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장의 블랙카드 2
수호는 2052년의 세상에 관해 말해주었다.
그는 그곳 상황을 영상으로 내게 보여주기도 했다.
3D 디스플레이를 통해 보는 입체 영상.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 한반도 풍경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한반도 통일 시의 풍경은 이전보다 거대해졌다.
높다란 빌딩이 보이고 드넓은 도로가 수 갈래로 나뉘어 뻗었으며, 맑은 한강이 흐르는 게 보였다.
그러한 풍경은 전에 아포칼립스를 살던 생존자들이 오래도록 꿈꿨던 풍경일 것이었다.
한강의 수면 위로 간간이 보이는 물고기들.
도로와 인도 사이에 열을 지어 자라난 초록빛 가로수.
그곳에 수많은 차와 행인이 오갔다.
숲을 이루는 고층 빌딩은 디자인이 독특했다.
미래 도시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건물마다 방어 시스템이 있었고.
도시 경계는 거대한 방어벽이 있었다.
그곳이 한반도의 도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세련되었고 깔끔했으며 미래지향적이었다.
나는 커다래진 눈으로 영상을 보다가 수호에게 말했다.
“도시가 상당히 커졌는데?”
“네, 그렇습니다. 현재 통일 시의 인구는 1000만 명이 넘고 그 외에 위성 도시와 기지, 쉘터까지 인구를 더하면 2000만 명이 넘습니다.”
“도시의 환경은 오히려 아포칼립스 이전보다 좋아졌는데?”
“한별 덕분입니다. 그리고 초창기에 존재하던 창조의 별들 덕분이죠. 아! 아버지가 심은 사과나무 덕분이기도 합니다. 사과나무는 현재 중국과 일본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셔서 사과나무는 이전처럼 반응을 나타내지 않지만요.”
“그렇군.”
“중국과 일본의 상황도 이전 시간선보다 나아졌습니다.”
나는 새삼 수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런 내 시선을 의식한 그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한결 좋아 보여서. 네 표정과 분위기가 전보다 더 부드러워졌어. 표정도 더 많아진 것 같고.”
수호는 짤막하게 훗 하고 웃었다.
“변한 건, 한반도의 환경만이 아니니까요. 제 삶도 변했습니다. 전 유년 시절을 저택에서 보내다가 대학은 한반도 통일 시에서 졸업했습니다.”
“대학?”
“네. 한반도 통일 시에선 ‘한반도 종합 대학교’가 있습니다. 한반도에선 가장 좋은 대학이죠.”
“오! 그래?”
“그곳에서 저는 전쟁 군사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한반도의 군사령관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사령관인 건 이전 시간선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저의 책임은 이전 시간선보다 더 무거워졌습니다.”
“그럴 테지. 한반도의 군사령관. 멋지네. 한반도의 모든 군대의 수장이 된 거잖아. 한반도군은 2052년 그즈음엔 가장 강력한 군대일 건데. 아무래도 인구수도 많아졌을 테니 군대 규모도 더 커졌겠네.”
“네.”
“요즘 비행선과 장갑차, 방어 시스템 무기를 틈이 날 때마다 그리고 있거든? 그러니 네가 있는 시기의 한반도군의 전투력은 강력할 거야.”
“네, 그래서 책임이 막중해졌습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수호, 대단하네. 자랑스럽다. 사실, 지금도 안 믿길 때가 있어.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
수호는 내 말에 조금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랑스럽다는 내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마치 그 말을 듣기 위해 이제까지 달려왔던 것처럼, 그는 기쁜 내색을 여실히 드러냈다.
확실히 수호는 이전과 같지 않다.
미래가 뒤틀리고 변하면서 그의 삶도, 그리고 그의 사소한 성품도 영향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수호의 성품 자체는 무뚝뚝한 건 변함이 없어서, 지금의 상황을 못내 어색해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목에 걸린 목걸이에 눈길을 주었다.
오늘따라 그 목걸이의 펜던트가 눈에 띈다.
루나가 수호를 임신했었을 즈음, 내가 티파니 매장에 가서 구매했던 미아방지 목걸이의 펜던트.
그걸 이제까지 간직하고 있었구나.
그 펜던트에 새겼던 사랑한다는 문구.
그 글귀가 수호에게 조금이나마 전해졌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 * *
나는 정원에 있는 사과나무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매개 능력 스탯이 오른 탓에, 원한다면 사과나무를 통해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사과나무가 심긴 곳 근방을 사과나무의 시점으로 볼 수 있는 거다.
