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01. 갇히는 이유 >
김우진이 서류를 넘겼다.
“강민식. 지구 출신이라.”
톡톡,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이 생활을 얼마나 했더라. 지구 출신은 꽤 오랜만이었다.
하물며 같은 한국 출신은 더욱 더.
“상담실에서 전부 알아보신 것 아니셨습니까?”
교도관이 식판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푹 고아진 삼계탕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그러려고 했는데 전혀 협조하는 태도가 아니더라고.”
바로 기절시켜서 감방에 쳐 넣었다. 덕분에 알아낸 건 하나도 없었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알고자 하는 것들 대부분은 서류에 적혀 있다. 상담실을 운영하는 목적의 90%정도는 죄수의 기강잡기 정도였다.
“깨어나면 밥만 가져다주고 말 섞지 마. 한 번 가져다 줘서 안 먹으면 이틀 굶겨.”
“예.”
마지막장을 넘긴 김우진은 서류를 책상 한 쪽으로 밀어놓았다.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이곳을 찾는 여타 다른 용사들과 마찬가지로.
호송대장의 말대로 조금 더 사납고, 조금 더 강할 뿐이다.
그건 조금 더 성가시다는 결과를 도출해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그 성가심은 얼마든지 잠재울 수 있다.
“죄수들은?”
“방금 점심 다 먹었습니다. 지금 출역을 하러 나갈 채비 중입니다.”
“무슨 출역?”
“풍경이 지루하다고 바꾸라고 하셨잖습니까.”
아참, 그랬지.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내일 같은 따분한 감옥의 생활에서 변하는 건 딱 두 가지다.
죄수, 그리고 풍경.
전자는 자연스럽게 교체가 되며 후자는 그가 죄수들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바꿔버린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매일 같이 똑같은 풍경을 보는 건 지루하니까.
“나가보자.”
“예.”
밖으로 나갔다.
연옥은 통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감옥이다.
건물은 본채 한 동이 전부며 감옥을 중심으로 인공적으로 조성한 정원이 존재한다.
축구장 100개 정도 되는 크기.
정원 한쪽에는 숲이 펼쳐진다.
쿵쿵-
숲 한쪽, 이십 여명의 죄수들이 마력을 구속하는 팔찌를 찬 채, 벌목을 하고 있었다.
“충성, 소장님 오셨습니까.”
죄수를 감독하는 교도관들이 경례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우지끈-
나무가 무너져 내리는 속도는 빨랐다. 팔찌를 통해 마력을 제어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용사였다. 신체적인 능력은 감히 일반인과 비빌 수준이 아니다.
교도관이 설계도를 가지고 왔다.
“이쪽에 있는 숲을 싹 밀어버리고 말씀하신···.”
“소장님!”
그때, 교도관 하나가 급하게 뛰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죄수들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속삭였다.
“큰일?”
“새로 들어온 죄수가 일어났습니다만, 상태를 확인하러 간 교도관의 멱살을 잡고 놔주지 않고 있습니다.”
“멱살을 잡혔어?”
“소지가 식판을 넣어놓고 갔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아서 다시 챙기려다가 그만···.”
성질 나쁘다더니 진짜였군.
심지어 맷집도 좋다. 저항이 거세서 꽤나 거세게 팼는데 반나절도 안 돼서 깨어나다니.
김우진은 딱히 교도관을 탓하지 않았다. 대단한 일처럼 포장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죄수가 들어오면 왕왕 있는 일이었다.
“가자.”
“예.”
그러니 적당히 징벌을 주고 얌전히 만들면 그만이다.
언제나 그랬듯.
* * *
“당장 그 빌어먹을 놈 데리고 와! 이 새끼 목 분질러 버리기 전에!”
연옥의 모든 죄수들은 독방에서 생활한다.
당연히 새로 들어온 죄수, 강민식의 방 또한 독방이었다.
놈은 식판을 넣는 작은 문 사이로 교도관의 멱살을 붙잡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가관이군.
