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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49화 (149/153)

멸망 구속 2

뉴욕에 회색 토네이도를 일으키는 원흉이자 세 번째 재앙.

그는 백악관 집무실에 머물고 있었다.

그의 외양은 미국 대통령과 똑같은 모습이다.

60대 나이의 백인 남성.

그는 대통령을 흉내 내는 중이었다.

오늘 새벽, 그가 지구에 이르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미국 대통령의 거처였다.

그곳에서 대통령을 잡아 가둔 후, 그는 대통령으로 둔갑하여 집무실로 출근했었다.

그리고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가기 위한 계획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통화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전화를 받던 재앙의 태도는 어딘지 위화감이 돌았다.

그를 본 비서들은 조금 이상하다고도 생각했었지만 그의 존재를 의심하진 않았다.

누가 보아도, 그는 미국 대통령 얼굴이었으니까.

전화 통화할 때, 한국 대통령은 말했었다.

<뉴욕에서 부는 토네이도가 워싱턴으로 향할 거랍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방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 토네이도의 회색 입자는 모든 생명체에 치명적이라고 알려졌지만. 그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협력하여 혼란을 최소...>

재앙은 한국 대통령의 말을 자르며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토네이도가 워싱턴으로 향할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네?>

“그리고 토네이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

<아, 그게...>

“토네이도는 뉴욕과 워싱턴뿐만 아니라 너희 한반도도 삼킬 것이다.”

<......>

“아니지. 토네이도가 아니라 핵과 첨단 무기가 이제 곧 한반도를 삼키게 될 것이지.”

그러고서 그는 전화 통화를 일방적으로 끝냈다.

그의 표정과 눈빛이 유난히 섬뜩하고 차가워서, 주변인들은 의구심을 품었다.

대통령께서 왜 저러시지.

원래 저런 분이셨나?

어딘지 소름이 돋는걸.

"그렇게 전화를 끊으시면 어떡합니까?"

비서 중 한명이 충언을 하기도 했다.

뉴욕에 난데없이 나타난 회색 토네이도 때문에 비상상황인데.

오늘따라 대통령마저 이상한 행동을 보여서, 백악관에 머무는 이들은 더욱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재앙이 고개를 돌려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 나라에서 무기와 군대를 담당하는 우두머리가 누구지?”

재앙은 이곳 세상을 더욱 혼란하게 만들 생각이다.

핵무기나 첨단 무기, 미사일이라 해도 그에겐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었으나.

그래도 귀찮은 것이 될 게 분명하니, 전부 소모해서 이곳 세상의 주요 시설을 파괴할 계획이었다.

고수가 앞선 재앙들을 다 막아버린 상황이라, 궁지에 몰리긴 했다.

다섯 재앙으로 존재하는 그인데.

벌써 두 개의 재앙이 고수에 의해 소멸하지 않았던가.

고수는 세 번째 재앙인 그를 찾고 있는 듯하나, 여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거다.

그는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그래. 엉뚱한 곳이나 실컷 찾아보라지.

잠시 후,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 자가 있다.

그는 국방 장관이었는데, 어떤 젊은 남자와 동행했다.

국방 장관은 안으로 들어서더니 집무실에 있던 이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다.

재앙은 고개를 들고 의아한 시선으로 국방 장관을 응시했다.

“네가 국방 장관? 너 누구지?”

그는 국방 장관을 보고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한쪽 눈썹을 치켰다.

그러자 국방 장관과 함께 들어왔던 남자가 성큼 다가섰다.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있는 너야말로 누구지?”

명백하게 들려오는 한국어.

그를 보던 재앙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제야 뭔가 알아챘는지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너!”

그러자 남자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래, 나야. 어떡하나, 딱 걸려 버렸네.”

* * *

나는 장위와 창조의 별들과 함께 백악관까지 왔다.

장위의 은신 능력 덕분에 백악관 내부까지 들어선 우리.

대통령 집무실 밖에 머물다가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이 국방 장관 어쩌고 하는 대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은신 능력을 풀고, ‘외형 변형’ 능력이 있는 한별이 국방 장관으로 둔갑했다.

한별은 내 외양도 바꾸었다.

