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46화 (146/153)

재앙과 충돌하다 2

시간이 멈추자 바로 시간 능력에 대한 저항이 일었다.

츠, 츠-

다섯 재앙을 통해 존재하는 원흉이 저항하는 것이다.

정지된 이곳 세계에 이상 현상이 일었으나 나는 시간을 천천히 뒤로 돌렸다.

그러자 시간은 거슬러 흐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재앙을 그림으로 그린 후에 한 번 실물 전환을 했던 시점에서 시간을 멈추었다.

피투성이로 얼룩진 인간 외형을 지녔던 첫 번째 재앙.

그것은 이제 금이 쩍쩍 갈라진 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츠츠-

그때 원흉의 저항으로 인해 시간 능력이 풀렸다.

시간을 잠시 옭아매었던 힘이 느슨해졌던 것을 감지하고 있던 나.

시간 능력을 곧바로 재발현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은별의 도움으로 생명 에너지를 보충받고 있으니, 이전의 나와는 다르다.

이전이었다면 지금쯤 에너지 소모로 극심한 피로감이 느껴졌겠지만.

지금은 아직 쌩쌩하다.

나는 시간을 멈추고는, 첫 번째 재앙을 그린 두 번째 그림을 완성해냈다.

츠츠-

억지로 붙들어 놓았던 시간이 또 풀릴 듯하다.

원흉도 시간 능력으로 내게 하도 당하다 보니 이력이 났나 보다.

시간 능력이 금세 풀려버리고 말았다.

또다시, 시간이 정상으로 흐르기 시작하자 나는 재빨리 완성한 그림을 우주 드론으로 전송했다.

그러면서 AI 수에게 외쳤다.

“수! 두 번째 그림 실물 전환해! 적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마!”

<알겠습니다, 고수님.>

그때, 조금 전에 겪었던 것과 같은 원흉의 거대한 염력이 나타났다.

내가 켜둔 3D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멸망의 힘이 느껴졌다.

AI 수가 드론을 작동해서 이곳과 지속적인 전송이 이루어지는 터라, 원흉은 그 연결점을 이용했다.

‘충격 전이’ 능력을 발현된 것이다.

우주 너머에서 발현한 재앙의 염력이 이곳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즉시 운별의 염력을 공유하여 재앙의 염력을 방어했다.

엄청난 파괴력이 내가 머문 일대를 강타했다.

은별의 ‘생명의 폭풍’이 더욱 강하게 일었다.

평소 봄바람처럼 부드럽기만 하던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댔다.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찢어질 듯 거칠게 펄럭거렸다.

아까처럼 또다시 염력에 의해 밀린다.

운별의 염력을 공유하여 방어함에도, 재앙의 거대한 염력은 내가 선 곳을 찍어눌렀다.

공간의 압박이 느껴졌다.

마치 내가 선 곳에만 중력이 비정상적으로 작용하는 듯했고.

공간이 접히며 강제로 구겨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럴수록 생명의 폭풍이 더욱 강하게 일어서 회오리처럼 바람기둥마저 생겨났다.

쿠구구구구―

거친 바람 탓에 정신이 다 없어졌지만, 생명의 폭풍은 재앙의 염력을 조금이나마 상쇄했다.

나는 염력을 방어하면서도 ‘별의 시야’ 능력을 공유하여 한별이 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한별이 지니고 있던 우주 드론을 AI 수가 조종하는 중이다.

AI 수는 내가 보낸 그림으로 마침내 실물 전환에 성공했다.

내게서 에너지가 대거 빠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지름 500미터 크기의 첫 번째 재앙.

그것은 두 갈래로 무참히 쪼개졌다.

내가 그린 그림이 현실로 실현된 것이다.

다이아몬드보다 강했던 재앙의 재질마저 일부가 무른 암석으로 바뀌었다.

재앙의 염력이 더는 견디기 힘들겠다고 여겨졌을 무렵.

첫 번째 재앙이 파괴되자, 내가 선 곳에 초월적인 파괴력으로 임하던 염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한순간에 흩어져버린 것이다.

재앙의 염력이 사라지자 나는 한숨을 돌렸다.

아, 죽는 줄 알았다.

한별은 조각난 재앙을 보고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이동 능력으로 공간을 뛰어넘어가서 조각난 재앙을 주먹으로 파괴했다.

그 순간, 내게 보상이 들어왔다.

