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50화 (150/153)

멸망 구속 3

한별의 말을 들으니 수긍이 된다.

아포칼립스를 막은 공로가 있어야만 코인이 주어지고, 그 코인으로 내 재능을 업그레이드했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능력과 재능도 주어졌던 거고.

때로는 블랙카드 사용으로 물질도 쏟아부어야 했었다.

물론, 초월적인 재능을 얻은 까닭에 물질을 소진하긴 했어도 돈은 다시 들어오긴 했다.

어쨌거나 내게 능력이 나타났던 가장 큰 이유는...

아포칼립스 원흉을 막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한별이 내게 물었다.

“이젠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네 번째 재앙을 막아야겠지. 근데 네 번째 재앙은 조종하는 능력이 강화된 것 같은데. 재앙의 조종 능력은 생명의 폭풍 능력으로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좋겠지만 원흉은 단순히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이 아닌, 그 모든 이들을 통해서 존재하겠다고 했습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음.”

나는 침묵하다가 그에게 답했다.

“네가 대기권 밖에서 네 번째 재앙이 다가오는지 봐줘. 조금이라도 미리 알게 되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 같다.”

“네.”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나는 지그시 보았다.

“한별아, 다른 창조의 별보다 너에게 더 많이 이것저것 부탁하는 이유...”

“네, 압니다. 그리고 이해합니다. 제 능력 수치가 높고 유용하기 때문이겠죠.”

한별이 말한 이해한다는 의미는, 납득해서 이해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 생각을 일부분 공유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해한다는 의미였다.

나 역시 매개체의 상태와 감정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으니.

“그래. 네가 있어서 다행이고 또 고맙게 생각해.”

한별은 옅게 미소지었다.

나는 그의 스탯을 확인했다.

내게 있던 ‘매개 능력’이 ‘멸망 구속’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난 걸 보면, 무슨 변화가 있을까 싶었지만.

전체적으로 조금씩 스탯이 오른 것 외에, 딱히 변화가 없다.

일단, 들어온 코인으로 별의 시야와 공간 이동 스탯을 ‘1’씩 올렸다.

『창조의 별

생명의 영역 : 162

별의 시야 : 81

공간 이동 : 105

외형 변형 : 49

그랜드 코인 : 764219.』

그래도 ‘생명의 폭풍’은 진화하여 ‘생명의 영역’으로 명칭이 바뀌어 있다.

후, 지금으로선 딱히 다른 일이 없으니 저택으로 돌아가야겠지.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한별이 말했다.

“저택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는 손을 뻗어 나를 붙들고 어디론가 이동해갔다.

이동해간 그곳에 장위가 있다.

한별은 그에게도 손을 뻗어 붙들고는 단숨에 올차드 저택 앞까지 이동해갔다.

* * *

지난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숨 가쁜 시간을 보내고 저택에 도착하니, 가족들은 벙커 안에서 나와 거실에 머물고 있었다.

루나는 다소 창백해 보이는 안색으로 나를 보자마자 와락 안겨들었다.

그녀는 다들 있는 곳에서 울음까지 터뜨렸다.

“흐흑, 너무해. 오빠, 왜 이제 와요. 너무해.”

“미안, 걱정했어?”

“연락도 제대로 안 되고, 아까 소행성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난 오빠 찾아다녔을 거야. 흑, 엉엉.”

루나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까지 했다.

그녀를 안아 주다가 놓아주고는, 곁에 선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내게 언성을 높였다.

“대체 어딜 갔다 온 거니? 정말 위험한 상황에서 너는 연락도 제대로 안 되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서, 얼마나 애가 탔는지 아니? 우리가 너만 놔두고 지하벙커에 몸을 숨길 수 있었겠어?”

“죄송해요.”

“그래도 다행이다. 아까 뉴스로 보니까 위험한 순간은 넘겼다고 하더라. 소행성도 사라지고 토네이도인가 뭔가도 사라졌다던데.”

어머니의 말에 장모님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갑자기 종말이 온 거 아닐까 생각되어서 아까는 정말 무서웠어요.”

“이젠 괜찮을 겁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분간 여기 계세요. 그래야 제가 마음이 놓일 것 같습니다.”

“그래.”

나는 한나에게 안겨있는 수호를 받아서 품에 안았다.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라서 품에 안은 느낌이 날로 묵직해져 갔다.

따뜻한 아기 체온이 느껴지자, 사랑하는 이들과 세상이 아직 무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되었다.

“빠, 아으빠.”

