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02. 납득 >
강민식을 징벌방에 넣은 후, 김우진은 집무실에 앉아 분재를 다듬기 시작했다.
톡-
기괴하게 꺾인 가지 하나를 잘라냈다. 분재가 크르릉 낮게 으르렁거렸지만 쓰읍, 작게 혀를 차자 곧 조용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교도관 하나가 문을 두드렸다.
“소장님, 개인면담 시간이 되었습니다.”
“벌써?”
창밖을 보니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오늘은 누구지?”
“죄수 번호 1152. 시에나 올름입니다.”
“들여보내.”
잠시 후, 붉은 장발의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익숙하게 김우진의 앞에 앉았다. 뾰족한 귀가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시에나. 차는 뭐로?”
“커피로 부탁해. 원래 난 차만 마시는데 소장 때문에 커피에 맛 들렸어.”
교도관이 커피 두 잔을 내왔다.
“하고 싶은 말 있습니까?”
“소지 한 명 더 필요 없니? 감방에서 멍하니 있는 거 보다 뭐라도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래서 새로운 출역을 시작했죠. 할 일 많아지지 않았어요?”
“그건 너무 힘들어. 그리고 너무 불합리해. 소장의 개인적인 일을 위해서 죄수들을 동원하는 법이 어디 있니?”
면담은 매일 일과가 끝난 저녁, 한 명씩 이루어진다.
“그럼 그냥 출소하면 되죠. 누가 못하게 말리기라도 합니까?”
표면적인 목적은 죄수들의 애로사항들을 접수하고 해결해주는 거지만 진짜 목적은 결국 하나였다.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죄수들의 수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 개인면담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때마다 김우진의 물음은 같았다.
“솔직히 이런 곳에서 썩으면서 힘들다고 난리치는 것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좋잖아요?”
그리고 대다수의 죄수들의 대답도 같았다.
“이제 와서 다 잃고 평범한 사람이 돼서 살아가라고? 소장이라면 그럴 수 있겠어?”
“못하죠. 근데 전 죄수가 아니잖아요.”
“내가 언젠가 꼭 탈옥하고 말 거란다.”
“제가 일단은 소장입니다만.”
“나는 죄수고.”
“그 이야기는 20년 째 계속 되네요.”
“20년? 소장이 오기 전부터 계속 됐지.”
“만약 그러면 집무실이 아니라 징벌방에서 대화하고 있을 겁니다.”
“안 잡히면 되는 거 아니겠니?”
“그거야 두고 보면 알 일이죠. 그래서 출소할 생각은 전혀 없으시다?”
“당장은.”
“마음이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다는 걸로 들리는데요.”
“이 지독한 곳에서 71년을 살았더니 조금 그렇긴 하네.”
김우진은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71년은 긴 시간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짧은 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경우일 뿐, 눈앞의 여인은 조금 달랐다.
물론 전체적인 범위에서 보자면 비교적 짧다는 것일 뿐, 71년이라는 시간 자체가 짧은 건 아니었다.
“언제고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는 날을 기대할게요.”
“당장 나를 풀어주면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는데.”
“그건 불가능. 저도 사정이 있어서. 언제든 마음 바뀌면 교도관에게 이야기해요.”
“그런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알았어, 소장.”
시에나가 나갔다.
“오늘도 의미는 없군.”
개인 면담을 끝으로 오늘의 일과는 끝이 났다. 사실 소장인 그가 해야 할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
죄수나 시설의 관리는 교도관들에게 일임하고 있으며 그것을 제외하면 할 일 자체가 없으니까.
일반적인 교도소처럼 여론의 눈치를 볼 것도, 무언가 보여주기식으로 해야 하는 것도 없다.
아, 같은 건가.
그가 식어버린 커피를 원샷했다.
“나 퇴근한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겉옷을 벗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라고 해봐야 결국 연옥의 최상층일 뿐이지만.
샤워 후, 옷을 갈아입고 룸서비스를 시켰다.
“아침에 분명 회가 드시고 싶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나? 마음이 변했어.”
“···주문하신 차돌 짬뽕과 유린기입니다.”
소지가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가지고 나타났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앉아. 같이 먹자. 일부러 2인분 시켰다.”
“저 저녁 먹었습니다만.”
“용사 위장이 그렇게 작지는 않을 텐데.”