내 능력 스탯과 창조의 별 능력이 널을 뛰듯 크게 점프했다.

첫 번째 재앙을 죽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창조 능력자 56레벨

시간의 문 : 90

재능과 능력의 주인 : 90

절대 창조력 : 89

공간 이동 : 36

매개 능력 : 32

그랜드 코인 : +9999999.』

한별과 운별의 수치는 이러했다.

『창조의 별

생명의 폭풍: 157

별의 시야 : 75

공간 이동 : 99

외형 변형 : 46

그랜드 코인 : +9999999.』

『창조의 별

생명의 폭풍 : 77

별의 시야 : 75

염력 : 113

그랜드 코인 : +9999999.』

보상이 들어왔다는 건, 확실한 제거가 이루어졌다는 것.

하지만 그 사실에 흡족할 틈도 없었다.

콰득!

한별이 우주 드론을 콰득! 손으로 움켜 부서뜨렸다.

우주 드론이 재앙에 의해 조종당하게 된 까닭이다.

* * *

나노카는 몇시간 후면 닥칠 미래를 생생한 환영으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보게 된 예지 환영은 평소와 다르다.

이번 환영은 미래가 변화하는 모습까지 그녀의 눈에 여실히 나타난 것.

2023년 12월 27일, 아침

어슴푸레한 하늘은 여느 때처럼 점차 밝아왔다.

여느 때와 같은 차분한 아침이 시작될 참이었다.

하지만 고요하던 세상은 이내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곳곳에 대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유럽부터 시작했던 대지진은 인도, 아프리카로 옮겨갔고 이후로는 미국으로 향했다.

나노카에게 보인 예지 환영은 유럽의 어느 지역이었다.

이탈리아 로마의 시가지.

그곳의 노면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사람들은 다들 건물 밖으로 뛰어나왔고, 여기저기 아우성이 터졌다.

건물들이 금이 가고 곧 무너질 듯했다.

긴박해 보이는 광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입이 바싹 마르게 했다.

그 광경은 한낱 영화가 아니라 실제가 될 일이기에.

환영을 보던 나노카는 마음의 충격이 인다.

사실, 최근 환영을 보면서 끔찍하고 괴로우며 비극적인 장면을 수도 없이 보았던 터라.

그녀는 신경 안정제도 처방받아 먹고 있었다.

이내 예지 환영에서 젊은 여자가 보였다.

30대 후반 정도 되었을까.

그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달리고 있었다.

아마도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기 위해 달리는 거겠지만.

그녀와 아들의 목숨을 부지할 안전한 피난처가 있을지 알 수 없다.

쿠구구구구-

쿠구쿵!

이젠 도로가 끊어지고 노면이 커다란 입을 벌리듯 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틈으로 사람들이 삼켜지기도 했다.

무너지는 건물들이 있었다.

달리던 젊은 여자는 가까스로 갈라진 노면을 피하였으나, 건물이 무너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건물의 잔해 하나가 아들을 덮치려 하자 여자는 비명을 지르듯 아들의 이름을 외치며 아이를 밀어냈다.

“다비데! 아악!”

쿵!

여자는 건물의 잔해에 하반신이 깔리고 말았다.

아들이 엄마를 부르짖는다.

“엄마아! 엄마!”

아들은 지나가는 사람에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그 누구도 그들을 돌아보는 자가 없었다.

지금은 자신과 가족을 건사하고 지키는 것도 여력이 없는 탓이다.

“엄마!”

아이는 울부짖어보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엄마를 구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쿠구궁-

젊은 여자는 아직 의식이 남아 있어서 아들에게 말한다.

어서 피하라고.

하지만 아들은 고개를 가로 흔들 뿐이다.

아이는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저 멀리서 회색 토네이도 접근하는 게 보였다.

회색 입자를 띤 거친 바람이 이곳까지 불었다.

또다시 건물이 무너졌다.

커다란 잔해더미가 아이를 덮쳤다.

그걸 본 나노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예지 환영을 계속 지켜보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때!

츠츠-

그녀가 보던 환영이 흐릿해지면서 투명한 빛으로 전기가 지직거리듯 이상 현상이 일었다.

그 광경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예지 환영을 보던 중에, 이런 현상이 이는 건 처음.

흐릿해졌던 환영이 이내 선연해졌다.

다시 또렷해진 환영 내용은 조금 전과 달라져 있다.