아기가 나를 알아보고 말소리를 내자,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극심한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던 내 마음이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따뜻해졌다.

“그래, 아빠야.”

나는 수호를 안은 채 등을 토닥였다.

이렇게 작고 연약하며 겨우 ‘엄마, 아빠’ 말소리만 낼 줄 알던 아이가...

2052년에는 세상을 지키고 한반도의 생존자를 이끄는 강한 군사령관이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나는 아이를 안고 거실 소파에 앉아 TV 화면에 시선을 주었다.

뉴스 속보가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김주혜 기자가 서울 거리에 서서 보도했다.

그녀는 어디 피신하지 못하고 저렇듯 줄곧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했던 것일까.

“오늘 새벽에 지구의 대기권 밖에 갑작스럽게 나타났던 소행성 ‘데스’는 충돌을 20분 남겨두고 돌연 파괴되었습니다. 미사일로도 파괴되지 않으며 흠집도 보이지 않던 ‘데스’가 스스로 산산조각 나며 파괴되었던 점에 대하여,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한 상황입니다. ‘데스’는 처음 러시아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이후 한반도로 경로가 변경되었습니다.”

내 품 안에 있던 수호가 꼬물거리며 움직이더니 옆에 앉은 루나에게로 기어 갔다.

그러더니 소파 위에 서서 루나의 긴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고 입에 넣으려 했다.

나는 김주혜가 보도하는 내용을 계속 들었다.

“미국 뉴욕에서 시작되었던 회색 토네이도는 역시 현재 온전히 소멸한 상태이며, 다른 이상 징후는 없다고 CNN에서 전했습니다.”

나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아직은 편히 마음을 높을 수 없다.

가장 위험한 다섯 번째 재앙과 네 번째 재앙이 남아 있으니.

서재에 이르러 책상 앞 의자에 앉아 핸드폰으로 톡 메시지를 보냈다.

- 고수 : 수호야, 원흉의 다섯 재앙 중 세 개의 재앙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어.

- 고수 : 2052년 세상은 아직 시간선의 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했지? 지금 상황 괜찮아?

내가 물었지만 이번엔 수호 대신 AI 2050이 답했다.

- 2050 : 수호님이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고수님의 연락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나는 노트북을 열어 인터넷 검색을 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재앙에 관한 검색을 하니, 이런 내용이 눈에 띄었다.

청와대에서 내보낸 내용인데, 제보자를 찾는다고 했다.

‘데스’가 파괴될 것과 회색 토네이도의 회색 입자가 소멸할 것을 제보해준 이에게 보상하길 원하며 도움도 청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쓴 표정을 지었다.

나를 찾는 거로군.

밤새 한숨도 자질 못 했더니 피로해졌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그대로 잠들었다.

* * *

잠시 잠든 사이, 꿈을 꿨던 걸까.

잠결에 원흉의 목소리를 들었다.

- 네가 이길 거로 생각하나?

- 네가 이겼다고 생각해?

- 그래, 인정하지. 넌 강하다.

- 이곳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를 상대하고 대항할 능력을 지닌 인간이지.

- 하지만 넌 결국 날 이길 수 없을 거다. 인간이 존속하고 이 세계가 존재하는 동안, 나는 결코 죽지 않고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물었다.

“넌 누구지? 누가 너에게 사람을 해하고 모든 걸 파괴할 권한을 주었나?”

이 세상의 섭리를 벗어난 존재라면, 그의 강대한 능력은 자연스럽고 온당한 경로로 비롯된 게 아닐 터.

불법적인 방법으로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 내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게 얻었다고 할 수 있지.

- 내 존재의 시작도 한 인간에게서 비롯되었기도 해.

- 나는 죽음 그 자체이며 멸망의 시작이자 근원이다.

- 내 능력은 너처럼 성장하고 진화했어. 인간에게서 얻어지는 에너지를 주로 양분 삼아 강대해졌다.

- 한동안 너를 피해 우주 멀리에서 존재하는 동안, 나의 일부는 지구에 머물고 있었지. 그래야 더욱 성장할 수 있었거든.

지구에 머물고 있었다고?

멸망의 별을 제거하려고 우주 너머까지 넘나들었건만.

- 내 본질은 죽음에서 파생하는 두려움과 공포를 주된 에너지 삼는다. 모든 파괴적인 감정과 비극의 행태, 역시 나를 성장하게 해.

- 후후, 자연과 우주를 통해 에너지를 취하고 성장하는 창조의 별과 다르지. 멸망의 별들도 엄연히 별이었던 탓에 우주에서도 에너지를 얻는 것도 가능하긴 했다만. 나를 더욱 강하게 하는 건 파괴와 죽음이었달까.

