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5화 (5/150)

# < 004. 경고 >

연옥에서 수감되고 지내온 몇 주의 시간은 감옥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기에 충분했다.

무기력.

데르카인은 말했다.

연옥의 모든 죄수들은 탈옥을 시도해봤다고.

그럼에도 탈옥자는 없다. 모두 실패했고 반복된 실패는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탈옥? 그야 물론 하고 싶지. 그런데 가능할까?”

“글쎄, 의지는 좋다만 가능할까?”

“실패하고 징벌방에 들어갔다 와야 현실을 깨닫지.”

“아직 희망이 가득할 때긴 해.”

“뭐,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못할 것도 없긴 하구나.”

강민식의 탈옥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이유였다.

‘멍청이들.’

강민식은 스스로의 뇌리에 패배감과 무기력함을 각인시킨 죄수들을 비웃었다.

어차피 안 될 거라고? 그렇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건가?

몇 번 실패했다고?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이 감옥에는 어차피 미래가 없다.

탈옥하지 않으면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용사의 힘을 모조리 상실하거나, 감옥에서 죽거나.

두 가지 선택지보다는 고난이 있어도 도전해보는 게 맞지 않겠나. 그게 백 번이든, 천 번이든.

“방법은 있고요?”

때마침 새로 들어온 죄수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비록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엘프였으나 흥미를 보였다는 것 자체가, 다른 죄수들처럼 패배감에 찌들어 있지 않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강민식이 배급구로 고개를 내밀었다. 여전히 교도관들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속삭였다.

“아직까지 확실한 방법은 없습니다.”

“해결책도 없는 공허한 망상이군요?”

“그렇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건 그냥 시체입니다.”

“그것도 그렇네요.”

엘프가 순순히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일단은 정보를 수집해야 합니다.”

“정보라면?”

“이 감옥의 구조나 교도관들의 일과 시간표,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것을 비롯한 모든 것.”

“확실히, 그건 중요한 부분이죠.”

“두 가지가 있습니다. 교도관에게서 얻어내거나, 죄수들에게서 얻어내거나. 전 둘 다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죄수들이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해도 연옥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죄수들은 연옥의 많은 부분을 알 기회가 없었다.

“교도관이 순순히 털어 놓을까요?”

“그러니 협박을 해야지요. 아무리 소장에게 충성하더라도 살고 싶다면 사소한 것 하나라도 털어놓을 겁니다.”

그 대가로 징벌방에 가겠지만 대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소지라는 사람은요? 우리와 같은 사람이면서 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해봤습니다만, 씨알도 안 먹힙니다. 그놈은 소장의 끄나풀입니다. 오히려 교도소가 좋다고 노래를 부르는 놈인지라.”

그래도 죄수끼리의 정은 있는지 탈옥 계획을 소장에게 이야기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 직접 소지가 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소지는 여러 가지 잡무를 해야하긴 하지만 죄수들 중 유일하게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자유와 넓은 운신의 폭을 보장받는 직책. 확실히 구미가 당겼다.

하지만 그것 또한 쉽지는 않았다.

“소장이 들어오고 20년 동안 소지로 임명 된 게 지금의 소지 하나라더군요. 그것도 요리 때문에. 소장이 굳이 새로운 소지를 뽑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다고 포기하면 되나요.”

목소리만 들리지만 강민식은 그녀가 웃고 있다고 느꼈다.

“뽑을 이유가 없다면 만들어주면 그만이죠.”

* * *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죄수번호 1177번이 또 다시 난동을 부렸습니다. 교도관의 멱살을 잡고 감옥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고 합니다.”

“탈옥이 하고 싶어 미치겠는 모양이군.”

김우진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감옥이란 인간의 자유를 강제로 억압하는 곳.

감옥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없으며, 감옥을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죄수는 없다.

강민식의 성격 상, 지금에서야 교도관에게 시비를 건 것이라면 오히려 오래 참은 거다.

“임의대로 일단 첫 번째 징벌방에 넣었습니다만.”

“그걸로는 부족하지.”