소지가 입을 다물고 얌전히 앞에 앉았다.
짬뽕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얼큰한 게 딱 김우진의 취향이었다.
“요리 실력이 점점 좋아진다?”
“환경이 좋지 않습니까. 제한 없이 온갖 재료들을 다 구해주시니 여러 가지를 만들어 볼 기회가 많습니다. 악당 옆에 미친 과학자가 붙어 있는 클리셰가 이해가 간다고 할까요.”
“그럼 내가 악당이다?”
“물론 소장님이 악당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소지가 능글맞게 웃었다.
“요리도 좋지만 이제는 여기서 나갈 생각을 해.”
“어, 그럼 탈옥해도 됩니까?”
“씨발, 여기 죄수 새끼들은 왜 죄다 소장 앞에서 선전포고를 하지?”
“시에나님이 그런 게 어디 하루 이틀입니까?”
“너 개인면담 순서도 다 외우고 다니냐?”
“죄수가 몇이나 된다고요. 저도 여기 8년차입니다.”
“자랑이다.”
죄수번호 1176, 베르너 레트만. 오늘 들어온 강민식 바로 직전에 들어온 죄수였다.
난장판이 되었던 연옥을 복구하던 한창, 요리사라는 말에 당장 소지로 임명하고 모든 걸 맡겨버렸다.
다시 생각해도 그가 소장이 된 이래로 가장 잘한 일이었다.
“진짜 나갈 생각 없어?”
“제가 나가면 소장님도 꽤나 곤란해지시지 않겠습니까?”
김우진은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죄수들 중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건 소지뿐이니 그가 나간다면 다시금 맛대가리 없는 밥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출소자를 만드는 것 또한 그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조금 맛이 떨어지는 식사를 하더라도 한 명의 출소자를 더 내보내는 것이 당장은 더 중요했다.
“어쨌든 당분간은 나갈 생각 없습니다. 전 차원의 재료들을 모두 주는, 그걸 마음껏 요리할 수 있는 환경이 흔한 건 아니잖아요?”
“···마음대로 해라.”
식사를 마친 소지가 빈 그릇을 챙겨 나갔다. 김우진은 침대에 누워 티비를 틀었다.
연결된 차원은 지구. 여러 나라의 방송들이 방영되고 있었다.
“소장님.”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교도관이었다.
“무슨 일이야?”
“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주일 뒤에 새로운 죄수가 하나 더 온답니다.”
“새로운 놈 들어온지 이제 겨우 이틀 됐는데?”
강민식과 소지의 시간 텀을 생각하면 빨라도 너무 빨랐다. 물론 죄수라는 텀을 정해서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평범한 죄수는 아니지 않은가.
용사가 흔할 리도, 그 용사가 감옥에 들어오는 게 흔할 리도 없다.
김우진이 연옥의 소장으로 부임한 이례, 새로 받은 죄수가 이제 고작 셋이라는 점에서 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뭐, 어쨌든 교화시킬 죄수가 많다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인적사항은?”
“여기 있습니다.”
교도관이 서류를 내밀었다. 인계 당일 호송관이 넘기는 세세한 자료와는 다른, 아주 간단한 것들만 적힌 서류였다.
“이런 씹.”
첫 장을 확인한 김우진이 욕설을 내뱉었다.
- 율리아 카르센.
- 엘프.
소장이 된 이후, 김우진은 이종족을 싫어했다. 특히, 시간관념이 인간과는 확고히 다를 정도로 오랜 삶을 살아가는 엘프들은 더욱 더.
71년이나 감옥에 갇혀 있었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붉은 머리 엘프가 엘프들의 디폴트였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더 없이 길었던 20년도 고작 2년 정도로 치부하는, 한 번 들어오면 가장 오래 죽치고 있는 죽돌이들.
* * *
강민식은 잠에서 깨어났다. 동시에 해방감을 느꼈다.
짓눌린 붕어빵처럼 억제되어 있던 팔과 다리가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징벌방의 징벌이 끝났다. 그의 감옥은 평범한 독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침 배식이요!”
때마침 소지가 배급구에 식판을 올려두고 사라졌다.
향긋하면서도 익숙한 냄새. 고향에서 수없이 먹었던 떡만둣국이었다.
꼬르륵-
며칠 만에 맡아보는 음식 냄새에 배가 요동쳤다. 본능적으로 손을 가져갔다.
