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47화 (147/153)

재앙과 충돌하다 3

언젠가 수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포칼립스를 막을 방도는 내 능력에 있다고 했었다.

능력이 진화할 때, 아포칼립스 원흉을 막을 방도가 생길 것이라고도 했었다.

그의 말이 옳다.

이제는 다섯 재앙으로 나뉘어 존재하는 원흉.

그들의 몸체는 다이아몬드보다 강해서 웬만한 무기로도 파괴할 수 없고.

높은 온도의 불길에도 강해서 태울 수도 없다.

염력으로도 막을 수 없다.

운별이 염력을 사용하여 붙들어 놓으려 해도, 번번이 공간 이동 능력으로 빠져나가곤 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데스의 공간 이동 능력은 미약하다는 점.

거기다 재앙이자 원흉의 회복력은 목을 떨어뜨려도 붙을 정도니.

확실히 그를 죽일 유일한 방도는 나의 실물 전환 능력뿐이었다.

나는 두 번째 재앙인 거대한 소행성을 막기 위해 밤새 애를 썼다.

진땀 흘리며 그림을 그려야 했다.

지름 6킬로미터나 되는 크기의 소행성을 그려내는 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 탓에 아침 6시 무렵이 되었을 즈음에야, 가까스로 두 번째 재앙의 지름을 3킬로미터까지 줄였을 뿐이었다.

아마, 세 차례 그림을 완성해서 실물 전환했을 거다.

그러는 사이, 두 번째 재앙의 힘도 그만큼 약해지긴 했다.

나는 별의 시야로 보았다.

러시아, 유럽, 미국에서 미사일을 발사하여 ‘데스’라 불리는 재앙을 격추하는 광경을.

그런데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재앙의 모습을.

지금쯤, TV를 통해 ‘데스’를 지켜보던 무수한 사람들은 절망과 공포에 빠졌을 거다.

나는 우주에 있을 한별에게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 한별아, 돌아와.

- 재앙들을 막길 원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 어차피, 그곳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냥 여기에서 세 번째 재앙이 일으키는 회색 토네이도를 막는 편이 더 나을 거야.

- 네, 알겠습니다.

나는 운별의 시야를 공유하는 중이었다.

‘데스’의 거대한 모습이 내 시야에 계속 인지되고 있었다.

가끔 시간 능력을 사용해봤지만, 이젠 이력이 나다 못해 숙달되었는지.

원흉은 즉각 내 시간 능력을 파훼해버리곤 했다.

나는 AI 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수! 우주 드론을 다시 더 보내야겠어.”

3D 디스플레이에서 그림 폴더를 손으로 터치하여 드론 스무 대를 실물 전환했다.

드론들이 홀연히 생성되자 AI 수가 즉각 드론을 조종했다.

투명한 우주 드론들이 내 주변에서 어지러이 날아올랐다.

나는 드론 한 대를 택하여 ‘절대 창조력’과 ‘공간 이동’ 능력을 심어놓았다.

그러고는 AI 수에게 말했다.

“드론들이 능력을 심은 이 드론을 호위하게 해.”

<네, 알겠습니다.>

위윙, 윙-

드론들이 하늘로 일제히 솟아오르며 비행했다.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데스’는 때로 공간 이동을 사용하며 무섭게 떨어지고 있었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 * *

그 시각, 청와대에선 긴급회의가 열렸다.

사실, 회의랄 것도 없었다.

새벽부터 이 자리에 모여있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주요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긴박한 분위기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으나.

지금은 절망적으로 손을 놓은 상태다.

한국 항공 우주 연구원인 김 박사가 모니터를 보며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데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소행성이 아닙니다. 나사에서도 ‘데스’가 어디서 왔는지 왜 파괴가 되지 않는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데스는 일직선으로 떨어지지 않고 때로는 방향을 바꾸기도 해서 충돌 지점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만. 현재로선 한반도에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으음.”

대통령은 침음을 흘렸다.

누군가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왜 하필, 한반도에...”

그러자 김 박사는 쓴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데스가 굳이 한반도가 아닌 다른 곳에 떨어진다고 해도, 나라가 끝장나는 건 똑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사에서 처음 데스의 지름이 6킬로미터 정도 될 거로 발표했었는데. 재차 발표한 건 3킬로미터 정도니까요.”

“그래봤자, 6킬로미터나 3킬로미터나 떨어지면 다 죽게 되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

대통령이 비통한 어조로 물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충돌 예상 시간은 오전 8시이니, 40분 정도 남았습니다.”

“정녕 데스를 도중 파괴하거나 몇 조각으로 나눌 방법은 없는 거겠습니까?”

“지금도 미사일을 무수히 격추하는데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것은 홀연히 사라졌다가 몇백 미터 이동하여 나타나기도 한다는데. 이 또한 과학적으로 아직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말했다.

“이제 결정하셔야 할 듯합니다. 국민들도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은 무겁게 침묵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곳 세상은 평화로웠는데, 하루아침에 세상이 멸망하게 되었다니.

이 순간에도 악몽을 꾸는 것만 같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그 누가 상상조차 했으랴.

차라리 이 상황이 악몽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든다.

대통령은 입을 열었다.

“지금 마지막 대국민담화를 하겠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길 보십시오!”

그가 모니터를 손으로 가리켰다.

대형 모니터에는 나사(NASA)에서 내보내는 ‘데스’ 촬영 영상이 보이고 있었다.

대통령은 그 영상을 보고서 눈을 커다랗게 떴다.

우우웅, 우우웅-

그때 대통령의 핸드폰이 진동하며 울렸다.

액정을 보니 발신자를 알 수 없다.

