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03. 장생종 >
오늘의 아침이 밝았다.
김우진은 죄수들의 신상명세와 일정표를 뒤적였다.
“1177번도 출역 내보내. 나갈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지.”
힘들고 의미 없어 보이는 출역의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김우진의 변덕과 기분 전환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너무 힘들어 이 감옥을 벗어나고 싶게 하기 위해서.
김우진의 목적은 결국 보다 많은 죄수들을 정상적으로 출소 시키는 것이기에.
“어디로 내보낼까요?”
“당연히 환경조성반이지.”
출역은 세 가지가 있다.
식물을 기르고 관리하는 원예반.
동물을 기르고 관리하며 도축까지 하는 축사장.
그리고 김우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환경을 뒤집어 새로 조성하는 환경조성반까지.
가장 무식하고 힘든 건 당연히 환경조성반이다. 모두 한가락 하던 용사인 만큼 본래의 상태라면 쉽지만 마력을 제어하고 육체의 힘도 조금 약화시켜 놓은 상태니까.
“1177번은 아마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교화가 가장 어려운 게 엘프를 비롯한 장생종이라면, 반대로 교화가 가장 쉬운 건 짧은 생을 살아가는 인간이다.
특히, 첨단 문명의 혜택을 받다가 그렇지 않은 차원으로 간 인간들이라면 더욱 더.
지구에서 중세에 가까운 세계로 문명이 너프되어 버리면 누리던 혜택이 모두 사라진다. 대단한 것부터 사소한 것까지.
들어온 자리는 몰라도 나간 자리는 안 다는 게 인간이다. 그들이 느끼는 박탈감과 공허함은 다른 용사들보다 크고 깊었다.
그 인내의 시간을 버티고 버티다 모든 것을 해결하고 마침내 지구로 돌아가 스마트폰을 비롯한 온갖 문명의 혜택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어떨까?
그 허탈함과 갈망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거기에 옆에 수십 년씩 나가지 못한 죄수들까지 있다면? 아무리 용사로서 수명이 길어졌다고 해도 그들에게 년 단위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그들이 살아온 시간이 짧기에.
“일단은 한 번 나가 볼까.”
“굳이 직접 보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없지. 그냥 변덕이다. 일주일 뒤에 시간이 썩어나는 놈들이 들어오니 한 놈이라도 더 빨리 내보내고 싶어서.”
보다 많은 죄수를 출소시키고 싶은 그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손님.
“그런 놈들 때문에 답답해서 복창이 터져 죽지 않으려면 그 전에 한 놈이라도 보내버려야지.”
때마침 들어온 죄수가 지구인이라는 건 꽤나 매력적인 요소였다.
이 감옥에 며칠 전 들어온 강민식을 제외한 지구인이 없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
* * *
김우진은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
감옥을 둘러싼 비교적 낮은 담을 가볍게 뛰어넘고 숲으로 나아간다.
이번에 갈아엎을 구역은 숲이다. 교도소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빽빽한 수림 아래 여러 동물들이 살아가는 그런 곳이다.
“오셨습니까, 소장님.”
숲에 도착하니 도끼를 가지고 나무를 벌목하는 죄수들이 보였다. 간수 하나가 김우진을 발견하고 경례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일들 봐.”
“예.”
김우진은 함께 온 교도관이 가지고 온 썬배드에 반쯤 누웠다. 썬글라스를 끼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구경났나?”
황당해하는 강민식과 눈이 마주쳤다. 강민식이 재빠르게 시선을 회피했다. 다른 죄수들은 익숙하게 그를 무시하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놈이 대체 뭐하는 겁니까?”
강민식이 함께 출역을 나온 난쟁이, 데르카인에게 물었다.
“자네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그러는 거네. 열 받으면 출소하라 이거지.”
“악질이군요. 그런데 벌목은 왜 하는 겁니까?”
“숲을 갈아엎어서 새로운 걸 만들 생각이네.”
“죄수가 봉이군요. 애초에 제대로 된 죄도 아닌데. 건물이라도 세우는 겁니까?”
“아니, 그냥 또 다른 숲을 만들겠지. 땅을 파고 식물을 새로 심는 것도 다 우리가 해야 하네. 더럽게 힘들지.”
“···그런 무의미한 짓을 왜?”
“그래야 우리가 더 힘들 것 아닌가.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고 그러면 결국 꺾이기 마련이니까.”