거울로 확인해보지 않아 어떤 얼굴로 바꾸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한별의 ‘외형 변형’으로 두 사람까지 외모를 바꿀 수 있어 다행이다.

한별과 나는 대통령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 같았으면, ‘시간 능력’을 사용했을 나였지만.

지금은 ‘시간 능력’이 사라져서 시간을 멈춘다거나 과거로 돌릴 수 없다.

다만, 내 시간 능력으로 인해 나타났던 모든 결과물만 3일 동안 유지될 수 있는 상태였다.

새롭게 시간 능력을 발현하는 건 어려웠으나, 이미 발현했던 능력은 아직 유지되고 있는 셈.

뭐, 시간 능력을 사용한다고 해도 어차피 원흉은 금방 훼파했을 거긴 하다.

“네가 국방 장관? 너 누구지?”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있는 너야말로 누구지?”

내가 한국어로 말하자 사납게 일그러지는 세 번째 재앙의 얼굴.

“너!”

“그래, 나야. 어떡하나. 딱 걸려 버렸네.”

‘멸망 구속’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처럼 태연자약할 수 없었을 거다.

그만큼 이 능력은 멸망 속성의 모든 존재에게 강력할 것이니.

재앙은 당황하는 듯했으나, 이내 평정을 찾고 이죽거렸다.

“날 찾아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저번처럼 시간 능력을 사용해보시지? 네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시간을 조종하고 그림 그리는 것뿐이잖아?”

그의 조소에 나는 조용히 미소만 머금었다.

그는 이런 내 태도가 꺼림칙한 것 같았으나 계속 떠들었다.

“너도 알다시피 이젠 시간 능력을 사용해도 소용없어. 그만큼 난 강해졌거든. 혹시 그림을 그려서 날 공격할 셈인가? 그럼 너는 미국 대통령을 시해하는 자가 될 거야. 진짜 미국 대통령이란 작자가 당할 수도 있겠네. 큭큭. 그리고 네가 나에게 손을 대려는 순간, 경호원들이 너희를 공격하려 들걸. ”

그는 거들먹거리면서 경호원을 부르려 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다가 입을 뗐다.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 안 되겠군. 대통령은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거든.”

“대통령의 책임 따윈 내 알 바 아니지.”

나는 엄중해진 어조로 재앙에게 명령했다.

“원흉의 세 번째 재앙, 무릎 꿇어. 그리고 내게서 눈을 떼지 마라.”

“뭐?”

재앙은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치켜뜨다가 이내 경악한 눈빛을 했다.

이제까지 자약하며 오만하게 거들먹거리기까지 하던 그가 갑자기 몸을 떨었다.

증오와 분노, 경악, 두려움이 점철한 그의 눈에 핏발까지 세우며 몸을 떨더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게 있는 ‘멸망 구속’ 능력.

그 능력이 본격적으로 발현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내 앞에 털썩 주저앉듯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를 지켜보다가 빙긋 웃었다.

명령을 내리는 내 말에 멸망은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

그가 아무리 저항하고자 해도 내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

이것이 멸망 구속 능력이다.

물론, 이 능력이 제대로 적용되려면 조건이 있었다.

원흉이 내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때 집무실 밖이 소란하며 경호원과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대통령이 위험에 빠졌다는 걸 눈치챈 이들이다.

나는 다시 외쳤다.

“네 본모습을 드러내지?”

그러자 대통령으로 둔갑해 있던 재앙이 본모습을 드러냈다.

잿빛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지닌 젊은 남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을 보호하고자 들이닥친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서 멍청해진 얼굴을 했다.

나는 재앙의 멱살을 붙들고 그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말했다.

“당신들 대통령은 백악관 관저 서쪽 침실의 옷장 안에 결박된 채 있을 겁니다. 그리고 토네이도는 이제 곧 멈출 겁니다.”

그러고는 한별의 공간 이동 능력을 공유하여 발현했다.

* * *

한별과 내가 재앙을 데리고 이동해간 장소는 백악관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나는 재앙의 멱살을 여전히 붙든 채 명령했다.

“당장 토네이도를 멈춰. 앞으로 너는 어떤 능력도 사용해선 안 돼.”

‘멸망 구속’은 참으로 경이로운 능력이었다.