탈옥은 옳지 않다. 적어도 그가 소장으로 근무하는 한, 연옥에서의 탈옥은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무슨 일이 있어도 저들이 탈옥하지는 못하겠지만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는 법이다.

처음부터 제대로 잡지 않으면 점점 대범해진다.

“교도관 폭행, 스파이 명목으로 벌점 10만점 주고 두 번째 징벌방에 쳐 넣어. 아, 그 전에 오전 정신교육은 그대로 진행하고.”

김우진이 소매를 접었다. 삐뚤어진 넥타이를 바로 했다.

“모자 줘.”

교도관이 건네주는 모자를 썼다.

“오늘 정신교육은 내가 들어간다.”

* * *

연옥의 정신교육은 매체를 접하는 시간이다.

북한에서 남한의 드라마를 보고 남한을 선망하는 탈북민들이 생기는 것에서 김우진이 착안해낸 것으로 바깥을 그리워하는 죄수들에게 바깥을 보여주는 거다.

여러 차원의 생활을, 매체들을, 문명의 이기를.

그들은 누릴 수 없기에, 눈앞에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나갈 수 있기에 더욱 간절한 것들을 보여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명확하게 모른다.

김우진이 소장을 맡고 출소시킨 이들이 몇 있었지만 콕 찝어 한 가지라고 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이유였으니까.

그렇다고 아예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거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한 번 경고를 받고 징벌방을 경험한 강민식이 또 다시 사고를 쳤다는 것. 탈옥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는 것.

그는 감옥의 소장이었고 탈옥자는 온전히 그의 책임이었다. 그에게는 완벽하게 감옥을 관리할 책임이 있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귀찮음을 덜기 위해서라도.

딸각-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얌전히 앉아 정신교육을 기다리던 죄수들의 눈이 커졌다.

“반갑습니다, 죄수 여러분. 모두 아시다시피 저는 연옥의 소장, 김우진입니다.”

고개를 숙이진 않았다. 모자를 벗어 단상 위에 올려놓았다. 담담히 죄수들을 훑었다.

흥미로움, 당황, 의아함. 죄수들마다 색다른 감정들이 느껴진다.

“오늘은 탈옥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그 주제가 뜬금없다고 생각하는 죄수는 없었다.

감옥은 넓으나 죄수는 적다. 강민식이 벌인 일을 지금까지 모르는 죄수는 없었다.

김우진이 손가락을 튕겼다. 마법 상영구가 마나를 받아들이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건 9년 전, 있었던 탈옥 사건입니다. 이 죄수는 2단계 징벌방 이주일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수인 하나가 복도를 달렸다. 하지만 곧 교도관들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았다.

“11년 전. 이 죄수는 3단계 징벌방에서 일주일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 죄수는 인간이었다. 그는 감옥 밖까지 나왔다. 하지만 사막에서 길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 곧 교도관들의 손에 끌려갔다.

“이건 15년 전. 징계는 3단계 일주일.”

숲을 헤매던 죄수가 몬스터 무리를 만났다. 그녀는 분전했으나 구속구로 인해 제약된 육신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잡아먹히기 직전, 교도관들이 그녀를 구출했다.

“그리고 이건.”

화면이 바뀌었다.

그건 전장이었다.

대지가 불타고.

하늘이 잿빛으로 물들었으며.

폭음과 비명이 난무했다.

죄수들이 보였다.

‘데르카인.’

강민식에게 조언을 해주던 난쟁이도.

‘시에나.’

고혹적인 엘프도.

‘대부분 낯이 익어.’

이 자리에 있는 거의 모든 죄수들이 있었다. 무슨 일인지 구속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본신의 힘을 되찾은 용사들은 모든 교도관들과 몬스터들을 쓰러트리며 전진했다. 그리고 소장이 그 앞을 막아섰다.

“20년 전, 대규모 탈옥 사태 때의 일입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영상 속의 죄수들은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폭발시켰다.

그 능숙함과 파괴력은 강민식이 감탄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단 한 사람을 향해 쏟아졌다.