- 내 육신이 되었던 소년 기억하나? 그 소년은 성장해서 청년이 되었었지. 네가 그림을 실현시켜서 죽게 만들었던. 그는 부모와 세상에 버림받고 짓밟혔던 자이다.

-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자이지. 나는 소년의 몸을 빌려 존재하게 되었다. 그 소년은 내가 되었고 나는 그 소년이 된 거야.

- 나는 모든 거슬리는 자를 제거했다. 소년의 부모도 예외가 아니었어. 나는 이 세상을 재창조하기로 마음먹었지. 너희는 그걸 파괴라 말했지만 내게는 재창조였거든.

“웃기는 소리.”

멀쩡한 생명을 죽이거나 변이하게 만들어 괴수로 만드는 걸 재창조라고 말하다니.

- 이제 곧 찾아가도록 하지.

그의 그러한 말을 끝으로 나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이제 곧 찾아가도록 하지.’라는 말소리가 내 귓가에 달라붙듯 여전히 기분 나쁘게 맴돌았다.

똑똑-

노크 소리가 나더니 서재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루나가 빼꼼 고개를 들이밀더니 말했다.

“오빠, 시간이 늦었지만 아침 먹어요. 브런치 먹을 시간이네.”

“그래, 내려갈게.”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톡 메시지를 확인하니 수호의 톡이 와 있다.

- 2050 : 제가 설명하는 것보다 영상을 보여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이메일로 파일 하나를 보냈습니다. 시간선의 변화는 시시각각이니, 이젠 제가 기억하며 기록해두는 일도 여의치 않습니다.

- 2050 : 이제까지 저는 2023년의 AI 수의 도움으로 시간선 변화를 전부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수, 이메일에 수호가 보낸 영상 파일 좀 열어줘.”

그러자 내 눈동자에 있는 스마트 렌즈가 작동하여 3D 디스플레이가 눈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화면에 AI 수의 메시지가 보였다.

<네, 고수님의 이메일을 확인했습니다. 수호님이 10분 전에 보내신 영상 파일을 열겠습니다.>

이윽고, 내 눈앞에 생생하고도 입체적으로 보이는 영상이 열렸다.

나는 화면을 손으로 터치해서 조금 확대했다.

드론이 높은 공중에서 촬영한 영상을 편집한 듯했다.

내 시야에 펼쳐지는 미래의 한반도 풍경.

일전에 보았던 모습과 커다란 차이는 없다.

푸른 하늘과 초록빛 산, 평범해 보이는 들녘.

파괴된 옛 도시의 흔적도 보였다.

생존자들은 새롭게 세워진 미래 도시에 대부분 거주하고 있었다.

영상을 보는 동안, AI 2050의 설명이 자막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현재 2052년의 세계는 이전 시간선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전 시간선에서 들끓던 끔찍한 괴수와 멸망의 별, 회색 폭풍, 괴수들의 영역, 멸망의 탑은 전부 사라졌습니다.>

한반도 풍경이 보이던 영상은 이제 다른 나라를 촬영한 내용으로 장면이 넘어갔다.

미국과, 일본, 중국, 그 외의 여러 나라.

그 모든 나라는 한반도의 풍경과 별반 다른 바가 없다.

그곳 역시 푸른 하늘 아래 훼손되지 않은 자연 풍광이 보였다.

또한, 파괴된 도시 터가 곳곳에 있었다.

<이전 시간선에선 괴수와 멸망의 별, 회색 폭풍이 아포칼립스를 불러왔었다면, 지금의 시간선에선 인간이 아포칼립스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인간?”

<어느 시점에 이르면, 사람들은 갑자기 미쳐버린 것처럼 서로를 공격하고 살의에 사로잡히게 될 겁니다. 통제를 잃어버린 각 나라의 무기 시스템으로 인해, 미사일이 발사되고 핵이 떨어질 겁니다.>

<그 탓에 도시가 파괴되고 무수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고수님, 기억하십시오. 네 번째 재앙이 시작되는 시점은 정확히 내일 정오입니다. 그리고 경계하십시오. 원흉에겐 꿈을 통해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 꿈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고 그들을 통해 원흉은 자신의 존재를 퍼트릴 것입니다.>

영상 속의 생존자들은 확실히 그 수가 줄어들어 있다.

괴수가 없는데도 생존자 수는 적었다.

나는 참담한 표정으로 2050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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