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감옥에는 용사들이 온다-1화 (1/150)

# < 000. 소장 김우진 >

8월 19일. 맑음.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다.

태양은 밝고 바람은 시원하다. 한 여름답지 않은 신선함이다.

간만에 푹 숙면을 취해 상쾌하게 아침을 시작했다. 빵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고 분재를 다듬었다.

요새 분재가 자라나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잘 쳐주지 않으면 예쁘게 자라지를 않는다.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오후에는 감옥을 순찰했다. 딱히 특이사항은 없었다.

8월 20일. 흐림.

어제와 달리 날씨가 꾸물꾸물하다. 비가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았는데 결국 쏟아지지는 않았다.

습기가 가득해 끈쩍한 불쾌감이 있다.

그래도 덕구가 달려와 꼬리를 흔드니 기분이 나아졌다. 귀여운 자식.

내일은 춘식이한테나 가볼까.

8월 25일. 비.

비가 내렸다.

오늘은 밀린 빨래를 했다. 습기가 가득차 있긴 하지만 말리는 건 일도 아니니까.

하도 안 빨아서 제복에서 썩은 내가 났는데 이제 좀 괜찮아졌다.

8월 31일. 맑음.

오늘은 해가 떴다.

오늘은 딱히 별 일이 없었다. 평소와 같은 하루, 평소와 같은 평온한 일상.

아, 내일이면 이 생활도 이제 20년째다. 어쩌다 보니 이 짓을 20년이나 하다니.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는데.

9월 1일. 맑음.

급하게 연락이 왔다.

내일 새로운 죄수가 온단다. 얼마만의 죄수지? 한동안 안 와서 좀 편했는데 다시 바빠지게 생겼다.

이왕이면 좀 쉬운 놈들로 왔으면 좋겠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뭐, 인간이라니까 좀 쉽겠지.

* * *

“이것도 다 썼나.”

탁-

김우진은 일기장을 덮어 책장에 넣어 놓았다. 책장에는 그가 간수생활을 하며 매일 매일 써내려온 일기들이 빼곡했다.

“하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밖을 보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침인가. 또 다시 지겨운 하루의 시작, 업무의 시작이다.

옷장에서 제복을 꺼냈다.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그 위로 검은 코트를 덮는다.

모자를 쓰고 출근했다. 집무실로 들어가 앉아 있으니 똑똑, 밖에서 문을 두들긴다.

“들어와.”

“충성,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깔끔한 정장에 새하얀 장갑을 착용한 간수가 경례했다.

“소지 음식 솜씨가 날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 같아.”

“예.”

몬스터들로도 요리를 쳐 만들던 놈이라 조금 찜찜하긴 하지만 식재료는 철저히 통제되고 있으니 문제는 없다.

“간밤에 문제는?”

“없습니다. 죄수들의 상태도 괜찮고 특이사항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습니다.”

“가보자.”

김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도관이 뒤를 따랐다.

계단을 한 층 내려가자 쭉 뻗은 복도가 보인다. 복도를 따라 방들이 자리했다. 저것들이 모두 감옥이다.

“앗, 오셨습니까?”

카트를 끌고 다니며 음식을 배급하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소지라고 써진 형광 조끼를 입고 있었다.

“아침 맛있던데.”

“감사합니다. 주신 재료가 워낙 좋아서 그렇습니다.”

“저녁은?”

“저녁에는 파스타를 생각중입니다.”

“회가 먹고 싶은데.”

“아, 그럼 바꾸겠습니다!”

“일 봐.”

“예.”

소지가 배급 카트를 끌고 다음 층으로 사라졌다.

김우진은 천천히 복도를 따라 감옥들을 훑었다.

반투명한 유리창 너머 하나하나가 모두 감옥이다.

일반적인 감옥이었다면 한 방에 죄수들을 대여섯명씩 넣고 독방이 따로 있겠지만 이곳은 일반적인 감옥이 아니다.

전원 독방. 특출 난 자들을 가두는 만큼, 감옥 또한 특출 나다.

순찰을 끝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김우진은 집무실로 돌아와 모자를 벗었다.

의자를 뒤로 재끼고 반쯤 누웠다. 집무실에 설치된 TV에서 감옥의 모습들이 송출되고 있었다.

불필요한 일이지만 굳이 돌아다닌 건 그냥 습관이다.

하암, 밥을 먹고 반쯤 누워 있어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졌다.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몇 시야?”

“10시 51분입니다. 정확히 두 시간 주무셨습니다. 죄수들은 정신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그 자리 그대로 서 있던 교도관이 대답했다.

“새로 들어온다는 죄수는?”

“11시 정각에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9분 남았나.

“가지.”

쉴 틈도 없군. 다시 모자를 썼다.

1층의 로비로 내려가자 간수들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허례허식을 딱히 반기지는 않아 그대로 받아 넘겼다.

감옥에는 평소와는 다른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평소와는 다르지만 낯선 것은 아니다. 새로운 죄수가 들어오는 날이면 언제나 이러니까.

10시 57분. 딱딱한 호송관들은 시간을 칼 같이 맞추니 도착하기까지는 아무리 못해도 3분이 남았다.

담배를 입에 물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간수 하나가 불을 붙여 주었다.

후우-

담배 하나를 피고 나니 시간이 딱 되었다.

벌컥, 문이 열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옷으로 뒤덮인 호송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운 죄수를 호송해 왔습니다.”

죄수의 모습은 언제나 같다.