방금 보았던 대지진이 지워진 것이다.

유럽에 나타난 대지진은 없는 일이 되어 있다.

그래서 건물 잔해에 하반신이 깔렸던 젊은 여자의 비극은 비껴갔다.

그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무사히 달려갈 뿐이었다.

저 멀리서 회색 토네이도가 이는 것이 보인다.

그들은 이제 토네이도를 피해 대피소로 향할 것이었다.

* * *

27일 아침 6시, 한나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이내 화면에서 뉴스 속보 장면이 흘러나왔다.

“오늘 새벽 5시경, 지구의 대기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지름이 3킬로미터에 이르는 소행성이 나타났다고 나사(NASA)에서 밝혔습니다. 이 소행성은 ‘데스’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갑작스럽게 출현했습니다. ‘데스’는 아침 8시면 지구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곧, 미국 항공우주국장의 브리핑이 있을 예정입니다.”

그때 루나가 아기를 품에 안은 채 1층으로 내려왔다.

아기가 오늘따라 칭얼거린다.

그녀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한나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새벽에 바람 소리가 무섭던데 못 들었어?”

“들었어. 그보다 뉴스를 봐. 소행성 충돌이 있을 거래.”

“뭐?”

“저 소행성이 떨어지면 지구가 파괴될 가능성이 있대. 지구의 생명체가 80% 이상이 사라질 거라는데? 지금으로선 러시아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어.”

“어, 어떡해!”

“근데 제부는?”

“몰라. 지금 서재에도 없어. 밤늦게까지 또 서재에서 그림을 그리는 건가 해서 먼저 잤었거든. 근데 새벽에 바람 소리가 무섭게 나서 일어나 보니까 침실에도 서재에도 없네. 어디 갔지?”

“전화해봤어?”

“안 받아. 언니, 소행성이 충돌한다면 여긴 괜찮겠지? 여긴 그래도 튼튼한 지하벙커가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자위하듯 묻는 루나의 말에 한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아.”

루나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거실로 창조의 별 중 한 명인 ‘문별’이 들어섰다.

루나는 그녀를 보며 아는 척했다.

“문별.”

“루나, 걱정하지 마세요. 저 소행성이 그대로 지구에 충돌하게 되진 않을 거예요. 혹시 충돌한다 하더라도 뉴스에서 말하는 만큼의 피해는 없을 거예요.”

“그러면 좋겠는데. 지금 뉴스에서 하는 이야기들, 믿기지 않아요. 어떻게 저런 소행성이 접근하는 동안, 나사에서도 모를 수가 있어요?”

루나의 말에 한나도 말을 보탰다.

“저번에도 이런 비슷한 뉴스가 있었어. 유럽과 중국에 100미터 정도 크기의 작은 별 같은 게 대기권에 떴다가 사라진 적 있었거든.”

“저 소행성도 그랬으면 좋겠어. 데스인지 뭔지 하는 거, 갑자기 나타났던 거라면 그냥 또 갑자기 사라졌으면 좋겠어.”

한나와 루나의 대화를 조용히 듣던 문별은 작게 미소지었다.

“그렇게 될 거예요. 데스도 그렇게 사라질 겁니다. 하지만 만일 경우도 대비해야 하니, 가족들과 지하벙커 안으로 들어가세요.”

“지하벙커?”

“네. 고수가 그렇게 말을 전했어요. 거긴 안전할 거라고 했어요.”

“오빠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지금은 중요한 일로 저택을 비우셨고, 곧 오실 거예요. 양평에 계신 부모님은 지금 제가 가서 모셔오겠습니다.”

“그래요, 부탁할게요.”

문별은 고개를 조금 숙여 보인 후, 돌아서서 저택을 나갔다.

* * *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문별의 시야를 공유했다.

문별은 저택의 차고에서 차량 한 대를 꺼내 운전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양평으로 질주하면서 ‘별의 시야’로 서울 풍경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러한 그녀의 시야를 공유했다.

문별의 능력으로 보는 서울 광경.

혼란했다.

아직 출근 시간 전이라 그나마 혼잡함이 덜했지만, 갑작스러운 소행성 충돌 소식은 지구 멸망 급이라서 혼란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이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육안으로도 소행성이 보였다.

그들은 두려움으로 가득했고, 기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벌써 짐을 챙겨 어디론가 떠나려는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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