물론, 육안으로 본다기보다 또 다른 감각으로 인지한다고 표현해야겠다.
덕분에 나는 중국, 일본, 인도에 심긴 사과나무를 통해 그곳 환경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사과나무가 있는 저택 근방은 이전보다 공기가 한결 좋아지기도 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모든 식물이 잘 자란다.
본디 매개 능력은 내 능력이 아니었다.
원흉을 죽임으로써 빼앗았던 능력 중 하나.
공간 이동 능력도 그러하다.
그런데 그러한 능력들이 내게로 온 순간, 멸망에서 창조로 속성이 바뀌어 ‘회복’을 끼친다.
나는 내 능력을 살펴보았다.
‘재능과 능력의 주인’이라는 명칭의 능력.
확실히 스탯이 오른 덕분에 한 단계 진화하여 능력 활용이 폭넓어졌다.
이제는 내가 능력을 일깨워주었던 사람의 능력을 공유하는 것만이 아닌...
원흉에게서 비롯된 매개 능력을 통해 매개체가 된 이의 능력도 내가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절대 창조력’ 스탯도 꽤 높아져 있다.
이 능력으로 내가 실물 전환하지 못할 것이 없다.
건물, 음식, 무기, 동식물까지 실물 전환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오직 한 가지.
절대 창조력으로 실물 전환하지 못하는 게 있다.
그것은 ‘인간’이었다.
하긴, 인정한다.
살아있는 인간을 창조한다는 건, 엄연히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지하벙커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인간형이 된 별들이 머물고 있다.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출입하지 않은 장소라서 별들이 지내기에 걸맞다.
나는 걸음을 옮겨 벙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 안에 들어서서 그들과 마주 앉았다.
나를 똘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별들.
한별만 20대 초반의 외모이고 나머지는 그보다 어렸다.
다섯 명의 창조의 별.
그들 각각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한별, 문별, 샛별, 운별, 은별.
원흉의 능력은 한별과 운별에게만 있다.
나는 먼저 한별의 능력 스탯을 바라보았다.
『창조의 별
생명의 바람 : 64
별의 시야 : 66
공간 이동 : 88
외형 변형 : 38
그랜드 코인 : +9999999.』
한별에게 코인이 생겨나 있다.
수호가 다섯 별의 이름으로 코인 기능이 있는 블랙카드를 만들었던 터라,
이젠 이들에게도 코인이 나타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별의 능력 스탯도 엄청 올라가 있다.
블랙카드를 만들었다고 이들에게 코인이 생겨났나 싶었는데.
수호는 아바타로 접속했었을 때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아포칼립스가 된 이곳 세상에서 코인이 보상으로 주어질 수 있는 조건은 간단합니다. 이곳 세계의 거주자로 인식이 되고 특이 능력이 있다면 코인이 들어오게 됩니다. 아포칼립스를 막는 데 공헌하면 보상이 주어지는 거죠.”
“아! 그래? 근데 나는 2052년에 존재하지 않는데?”
“그렇긴 합니다만. 아버지는 2052년의 한반도에서 문서상으로는 생존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와 유하준 박사님이 그렇게 의도적으로 꾸민 것이지만요. 그래서 2052년 한반도의 시스템에서 아버지는 주민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문서로 내가 생존자로 존재한다고 코인이 들어와?”
“2052년의 세계가 아버지를 생존자로 인식하게 된 겁니다. ‘고수’, ‘애플 수’라는 이름의 인물이 여전히 생존해 있다고 인식하게 되면, 그 인물에게 보상으로 코인이 주어집니다.”
나는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군.”
“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도 신분증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반도의 주민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제가 드리는 블랙카드는 2052년의 코인 시스템과 연결해주는 물건인 셈입니다.”
“음.”
“강 회장님이나 이모부 되시는 유 박사님 같은 경우는 미래에도 명백히 생존하시는 분이라 상관없는데. 아버지와 별들은 2052년의 거주민이라 할 수 없었던 터라, 굳이 신분증 외에 블랙카드라는 것도 만들었습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런 방법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인 것 같다.”
“예. 애초에 아버지의 시간 능력 덕분에 우리는 이런 편법도 쓸 수 있는 겁니다. 미래에서 얻는 코인까지 끌어다 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거니까요.”