발과 다리에는 족쇄를, 입에는 재갈을 물리고 눈을 가린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귀를 막고 목을 옥죈다. 사슬로 전신을 동여매 오감과 움직임 자체를 봉쇄한다.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이곳에 오는 죄수들이 누군지 알면 당연한 조치이기도 했다.

“이름, 강민식.”

“나이, 35.”

“종족, 인간.”

“성별, 남···.”

호송대장이 기계적으로 죄수의 신상을 줄줄이 읊었다.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김우진은 그의 손에 들린 서류를 빼앗았다.

“내가 알아서 보지.”

“이번 죄수는 여타 다른 죄수들보다 사납고 주의가 필요합니다.”

“다른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좋아.”

“인계 확인서에 서명 부탁드립니다.”

교도관들이 죄수를 인계 받았다. 낡아 빠진 종이에 사인을 했다. 서류를 잘 갈무리한 호송대장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이만.”

“앞으로 죄수가 얼마나 더 들어올 것 같나?”

“죄수가 생겨나는 빈도를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죄를 짓고, 짓지 않음은 사람들의 마음에 달린 일인데 말입니다.”

“말이나 못하면.”

김우진이 손을 흔들며 축객령을 내렸다.

“그럼 이만.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봤으면 좋겠네.”

“죄수가 많아지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한텐 좋은 일이야.”

“노력해보겠습니다.”

무표정하게 대꾸한 호송대장이 호송관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상담실로 데리고 가.”

“예.”

죄수가 들어오면 늘 하는 일이다. 어떤놈인지 직접 확인하는 일.

상담실은 밀실이었다. 있는 거라곤 두 개의 의자, 그리고 책상 하나 뿐. 하지만 그와 반대로 무척이나 넓은 빈 공간은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의자에 죄수를 앉히고 다른 의자에 앉아 소리를 차단하고 있는 귀마개를 빼고 재갈을 풀었다.

죄수가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

눈이 마주쳤다. 의외로 놈은 침착했다.

“떨지 마. 일반적인 교도소에서는 항문 검사도 하지만 여기는 그런 건 안하니까.”

호송관에게 건네받았던 서류를 꺼냈다.

“강민식. 맞나?”

“···여긴 어디지?”

“감옥이다. 묻는 말에나 대답해. 강민식. 맞나?”

“내가 왜 감옥에 있는 거지?”

“죄를 지었으니까. 강민식. 맞나?”

“나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

짜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강민식의 고개가 돌아갔다.

“난 딱 세 번만 참아. 묻는 말에나 대답해.”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네가 누구였든, 어떤 짓을 했든 여기 온 이상, 죄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러니까 눈 깔고 조용히 묻는 말에나 대답해.”

“닥쳐!”

강민식이 버럭 소리쳤다.

“감히! 이 구속구만 없으면 내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한 놈이!”

“네 때는 이렇게 큰 모양이야.”

“지금 많이 여유 부려둬라. 내가 여기서 나가게 되면 네 목을 부러트려 버릴 테니까.”

“그럼 해 봐.”

“···뭐?”

김우진이 책상을 내던졌다. 의자를 끌어 강민식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해보라고.”

“이 새끼가···!”

“네가 어떤 차원을 구했는지, 네가 어느 차원 출신인지 나는 관심이 없어.”

그런 것보다는 스스로의 임기를 무사히 끝마치는 것을 더 소망한다.

“네가 왜 여기로 온 건지도 아무런 관심이 없어.”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넌 여기로 왔고 내 통제 하에 놓였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네가 사고를 치면 그건 내 잘못이 된다는 거야.”

관리자란 그런 직책이다. 그래서 피곤하고 귀찮다.

“상담실이 왜 이렇게 극한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지 알아?”

500평이 넘어가는 거대한 공간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문 앞의 의자와 책상이 전부다.

“원래 목적이 이거거든.”

김우진이 서류를 다시 품속에 넣었다.

철컥-

강민식의 손목을 묶은 수갑을 풀었다.

“···무슨?”

“여기 들어오는 죄수들은 하나 같이 똑같아.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고 발악하지.”

족쇄가 풀렸다.

“잃어버린 옛 과거를 부르짖으면서 지금도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뭐, 이해는 해. 그래도 나름 위기로부터 세상을 구한 전적이 하나씩은 다들 있을 테니. 영웅 취급 받다가 갑자기 감옥으로 이송되었으니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어.”

몸을 묶은 사슬이 떨어졌다.

“근데 그게 여기서는 디폴트라는 걸 몰라. 애초에 그런 놈들을 가둘 목적으로 만들어진 교도소라는 것도.”

“지금 뭐하는 거냐고 물었어!”

“그런 놈들에게 현실을 주입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 줄 알아?”

마지막으로 목을 채운 구속구를 풀었다. 강민식은 움직이지 않던 마나가 다시금 자신의 통제 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맞는 거야.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인정할 때까지 패는 거지. 강제로 현실을 주입해주는 거지.”

그래서 상담실은 크고 넓다. 책상과 의자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언어의 대화가 아니라 몸의 대화를 추구하는 곳이기에.

“···죽고 싶어 환장했군. 감당할 수 있겠어?”

“감당? 이야, 영화 좀 봤나 봐. 대사가 찰지네.”

김우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성난 강민식의 눈빛에도 빙긋이 웃었다.

“근데 그거 알아? 난 너 같은 놈들을 많이는 아니더라도 몇 번 만나봤거든.”

정식으로 소개하지.

“이곳은 연옥.”

용사들을 가두는 감옥.

“그리고 나는 김우진이야.”

이곳의 소장이지.

“일단 덤벼. 너 같은 놈들을 교화시키는 게 내 업무니까.”

“이 개자식이!”

강민식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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