11일을 굶어서 그럴까. 맛있었다. 살면서 먹어온 어떤 떡국보다도 더.
“일어났군. 잘 잤나?”
불연 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수저를 내려놓았다.
“밤에도 불을 켜놓는 건 대체 무슨 매너지?”
“웃기는 놈이군. 감옥에서 불 끄는 것 봤나?”
“난 감옥에 갈만한 일은 저질러 본 적이 없어서.”
“하지만 지금은 감옥에 있지.”
상대, 김우진이 픽 웃었다. 강민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야기는 다 들었을 테니 지금은 왜 이 감옥에 들어와 있는지 알겠지?”
“······.”
“혹시 듣지 못했나? 그럴 리가 없는데. 저 양반이 오랫동안 여기 갇혀 있어서 그런지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 하는 게 취미거든.”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무슨 질문을 할지도 알겠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강민식이 뿌득, 이를 갈았다.
“무려 15년이다. 15년을 용사가 되기 위해, 미친 광룡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어. 죽을 만큼 아팠고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용사의 힘은 단순히 강하기에 잃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기적과도 같은 기연도 있었다. 동료들의 희생도 있었다. 그들의 희망과 염원, 소망이 내 노력과 어우러져 나는 영웅이 되었다!”
그가 용사로서 살았다는 증거. 그의 동료들의 피와 땀. 세계의 역사.
결코 잊어서도, 잃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 건 난 모르겠고.”
하지만 김우진은 그러한 것들을 가볍게 무시했다.
“중요한 건 널 이곳에 보낸 놈들이 네가 힘을 포기하고 평범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거지. 그리고 난 그들의 앞잡이로서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그러니 다시 묻겠다.
“나갈 테냐? 네가 원한다면 며칠 안에 나갈 수 있을 거다.”
“···나간다고 하면 나는 모든 힘을 잃겠지? 기껏 알량한 돈 몇 푼 쥐어주고.”
“알량한 돈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많을 텐데.”
“좆까.”
“대답으로는 너무 과해.”
퍼억, 폐부가 쥐어짜지는 고통에 강민식이 숨을 삼켰다. 뜨거운 열기에 이를 악물었다.
흐릿해지는 시야 속으로 김우진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졌다.
* * *
“···괜찮나?”
다른 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강민식은 깨어났다.
복부는 여전히 화끈거리도록 아팠다.
“앞으로는 조심하게. 소장이 나쁜 인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대인배는 아니거든.”
“···제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습니까?”
“한 시간 쯤?”
고작 한 대 맞고 한 시간? 구속구로 마력이 제어 당하지만 않았다면 결코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그가 입술을 짓이겼다.
“데르카인님은 저 말도 안 되는 말에 동의하실 수 있으십니까?”
“무슨 말? 모든 힘을 포기하고 나가라는 말?”
“예.”
“납득이 안 되니 여기 갇혀 있는 게 아니겠나. 이 감옥에 갇힌 모두가 그러하네. 애초에 포기했다면 여기 있지도 않았을 테니.”
“그렇습니까?”
“그거 아나? 마지막으로 이 감옥에서 누군가 출소한 게 벌써 5년 전이네. 그 전에는 11년이었고.”
텀이 길다. 그만큼 힘을 포기하고 싶어하는 자는 없다는 거다. 버티고 버티다 어쩔 수 없이 꺾일 뿐.
“모두 감옥의 삶에 만족하는 겁니까?”
“다른 죄수들 앞에서 그런 농담 하지 말게. 당장 멱살을 잡고 내던져 버릴 테니.”
데르카인이 끌끌 거리며 혀를 찼다.
“여기 좋아서 이러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으니 있는 거지.”
“···탈옥은요?”
배급구로 고개를 내밀어 교도관이 없음을 확인한 강민식이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췄다.
“탈옥? 여기 와서 한 번도 탈옥 시도를 하지 않은 사람은 없네. 대답이 되었나?”
“···예. 충분합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포기하지는 않겠군.”
“저는 반드시 나가고 말 겁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함께 나가시죠.”
“그렇게만 된다면 소원이 없겠군.”
데르카인이 껄껄 거리며 웃었다.
뭐, 직접 부딪혀보고 깨지는 것도 좋은 경험이긴 하겠지.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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