대통령은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곧, 젊은 남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대뜸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데스’는 지구와 충돌하지 않습니다.>

“누구십니까? 이 번호는 어떻게...?”

<저는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방금, ‘데스’가 변화를 보였을 겁니다. 제 전화를 끊은 직후, 조금씩 파괴되는 ‘데스’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데스가 파괴된다고요?”

<네. 이제 곧 발생하는 회색 토네이도도 위협이 되지 않을 겁니다. 토네이도는 뉴욕에서 먼저 시작해서 워싱턴으로 향할 것이지만, 회색 토네이도를 막을 또 다른 바람이 일 것입니다. 그 바람 탓에, 모든 생명체에 파괴와 변이를 불러일으키는 회색 입자가 소멸할 겁니다.>

“그게 무슨...”

<대통령께서는 다만 이 나라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고는 전화가 뚝 끊겼다.

대통령은 핸드폰을 내려다보다가 모니터를 응시했다.

얼마 안 있어, 전화 온 남자의 말대로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데스’가 돌연 두 조각이 났다.

영상을 본 이들이 흥분한 얼굴로 외쳤다.

“데스가 파괴되는가 봅니다!”

“오오!”

“미사일로 격추했던 일이 이제야 결과가 나타나는 걸까요?”

사람들이 기뻐하며 화색을 띠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닙니다.”

“네?”

“데스는 미사일 같은 거로 파괴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누군가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데스’는 지구와 충돌하지 않을 겁니다. 멸망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대통령은 감정이 요동하는지,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그는 손으로 눈을 훔치더니 퍼뜩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요청했다.

“아! 백악관과 지금 연결해주십시오.”

* * *

나는 드론을 보내어 방금 실물 전환에 성공했다.

‘데스’의 재질을 일반 암석으로 바꾸는 그림이었다.

아무래도 원흉의 일부에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내 에너지는 막대하게 소모되었다.

내 곁에서 은별이 계속해서 생명의 폭풍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덕분에 진즉 탈진했을 내가 여전히 능력을 사용하는 중이다.

나는 AI 수가 알아낸 대통령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으로 건 것은 아니고, 타블렛 펜의 디스플레이에 통화 기능을 사용했다.

이것은 추적이 불가능해서 누가 대통령에게 전화를 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을 터였다.

대통령과 통화를 마친 후, 나는 운별에게 말을 걸었다.

“운별.”

그러자 내 곁으로 운별이 다가오며 답했다.

“네.”

그는 조금 전, 우주에서 이곳으로 돌아와 있던 터다.

“염력으로 두 번째 재앙을 파괴해!”

“네, 지금 파괴할게요.”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의 어느 방향을 응시했다.

운별의 시야를 공유해서 바라보니, ‘데스’라 불리는 소행성의 모습이 내게 인지되었다.

운별의 강대한 염력이 두 번째 재앙에 가해졌다.

지구로 떨어지던 별이 크게 진동했다.

쿠구구구구-

그래도 지름이 3킬로미터나 되는 까닭에, 금세 조각나거나 부서지진 않는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다가 한별의 시야를 공유하여 바라보았다.

미국 뉴욕의 풍경이 내게 각인되듯 보였다.

거친 바람이 불던 그곳.

어느새 잿빛 거대한 토네이도가 형성되려 한다.

하지만 그곳에 또 다른 바람이 강하게 일어났다.

한별은 창조의 별 중에서 ‘생명의 폭풍’ 스탯이 가장 높았다.

원흉과 거뜬히 대적할 만할 그다.

거센 바람으로 인한 피해는 있겠으나, 회색 입자로 인한 피해는 없을 터.

모든 회색 입자가 소멸될 것이었다.

나는 다시 운별의 시야를 공유하여 ‘데스’라 불리는 별을 바라보았다.

한반도로 향하던 소행성.

그새, 별이 둘로 조각나 있다.

내 입꼬리가 작게 말려 올라갔다.

이대로라면 대기권에 이르게 전, 두 번째 재앙을 소멸할 수 있겠지.

아포칼립스를 막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점차 선연해진다.

3D 디스플레이를 힐끗 보니, AI 수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

<충돌까지 30분 남았습니다.>

나는 한별에게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 한별아, 세 번째 재앙의 몸체를 내가 볼 수 있게 해줘.

- 그가 몸을 숨겼습니다. 외양도 바꾼 듯합니다.

내가 그림을 그려 실물 전환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가 외양을 바꾸고 몸을 숨긴 듯했다.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 최대한 원흉을 추적해줘. 어차피 토네이도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거야.

- 예.

잠시 후, 운별이 내게 입을 열었다.

“방금, 두 번째 재앙이 파괴되었습니다.”

디스플레이 화면엔 AI 수의 메시지가 이렇게 적혀 있었다.

<충돌까지 20분 남은 시점에서 ‘데스’가 파괴되었습니다.>

그것을 보며 나는 내 스탯을 확인했다.

“어?”

여느 때처럼 스탯이 올라 있고 코인이 들어왔겠지 했는데.

내 능력 스탯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멸망을 구속할 창조 능력자 1레벨

재능과 능력의 주인 : 94

절대 창조력 : 94

공간 이동 : 40

멸망 구속 : 126

그랜드 코인 : +9999999.』

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시간의 문’이라는 능력이 사라져 있다.

그 능력에 있던 스탯 수치는 ‘멸망 구속’이라는 능력에 더해져 있다.

‘멸망 구속’은 매개 능력을 대신하여 나타난 모양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시간 능력이 사라졌다면, 이 능력을 통해 2052년과 소통하게 되는 일은 어떻게 된 거지?

그렇게 혼란스러움으로 생각할 때, 나는 저절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시간 능력이 어찌 되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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