나는 수호와 했던 대화를 그 부분까지 생각하다가 별들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입을 열었다.
“너희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지금 원흉은 다섯 재앙으로 존재하고 있을 거야. 가장 강했던 다섯 개의 별을 육신으로 삼고, 이전보다 강해진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 거지.”
내 말에,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나는 말을 이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너희도 다섯이야.”
문별이 말을 꺼냈다.
이제 스무 살 나이의 앳된 외모의 그녀다.
“우리는 원흉만큼 강하지 않아요. 거기다 저는 원흉에게 받은 능력도 없는걸요.”
나는 입꼬리를 미미하게 올렸다.
“물론 너희는 강하지 않았지. 하지만 이젠 강하게 될 거야. 내가 너희를 강하게 만들 거거든. 하지만 너희 능력은 원흉과 같은 방식으로 강하진 않아. 원흉은 파괴와 멸망 목적으로 강하다면, 너희는 생명의 능력으로 강하게 될 거니까.”
다섯 재앙으로 존재할 원흉.
그리고 내게 속한 다섯 창조의 별.
원흉과 나는 각각 다섯 개의 장기 말을 가지게 된 셈이다.
언젠가 테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은 생명을 잃게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잖아요. 하지만 죽음은 그 반대가 아닐까요? 죽음에겐 생명이 곧 무덤이 될 수 있겠네요.”
그녀의 말대로, 원흉에겐 생명이 곧 무덤이 될 터다.
그러니 원흉의 능력을 받지 않은 별에게는 ‘생명의 바람’이라는 명칭의 능력을 최대로 올릴 작정이다.
원흉에게 능력이 받은 별이라 해도, 원흉에게는 충분히 강해질 것이니.
먼저, 한별의 능력을 올렸다.
초반 스탯은 내가 쓰던 블랙카드를 사용하여 현금으로 올렸다.
그런 후에 한별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블랙카드의 코인을 소모하여 능력 스탯을 올렸다.
한별의 그랜드 코인은 대체 얼마나 쌓여 있었던 건지.
계속 코인을 소모해도 숫자가 ‘9’로 표기될 뿐이었다.
한동안 스탯을 올리다가 그랜드 코인이 바닥을 드러냈을 무렵.
나는 한별의 최종 스탯을 확인했다.
『창조의 별
생명의 폭풍: 151
별의 시야 : 66
공간 이동 : 88
외형 변형 : 38
그랜드 코인 : 7542186.』
‘생명의 바람’이라는 능력 명칭은 ‘생명의 폭풍’으로 바뀌어 있다.
운별의 능력 스탯도 올렸다.
운별은 미래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될 거라 그런가.
그의 스탯은 한별만큼 올라 있지 않았고, 코인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스탯도 내 블랙카드와 그의 코인을 사용하여 최대로 올렸다.
『창조의 별
생명의 폭풍 : 52
별의 시야 : 52
염력 : 91
그랜드 코인 : 5.』
운별은 염력만 중점적으로 올린 상태.
그는 별 중에서 유일하게 파괴 전투력을 지닌 별이 될 것이었다.
그 외에 다른 별들도 스탯을 올렸다.
그들도 ‘생명의 바람’을 중점으로 올려두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돈을 엄청 쓴 것 같다.
수호가 내게 줬던 블랙카드.
32레벨까지 1310억 7200만 원씩 긁기로 했었는데.
현재 30레벨의 돈까지 전부 긁은 상태였고 31레벨의 돈을 긁는 중이다.
후, 그동안 아포칼립스를 막을 용도로 블랙카드를 내내 긁기만 했었으니.
이젠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도 해야겠지.
나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들에게 말했다.
“당분간 여기에서 지내. 아직 너희는 어리니까 좀 더 성장하면 좋겠다. 우리는 조만간 원흉과 맞붙게 될 거야.”
* * *
며칠의 시간이 무탈하게 흘러갔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원흉을 대비하는 일 외에 애플 수로서 활동도 했다.
애플 수 첫 전시회를 준비한 것이다.
내 작품으로 하는 전시회.
그것은 내가 그림을 그린 이후로 오래도록 꿈꿨던 일이다.
유화 그림과 타블렛으로 그린 그림까지 작품을 그렸는데.
내 그림 작업 속도가 어마어마한 터라 전시회를 할 작품을 다수 준비하는데에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