내가 재앙에게 명령을 내리면, 내게서 내뱉어진 언어는 즉각 멸망 속성의 재앙을 옭아매고 압박했다.

이러한 능력이 내게 나타나서 좋긴 하다만.

왜 갑자기 시간 능력이 사라지고 이런 능력이 생겨났는지 알 수가 없다.

재앙은 증오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면서도 몸을 떨었다.

곁에 있던 한별이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던지더니 내게 말했다.

“고수, 토네이도가 멎었습니다.”

“잘 되었네.”

“이제 날 풀어줘.”

재앙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풀어달라고? 내가 왜?”

“그럼 날 죽일 텐가?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죽음 그 자체다. 그러니 너는 나를 죽일 수 없어. 앞서 네가 제거했던 두 개의 재앙은 내 일부일 뿐이거든.”

“너는 내가 묻는 말이나 답해. 네 번째 재앙에 대해서 말해봐.”

그러자 그는 입을 다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는 마치 내 명령에 저항하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며 핏발 선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를 옭아맨 힘이 그를 결국 움직였는지 토설하기 시작했다.

“네 번째 재앙은 이제 곧 나타날 거지만 나는 계획을 수정했다. 너 때문이지.”

“어떻게 수정했는데?”

“이젠 내가 조종하는 모든 사람을 통해서 존재할 생각이다. 너는 세상과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했지만, 그들은 너를 대적할 거다. 물론, 너는 그들에게도 명령을 내릴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모든 이들이 너의 눈을 보게 할 수는 없을 거야.”

‘멸망 구속’ 능력의 발현 조건을 눈치챈 그다.

“너 다섯 번째 재앙에 관해서도 말해.”

“다섯 번째 재앙은 나의 존재함이 가장 짙게 깃든 몸이라고 할 수 있지. 가장 강하고 가장 나다운 존재다. 죽음 그 자체라는 표현은, 그에게 걸맞다고 할 수 있지. 그가 있어서, 나는 죽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었던 거다.”

“......”

“그러니 세 번째 재앙의 몸이 사라진다 해도, 나는 죽는 게 아니야.”

그렇게 말하던 재앙은 자신의 세 번째 존재함을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팟! 스스스-

그의 몸이 돌연 잿빛의 입자로 화하더니 사방으로 흩어져버리는 것이다.

그의 멱살을 잡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손을 거두고 뒷걸음질을 했다.

회색 입자가 내 손에 들러붙으려고 하자...

한별이 생명의 바람을 강하게 일으켰다.

휘이이이-

나는 내 손에 들러붙으려던 회색 입자를 보았다.

생명의 바람에 의해 전부 소멸하고 있다.

그리고 회색 입자에 잠시 노출되었던 내 손은 회색으로 피부가 변색 되었다가 도로 회복되었다.

세 번째 재앙을 소멸한 탓에 내게 보상이 들어왔다.

『멸망을 구속할 창조 능력자 1레벨

재능과 능력의 주인 : 99

절대 창조력 : 99

공간 이동 : 45

멸망 구속 : 131

그랜드 코인 : +9999999.』

나는 능력 스탯을 확인하다가 한숨 돌리듯 곁에 선 한별에게 입을 열었다.

“한별아, 내게 있는 멸망 구속 능력 말이야.”

“네.”

“이건 왜 갑자기 나타났던 걸까? 넌 알겠어?”

한별은 초록색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를 깊이 들여다보면, 자연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태초의 오염되지 않았을 대지와 하늘, 초록빛 생명이 그와 닮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멸망을 대적하기 위해 나타났던 게 아닐까요? 애초에 고수를 비롯한 모든 최초 능력자의 능력은 멸망을 대적하거나, 혹은 인류가 생존하고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나타났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가?”

“고수가 원흉이라 부르는 존재는 본디 이곳 세계의 섭리를 벗어난 존재입니다. 그가 이미 세계의 균형을 깨뜨리고 파괴하려고 했으니, 이에 대항할 힘도 나타날 수밖에 없었을 거로 여겨집니다. 고수의 시간 능력이 사라진 건...”

“......”

“멸망을 대적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이젠 고수에게 필요 없는 능력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멸망’을 멸할 때마다, 고수의 능력은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최후에는 다섯 번째 재앙을 상대할 힘도 나타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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