‘저건 죽을 수밖에 없어.’

막을 수 없다. 강민식은 확신했다. 그래서 괴리감이 생겼다. 그렇다면 지금 멀쩡히 앞에서 떠드는 소장은 뭘까.

폭발이 일어났다. 모든 것이 뒤섞인 검은 빛이 세상을 집어 삼켰다. 그리고 그 빛이 걷혔을 때.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소장은 살아있었다.

모든 죄수들을 짓밟은 채로.

“···미친.”

강민식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입을 막았다. 하지만 김우진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

소름이 돋았다. 고양이 앞의 쥐처럼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단순히 구속구로 인해 육신이 제약 당해서일까? 방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지금은 의문이 들었다.

“이때는 징계가 따로 없었습니다. 본 소장이 막 전입 온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혼란스럽던 때거든요.”

소장의 나직한 목소리가 강민식의 귀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운은 한 번으로 족하니.”

명백한 경고였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말라는 경고.

“제가 살던 지구에서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과거를 잊은 탈옥수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알아서 잘 처신하시기 바랍니다, 나직한 중얼거림이 울려 퍼진다.

“오늘 정신교육은 여기서 끝입니다.”

김우진이 다시 모자를 쓰고 나갔다.

무거운 침묵이 강의실 전체를 내리 깔았다.

* * *

“···뭡니까, 그 영상은? 조작이죠?”

“그렇게 믿고 싶은 건가?”

데르카인의 대꾸에 강민식이 할 말을 잃어버렸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용사들을 관리하는 감옥의 소장이, 그 용사들보다 약하다면 그게 문제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

“애초에 처음 들어왔을 때, 상담실에서 한 번 봤을 텐데.”

“그것도 그렇지만···.”

설마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보다 강한 것은 알았다. 이길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인정했다.

하지만 다른 죄수들과 함께라면 가능하리라고 여겼다. 구속구만 푼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죄수복을 입고 감옥에 갇혀 있지만 모두 용사 아닌가. 한 차원을 구한 영웅.

“뭐, 저 때는 여러 사정이 있어서 모두 지친 상태였네. 만전은 아니었지. 지금 다시 붙는다면 저렇게까지 허무하게 당하지 않을 자신도 있고.”

“역시!”

“그걸 감안하더라도 소장이 괴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말이네.”

“······.”

“이제 좀 이해하겠나?”

데르카인이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어째서 죄수들이 탈옥에 의지가 없는지.”

“하지만 그럴 거면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출소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이건 그냥 산송장 아닙니까?”

“알고 있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그냥 감옥에서 썩으며 그대로 죽을 거라는 걸.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먹은 대로 쉽게 포기가 되면 그걸 미련이라고 부르겠나?”

“······.”

강민식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탈옥할 것 아닌가요?”

옆옆 방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율리아였다.

“그거야 당연한 소리지. 패배감에 찌들어 있다고 해서 희망 자체를 버린 건 아니네. 확실하게 나갈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다시 도전하지 못할 것도 없지.”

“그렇다네요.”

“하지만.”

데르카인이 율리아의 말을 끊었다.

“이런 식으로 무분별하게 일을 벌이는 건 멍청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네.”

“제가 무분별하다는 말입니까?”

“그럼 무작정 교도관의 멱살을 잡는 게 옳다고 보는가?”

“그렇게라도 한걸음씩 나아가려는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패배감에 찌들어 있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으니···!”

그때, 희미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교도관 하나가 강민식의 방 앞에 섰다.

“죄수번호 1177번. 교도관 폭행 및 스파이 행위로 인한 벌점 10만점이다. 따라서 제 2 징벌방 열흘이다.”

“뭐? 그게 무슨···!”

철컥-

배급구가 닫혔다. 강민식의 목소리는 더 이상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임무를 마친 교도관이 사라졌다.

“2 징벌방이 뭔가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것.”

쯧, 저기서 나오면 좀 얌전해지겠지. 데르카인이 혀를 차며 배급구를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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