일까?”
“···그렇지는 않겠지요.”
“맞아. 안 그래.”
처음이라 그렇다. 처음으로 특이한 죄수가 나와서 조금 더 술렁일 뿐이다.
이게 계속 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잠깐의 해프닝, 그게 전부다.
“그놈 하는 짓 보니까 조만간 진짜 탈옥 도전이라도 하겠던데.”
그러면 자연스럽게 벌을 받는다. 징벌방에 갇힌다.
“두 번째는 만만하다고 했으니 이번에는 세 번째에 쳐 넣어 볼까? 내기할래? 그때도 할 만하다고 할지. 나는 내 돈 모두하고 내 손모가지를 걸지. 너는 무엇을 걸래?”
“···안 합니다. 너무 뻔 한 결과 아닙니까.”
“그러니까.”
김우진이 다시 세계수의 씨앗을 던졌다.
“그래도 죄수들 관리에는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네. 새로운 죄수가 들어오면 언제나 싱숭생숭하니까.”
“예.”
인내심 좋은 인간 용사에 세계수의 씨앗을 넘긴 하이엘프.
고작 두 명의 죄수가 추가되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 * *
죄수번호 1176번. 베르너 레트만은 처음으로 또 다른 소지를 맞이했다.
“어떻게 한 겁니까?”
“뭐가요?”
“대체 어떻게 소지가 된 겁니까?”
이유가 뭘까.
현 소장이 소지 제도를 만든 건 8년 전, 베르너가 입소했을 때였고 오직 그 한 명만을 위한 제도였다.
그래서 한 번도 소지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거라고 여기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시에나 누님이 소지를 시켜달라고 그렇게 말하는데도 계속 거부하고 있기도 하고.
“시켜줘서 됐어요.”
“아니, 그건 당연한 거긴 합니다만.”
“하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시켜줬다는 겁니까?”
“아니면 여기서 이 조끼를 입고 있을 이유는 없겠죠?”
“아닌데. 분명히 뭔가 있는데.”
베르너가 추궁하듯 재차 물었지만 율리아는 말없이 눈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러는 베르너님은 어떻게 다시 나왔나요? 징벌방에 들어가신 것 아니었어요?”
“유일한 소지니 밥을 할 때는 나오라는···.”
‘혹시···?’
번개처럼 무언가 감이 왔다.
유일한 소지. 하지만 율리아가 소지가 되면서 그는 더 이상 유일하지 않게 되었다.
‘얼마 전에 먹인 독.’
그 일 때문에 소장이 그의 상상 이상으로 분노했다면?
그래서 그를 보다 원활히 징벌방에 쳐넣기 위해 대체재를 찾은 거라면?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억울했다.
소장에게도 말했다 시피 오히려 실험자는 자신이었다. 먼저 먹었고 여러 번의 연구를 거친 요리였다. 독의 그 톡 쏘는 맛은 매운맛보다도, 탄산보다도 깔끔하게 느끼함을 없애버리고 독특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애초에 소장을 독살할 생각이었다면 고작 크라켄의 독 따위를 쓰지도 않았을 거다. 이 세상에 소장을 독살할 만한 독이 있는냐가 더 큰 난제지만.
‘정말로?’
변덕이 심한 소장의 성격 상, 이번 일을 빌미로 절대 바꾸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정말로 이 여자를 그대로 소지로 삼고 나를 쳐내려고 한다고?’
베르너의 시선이 율리아를 훑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녀가 순진한 눈을 깜빡였다.
‘안 돼. 절대 안 돼.’
소지가 된 것부터가 소장의 변덕이었지만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자리였다.
온 차원에서 오는 식재료와 몬스터들을 연구하고, 조리할 수 있는 환경이 어디 흔하겠나. 그가 평생을 꿈꿔왔고 여전히 꿈꾸고 있는 이상향 같은 곳이었다.
감옥이라는 것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못해도 수백년은 여기서 더 썩고 싶었다.
하지만 소지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
‘소지 자리는 무조건 내 거야. 절대 못 줘.’
미약한 시기와 분노의 감정에 율리아의 고개가 돌아갔다. 눈이 마주치자 베르너가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소장,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다 생각이 있어. 내 요리가 없으면 하루도 못 사는 몸으로 만들어주겠어···.’
그가 전의를 다졌다.
“걱정마세요.”
“예?”
“저 요리 못해요. 칼질은 조금 하지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얼굴에 저를 경계하는 게 다 드러나서요.”
“···요리를 못한다면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소지의 목적이 요리인데 요리를 못하는 엘프를 왜 소지로?
‘혹시 엘프한테 흑심이 있어서?’
솔직히 예쁘긴 더럽게 예뻤다. 소장이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결국은 인간이니 그런 마음이 든 게 아닐까?
“그것도 아니에요.”
“···그럼 대체 뭡니까?”
“소장님과의 비밀이라 이야기해드릴 수는 없어요.”
그렇다는데 더 캐물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여기 원예반도 있다면서요?”
“있습니다만, 꿈 깨세요.”
“왜요?”
“소장이 원예반에는 절대 엘프를 집어넣지 않습니다.”
엘프는 숲을 좋아한다. 식물을 사랑한다. 식물을 기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숲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고 식물을 기르며 행복을 얻는다.
“그걸 순순히 하게 해줄 리가 없잖아요. 출소하라고 해도 안하는데.”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런데 당신은요? 요리가 좋다면서요.”
“저야 대체재가 없으니까 그런 거고.”
“아하, 대체재의 문제군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저를 대체할 만한 사람도 없거든요.”
“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제가 있는데.”
“아, 실수에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수상했지만 율리아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엘프가 아니더라도 당신은 안 돼요.”
“그건 또 왜요?”
“소지가 됐잖아요? 소지는 출역에서 제외됩니다.”
“그래도 대체재가 없으니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에요?”
“아뇨, 아무것도.”
율리아가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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