“···하.”
강민식이 헛웃음을 지었다. 대놓고 저 따위 짓을 하니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누가 뜻대로 해줄 줄 안답니까?”
“꽤 효과적이긴 하네. 특히 자네 같은 인간들에게는 더욱 더.”
“왜죠?”
“수명이 짧으니까. 몇 십 년 동안 이 짓을 계속한다고 생각해보게.”
“용사가 되면서 일반적인 인간의 한계를 넘었습니다.”
“그럼에도 자네에게 10년이란 시간은 꽤나 길거야. 그렇지?”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살아온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네. 자네 나이를 정확히 모르나 많아야 40이 안 됐겠지. 40을 살아온 자들의 10년과 수백 년을 살아온 자들의 10년이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부정할 수 없겠군요.”
“하물며 그게 끝도 아니지. 기약이 없네. 스스로 출소를 택하지 않는 이상.”
“······.”
강민식은 데르카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탈옥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1177번. 누가 일과 중에 잡담 하라고 했지?”
고개를 들었다. 김우진은 여전히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으나 목소리는 분명히 그를 향해 있었다.
“1177번. 떠들지 말라고 했지, 도끼질을 멈추라고는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네를 집중관리할 모양이군. 고생하게.”
데르카인이 혀를 차며 거리를 벌렸다. 강민식은 김우진을 한 번 쏘아보고는 도끼질에 집중했다.
쿵-
무거웠다.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숨이 차고 땀이 난다. 근육이 파르르 떨린다.
구속구로 마력이 제어되고 육체의 힘 또한 일부 제한된다고 해도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육신이었다.
일반적인 도끼라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리가 없었다.
‘이것도 일부러···?’
무조건이다. 더 힘들라고, 무거운 놈으로 만들었겠지.
강민식이 빠득 이를 갈며 더욱 힘을 짜냈다. 그의 시선은 꾸준히 숲을, 그 너머를 살폈다.
어떻게든 탈출로를 찾기 위해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자가 있다는 것을 모른 채.
* * *
언제나처럼 일기를 쓰고 잠에 들었다 일어난 김우진은 우울함을 느꼈다.
오늘은 새로운 죄수가 들어오는 날이다.
엘프.
장생종의 일족답게 시간 개념이 인간이라는 차원이 다른 종족.
연옥 안에서 그가 만나온 모든 엘프들이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당연히 이번에 새로 들어오는 엘프도 그렇겠지. 빌어먹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인간 용사만 우르르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럼 소원이 없을 텐데.
“10시 50분입니다, 소장님.”
평소에는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어쩐 일로 빠르게 흘러갔다. 강민식은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었고 어느새 엘프가 들어오는 날이 되었다.
담배를 한 대 피고 있으니 호송부대가 죄수를 끌고 정문에 도착했다.
“이렇게 금방 만나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소장님.”
호송대장이 전혀 반가운 기색 없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가 여인을 내밀었다.
쇠사슬, 안대, 재갈, 구속구 등으로 전신이 포박된 은발의 여인은 엘프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뾰족한 귀를 가지고 있었다.
“설명이 필요하십니까?”
“아니.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그럼 서류만 주고 가.”
“인계 확인서에 서명 부탁드립니다.”
교도관들이 죄수를 인계 받았다. 낡아 빠진 종이에 사인을 했다. 고작 이주일 만에 다시 사인을 하는 건 또 처음이다.
“그럼 이만.”
“이렇게 자주 자주 죄수들을 보내주면 좋기는 한데 다음에는 인간으로 데리고 와.”
“이전 죄수가 인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가 말을 잘못했네. 인간‘만’ 데리고 와.”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죄수에 관한 부분은 제 재량이 아닙니다.”
그런 건 알고 있다. 그 또한 해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손을 흔들자 호송대장이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교도관들이 익숙하게 그녀를 상담실로 데리고 갔다.
안대를 풀고 재갈을 치웠다. 가려졌던 얼굴이 드러났다. 엘프가 천천히 눈을 떴다.
새하얀 피부는 백옥 같고 입술과 코는 또렷하고 오똑하다. 은빛 머리칼은 더 없이 윤이 나고 에메랄드 빛 눈동자에는 순수함이 엿보인다.
김우진이 호송대장에게 받은 서류를 뒤적였다.
“율리아 카르센, 맞나?”