김우진이 성큼 성큼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보았다.
“1177번. 얌전히 교도관을 놔주는 게 어떨까?”
“뭐?”
“네 죄수 번호야. 숫자가 꽤 좋지 않아? 행운의 숫자인 7이 두 번이나 들어갔어.”
“개소리 지껄이지 마!”
강민식이 버럭 소리쳤다.
7이 별로 마음에 안 드나. 한국인 치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던데. 김우진이 중얼거렸다.
“일단 그 멱살은 좀 놓고 이야기 하는 게 어떨까? 교도관이 꽤나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아가리 닥쳐! 교도관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날 여기서 내보내줘.”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해.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내 마음이 아니거든.”
실제로 그렇다. 김우진은 이 교도소의 소장이기는 했으나 죄수를 임의로 들여오거나 내보낼 권한 같은 건 없었다.
으레 대부분의 교도소가 그러하듯.
아닌가, 사실 그는 일반적인 교도소의 시스템은 잘 몰랐다. 그냥 겉핥기로 비슷하게 해놓은 거지.
“난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야! 난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고!”
강민식이 이를 갈았다. 작금의 상황이 혼란스러운 듯, 초점을 잃은 동공이 맹렬히 흔들렸다.
“나는 용사야. 나는 영웅이야. 나는 세계를 구했어. 목숨을 걸고 나아가 광룡의 목을 베었다고.”
“다 나를 칭송했어. 다 나를 우러러봤어. 모든 걸 이루었고 이제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어.”
남았었겠지. 김우진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내가 왜 갑자기 죄인이 되어야 하지? 감옥에 갇혀야 하지? 나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어.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줘!”
“그 심정 이해해.”
“네가 뭘 알아!”
“그렇게 말해버리면 할 말은 없고.”
하지만 이해가 간다는 건 진심이었다. 교도소장을 하면서 이런 놈을 한두 번 봤어야지.
“아까 말했지? 나는 너를 내보내줄 권한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 감옥을 나간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야.”
많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다.
“···나갈 수 있다고?”
“그래, 전부 네 마음가짐에 달려 있지.”
“그게 무슨 개소리야!”
“소장을 향한 욕설, 벌점 1000점. 그리고 교도관 폭행 100점. 축하해. 벌써 벌점이 1100점이네. 이왕 많이 받은 거 번호랑 맞춰서 1177로 받는 게 나으려나?”
“지랄하지 마. 교도관의 목숨이 아깝지 않나 보···언제?”
강민식이 텅 비어버린 제 손을 바라보았다. 교도관은 김우진의 뒤에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히지 않은 머저리의 손에서 인질을 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지.”
“이 개···!”
콰앙!
두터운 철문이 요동쳤다. 작은 통로 밖으로 강민식의 손이 버둥거렸다.
“음, 77점을 더 줄 명분으로는 충분하네. 죄수 번호 1177, 교도소장을 향한 폭행 미수로 벌점 77점 부과.”
이제야 1177점이 딱 맞다. 편안하다.
“괜찮나?”
“예. 감사합니다, 소장님.”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자식 방 줄여. 최대치로. 벌점이 1177점이니까 11일 동안. 밥도 주지 말고.”
“예.”
교도관이 철문 옆의 벽면에 비치된 스크린을 매만졌다.
쿠그그그-
미약한 진동과 함께 독방의 벽들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당황한 강민식이 소리쳤지만 벽면은 딱 그가 몸 누울 공간까지 좁혀졌다. 지극히 좁고, 지극히 불편했다.
“그게 이곳의 징벌방이다. 11일 동안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 곱씹고 반성하도록.”
아, 이왕이면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는지도 고민해 보고.
‘그냥 다 듣게 되겠지만.’
김우진이 강민식의 옆방을 흘기며 사라졌다. 등 뒤에서 강민식의 고함소리가 메아리쳤다.
* * *
목이 쉴 때까지 소리치던 강민식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빌어먹을···!”
좁아터진 징벌방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작은 마력 전등이 눈부셨다.
“불이라도 꺼주던가, 개새끼들아···!”
벽면을 뒤져봤으나 불을 끄는 스위치는 없었다. 깨트리기에는 너무 높았다.
“소리는 다 질렀나? 목청도 좋군.”
“···누구?”
“누구긴, 감방 동료지.”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강민식은 그게 옆방에서 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감옥이 서로 방음이 완벽하게 되긴 하지만 배식구를 열어 놓으면 또 이야기가 다르거든.”
그는 그제야 교도관의 멱살을 잡았던 배식구가 아직 열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데르카인 알베트네. 자네는?”
“···강민식입니다.”
“지구 출신인가?”
“어떻게 아십니까?”
“예전에도 그런 이름의 죄수가 하나 들어왔었거든.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네.”
무엇보다 교도소장도 비슷한 형태의 이름이고 말이네.
“저 자가 한국인이라는 겁니까?”
“아마도. 자네의 심정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만 너무 악만 쓰지 말게. 그래봐야 이득이 될 건 없으니.”
“대체, 대체 여긴 뭡니까? 저는 왜 여기 갇혀 있는 겁니까?”
“뭐긴, 감옥이지. 자네는 죄를 졌으니까 감옥에 갇힌 거고.”
“저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아니, 자네는 죄를 지었네. 그것도 아주 큰 죄를.”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는 용사입니다. 한 세상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알고 있네. 여기 갇힌 죄수들은 전부 용사지. 자네만 특별한 게 아니란 거네. 소장이 말 안 해주던가?”
“······.”
했다.
“···연옥, 용사들을 가두는 감옥.”
“맞네.”
“하지만 저는 아무런 죄를···.”
“잘 생각해보게.”
“···혹시 여기는 드래곤들이 만든 감옥입니까?”
“자네는 드래곤들로부터 세상을 구했나 보군. 아쉽게도 자네가 죽인 악당들이 만든 건 아니네.”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자네를 용사로서 불러들이고 힘을 준 자들이 세운 곳이지.
“···그게 무슨? 그들이 왜 그런단 말입니까?”
“자네는 아마 드래곤과 싸워 세상을 구했을 거네. 동료들도 만들고 영웅으로 칭송도 받았겠지.”
“맞습니다.”
“그 다음은?”
“그 다음 말입니까? 고향이 그리워 고향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애초에 처음 소환되었을 때, 세상을 구한 뒤에 원하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랬지. 그런데 말이네. 자네가 돌아가기 전에, 정확히는 이곳에 오기 전이지. 그들이 한 가지 질문을 했을 거네.”
“질문이요?”
강민식이 필사적으로 기억을 떠올렸다.
“아, 저를 소환한 신이 한 가지 묻기는 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그들은 신이 아니네. 뭐,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고. 뭐라고 했나?”
“저를 소환하느라 모든 힘을 소모해서 당장은 온전한 상태로 역소환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지구에 가면 힘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는데 괜찮냐고 했습니다. 그 대신 다른 보상을 주겠다는 소리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떤 노력을, 어떤 고생을 해서 이룩한 힘인데 그것을 모두 상실한다니.
“그래서 괜찮지 않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더 기다릴 테니 온전하게 돌아가게 해달라고···.”
“그거네.”
“예?”
“거기서의 모범 답안은 ‘예, 괜찮습니다. 이런 힘보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네. 그러면 아마 신, 신은 아니지만. 그 자는 자네에게 부족하지만 보상이라면서 지구라는 차원의 돈을 꽤 주었을 거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돼는···!”
“여기서는 말이 되네.”
그게 이 감옥이 지어진 이유거든.
“내가 교도소장은 아니지만 제대로 이야기해주지 않은 것 같으니 대신 정식으로 소개하겠네.”
이곳은 연옥.
“힘을 포기하지 않은 용사들을 가두는 감옥이네.”
데르카인이 클클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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