“네.”
“대답이 빠르군?”
일반적으로 이 자리에 온 모든 용사들은 현실을 부정한다. 율리아와 같은 행동은 대수롭지 않지만 흔한 일도 아니었다.
“어려운 질문은 아니니까요.”
“종족은 엘프고.”
“잘못 됐네요.”
“엘프가 아니라고?”
“정확히는 하이엘프에요.”
“빌어먹을 놈. 특이사항 없다면서.”
김우진이 욕설을 내뱉었다. 하이엘프는 일반적으로 엘프들의 배 이상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더 태평하다.
이번 죄수는 없는 셈 쳐야겠군. 낮게 중얼거린 그가 질문을 이어갔다.
“나이는?”
“257살이요.”
“어리군.”
“하이엘프치고는 그렇죠.”
“아르반이라는 차원 출신이고.”
“네.”
“데이드람을 구했고.”
“광룡이 미쳐 날뛰던 차원이었어요. 꽤나 힘들었죠.”
아르반?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차원 이름이 비슷비슷한 게 한두 개도 아니고.
“여기가 어딘 줄 아나?”
“감옥이요.”
“왜 감옥에 오게 되었는지는 알고?”
“대충 짐작은 해요. 질문이 너무 노골적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알면서도 여길 왔다고?”
“여기에 오게 될 줄은 몰랐죠.”
그것도 그랬다.
“그렇다면 다시 묻지. 대답은?”
“여기 오게 된 걸로 대답이 되지 않았을까요?”
“오게 될 줄 몰랐다며?”
“어쨌든 왔잖아요. 나가고 싶다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악다구니를 쓰지도 않고.”
눈이 마주쳤다. 흥미로움을 가득 담은 시선. 김우진은 오히려 상대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엘프들의 특이함은 한두 번 겪어 본 게 아니었다. 하이엘프라면 당연히 더 특이하겠지.
“···잘 생각하는 게 좋아. 여기서 출소하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야.”
“하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거고 다른 하나는 시체가 되어 나가는 거군요.”
그녀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그걸 알면서도 거절하겠다고?”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여기 처음 들어온 놈들은 모두 너와 같은 생각을 해. 그런데 몇 놈이나 탈옥했을 것 같아?”
“불가능하다는 거네요. 그래도 지금은 그렇네요. 아시잖아요? 하이엘프의 시간은 길어요.”
“···망할 엘프놈들.”
김우진이 욕설을 내뱉었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알았다. 1178.”
“1178? 그게 뭐죠?”
“네 죄수번호. 앞으로 번호로 부를 테니까 잘 기억해두도록.”
“아하, 3이 하나도 없는 게 아쉽네요.”
“3?”
“다른 엘프들은 몰라도 저희 차원의 엘프들은 3을 행운의 숫자로 여겼거든요.”
“그렇군.”
딱히 알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은 내용이었다.
김우진이 문을 열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교도관들에게 눈짓했다.
“데리고 가.”
“예.”
“감시 잘해. 유의해서.”
“예.”
···모르겠다.
김우진이 담배를 입에 물고 손가락에서 불꽃을 피워냈다.
후우-
진한 연기가 흩어졌다.
“인간을 원했더니 뭔 하이엔드 장생종 또라이가 들어왔어?”
20년 동안 봐온 죄수가 샐 수도 없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맹세코 저런 용사는 처음이었다.
* * *
“···새 죄수?”
강민식은 자신의 옆방에 새로 자리를 차지한 죄수를 발견했다.
죄수번호 1178. 그의 다음 번호이자 더없이 아름다운 엘프였다.
하지만 미모보다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녀가 이제 막 죄수로 들어온 자라는 거다.
오랜 수감생활을 하면서 수긍하고 패배감에 찌든 죄수가 아닌.
“이봐. 1178번 엘프.”
늦은 밤, 기회를 엿보던 강민식이 배급구를 통해 조용히 속삭였다. 다행히 상대의 배급구 또한 열려 있었다.
“저 말인가요? 옆방이신 것 같은데.”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탈옥하고 싶지 않아? 설마 이 개 같은 곳에서 계속 있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아니겠지?”
“아직까지 그런 곳인지는 모르겠네요. 시설 자체는 나쁘지 않아서.”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텐데?”
“으음.”
잠깐의 침묵.
“방법은 있고요?”
그것이 긍정의 대답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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